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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위1체주일]삼위일체 믿음 (요 14: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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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른곰
댓글 0건 조회 851회 작성일 20-06-0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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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위1체주일]삼위일체 믿음

(요 14:25-29)

지금부터 8백 여 년 전에, 마르코 폴로가 중국을 방문하여 십여 년 살다가 귀국한 후에‘동방견문록’이란 책으로, 유럽에 중국을 자세히 소개했는데, 당시 유럽인들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그 책에‘백만 가지 거짓말’이란 별명을 붙일 정도였지요. 마르코 폴로의 죽음이 가까워오자, 신부가‘죽기 전에 당신이 거짓말했다고 고백하세요. 그래야 천국갑니다.’폴로는‘신부님, 다 정말이고요, 보고 체험한 것의 반도 말하지 못했어요.’세월이 흐르자, 마르코 폴로의 말이 사실임이 드러났습니다.

지난 주 성령의 오심을 성령강림절을 지켰는데, 성령이 오심으로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의 세 분이 한 분이라는 삼위일체 주일로 오늘 지킵니다. 교회를 다니는 이들 중에, 하나님과 예수님은 믿으나 성령님은 믿지 못하는 이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마치, 동방견문록을 보고도 중국의 실체를 믿지 못한 유럽인과 같다할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중국이 사실로 드러났듯, 성령의 실체는 이미 드러나 있고, 앞으로 더 분명히 드러날 것입니다. 유럽인들이 믿지 못한 중국이 있듯이, 믿기 힘든 성령은 계십니다.

성령을 믿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성령은 영이기 때문에, 우리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영은 영으로만 이해할 수 있다.’했으니, 성령을 믿어야만 이해합니다. 사도신경에 성령에 대해 달리 설명하지 않고‘성령을 믿사오며’한 것이 그런 이유지요. 또 하나 이유는, 많은 설교자들이, 성령을 마치 신비한 능력이요, 열심히 믿는 이만이 누릴 특권인양 설명해왔기 때문입니다. 아니고요, 믿는 누구에게나 성령이 함께 하지요.

사도신경의 대부분이 세 분 하나님에 관한 것이지요.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천지의 창조주요, 아버지 되심과, 예수님이 우리 구세주 되심을, 믿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요,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을 믿도록 하는 분이 성령님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 함께 하시기에 삼위일체 하나님이라 하지요. 어떤 이는, 삼위일체란 단어가 성경에 없어서 안 믿는다고 하지만, 성경에 삼위일체를 알게 하는 말씀은 여러 곳입니다.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물에서 나오실 때, 성령이 하늘에서 내리고, 하나님의 음성이‘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예수님, 성령님, 하나님이 한 곳에 계시지요. 또, 오늘 함께 읽은 요 14:26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이름으로 보내실 성령이라 합니다. 역시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 함께 합니다. 함께 고후 13:13을 읽지요.‘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예배 끝에 축복하는 말씀으로, 세 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함께 하시는데, 이런 삼위일체를 알아야만 바로 믿고, 복을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믿는 우리가 누릴 가장 귀한 복이 무엇일까요?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두려워서 골방에 숨어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세 번이나 말씀하셨지요. 예수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도 평안, 평강입니다. 오늘말씀 27절에도‘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여러분이 예수님 믿고 교회 다니고, 기도하며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부요함입니까? 건강, 명예입니까? 자녀가 잘 되는 건가요? 좋은 성적을 받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인가요? 다 좋습니다만,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기 전 날 밤에 하신 겁니다. 예수님은, 내일 당하실 온갖 모욕과 매 맞음, 십자가 죽음을 아시면서, 주려는 평안이 무엇일까요?

우리의 건강, 부요, 명예 등은 아니겠지요? 우리는 자주,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께 부끄럽지 않은 기도를 드리자고 합니다.‘돈 벌게 해주세요.’부끄럽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믿는 우리가 죄 사함 받음으로 하나님과 평안을 회복해서, 영생에 참여하는 겁니다. 잠깐 뿐인 이생이 끝난 후에 영생이 있음을 믿는 성도는, 부귀영화에서 평안을 누리려하지 않고, 아프거나 힘들어도 주의 평안을 누립니다.

