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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하나님의 백성과 함께(히 11: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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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430회 작성일 20-06-02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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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히 11:24-26)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By faith Moses, when he had grown up, refused to be known as the son of Pharaohs daughter.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He chose to be mistreated along with the people of God rather than to enjoy the pleasures of sin for a short ti

      me.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He regarded disgrace for the sake of Christ as of greater value than the treasures of Egypt, because he was

      looking ahead to his reward.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 중에 지도자에 모세를 들수 있을 것입니다. 수백만의 말 듣지않는 백성을 데리고 광야에 나와 하나님의 백성되게 하는 공을 세운 지도자이었습니다. 원망과 배반으로 가득한 광야 사십년, 그 기간 동안 사십일 금식을 두 번씩이나 했고 수 없이 많은 원망과 배반과 돌에 맞아 죽을 고비를 넘겼던 지도자였습니다.

 

하나님에게 두 번이나 멸절을 당할 위기의 민족을 구한 모세이었습니다. 금송아지를 숭배함으로 하나님께서 멸절의 노하심에 모세가 하나님께 매달려 위기를 넘겼습니다. 가나안 정복 직전에 열두명 정탐꾼 사건으로 또 다시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스라엘 민족을 멸하고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했으나 이러한 이스라엘민족의 위기를 넘기고 살린 민족의 지도자이었습니다.

 

오늘 히브리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으로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 아들을 거절하고 백성과 고난을 같이하는 것을 죄악의 낙을 잠시 누리는 것보다 큰 재물로 여겼다.' 와 굉장히 멋진 일입니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있었으면 굉장할 텐데.. 그런데 모세가 진짜로 믿음으로 이렇게 했을까? 난지 3달 만에 바구니 넣어 강에 던져졌고 강가에서 목욕을 하던 바로의 공주가 건지고 측은지심에 키우고자 하나 젖이 없음에 숨어보던 누나 미리암의 제의로 모세의 어미가 유모를 하게 되었습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모세에게 신앙교육을 할 수 있었던 여건이 아니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스테반집사는 '모세는 애굽의 모든 지혜로 키워졌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믿음,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모세는 80살에 불타는 떨기나무 속의 하나님을 만났을 때 누구인가를 모를 정도의 믿음이었습니다.

 

사도행전 7장 스테반의 연설에서 모세가 40살이 되서야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러 탄압하는 애굽의 사람을 때려죽이고 모래에 덮습니다. 다음 날 이번에는 이스라엘 사람끼리 싸웁니다. 모세가 화해시키려 하니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 하면서 네가 어제는 애굽 사람을 죽임과 같이 또 나를 죽이려느냐 하느냐라고 합니다. 이 대화 가운데 믿음이 어디에 있습니까? 오히려 민족적 정서가 강하고 약한 사람을 도와주려는 것이 다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같은 민족에게도 인정을 못받습니다. 도망간 후 40년 동안 숨어 지냅니다.  

 

성경은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라고 하고 있습니다. 제가 삐딱하게 말씀을 걸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내려진 애굽왕명으로 남아는 바로 죽여야 했지만 어머니는 자기가 낳은 아이가 이뻐서 죽이지 못하고 울고 그래서 갈대상자를 만들어 강에 띄웁니다. 믿음으로 한 것이 아니고 키울 수 없어서 던졌는데 믿음으로 던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말씀은 그것을 믿음으로 적고 있습니다.

 

의문을 해결하려면 히브리서를 잘 알아야합니다. 억압받는 이스라엘민족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11장 시작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Now faith is being sure of what we hope for and certain of what we do not see." 논리적인 말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비논리적인 것도 아니고 믿음은 그 이상의 하나님을, 그 분의 주권을 인정하는 힘입니다.

 

그 시대는 아들을 낳는 기쁨 그리고 낳자마자 죽여야되는 공포를 같이 가지고 살았습니다. 당시 가장 문명이 발달하고 힘을 가진 이집트 문명과 같이했던 그러나 소망없는 시대를 살았던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런 시대에도 하나님의 일들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믿음의 작은 미미한 씨앗은 하나님에 의해서 이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이들을 받아내는 산파들을 주장하여 진행하시고 이끌고 계셨던 것입니다. 실날같은 예쁘다는 마음을 주었고 부모의 믿음이라기도 믿음의 씨앗을 주었습니다. 과정을 인도해 주셨고 바로 공주로 하여금 살리게 했습니다. 대제국의 궁에도 목욕할 곳 많았을텐데 공주가 강가에서 목욕하는 우연과 필연이 이루어져 모세를 준비하였습니다. 모세가 광야로 도망친 것 뿐인데 던져버린 개인사에 어떻게 보면 하나님이 간섭해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소망이 없는 때에 고난과 문제로 가득찼던 시대 거기에 우리의 믿음의 힘이 주어지는 것은 그 때에도 하나님이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믿음이 아니고 믿음으로 보는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신다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고 환경에 끌려가는 삶을 만날지라도 하나님의 주관가운데 역사하심 가운데 있는 중심입니다.

 

사실 현충일과 호국의 달에 민족적 모세를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모세는 민족적인 사람이 아니고 신앙적인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두 번이나 멸절을 하려는 하나님을 모세가 말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형상을 섬김에 하나님께서는 엄청나게 진노하여, 이스라엘을 진멸하신 후 다만 모세로 큰 나라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출 32:10). 하나님께서는 권능으로 광야에서 구출하셨는데, 이들을 죽이시려고 이끌어 내셨다라는 오해를 할까 두려워 진멸하실 수 없다고 호소합니다. 모세의 기도는 그의 백성들을 위한 기도이기도 했지만 종국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사랑을 중심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정탐꾼등의 불신앙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하시면서 민수기 14:12에서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네게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라고 모세에게 말하십니다. 하나님에게 민족을 구하려고 그러는지 알았는데 가데스 바냐에서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했을 때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는데 여기서 멸망시키시면 가나안땅까지 능력의 전능하심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사람들의 의심과 오해가 두렵다고 합니다. 민 14:18-19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허물을 사하시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9. 구하옵나니 주의 인자의 광대하심을 따라 이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되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백성을 사하신 것 같이 사하시옵소서"

 

민족의 멸망으로 사랑하심과 인자하심과 신실하심의 하나님을 오해하는 것이 싫다고 합니다. 그리고 더하여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의 약속을 지키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합니다. 그 누구보다 신앙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일제시대에 기독교인들 태반은 민족적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딸이 증언했던 글을 본적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민족적 지도자이기는 했으나 애국자가 아니고 순교자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단지 제1계명을 지켰을 뿐이었습니다' 라고 증언하였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나라를 사랑하는 민족주의는 매우 배타적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의 땅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정복하라고 하실 때 가나안의 족속들을 다 죽이고 너희 민족만이 잘살아라가 아닙니다. 신명기를 읽어보면 가나안족속을 멸망케 하심은 가나안사람들의 죄때문이지 이스라엘민족을 편애한 것이 아닙니다.

 

편협한 민족주의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신앙적입니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신앙인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나라이기때문에 사랑합니다. 민족이 아니고 신앙적이어야 합니다.

 

히브리서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함을 무의미하게 보지 말고 그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 그 믿음으로 그자리에서 굳게 서는 도전을 하셔야합니다. 메르스라는 공포가운데 있습니다. 이 공포에 믿음의 자신이 있습니까? 아니면 아무 생각없이 오셨습니까? 우리의 죄악이 아니고 나의 죄악때문에 나의 삶에 대한 의미로 해석해야 됩니다. 메르스를 주셨다 할지라도 소망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고난과 문제 가운데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소망으로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을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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