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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가장 뛰어난 이름 빌 2: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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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846회 작성일 19-12-21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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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장 뛰어난 이름

교독문: 118.구주강림(4). 말씀: 빌 2:5-11 찬송가: 112. 그 맑고 환한 밤중에.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거리를 오가다 보면 추위로 잔뜩 몸을 웅크리고 총총 걸음으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함이 그리워지는 계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날씨는 차갑고 쌀쌀할지라도 우리는 서로 사랑하며 마음 따뜻한 겨울을 보내도록 합시다. 오늘은 '가장 뛰어난 이름'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사람의 이름 속에는 그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어떤 한 사람의 이름을 떠올리면 그것을 통해 우리는 그 사람의 속성이나 지위, 하는 일 등을 함께 연상하게 됩니다. 가령 제가 한 10억 원이나 100억 원짜리 수표를 끊어 준다면 은행에서 소용없는 것이라고 웃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최고 재벌의 이름으로 수표를 준다면 은행에서는 아무 말 없이 처리해 줄 것입니다. 내 수표와 그들의 수표의 차이는 바로 이름 때문입니다. 이름이 그 사람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영에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을 너무 잘 알고 두려워하거나, 순종하며 경외함을 보이기도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오셨지만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신 분이셨습니다. 그의 이름은 권세와 능력이 있기에 세상에 어떤 권세가도 두려워하거나 따르지 않는 마귀가 오직 그분의 이름에 미리 알고 떱니다.

그래서 오늘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가장 좋은 이름인 예수님의 이름에 대해서 말씀드리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세상에서나 지옥이나 하늘나라에서나 가장 중요하고 귀한 이름이 바로 예수님이란 이름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예수님의 이름은 어떤 이름입니까?

1. 예수의 이름은 권세 있는 이름입니다.

이 세상을 살다간 유명한 사람들 중에 과거에 권세 있었던 이름들을 잠시 생각해 봅시다. 알렉산더 대왕이 얼마나 권세가 있었습니까? 그는 33살에 그가 아는 세계를 모두 다 정복했습니다. 그러나 33살에 술 취하고 주색에 빠져 죽어버렸습니다. 그가 죽자 그의 이름도 권세를 잃고 말았습니다. 씨이저(Caesar)도 권세 있는 이름이었습니다. 로마의 영토를 크게 확장하고 정복했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부루터스,(Brutus)라고 하는 한 친구의 단검이 그를 죽이자 그의 이름도 권세를 잃고 말았습니다. 나폴레옹도 권세 있는 이름이었습니다. 전 유럽이 그 이름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러나 워털루(Waterloo)에서 패전하고 세인트 헬레나(St Helena)섬에 귀양 가서 죽자 그의 이름은 권세를 잃고 말았습니다. 카이젤(Kaiser)이나, 히틀러(Hitler)나, 무솔리니(Mussolini)도 권세 있는 이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불명예 가운데 죽어 버렸고, 죽음과 동시에 그 권세도 다 잃고 말았습니다. 모든 권세와 권력들이 자신들이 살아 있을 동안에 잠시 반짝할 뿐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고 썩어지고 무쳐지는 것이 세상에 이치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르십니다. 그는 세계를 창조하셨고, 성경 구약 역사의 진로를 바꾸어 놓았으며 인류의 운명도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그는 죄와 사망을 이기시고 그것들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그의 권세는 영원히 감소되는 일이 없으실 줄 믿습니다. 아울러 심판의 재림에 때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인 오늘날도 온 세상이 그의 절대적인 권세를 깨닫는 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벌써 일하십니다.

프랑스는 한 때 루이 황제(Lousis the Great)의 권세를 자랑했습니다. 세계에 뛰어난 인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도 어느날 죽음에 의해 정복되었습니다. 그의 장례식 때는 큰 성당에 애도하는 사람들과 저명인사들이 가득하게 모였습니다. 그들은 마지막 경의를 표했습니다. 그 성당 안은 어두웠고 큰 촛불 하나만이 황금관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정해진 시간이 되자, 설교자인 마실론(Massilon)씨가 설교하기 위해 청중 앞에 섰습니다. 그는 천천히 다가서더니 루이 황제를 의미하는 큰 촛불을 껐습니다. 캄캄한 가운데 네 마디의 말이 들려 왔습니다. '하나님만이 위대하시다' (God only is great)>참으로 진리의 말씀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권세와 위대함을 잠시 동안 소유하지만 죽음이 그것들을 끊어버리고 맙니다. 전능하신 그리스도 예수님만이 세세토록 그 권세와 능력을 보유하고 계신 것을 믿습니다. 할렐루야!

