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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예수의 전열 정비 (1)/ 마 4:1-1 . 신 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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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33회 작성일 20-03-02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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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에 읽을 순교이야기/이그나티우스♠

 

사순절에 읽을 순교이야기/이그나티우스시리아지방 안디옥의 감독 이그나티우스(Ignatius)는 A.D. 30-35년경에 태어났습니다. 그의 칠십여 평생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의해 잉태된 자"라는 별명으로 불려졌습니다. 그에 대한 전설에 의하면, 복음서에서 예수께서 무릎에 앉히고 축복하셨던 그 어린아이가 바로 이그나티우스였다고 합니다. 2세기 기독교 사회에서 이그나티우스에 대한 존경과 신망이 얼마나 두터웠는가를 짐작케 하는 이야기입니다. 폴리갑, 이레니우스, 유세비우스 그리고 제롬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A.D. 108년경 트라얀황제의 치세에 로마에서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로마로 압송되던 중 서머나에서 자신을 위해 구명운동을 하고있던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었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탄원합니다. 나에게 "불합리하게 친절하지" 마십시오. 내가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에게 도착하도록 내가 야수들을 위한 먹이가 되도록 하십시오. 내가 순수한 빵이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하나님의 밀이고 나는 야수들의 이빨에 의해 갈아지고 있습니다. 내가 일단 잠에 떨어져서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그들이 나의 무덤이 되어서 육신의 어떤 것도 뒤에 남겨놓지 않도록 야수들을 달래는 것이 좋습니다. 세상이 더 이상 나의 몸을 보지 못할 그때, 나는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수단들을 통하여 내가 하나님에게 희생이 되도록 주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이그나티우스에게 있어서 순교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며"세상으로부터 하나님에게 기울어가는 것"이며"기독교인임을 증명하는 것"이며,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이며,"그리스도에게 이르도록 하는 것"이며"하나님에게 속하는 것"이며, "진정한 사람이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고난의 모방자"(6:3)가 되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복음을 전하셨고 이 복음은 순교의 피로 지켜졌습니다. 순교는 이교도들을 향한 가장 확실한 변증이었으며 그렇기에 속사도 시대의 교부들에게 이 순교의 문제는 생활의 문제였습니다. 그들에게 순교는 목숨을 잃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으며 그것은 새롭고 영원한 삶으로의 비약,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배교가 곧 이 땅에서의 생명을 보존하는 유일한 길이었던 때에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와 성도들은 순교를 통하여 얻는 영원한 나라에서의 생명을 기꺼이 열망하였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늘상 오해와 이해, 편견과 관용, 폭력과 평화의 교차되는 언저리를 맴돕니다. 싸움이 끝난 후 아무도 승리하지 못한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후회와 회한의 시간을 허비하기 일수입니다. 야수처럼 달려드는 현실 앞에서 애써 태연하려 하지만 우리의 유전된 부패성은 결코 우리를 놓아두지 않습니다. 토인비는 좋은 말로 역사를 가리켜 "도전과 응전"의 역사라 하였지만 좀더 솔직히 말하면 싸움의 날들이라 해도 옳을 듯 싶습니다. 개인이든 사회든, 나라이든 간에 이 싸움은 소유를 위한 집착....... 그러나 예수의 가르침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그물과 배"를 버려두고(마4:22;눅5:11), 자기를 향한 집착을 버리고 예수를 쫓으라 합니다. 이 삶이야말로 그리스도인다운 삶이며 예수를 모방하는 삶입니다. 이야말로 범상한 우리에게는 시지프스의 신화같이 여겨지지만 신앙의 선배들의 족적은 우리를 고무하기에 충분합니다. 이그나티우스는 그리스도를 위해 자기를 철저히 버린 신앙의 위대한 스승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기의 죽음과 구속의 일에 대하여 한 비유로,"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고 말씀한 바 있는데, 이그나티우스는 이 말씀을 염두에 두고 자신이 "순수한 빵"이 되는 길은 "야수의 이빨에 의해 갈아지는" "하나님의 밀"이 될 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알의 밀"이 되는 일, 그것은 피없는 순교입니다. 자신을 부수고 썩혀 자기 존재가 사라질 때 싹이 나고 열매를 맺음같이 오늘날  "그리스도인 되기"는 "세상이 더 이상 나의 몸을 보지 못할 그때,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것"이라는 이그나티우스의 말에서 힌트를 얻습니다. 참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좇는 그리스도인"이 필요한 때입니다.제자의 길이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는 바울의 고백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사순절에 읽을 순교이야기/바보같은사람들♠

