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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새벽기도 5= 우리는 너그럽게 삽니다(원수 대적X) 마 5:3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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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70회 작성일 20-03-02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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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너그럽게 삽니다(원수 대적X)         마 5:38-42


중국의 유명한 복음 전도자였던 워치만 니의 글을 읽어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가 젊은 시절 농사를 지으면서 살 때였습니다. 어느 해 날이 몹시도 가물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양수기로 물을 퍼서 자기 논에 어느 정도 물을 채워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그가 아침 일찍 자기 논에 가보니까 물이 많이 줄어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웃 논 임자가 논둑을 터놓아서 말도 없이 그쪽 논으로 물을 빼내 가버린 까닭이었습니다


그는 몹시도 화가 났지만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모른 척 하고 참았습니다. 그는 또 다시금 양수기를 동원해서 자기 논에 물을 채워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아침 논에 나가 보았더니, 또 물이 많이 빠져 있었습니다. 그는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생각에 이웃 논 임자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정중하게 항의를 했습니다. 물론 이웃 논 임자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웃 논 임자로부터 사과를 받았습니다. 다음부터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워치만 니의 마음 속에 기쁨이 없었습니다. 자기가 분명히 틀린 일을 한 것도 아니고, 또 이웃 사람이 잘못했다고 사과도 하고, 앞으로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도 했는데 이상하게도 그의 마음 속에 기쁨과 평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날 저녁 잠자리에 들기에 앞서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한 일도 아닌데 어찌 저의 마음 속에 기쁨과 평강이 없습니까?"

그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어떻게 일의 옳고 그름만을 따져서 꼭 정당한 일만 해야겠다고 생각하느냐? 그것보다도 더 위대한 일을 할 수는 없다는 말이냐?" 그러한 음성을 듣고서 그는 깊이 생각했습니다. 그는 그 다음 날 아침 일찍이 양수기를 준비해서 먼저 이웃 논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여러 시간 동안 물을 퍼 올려서 이웃 논에 충분하게 채워 주었습니다. 그 뒤에 그는 양수기를 자기 논으로 옮겨서 자기 논에도 물을 채웠습니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된 이웃 논 임자는 마음에 큰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일이 계기가 되어서 이웃 논 임자와 그의 온 가족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악한 자를 대적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결코 악으로는 악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함께 점점 더 악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된 우리들은 악한 자를 대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우리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까지라도 선대합니다


이미 예수님은 8복에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은 온유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긍휼히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들입니다. 또 의를 위해서 받는 핍박을 오히려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악한 자를 대적하려고 하지 않고 우리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까지라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사랑을 베풀어줍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선으로 악을 이기면서=웡수사랑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얼마나 복있는 사람들인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첫째, 성경에 나타난 보상법의 정신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둘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셋째,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이렇게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부족하고 연약하고 죄많은 우리들이지만 하나님은 변함없는 사랑, 너그러운 마음으로 지금도 우리를 선대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우리도 언제나 너그러운 마음으로 우리의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어주는 모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함으로서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으로 악을 이기면서 승리로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A. 성경에 나타난 보상법의 정신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본문 38절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An eye for an eye, and a tooth for a tooth." 잘 알려진 말입니다. 고대 바벨론의 함무라비 법전에도 똑같은 말이 나옵니다. 이 법을 라틴어로는 전통적으로 lex talionis, 곧 탈리오의 법칙이라고 부릅니다. 여러가지 다른말로 번역이 되지만, 저는 이것을 보상법이라는 말로 번역해 보았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만큼 보상해 주어야 하고, 내가 피해를 받은 만큼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뜻에서 그렇게 번역해본 것입니다.

그러면 보상법, 다시 말해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말씀의 근본정신은 무엇입니까? 크리소스톰이라는 교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말씀을 하시니까 그 말이 조금 잔인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이다. 만일 하나님이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셨 다면 오히려 잔인할 뻔 하셨다."


