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새벽기도 4= 사역을 시작하시는 주님 마 4: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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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펄전목사는 이런 말을 했다.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거절하고 부인하는 것은 물에 빠진 자가 구명대를 던져 버리는 것이요, 독약을 먹은 자가 해독제를 거부하는 것이요, 또한 상처를 입은 자가 그 상처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과 같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의 영혼을 구원할 구속자를 멀리하는 자보다 더 어리석은 자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님께 맡겨주신 사명이 하나님의 경륜과 지혜를 따라 착착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은 놀라운 영광과 환희로 나타날 때도 있고 성령의 큰 은혜와 능력으로 나타는 때도 있으나 때로는 많은 희생과 수고, 고난과 갈등과 고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맡아 감당하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지 자기가 잘 되어야만 하나님의 사업도 잘된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잘못되든지, 잘되든지 오직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만 하면 그것으로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일을 할 때 단순히 열심만으로는 그를 기쁘시게 할 수 없다.
그보다 우선적인 것이 있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이요 그의 때를 발견하는 것이다.
아일랜드의 유명한 선교사 "패트릭"은
"하나님의 교훈이 나를 인도하시고,
그의 능력이 나를 붙드시며,
그의 지혜가 나를 가르치는도다"라는 말을 표어로 삼고 늘 겸손한 생활로 주의 뜻에 순종하는 생활을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360개의 교회를 세우고 많은 이적을 일으켰으나 그의 저서에는 자기가 한 이적은 하나도 기록하지 않았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렸다고 한다.
우리는 本文에서
1. 가버나움에 거하신 예수님을 보자!
12∼13절 "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블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라고 했다.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의 잡힘을 들이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
예수님은 요한이 투옥되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이제는 자신이 나서야 할 때가 왔음을 아시고 자신의 사역의 길을 모색하고 계셨다.
하나님은 이와같이 언제나 당신의 백성의 속박과 고통을 기억하시고 준비하시고 계신다.
세례요한은 주님 자신이 나타나시기 전까지만 활동하시며 그의 길을 예비하는 사명자로 오셨다.
요한은 그리스도의 선구자이지 결코 주님의 경쟁자이거나 대등한 지위의 사람은 아니다.
달과 별들은 태양이 떠오르면 사라지는 法이다.
세례요한은 회개의 세계를 촉구하여 이를 행함으로써 그의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그 다음에는 스스로 길을 비켜서시고 주님께 내어 드렸다.
그러므로 주의 증인들은 그들의 증거의 사명을 다 마치기 전에는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다(계11:7).
하나님은 자신을 증인 없이 내버려 두시거나, 자기 교회를 인도자 없이 방치해 두시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가 유용한 도구를 없이 하실 때는 또 다른 도구를 세우시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의 남은 사역이 중대하기 때문이다.
"내 종 모세는 죽었으나 그 대신에 여호수아가 계승한 것"처럼 요한은 잡혔으나 이제 주님이 그 뒤를 이으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전파하신 곳은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갈릴리 지방이었는데 이곳은 야만적이고 촌스러운 지방으로 멸시를 받았다.
민도도 낮고, 경제력도 약하며, 이 지방 주민들은 억세고, 야비하고, 교양이 없는 사람들로 취급받았으며, 또는 군인으로나 적합하다고 여겨졌으며, 버릇없을 뿐아니라 학자로서는 합당치 않은 자들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이곳을 피하신 것이 아니라 그곳으로 가셨다.
그곳에서 복음의 가치를 높이 세우셨다.
주님은 다른 일에서와 같이 이 일에서도 자신을 한없이 낮추시고 그들을 섬겼고 사랑했으며 함께 하셨고 도와주었다.
주님께서 거처로 삼은 곳은 그가 자라나셨던 나사렛이 아니었다.
그는 그 나사렛을 떠나셨다.
우리는 특별히 이 사실에 주목해야한다.
13절 "나사렛을 떠나 스블론과 납달리 지경에 있는 가버나움으로 가서 사시니"라고 하셨다.
그가 나사렛을 떠나신 것은 그곳 사람들이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냈기 때문이었다"(눅4:29).
그래서 주님은 "선지자는 자기 고향에서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
하신적이 있다.
주님은 매우 공평하게 봉사하려했지만 그의 가르침을 거절했고 그분의 속 깊은 뜻을 헤아려 주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살기 등등했다.