남편을 잃고 어렵게 딸을 키우던 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희망대로 딸이 어엿한 대학교수가 되었는데, 딸이 생각하니,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뒷바라지하느라 평생 고생만 했습니다.‘엄마, 소원이 뭐예요? 제가 꼭 들어드릴게요.’어머니는 신앙생활을 잘 했지만, 딸은 공부가 바쁘다며 그러질 못했습니다. 어머니는‘내 소원이야 너와 함께 교회에 나가는 거야. 다른 건 없어.’딸은‘기꺼이 교회에 나가지요.’다음 주에 어머니와 함께 교회에 갔습니다.

그런데 딸이 본 것은 다 부정적인 것이었습니다. 마침 교회 내에 분란이 있어, 서로 나뉘어 싸우는데 꼴불견입니다. 겨우 예배를 마치고도, 시기하고 질투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투덜거립니다.‘나 다시는 교회에 안 가요.’하면서, 왜 갈 수 없는지, 자기가 본 것을 다 얘기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가‘사랑하는 딸아, 엄마는 수십 년 교회를 다니면서 예수님 얼굴 밖에 보지 못했는데, 너는 하루 동안에 참 많은 것을 보았구나.’

어머니와 딸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스스로 생각할 때, 여러분은 어느 쪽에 가깝습니까? 어머니는 성령을 믿고 의지함으로 예수님만을 바라봤으나, 딸은 그저 육신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평안했고, 딸에겐 평안이 없었지요. 예수님을 주로 고백한 분에게는 다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내 속의 성령을 의지하는 분은, 그 어머니와 같은 평안을 누리나, 의지하지 않는 분은, 딸처럼 평안을 누리지 못합니다. 지금 내게 평안이 없는 분은, 무엇보다 먼저 내 속에 계신 성령님께 매달리세요.

사랑의 예수님은, 우리가 어떤 형편에서든 평안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시지만, 우리가 그렇지 못한 것을 잘 아십니다. 그러기에, 성령을 보내주시며, 성령이 하실 일도 자세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먼저, 성령의 이름이 보혜사라 하십니다. 오늘날 가까운 의미는 변호사로서, 옆에서 깨닫게 하고 보호하고 변호하시는 성령입니다. 세상에서 우리 홀로가 아니고, 보혜사 성령님이 항상 함께 하십니다.

두 번 째로, 예수님은 성령이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것을 생각나게 한다 하십니다.

우리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 당시에 종이나 볼펜이 없지요. 제자들이 삼 년을 따라다니며 무수한 말씀을 들었지만, 어디 기록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성경이 기록될 수 있었던 것은, 성령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시고 생각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을 깨닫게 하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신 성령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그리 역사하십니다.

성령이 도우심으로,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의 구원의 역사를 알고,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이 어떠함을 밝히 알게 하기에, 성도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참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존 웨슬리 목사님이 어느 날 배를 타고 가는데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엄청난 풍랑이라서 선장을 포함해 모두들 죽는다고 아우성입니다. 그런데 웨슬리 목사님은 찬송을 부르며 평안한 모습으로 입니다. 선장이 화가 나서‘저런 미친놈을 봤나. 지금 얼마나 위험한데.. 당신 하나님께 기도해서 우리를 살려달라고나 해.’

웨슬리 목사님은‘선장님, 저는 조금도 두렵지 않습니다. 죽으면 천국 갈 것이고 살면 목적지에 갈 것이고,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될 것을 저는 믿기에 두렵지 않습니다.’웨슬리를 평안하게 한 성령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지금 자신이나 가족이 몹시 아픈 분,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 학기말 시험과 취업을 앞둔 형제들, 성령님을 의지하면 주님의 평안을 누릴 줄 믿습니다.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다, 그러면 언제나 평안하지 않겠습니까?

진리의 영이신 성령은 우리를 바로 깨우쳐주시지만, 우리가 종종 오해하기도 합니다.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예배가 끝나자 한 교인이 목사님에게 다가와서“목사님, 목사님이 설교하시는 중에, 성령님이 제게‘네게 꼭 필요한 아들 대학등록금을 목사님께 달라하면 주실 거다.’말씀하셨습니다.”그러자 목사님이‘거참 이상하네요. 제게 그런 돈이 없는 줄 아시는 성령님이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성령하나님이 확실했어요?’우스개 같지만, 성령에 관한 이런 오해가 적지 않습니다.