보상법의 정신은 하나님의 자비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을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옆으로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계명의 배후에는 사랑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보상법의 근본정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보상법을 통해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법을 우리가 배울 수 있습니다. 보상법의 정신은 한 마디로 사랑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구약성경에는 보상법이 세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 출21:24입니다. 둘째, 레24:20입니다. 셋째, 신 19:21입니다. 가장 먼저 나오는 출애굽기 21장의 말씀을 찾아봅니다. 출21:22-25의 말씀입니다.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아이 밴 여인을 다쳐 낙태케 하였으나 다른 해가 없으면 그 남편의 청구대로 반드시 벌금을 내되 재판장의 판결을 좇아 낼 것이니라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찌니라."

우리는 여기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몇 가지로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말씀을 본시 누구에게 주셨습니까? 22절 끝 부분에 보면, "재판장의 판결을 좇아 낼 것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보상법은 우리 개개인이 이 원리를 적용하도록 주신 말씀은 결코 아닙니다. 본시는 재판장의 판결 원리로 주신 말씀입니다. 재판장이 공정한 판결을 내리기 위한 원리로 주신 것이 바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우리 개개인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을 권한이 없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우리는 창 4:23-24의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라멕이 자기 아내들에게 뽐내면서 했던 말입니다.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배일찐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 칠배이리로다 하였더라."


라멕이 무슨 뜻으로 이 말을 했습니까? 누구든지 자기를 해하면 자기는 그에게 칠십 칠배로 되갚아주겠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복수심이 바로 그렇습니다. 예컨대 내가 다른 사람에게서 한 마디 욕을 먹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 마디만 해주면 직성이 풀립니까? 두 마디, 세 마디 해야지 갚은 것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타락한 인간의 본심입니다. 만일 내가 실수로 다른 사람에게 어떤 피해를 주었는데, 그 사람이 내게 두 배, 세 배로 보복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따라서 하나님은 나를 보호하시기 위해서 개인적으로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도록 허용치 않으셨습니다. 반드시 재판장의 공정한 판결을 통해서만 보상이 가능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둘째, 재판장은 판결을내릴때 어떻게판결을 내려야합니까? 반드시"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고 판결을 내려야 합니다. 그 이상도 안되고 그 이하도 안됩니다


예컨대 내가 가해자라고 생각해 보십시다.

내가 실수로 다른 사람의 이를 부러뜨렸습니다. 그러면 재판장은 어떻게 판결을 내려야 되겠습니까? "이는 이로 갚으라"고 판결을 내려야 합니다. 그런데 재판장이 "이는 눈으로 갚으라"고 판결을 내리면 어떻게 됩니까? 내가 너무 가혹한 처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내가 피해자라고 생각해 보십시다. 다른 사람이 내 눈을 상하게 했습니다. 그러면 재판장은 "눈은 눈으로 갚으라"고 판결을 내려야 내가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재판장이 "눈은 이로 갚으라"고 판결을 내린다면, 내가 얼마나 큰 손해를 보겠습니까? 이처럼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갚으라"는 우리를 보호해 주시기 위해서 이법을 주신것입니다

셋째, 이 법을 통해서 우리는 이웃 사랑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예컨대 내가 다른 사람의 눈을 상하게 했습니다. 그러면 그 즉시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내 눈도 저렇게 상하게 되겠구나!" 이러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눈은 눈으로 갚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내가 다른 사람의 이를 부러뜨렸습니다. 그러면 무슨 생각이 들겠습니까? "내 이도 저렇게 부러지겠구나!" 그러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이로 갚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법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몸을 내 몸처럼 귀히 여기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의 원리입니다.

이와 같이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재판장의 판결 원리로 주셨고, 또 재판장은 반드시 이 원리에 따라서 판결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이웃의 몸을 내 몸처럼 귀히 여기면서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과 같이 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보상법, 곧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말씀의 근본정신은 한 마디 로 "사랑"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이것을 전적으로 잘못 이해했습니다. 아울러 그들은 그 당시 사람들을 잘못 가르쳤습니다

B.서기관과바리새인들의 잘못된가르침에대해서살펴봅니다.