그래서 주님은 자기가 애굽에서 올라와 정착하여 강보에 싸여 유년 시절을 지나고 청년이 되기까지 고향땅 그곳에서 살았으나 주님은 나사렛을 떠났으며 그의 가르침을 방해한 자들에 대하여 발의 티끌을 떨어버렸다.
여기에서 유의할 점은 복음이나 은혜수단이나 축복의 수단, 그리고 진실한 권면이나 가르침을 멸시하거나 밀쳐버리는 자들에게서는 이것들을 빼앗아 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합당한 권리이라는 사실이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영접하지 않고 환영하지 않은 곳에서는 오래 머물지 않으신다.
그리스도가 가서 사신 "가버나움"은 나사렛에서 멀리 떨어진 갈릴리 지방의 한 고을로서 그 규모가 크고 번화하였다.
이 고을이 "해변"에 위치하였다고 기록되어있는데 이 "해변"이란 바닷가가 아니고 디베랴 바다, 갈릴리바다, 즉 게네사렛 호수로도 불리어지는 육지안의 큰 호수였다.
이곳은 나사렛 지역보다 인구 조밀지구이며, 다메섹과 동방으로부터 지중해까지 뻗쳐있는 큰 무역통로를 기고 있었기 때문에 주님이 사역으로서의 갈릴리 지역을 선택하신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예수님께서 이곳에서 그의 제자들을 부르시고, 수많은 이적을 행하시며, 복된 여러 메시지를 전파하신 곳도 가버나움이다.
그래서 가버나움은 예수의 활동 중심지이며 복음선교의 주 활동 무대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의 자비와 권능과 진리의 선포를 가버나움 지역일대에서 가장 많이 베풀었고 모든 은혜의 말씀들을 전파하였다. 그러나 그 지역주민들이 도무지 회개치 아니할 때 이들에게도 심판을 예언하셨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버나움지역 같은 이곳에 주님께서 32년전에 주례교회를 세우시고 이 시간까지 그 주님은 이곳에 자비와 사랑과 은총과 능력을 베풀고 계신다. 우리는 그 자비, 사랑, 능력을 받아 주님께 영광을 돌릴지언정 불순종, 거역하므로 심판의 선고를 듣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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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수의 사역 선포의 시작
17절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서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Repent : for the kingdom of heaven is at hand).
예수님께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신 후에 갈릴리에서 나사렛으로 가셨고, 그 다음에는 가버나움에 우거하시면서 그곳에서 첫 공생애를 시작하셨다. 여기 "이때부터"란 주님이 갈릴리와 스블론, 납달리 땅으로 오신 때부터를 말한다.
때가 이르렀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흔히 일어나셨으며 요한의 투옥이라는 암울한 상황에서도 담대히 복음을 증거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주저함이 없었으며, 예정된 때를 거스르거나 지나쳐 버리지 않으셨다.
그때를 자신의 때인 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영적인 안목을 지니셨다.
주님의 제일성은?
"회개하라"고 외치셨다.
"회개"는 (Repent) 성경전체를 통하여 여러번 계속하여 언급되고 있는데 그 의미는 "지나간 일을 돌이켜 보라, 마음을 바꾸라, 잘못을 사죄하라, 하나님께로 향하라" 라는 뜻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생이 하나님께 대하여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지적으로 죄를 분별하고, 감정적으로 죄를 미워하고 싫어하며 증오하고, 의지적으로는 하나님을 향하여 순종하며 그의 뜻을 받들면서 기뻐하는 생활이다.
예수님께서 사역의 첫음성으로 이 "회개"를 선포하신 것은 이것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거쳐야할 근본적인 일이며 최초의 관문이기 때문이다. Matthew Henry는 "회개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들의 특징이며 특권이라"고 했다.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했는데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와 동의어로서 천국이나 하나님의 나라를 성경에서 말할 때 그것의 기본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는 영역"이라는 의미이지만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통치적 지배, 즉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의미한다.
성경에 천국에 대한 말씀과 비유가 수없이 많이 나오는데 그 비유에서 천국은 작은 씨와 같아서 점점 크게 자라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천국은 현재와 미래의 양면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며(막4:26∼29), 현세와 내세의 성질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이 세상에서 지옥 생활하다가 죽어서만이 천국 생활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된 천국시민으로서 이 땅에서 생활하기를 원한다면 회개의 삶을 살아야하며, 참된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기를 원한다면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무엇을 제일 먼저 외쳤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즉 회개가 빠진 복음, 회개의 삶이 빠진 생활은 복음의 정수를 빠뜨린 빈껍데기만의 복음이요 생활인고로 맛을 잃은 소금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주님은 사역의 제일성(第一聲)으로 회개를 외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주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무엇을 회개할 것을 찾아 하나님께로 돌아오시기를 바랍니다.