오늘날 이 세상을 바라볼 때. 사단의 손이 더 권세 있어 보입니다. 정치에서나, 경제계나, 스포츠계나, 사회의 모든 면에서 카르스마 있는 자들이나, 악한 자가 득세하는 것 같고 힘 있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따르며, 그들의 입맛에 길들여져 가는 것이 지혜라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오래 갈 줄 압니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악은 들어나게 되어 있고, 도적이 임하듯 선한 심판도 정치, 경제, 언론, 문화 각 분양에서 나타나게 되어 잠시 끝 날의 심판 맛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권세는 오직 예수님의 이름 앞에만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백을 볼 줄 아는 지혜와 끊어지지 않는 참 동아줄을 잡아야 하며 참된 빛이 되신 살리는 구원과 영생의 줄을 잘 서야 합니다. 앞으로 어느 한 날 최고의 권세가 되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그 모든 악한 권세를 끝내실 때가오게 됩니다. 모든 무릎이 그 앞에 꿇게 되고, 그 입으로 예수님은 주시라고 고백하며 영광을 하나님 아버지께 돌릴 때가옵니다. 영원히 권세 있는 이름은 예수님의 이름뿐입니다. 할렐루야!

2. 예수의 이름은 은혜로운 이름입니다.

예수님은 나와 여러분을 위하여 천국의 모든 기쁨과 영광을 희생하셨습니다. 주님은 하늘나라에서 영광중에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셨던 분입니다. 천사들과 천사장들이 그분의 명령에 분주히 뛰어 다녔습니다. 그러나 죄인된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포기하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영광의 옷을 벗어 버리고 낮고 천한 세상에 내려 오셔서 고난 받으시고 죽어 주셨습니다. "그는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령 어느 대통령이 그 높은 자리를 내어 놓고, 어느 빈민굴에 찾아와서 남은 생애를 그들을 위해 보냈다고 상상해 봅시다. 얼마나 위대한 일이며 온 세계가 놀랄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하늘 영광의 보좌를 떠나 낮고 천한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겸손과 희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천국에서는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었으나, 세상에서는 머리 둘 만한 집 한 칸도 없었습니다. 자신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잡술만한 식탁 하나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천국에서는 부요한 자 중에서도 가장 부요하신 분이 세상에서는 가난한 자 중에 가장 가난한 분이 되셨습니다. 천국에서는 높은 자중에 가장 높으신 분인데, 세상에서는 낮은 자 중에 가장 낮은 자가 되셨습니다. 천국에서는 위대한 분 중에 가장 위대하신 분인데 세상에서는 우리를 위해 죄에 종이었던 종의 종이 되셨습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나와 여러분을 사랑하실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이 도대체 웬 은혜입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데 대해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번은 하나님께서 낙원에 있는 구약에 살아 있는 자녀들과 하늘의 천사들을 그 앞에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인류가 다 범죄하여 멸망 받을 상태에 있음을 설명하시고 누군가가 이 인간을 구원하러 세상에 내려가야 하는데, 단 한 가지 조건은 죄가 없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죄의 값을 지불한 죄 없는 이가 죽어야 된다고 하면서 누가 갈 것인가? 를 논하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천국의 훌륭한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 나서면서 인간을 구원하러 세상에 내려가겠다고 했습니다. 에녹이 말하려 하는데 아브라함이 제일 먼저 나서면서 '아버지여, 제가 가겠습니다. 잃어버린 자들을 구원하러 저를 내려 보내 주십시오.'라고 청원하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안 된다 아브라함아! 너는 자격이 없다. 너는 세상에서 살 때 네 생활에 죄가 있었으므로 안 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엘리야가 말하려 하는데 모세가 나섰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며 구약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었던 그가 말하기를 '아버지여, 저를 보내 주십시오. 세상의 죄를 위하여 내 피를 흘려 구원하겠습니다.'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안 된다. 모세야 내가 너를 낙원으로 데려 왔으나 세상에서 너의 죄는 네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했단다. 너는 못 간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세상에서 많은 신령한 노래를 쓰고 불렀고, 또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던 다윗이 나타나서 '아버지여, 저를 보내 주십시오. 잃어버린 죄인들을 위해 제 생명을 바치겠습니다.'라고 청원하자, 하나님께서는 '안 된다 다윗, 너도 범죄했으므로 내려가지 못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하시던 우리에 구세주 예수님께서 하나님 보좌 앞에 나서서 '아버지여, 내가 세상 죄인들을 사랑합니다. 제가 세상에 내려가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제 생명을 바치겠습니다.'라고 말하자, 낙원과 천국에 있는 모든 자녀들과 천사들이 발칵 뒤집혀 그것을 반대하고 나셨다고 합니다. '안됩니다. 안됩니다! 하나님의 독생자께서는 결코 가서는 안 됩니다. 죄 많은 인간을 위해 죽으러 가실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얼굴을 응시하시고 나서 '예. 아버지, 제가 꼭 가야 합니다.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을 줄 압니다.' 그러자 그때 하나님께서 허락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해와 달과 별들을 지나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아!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이며, 은혜입니까?