38절 말씀입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예수님은 이 말씀의 끝 부분에서 "너희가 들었으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 말씀 드린 대로, 예수님은 긍정적인 차원이 아닌 부정적인 차원에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지금까지는 이렇게 들어 왔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예수님은 이러한 뜻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가르침은 무엇이었습니까?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말씀 자체가 잘못되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조금 전에 살펴본 대로 이 말씀은 구약성경에 나타난 보상법을 있는 그대로 압축을 해놓은 것입니다. 말씀 자체는 전연 잘못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39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살펴볼 때, 우리는 그들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밝히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39절 말씀을 보십시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말씀에 근거해서 그 당시 사람들에게 어떻게 가르쳤겠습니까? 그들은 악한자를 대적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이는 명백하게 잘못된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들은 보상법의적용을 잘못했습니다. 아울러 그들은 보상법의정신도 완전히 무시해 버렸습니다

우선 그들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보상법의 적용을 잘못했습니다. 본시 보상법은 재판장의 판결의 원리로 주신 말씀입니다. 개인은 사사로이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을 권한이 없습니다. 반드시 정당한 재판을 통해서만 그렇게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말씀을 개인에게 적용시켰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 들에게 악한 자를 사사로이 대적하도록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가르침의 가장 큰 영향을 받았던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 당시의 열심당에 속한 사람들 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 한 가지 사실만 하더라도 유대인들은 얼마나 원통하게 생각했겠습니까? 그런데 로마는 유대인들을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해서 헤롯을 그들의 왕으로 세웠습니다. 헤롯은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헤롯은 에돔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이방인이었습니다. 이방인인 헤롯이 자신들을 다스리는 왕이 되었으니 까 유대인들이 얼마나 분개했겠습니까?

급기야 유대인들 가운데는 로마인들에게 당연히 복수를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들에 의해서 조직된 것이 바로 열심당이었습니다. 그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가르침의 영향을 받아서 눈은 눈으로 갚고, 이는 이로 갚고, 폭력은 폭력으로 맞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로마 군인들에 대해서 폭력과 살인을 일삼았습니다. 로마 군인들이 당하고 가만히 있겠습니까? 로마 군인들은 즉시 보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게 되었습니다. 결국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증오심이 조장되었습니다. 사회는 점차로 질서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사람들을 잘못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또 그들은 보상법의 정신을 망각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조금 전에 살펴본 대로 보상법의 근본정신은 한 마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이웃을 사랑하라고 주신 것이 바 로 보상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이것을 망각해 버리고, 사람들에게 "악한 자를 대적하라"고 가르침으로서, 개인이 복수하는 것을 정당화했습니다. 그들은 복수심을 조장시켰습니다. 성경 어디를 찾아보아도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씀은 없습니다. 원수를 갚으라고 하신 말씀도 없습니다. 오히려 신32:35에 보 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보수는 내 것이라."

원수를 갚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될 일은 무엇입니까?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원수에게 선대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될 책임입니다. 레19:18에 있는 말씀입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또 잠25:21에있는말씀입니다 "네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먹이고 목말라 하거든 물을 마시우라."

악한 자를 대적하라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원수까지바리새인들은 보상법의 정신을 완전히 망각해 버리고, 라도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입니다. 그런데 서기관과 사람들의 마음 속에 사랑 대신 미움을 심어주었습니다. 용서 대신에 복수를 심어주었습니다. 그러니 그 당시 사회가 얼마나 악해졌겠습니까? 예수님은 그 세대를 가리켜서 여러 번씩이나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여!"라고 탄식하시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이런 낮은 수준의 의를 가지고 어떻게 천국의 백성이 되겠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서기관과바리새인들의 의로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수없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C.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39-42절의 말씀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예수님은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주신 분이십니다. 다시 말해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보상법을 우리에게 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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