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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追慕)예배의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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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른곰
댓글 0건 조회 725회 작성일 19-09-0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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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追慕)예배의 의의

젊은이들이 불의의 사고로 혹은 어린 학생을 잃은 유가족의 슬픔은 참으로 애도할 만합니다. 그러나 이를 추모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추모(追慕)란 희생자들의 업적이나 공로를 공경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만 추모라고 해야 합니다. 모든 방송기자들이나 언론의 기사를 쓰는 사람들이 추모행렬이 줄을 이었다고 하는 표현은 잘못된 것입니다. 얼마 전에는 추모 공원.추모 탑을 세운다고 했습니다. 이는 크게 틀린 말입니다. 추(追)자상례 또는 장례가 끝나고 써야하는 용어라고 합니다. 슬픔을 넘어 고인의 덕이나 공로를 생각하여 그리워할 때 추모한다고 하고, 슬픔을 표할 때추도라고 한다.

상례나 장례는 예전에는 몇 개월 또는 3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상중에는 애도한다는 말을 사용함이 적절한 것입니다. 그리고 상례(喪禮)는 오례 중 흉례(凶禮)에 속하고 제례(祭禮)는 길례(吉禮)에 속하여 구분됩니다. 상례가 끝나고 올리는 제사에서는 추도한다거나 추모한다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다. 한문이 크게 쓰여지지 않는 현재 우리 용어 중 한자에서 온 용어는 올바로 써야할 것이다. 悼도슬퍼할 도자이고 慕(모)자는 사모한다는 뜻이고 추자거슬러 올라간다는 뜻이다. 즉 시간을 넘어서라는 뜻입니다.

● 정리하면? 추모(追慕)라는 용어가 바람직합니다.

추도(追悼)라는 용어는 죽은 이를 생각하며 슬퍼해 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속에는 다분히 불신자적인 인상이 짙습니다.

추모(追慕)라는 용어의 뜻은 죽은 사람을 기억하고 그리워함입니다.

이렇게 보면 기독교에서 사용되어야하는 바른 용어는 추모(追慕)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1. 추모(追慕)예배의 의의 ◆

1) 불신자에게는 올바른 죽음의식을 주는데 있습니다.

죽음은 죄 값이며, 하나님을 향한 반역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죽음을 잠잔다는 말로 성경은 표현합니다. 이것은 죽음은 끝이 아니라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영혼이 깨어난다고 하는 것을 전제한 것입니다.

영혼은 사람들의 생각처럼 다시 돌아오거나 혹은 정처 없이 세상을 방황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죽음 이후에는 심판과 부활이 있습니다.

2) 믿는 가족들에게는 부활신앙이 다시 한 번 확인되는 시간입니다.

먼저 신앙 안에서 위로를 받고 부활신앙이 확인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신자들이 부활신앙이 없는 불신자들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3) 조상과 부모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조상의 경건한 행위는 자손을 지키고 구원을 얻게 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추모예배는 조상과 부모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드려져야 합니다.

4) 신앙상속을 인식하는 특별한 기회입니다.

추모예배는 신앙상속에 대한 감사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부모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부모님을 통해서 믿음을 상속받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게 됨을 다시 한 번 하나님께 감사드리면서 고인을 기릴 수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5) 그리스도의 구속적 사랑을 나누는 친교의 시간입니다.

가장 슬플 때에 사람들과 그 슬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친교는 그리스도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친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추모 예배를 드릴 때 주의점 ◆

① 음식 준비 /

음식은 조상이 와서 먹는 것이 아니므로 제사상으로 차리면 안 된다.

그러나 간편한 음식을 준비하였다가 추모 예배 후에 가족들이 둘러 앉아 나누는 것은 좋은 일이다. (고전 8:0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05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0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07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고전 8:8)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 09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13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롬 14: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히 12:16)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② 사진이나 영정 /

고인의 사진을 준비하는 것은 좋으나 향이나 촛불을 켜는 것은 기독교적이 아닙니다. 고인이 예배를 받는 것이 아니고, 고인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예배할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③ 절하는 문제 /

고인의 사진이나 영정 또는 음식물을 향하여 절을 하는 것은 우상 숭배를 금한 계명을 범하는 것으로 죄가 되므로 절대로 하지 않아야 합니다. 부모 공경은 살아 계실 때 최선을 다해서 해야 하고 살아계신 부모님께 절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죄가 되지 않는다.

(눅 6:18) 더러운 귀신에게 고난 받는 자들도 고침을 받은지라

(행 16:18)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고전 10:20)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21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 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삼상 15: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계 9:20)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21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④ 불신 가정에서의 문제 /

가족 전체가 불신 가정으로 제사를 드려야하는 입장에 있을 때는 그 자리를 피하지 말고, 절하는 대신 가족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면 된다. 이 때 분명하게 “신앙상의 이유로 절은 할 수 없지만, 가족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드리겠다.”고 가족 앞에 태도를 분명히 밝히는 것이 좋습니다.