3. 제자를 부르시는 주님이다.
18∼19절에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셨다.
1)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를 부르심
베드로와 안드레 이 두형제는 일반 갈릴리 주민들보다 낫지 못했다.
그들과 같이 상스러웠고, 거칠었으며, 배려할 줄 몰랐다.
그들은 좀더 세련되고 교양을 갖춘 갈릴리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장점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장차 하나님 나라에 수장이 될 사람을 부르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으며 갈릴리 해변에 오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은 세상의 미련한 사람들, 천한 사람들을 택하시어서도 지혜 있는 사람들, 세련된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시기도 하신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가난한 어부로서 그물 던지는 일을 하고 있다가 부름 받았다.
예수님에 의해 새로운 영적 가족의 일원이 되었고 주님의 거룩한 사역에 동참하게 되었다.
만약 그들이 게으름을 부리면서 놀기를 좋아하고 일하는 그곳에 없었다면 예수님을 만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주님은 일하는 자를 찾고 계시며, 일하는 자를 당신의 일꾼으로 쓰십니다.
형제가 같이 한 교회서 일하게 됨은 더욱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베드로와 안드레가 같은 사역을 했기 때문이다.
2).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심.
21절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을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라고 했다.
형제인 야고보와 요한은 가버나움에서 베드로, 안드레와 고기 잡는 일을 했다.
안드레와 함께 요한은 세례요한에 의하여 예수님께 인도되었다.
예수와 몇 마디 말씀을 나눈 후 요한은 그가 구세주임을 확신하였다.
요한을 만난 순간부터 예수님은 그의 빛이 되셨고, 요한은 예수님의 가장 사랑 받는 제자로서 성경의 여러 곳에 묘사되어있다.
안드레가 그의 형제 베드로를 예수님께 데려갔듯이 요한이 그의 형제 야고보를 예수님께 전도하여 데려갔다.
어떻든 이두 형제들의 가정은 가족복음화를 형제들끼리 이루어가고 있으며 주의 일꾼으로, 주님을 돕는 제자로 세워져 가고 있다.
야고보 역시 예수님의 핵심적인 제자들 세명중의 하나로 주님께 큰사랑을 받았으며 주님을 위하여 12제자중에 최초의 순교자의 반열에 올랐다.
이들은 왜 이와같은 신실한 제자가 되었고 주의 사랑을 받으며 영광의 자리에 나가게 되었습니까?
3). 즉시 순종하고 따랐다.
20절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으니라"
22절 "저희가 곧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고 하셨다.
그들이 그물을 던지는 중에 있던지, 그들이 그물을 깁고 있던지, 그것은 그들의 생활, 혹은 사업과 직접적인 관계에 놓여 있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주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사업, 직장, 가족, 먹고사는 문제, 인생 출세의 문제, 자신의 자존심 등은 생각지도 않았으며 문제로 삼지도 않았다.
그렇습니다.
주님께 순종하고 성령의 감동에 순응하는 자는 아무런 조건이나 이유 없이 순종하고 따르는 것이다.
이들 4명의(베드로, 안드레, 요한, 야고보) 제자들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도록 하는데 있어 좋은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나의 주님이시오 주인이신 예수님이 인도하는 데로 어디든지 쫓아가고 따른 것은
신실한 주의 종들이 지녀야할 아름다운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자기들이 처해 있는 형편과 처지나, 가족과의 유대관계성, 소명 받은 봉사의 어려움, 이 부르심에 합당치 못한 자신들의 부족함에 대해 하등의 이의가 없이 예수가 좋아서 따랐으며, 예수가 좋아서 쫓았듯이 우리 또한 주님의 좋아서 주님을 사랑하고 따르고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있어야할 곳은 물이 있는 바다이다.
그러나 물이 뱃속으로 들어가면 그 배는 못쓰게 되어 가라앉고 만다.
이와같이 성도가 회개하고 똑바로 서야할 곳은 이 세상이다.
그리고 우리가 져야할 자세 또한 부름 받은 제자의 태도이다.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같은 형제와 가족이 되시고 성도가 다 되어 주의 큰사랑을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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