 

사순절에 읽을 순교이야기/바보같은사람들 황제 도미티아누스는 1세기 말에 로마 제국을 통치하던 황제였습니다. 로마 황제들 가운데는 자기 스스로 신격화하여 황제숭배의 제의를 지내도록 강조한 황제들이 있었습니다. 네로 황제와 칼리큘라 황제가이런 유의 사람들이었고 반면에 대부분 황제들은 이런 시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도니티아누스 황제도 황제 숭배를 대단히 강조하였으며황제들이 황제숭배를 강조하면 기독교는 자연스럽게 사교가 되어 박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네로와 칼리큘라 황제 다음으로 기독교를 박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조카 도미틸라와 조카 사위 클레멘스가 기독교인이었음을 적발하여 투옥하고는 다른 기독교인들의 적발하여 처형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기독교인들을 적발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다윗의 후손을 색출하는 것이었고 예수님께서 다윗의 후손이었음으로 다윗 가문에 속한 사람들을 잡는 것은 곧 예수를 따르는 무리를 잡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로마 황제는 황제숭배를 강조하면서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예수를 왕이라고 부르는 것이 싫었고 혹 기독교인들이 다른 왕을 내세우며 반역을 꾀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잡혀 온 다윗의 후손 가운데 예수님의 친척인 기독교인들이 있었습니다. 황제가 이들을 친히 국문을 하였으며우선 다윗의 혈통임을 확인한 다음, 가지고 있는 재산이 얼마나 되는가를 물었습니다. 9천 데나리온 정도에 해당하는 토지를 가지고 있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국문을 받는 교인은 자기 손에 굳은 살을 보여주면서 이 땅에서 힘들게 노동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다고 설명을 하였습니다. 다시 황제는 기독교인들이 늘 새로운 땅과 하늘,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고 하는데 언제 어디서 나라를 세우냐고 물었습니다. 이 교인은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 끝에 오는 것으로 죽은 자와 산 자를 심판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이들의 대답을 듣고는 근본적으로 무시하게 되었으며 아예 바보로 취급하고 그냥 놓아주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세상 권력자나 부자의 눈에 비친 초대교인들의 모습은 “바보”였습니다. 기독교인으로 발각되면 공직에서 추방되고, 재산 몰수, 투옥, 태형, 화형, 사형 등의 엄청난 희생을 당하는데 왜 하찮은 종교로 화를 자초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단지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이런 일을 할까, 돈을 열심히 벌어도 시원찮을 판에 있는 돈 써가며, 나눠주며, 없애가며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을 할까,도저히 상상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단지 자기 혼자만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식구들까지 다 희생을 해야하는 고통인데 왜 이토록 고통을 자초하는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왜 이런 희생을 자초하는 것일까? 모든 교인들의 마음에 분명하게 믿는 것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이방인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린도전서 1:23-25).

 

 

♠사순절에 읽을 순교이야기/나가사키 26인의 성인♠

 