⑤ 산소에 성묘 갔을 때 /

음식을 차리고 절을 한다든지 묘지에 술을 붓는 행위는 신앙적인 것이 아니다.

대표자가 간단히 기도하고 묘에 묻힌 조상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고 묘지의 상태를 점검하고 돌아보면 됩니다.

불신 가정일 경우에는 다른 가족이 절할 때에 함께 서서 기도하고 가족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할 수 있도록 여러모로 힘쓰십시오.

⑥ 기타 /

우리도 언젠가는 조상들처럼 육신은 한줌의 흙이 되어 하나님 품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깨달아야 하며, 조상들이 볼 때에 부끄럼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다짐해야 하고, 형제자매들 간에 더없는 우애와 사랑으로 살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결심하는 시간이어야 하며, 조상들이 남겨 놓고 가신 훌륭한 뜻을 받들어 교훈을 받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추석]추모예식의 의미 (히 9:27)

우리나라의 전래 풍습 중 조상숭배의 문화가 대단히 깊이 퍼져 있습니다. 그중에서 제사에 간한 관습은 기독교 신앙과 충돌해 온 사례가 대단히 많습니다. 물론 성경에는 조상중배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상을 무시하거나 망각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1. 제사를 지낼 필요성이 없습니다.

제사는 조상숭배의 핵심적인 의례입니다. 제사에는 우리가 연구해 볼 여지가 몇 가지 있습니다.

조상을 제사로 모시는 것은 먼저 조상이 귀신이 되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그래서 지방을 쓸 때도 ‘신위(神位)’라고 밑에다 적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죽어서 귀신이 되는 게 아닙니다. 이는 이교의 시상에서 나온 견해일 뿐 성경에는 사람이 죽어서 다른 존재로 변하는 것을 암시하지 않습니다.

살아서도 아버지와 어머니요 비록 세상을 떠났어도 아버지와 어머니일 뿐입니다. 이러한 견해는 모든 피조물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이치입니다.

성경에는 전생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낳아서 사람으로 살다가 사람으로 죽어서 영생에 이르든지 영벌에 이르게 됩니다. 산 자와 죽은 자는 교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제사의 의미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산 자가 죽은 자를 위해 해 드릴 것도 없고 죽은 조상이 산 후손들에게 복을 줄 수도 없는 것입니다.

2. 추모예식으로 제사의 대안을 삼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약학 가족들을 위해서 목사를 청하여 드리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성도의 가정에서는 가족 중에서 예배를 인도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왜냐하면 추모예식은 가족의 행사이기 때문입니다.

돌아가신 조상을 기리는 마음으로 제사를 모셔야 한다는 불신 가족들을 잘 설득하여 추모예식을 드리도록 해야 합니다. 불신 가정에서 추모예식을 드리면서 전도의 기회를 삼고 또 친족끼리 교제하는 기회로 삼을 때 매우 유익하다고 봅니다.

또한 음식을 장만하여 나누는 것은 매우 유익하지만 제사상 차리듯이 차려 놓으면 안 됩니다. 그저 방 한 가운데 상을 차리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추모예식이 은혜 받는 가정부흥회로 드려지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가정의 추모예식에 성령의 위로와 평강이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더욱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 통상적인 기독교 내에서 질문과 답.

명절 추모예배, 제사 궁금하시다구요?

위로해주고 또 함께 기도하며 나눠야 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명절이 되게 해달라고 같이 기도합시다. 명절에는 가족과 화목을 더 돈독히 해나갈 수 있는 좋은 시간이다.

추석은 분명히 즐거운 명절이다. 그래서 지난 1986년도부터 연휴로 지정됐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속담은 추석의 자유와 풍요로움, 추석의 즐거움과 축제성을 한마디로 잘 표현해준다. 그런데 명절이 되면 부딪히는 문제들이 있다.

여기에 대한 궁금증들을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몇 가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 추모예배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 추모라는 것은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추모, 부모님의 은혜와 부모님의 평소에 끼치신 덕과 여러 가지 면을 깊이 생각하여 감사하는 것이고,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하나의 의식이다. 추모예배라고 해서 부모님께 예배드린다는 것은 아니다. 부모님을 주신 것, 그리고 부모님을 통해서 내가 존재하게 된 것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깊이 감사하는 것이 추도예배이다.

▶ 추모예배는 얼마동안 합니까?

- 성경에는 이전 세대는 후 세대가 기억함이 없다고 했다. 몇 년 동안 계속해야 하느냐 하는 것은 각자에게 맡겨야 할 것 같다.