비슷한 경우입니다. 한 청년이 기도를 참 열심히 합니다. 열심히 하니 성령님의 역사가 느껴집니다. 그 청년이 목사님에게‘제가 결혼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니, 어느 자매와 하라고 응답을 주셔서, 자매를 찾아가 결혼하자했더니, 나를 싫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것입니까?’목사님 대답은‘성령하나님이 역사하실 때는 너에게만 아니고, 상대에게도 하시니까, 상대가 듣기까지 기다려봐. 그렇지 않은 것은 너의 집착이야.’성령을 의지하되, 바로 해야 평안합니다.

세 번 째로, 성령은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심으로, 우리가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요 14:28에‘나를 사랑하였더라면’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제자들은 거의 공황상태입니다. 자기생업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장관 한 자리는 하겠지. 그런 예수님이 떠난다고 합니다. 어디로 가시냐고 물어도, 너희는 모른다하지요. 그런 형편이니, 예수님이 잡히실 때에,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진정 사랑했다면, 예수님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하실 일을 제대로 알았지요. 예수님은 세 차례나 당신이 고난을 당해 죽고 사흘 만에 살아나리라 하셨으나, 귀담아 듣거나 이해하는 제자들은 하나도 없었지요. 예수님이 죽으면 자신들의 소망이 끝나니 그렇고,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산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했음에도, 이어지는 성경말씀은, 제자들이 확 변화된 것을 알려줍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제자들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이, 인간을 위한 예수님의 사랑임을 알고 나니, 예수님을 더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자들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나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평안을 누릴 길이기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물으셨죠. 우리도‘예, 제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이 아십니다.’대답하며 그리 살 때에, 세상이 줄 수 없는 주님의 평안을 누릴 것입니다.

무엇이 예수님의 말씀과 사랑을 깨닫게 했습니까? 무엇이 하나님아들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신 이유를 알려줄까요? 무엇이,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참 평안임을 깨닫게 할까요? 지금까지 세상의 부귀영화, 즐거움, 자랑을 따르던 삶이 어떻게 주님의 평안으로 바뀌게 될까요? 이 모든 일을 성령님이 하시지요. 그럼으로, 여러분 속에 계신 성령님을 온전히 믿고 따르면, 세상이 줄 수 없는 참 평안을 누립니다. 할렐루야!

예수 믿는 성도가 바랄 것이 하나님나라이지요. 이 땅의 삶이 다한 후에 누릴 저 천국 하나님나라의 영생도 있지만, 이 땅에서도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하나님나라를 누리며 사는 것이, 성도가 누릴 복입니다. 이 땅 하나님나라는 어떤 것일까요?

롬 14:17 후반에‘하나님나라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합니다. 성령의 도우심 속에 의롭게, 평안하게, 기쁘게 사는 것이 하나님나라지요. 오늘 성령으로 평안을 누린다는 말씀과 같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런 하나님나라를 누릴 수 있게, 성부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관리하십니다. 성자하나님은 평안을 누릴 수 없는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평안의 길을 여셨고요, 성령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깨닫게 하시고, 누리게 하십니다. 이렇게 세 분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삼위일체는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 신비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하기 힘들지만, 성령이 나와 함께 함을 믿으면, 삼위일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를 이해하면 누릴 것이 많으나, 외면하면 잃는 것이 많습니다. 교회가 없고, 성경이 없고, 하나님자녀 됨도, 천국영생도 없고, 진리를 깨닫지도 못합니다. 성도답게 살지 못하고, 평안을 누리지 못합니다. 믿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누리시렵니까? 믿지 않으렵니까?

신실하고 지혜로운 성도는 당연히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수님이 주신 평안을 누려야지요. 앞날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죽음도 두렵지 않습니다. 세상 안 믿는 사람들이 매달리는 건강, 돈, 명예, 갈등, 두려움, 혼란 등에서 자유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함께 신앙생활을 하면서 세상이 줄 수 없는, 예수님의 참 평안을 모두 누리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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