사순절에 읽을 순교이야기/나가사키 26인의 성인나가사키 26인의 성인, 예수처럼 십자가에 달려 죽어원자폭탄 투하 지점인 일본 나가사키시의 니시자카 언덕에는 26인 성인 순교비와 기념관이 있습니다. (불행히도 그 원자폭탄은 일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너무나 한이 많은 우라까미 교회당 바로 위에 떨어졌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기 1년 반 전인 1597년 2월 5일 임진왜란을 일으킨 당시의 쇼군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6명의 선교사와 일본인 최초의 그리스도인 20명 도합 26명을 처형했습니다. 지금의 나가사키현에 속해 있는 오오무라, 시마바라, 히라도, 고도 등과 같은 지역은 당시에 신학교가 있었고 ‘성시’라고 불릴 정도로 기독교가 번성한 지역이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순교자들도 이 지역에 사는 분들로부터 나왔습니다. 그러나 최초의 순교자들은 당시의 일본의 수도인 교토와 도요토미의 본거지인 오사카성 그리고 사가 지역에서 끌려온 분들입니다. 그리고 그 분들은 6명의 서양 신부와 20인의 일본인입니다. 아마 그것은 권력 주변에 사는 사람들을 먼저 처형함으로써 본보기를 보이고,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에서 처형함으로서 임진왜란 실패에 대한 백성들의 원망과 그리하여 혹시 있을지 모르는 반란에 대비하여 권력의 뜻에 반하는 자들은 무자비한 처형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널리 알림으로써 정권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했던 만행이었습니다. 어쩌면 ‘일본의 죄를 당장 벌하고 싶어도 차마 그러지 못하고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으셔서 못난 인간들하고도 화해하시려는 우리 하나님의 그 높으신 뜻’인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나중에 말씀드리지만 250년 동안이나 그 엄청난 박해에도 불구하고 몰래 숨어서 신앙을 지켜온 수많은 일본의 숨겨진 그리스도인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 최초의 순교자들인 6명의 외국인 신부와 20명의 일본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처럼 십자가 처형을 당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순교비에는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라는 성경 말씀이 아로 새겨져 있습니다. 그들은 말씀대로 십자가를 지고 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배교를 하면 살려준다는 회유에도 불구하고 골고다와 같은 교토에서 나가사키까지의 2천리 길을 끌려와서 기꺼이 십자가를 택한 분들입니다. 그런데 나가사키 니시자카에 있는 26인 순교 기념비를 자세히 살펴보면 3명의 어린이가 같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에 12살, 13살, 15살 소년들입니다. 지금 나이로 치면 우리 아이들보다도 어린,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닐 정도의 나이 밖에 안 되는 아이들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아이 하나가 했다는 말을 생각할 때면 눈물이 납니다. 그것은 그 나이 어린 소년이 그렇게나 좋아하던 신부님과 어머니와 아버지가 십자가에 매달릴 적에 자기도 십자가에 매달린다는 사실을 알고, 자기의 십자가를 찾아 헤매면서 처형을 하는 관리에게 ‘내 십자가는 어디에 있나요?’라고 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면서 내 삶의 현실과는 멀리 떨어진 것으로 생각했고 십자가로 가까이’라는 찬송을 부르면서도 추상화했습니다. 그러나 그 소년이 마지막 했다는 ’어느 것이 내 십자가인가요?‘라는 말은 가슴을 칩니다. 물질과 명예에 대한 집착과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서 마저 내 욕심대로 집착하면서 그런 저급한 교육열에 나도 모르게 휩쓸려 가는 어리석고 위선적인 모습 때문입니다. 409년 전에 나가사키 니시자카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어간 그 소년을 생각하면, 손양원 목사님의 묘소에서 멀리 보이는 남해 앞바다인 관음포에서 죽어간 이순신과 아울러 오늘도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그리고 그런 분들을 통해서 참된 한-일 간의 평화의 길을 찾고 싶고 또한 염원해 봅니다. 1862년에 로마 교황청은 이들 26인을 성인(聖人)의 명단에 올려 주었고 100주년이 되던 해인 1962년에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26성인 기념관과 니시자카 교회를 건립되었습니다. 그 니시자카 언덕을 올라가는 짧지만 가파른 길은 400년 전에 있었던 또 다른 골고다의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의 우리의 골고다의 길은 어디 일는지. 내 인생의 골고다는 어디일는지. 그리고 제가 그 길을 않고 갈 수 있을지. 그것이 이 사순절에 기도 제목이자 묵상의 화두입니다.

 

 

♠사순절에 읽을 순교이야기/토마스 선교사♠

 

사순절에 읽을 순교이야기/토마스 선교사 대원군이 집정하여 쇄국정책을 펴고 있는 동안두 차례에 걸쳐 한국을 방문한 끝에 이 땅에서 처형된 영국 선교사가 있습니다.한국 기독교사에서 ' 첫 순교'의 영광된 자리를 차지하게된 토마스 선교사가 그 분입니다. 토마스 선교사는 영국 하노버교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런던선교회 파송으로 중국 상해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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