불교나 유교의 경우는 사람이 죽으면 매주 죽은 그 요일에 제사를 지내고 일곱 주가 지나서 49일 제사를 지낸다. 그 후 1년~33년까지, 그러나 간혹 50년까지 지내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는 거의 없다. 그 이유는 50년 제사를 지내면 그 혼백(그동안은 떠도는 영)이 조상의 군집 속으로 들어 가버린다고 불교에서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의 제사는 지내고 그 윗대는 지내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이렇게 제한된 기간만 제사를 지내려면 그 조상의 영혼들이 구천을 떠돌아다니다가 제사를 지내지 않을 때는 배가 고파서 고생을 한다고 생각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도 잘못된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성경에 이러한 기간에 대한 언급이나 추도예배의 필요성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특별한 기준이 없다. 단지 제사문화가 기독교 속에서 추모예배 형식으로 바뀌었을 뿐, 스스로가 신앙적으로 잘 정리해야 할 과제이다.

▶ 제사를 지낸 후에 음식을 먹으면 죄가 됩니까?

- 여기에 대해선 ‘고린도전서 8장’을 참고 바란다. 제사음식인 줄 알고도 먹으면 죄가 된다. 모르고 먹으면 괜찮겠지만 영적 지각이 만감한 사람들에게는 거부반응이 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다는 강한 신앙이 필요하다.

▶ 현대 사람들은 제사를 조상숭배라고 생각지 않고 단순히 기념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경우의 제사도 죄가 될까요?

- 단순히 기념한다면 제사의식의 절차를 따를 필요가 없다. 그러나 동양의 제사라는 것은 조상숭배의 개념이 들어있다. 생전과 같을 수 없는 것을 생전과 같이 인정한다는 것은 벌써 돌아가신 그분의 귀신을 의인화 내지 인격화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제사는 생전과 같이 생각해서 숭배하는 마음이 없더라도 귀신 혼백을 인격화시키는 것이므로 제1계명을 어기는 것이 된다.

우리나라 역사는 5천 년이라고 하는데 제사풍습이 있었던 이조 5백 년 동안만의 것이 우리의 것이라고 말하면 모순이 있다( 신라, 고구려, 고려시대에는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전혀 없다).

고려장은 우리의 수치다. 이것이 본래의 우리 것이었다. 제사제도면 우리의 것이라고 고집하는 것은 넌 센스다. 크리스천의 효도관은 살아있을 때 잘 모시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제사제도의 시작이 부모나 조상에 대해 공경하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볼 때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우스운 얘기지만 어떤 사람이 풍수를 데리고 자기 아버지 묘지를 쓰려고 갔는데 여기 쓴 사람의 손자는 정승이 된다는 말을 듣고 할아버지를 거기에 묻고 자기 아버지는 다른 곳에 묻더라는 것이다.

이것을 보면 제사도 자기중심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대개 살아생전에 부모 속 많이 썩였던 사람이 제사는 더 극성으로 지내게 되는데 정말 부모 사랑보다는 자기 후회나 체면 내지 복을 위해서다. 여기에 상당히 이기주의적인 요소가 내포되어 있다.

▶ 외국에도 조상숭배나 제사문제가 있습니까?

- 외국에는 거의 없다. 부모에게 제사지내는 곳은 아프리카(멀리 가서 매장하지 않고 집 가까운 곳에 하며 어떤 경우는 유골을 집에 걸어둔다). 인도네시아 지역( 일 년 동안 방의 한구석에 모셔두었다가 다 썩은 뒤에 시신을 장사하고 제사한다)과 유교문화권(중국은 황제에게만 하던 것이 세습제가 시작되고 보편되었다)뿐이다.

▶ 사람이 죽어 하관식을 할 때까지 성도들이 상가에 모여 수없이 예배를 드리는데 이것은 꼭 필요한 것입니까?

- 전통적 사고로 그 집에 죽은 귀신이 붙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굿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작은 예배는 삼가야겠지만 유족을 떠나지 않고 신앙 안에서 갖는 작은 위로를 성경으로 이해하면 좋겠다. 어떤 경우는 유족을 너무 피곤하게 할 수도 있다. 00교회 000장로 초상 때 자녀들이 많아서 각기 소속된 교회에서 오는 이들마다 예배를 자주 드리게 되어 몹시 힘든 표정을 지었던 그 댁 자부의 모습이 생각난다.

▶ 왜 안 믿고 돌아가신 부모를 천당 가게 해 달라고 기도할 수 없습니까?

- 일단 하나님이 불러 가신 사람에 대해서는 우리의 능력과 공로로 하나님의 결단을 바꿀 수 없다. 사람에게는 이 세상에 살아있을 때에만 기회가 주어진다. 그러나 믿음을 갖기 이전에 하나님이 불러간 사람에 대해서도 심지어는 아브라함의 관심이나 예수의 공로까지도 소용이 없게 된다. 위로하며 나눠야 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명절이 되게 해달라고 같이 기도합시다. 오직 주님 한 분만을 경배하며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효도할 수 있도록 기도드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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