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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설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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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20회 작성일 20-03-02 22:36

본문

3. 죽음을 위해 오신 하나님의 아들(요1:29-34) 찬송가: 99장


오늘의 말씀 요약: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증거합니다. 또한 그분 위에 성령이 임함을 보고 이분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합니다. 이를 증거하기 위해 요한은 예수님보다 먼저 난 것입니다.


유월절 어린양(1:29-30)

사람들이 보기에 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먼저 온 자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원칙으로 본다면 사실 예수님이 요한의 대선배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요한보다 먼저 존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계셨던 분입니다(8:58). 그래서 요한은 시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께서 시간 안에 갇혀 들어오신 성육신의 신비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살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죽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대신 지고 가는 대속적 어린양입니다(사 53:6~7). 동시에 예수님은 출애굽의 구원을 상징하는 유월절 어린양입니다(19:31~37). 최고의 존재이신 하나님은 이와 같이 가장 낮은 모습으로 우리를 위해 죽으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성령으로 세례 주는 이 (1:31-34)

세례 요한은 자기보다 먼저 존재했던 성육신하신 예수님께 세례를 줍니다. 그때 요한의 눈에는 하늘에서 비둘기가 내려앉듯이 성령께서 하늘에서 내려와 예수님 위에 머무는 것이 보였습니다. 요한에게는 일찍이 하나님의 계시가 있었습니다. 성령이 머무는 그 사람이 앞으로 성령으로 세례를 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미리 알려 주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요한에게 받는 세례는 죄를 씻기 위한 회개의 표징이었으나 예수님이 받으신 세례는 바로 직전에 언급된 어린양의 대속적 죽음의 의미를 갖습니다. 후에 바울이 해석한 것처럼 예수님은 세례를 통해 인류를 대표하는 죽음의 예식을 가지신 것입니다(롬 6:3~4).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며 죄에 대한 죽음과 하나님을 향한 삶을 구현시키십니다.


예수님처럼 한 알의 밀알이 되어 헌신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목표로 살아갑니까? 혹 나의 지위와 권리를 주장하면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나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 것을 알고 있습니까? 날마다 내 안에 머무시는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나를 위해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님, 저의 죄를 대속하시고 새 생명 주심에 감사합니다. 제게 주신 새 생명으로 이웃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님의 밀알이 되게 하소서.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소개한 세례요한의 증거입니다. 세례요한은 주로 유대 광야와 요단강을 무대로 하여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한편 땅에 떨어진 사회 정의, 도덕을 재건해야 된다는 것을 강조한 선지자였습니다. 특히 세례 요한은 자기 뒤에 오시는 예수님을 백성들에게 소개하고 그 분이라야 인간을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을 선포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참으로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 보다 먼저 출생했고 유대 민중들 앞에도 먼저 데뷔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예수님을 앞세우고 증거했습니다. 30절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내 뒤에 오는 사람이란 나보다 늦게 출생했다는 뜻입니다. 즉, 나이가 손아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먼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그분이 나보다 앞섰다고 했고 나보다 먼저 계셨다고 했습니다. 마3:11절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막1:7-8절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세례요한의 증거 속에서 참 선지자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참된 주의 종은 예수님을 높이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아비종은 예수님을 이용하거나 예수님을 팔아서 자기를 높이기 마련입니다.


세례 요한이야말로 자신을 낮추고 예수님을 높인 훌륭한 지도자였습니다. 예수님보다 나이가 많다는 것, 예수님보다 경험이 많다는 것, 예수님보다 추종자가 많다는 것, 예수님에게 세례를 주었다는 것 등 얼마든지 교만하고 거들먹거리고 예수님을 낮추고 자신을 높일 수 있는 조건들이 많았습니다만 요한은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어떤 분이 41일 금식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보다 하루라도 더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어떤 부흥사는 자신이 일생동안 동원한 집회 인원의 수가 예수님보다 많다고 떠들고 자랑합니다. 통일교 교주는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에 실패자라고 했습니다. 아무튼 예수님을 낮추는 사람은 그가 누구이든 간에 적그리스도요, 이단이며 참된 주의 종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29절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이 말씀은 구약에 그 배경을 두고 있습니다. 구약에 나타난 규례 가운데 공통점이 있는데 첫째, 어린양이어야 하고 둘째, 흠 없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어리다는 것은 물들지 않았다. 깨끗하다. 순수하다는 뜻입니다. 구약의 속죄를 위한 제물이 어린양이어야 하고 흠이 없어야 했던 것처럼, 예수님은 흠도 없는 순결한 어린양이시기에 우리의 죄를 대신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요한의 증거 속에서 몇 가지 뜻을 찾아봅시다.

1. 세상에는 죄가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죄의 오염은 대기오염이나 환경오염과는 비길 수가 없습니다. 대기나 환경오염은 인간의 육체를 병들게 하고 환경을 파괴하지만 영혼과 인격과 환경과 세상과 가정 등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리고 맙니다.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은 어디든지 죄가 있습니다.


2. 이런 세상을 위해 오신 예수님은 세상에 예수입니다.

예수님은 역사 속에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이것을 바울은 빌2장에서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 동등한 신분을 포기하고 자신을 낮춰 사람이 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셔서 사람들과 마주 앉아 구원얘기 영생얘기를 주고 받으셨습니다. 그래야 그들을 구원하실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3. 그 예수님은 오늘도 세상의 예수로 살아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가령 33년 동안 살다가 하늘나라로 떠나버린 예수님이라면, 그래서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예수님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역사의 현장과 사건의 현장에 직접 가셔서 직접 문제를 풀어 주셨고 사건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 예수님은 오늘도 세상의 예수로 나와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인간은 짧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참으로 많은 일들이 우리 삶에 있습니다. 부모를 일찍 여윈 사람들의 고통, 남편과 아내 먼저 세상 떠나 보내는 슬픔, 자식들을 먼저 가슴에 묻어야하는 아픔, 시댁과의 관계, 친정과의 관계, 사람과 사람사이의 복잡 미묘한 관계들로 인한 어려움들, 사건, 사고 순간들 사업의 어려움, 직장의 갈등, 진학의 고민, 결혼의 위기 앞날에 대한 두려움들 머리가 쭈뼛한 순간들, 시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 속에 살아갑니다. 이러한 인간의 잡다한 삶 속에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세상을 살아 계시고 있습니다. 문제 속에 함께 하시고, 아픔 속에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영원히 살게 됩니다. 요한이 증거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은 곧 내 죄의 짐을 지고 가시는 예수님이라는 뜻입니다. 내 슬픔, 고통, 절망, 좌절, 아픔, 질병, 죄, 내 죽음까지를 온통 걸머메인 예수님, 그분께서 순간순간 나와 함께 계시면서 나에게 평안과 위로와 소망을 주시는 세상의 예수 그분이 나와 여러분의 주님이심을 감사드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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