희생이란 고통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사랑하여 희생하는 것에는 기쁨이 넘치는 법입니다.

이 세상 누구도 예수님만큼 고통 받으신 분이 있습니까?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먹기 위해 예수님 뺨에 배은망덕의 입을 맞추었습니다. 악한 유대인들 무리들이 예수님의 얼굴에 더러운 침을 내뱉었습니다. 잔인무도한 사람들이 뺨을 찰싹찰싹 때렸습니다. 로마의 군졸들에 의해 채찍에 붙은 쇠붙이가 내려 칠 때마다 예수님의 등에 홈을 팠습니다. 예수님의 양 손과 발을 십자형틀에 못을 박을 때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그의 입술이 타고 입안이 타는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님만큼 희생의 고통을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이 그 당시에 알아주는 이가 없이 다 떠났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생을 누가 전혀 인정해주지 않고, 전혀 위로해 주는 사람도 없고, 칭찬해주는 사람도 없고, 책망해 주는 사람이 없다면 삶을 살 이유가 생길까요? 그런데 주님은 자기 백성을 구하러 오셨는데 자기 백성이 오히려 죽이려 듭니다.

이 모든 고통이 바로 나와 여러분을 위함 입니다. 누구도 이 만큼 우리에게 관심과 사랑과 은혜를 베푸신 분이 없습니다. 예수의 이름은 실로 은혜로운 이름입니다.

그 어떤 선물이 이 보다 아름답고 큰 선물이 있겠습니까? 바로 구원입니다.

3. 예수의 이름은 승리의 이름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승리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싸움에서 패배한 적이 없습니다. 사단이 세 가지 무서운 시험을 해왔을 때도 다 쳐서 물리쳤습니다. 사람들이 까다로운 문제를 가지고 말싸음을 걸어왔을 때도 언제나 이기셨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죽으실 때 패배를 당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사 구원을 완성하시고 많은 사람의 마음을 정복하시고 승리하게 된 것입니다.

특히 본문 말씀은 예수님의 이름이 세상에서 승리의 이름임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예수님께 굴복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러나 완전한 승리의 그날이 오면 모든 무릎이 그 앞에 끓고 모든 혀가 그가 주님이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거역한 모든 사람들도 때가 오면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질겁하여 놀라게 되는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승리의 이름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 의지하고 끝까지 붙잡고 나아갈 때 우리 역시 끝내 승리하는 자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와 죽음을 이기셨기에 그 이름을 믿고 따르는 자들 역시 죄와 죽음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승리의 왕으로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 역시 승리의 대열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4. 예수의 이름은 우릴 세상의 죄에서 건저내시는 구원하는 이름입니다.

마 1:21에서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라고 일러준대로 예수님의 이름은 인간으로 죄와 멸망에서 구원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요 1:12에도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행 4:12에서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밝히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행 2:21) 여러분의 선행을 불러 보십시오. 거기에도 구원이 없습니다. 선한 업적을 불러 보십시오. 거기에도 구원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 보십시오. 완전하며 충분한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받은 구원과 영생과 천국, 그리고 이 세상에서 받은 은혜와 축복을 생각하면 감격하고 감사하여 무슨 말로 다 표현할지 모르겠습니다.

천국은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말로 할 수 없는 곳이란 것을 우린 압니다. 그래서 설명을 할 수 없기에 비유를 듭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태어나신 곳이 에덴이고, 낙원이고, 천국이었다면? 그리고 과연 지금의 이 땅에서 이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아니요. 매 순간 불행하다고 불평하며 살지 모릅니다.

자유를 맛본 이스라엘 백성이 에굽의 종살이가 행복할리 없고, 늘 독립된 이스라엘을 꿈꾸면 살 것입니다. 그렇듯이 우리도 천국을 맛보고 그 곳에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이 땅에 종살이를 벗어 버리고 매일 천국을 행하여 기도하며 소망을 잃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게 되겠지요?

예수님은 이 땅에 이스라엘의 작은 마을에 마굿간에서 태어나실 때도, 십자가를 매고 고통의 길을 걷고 골고다를 행할 때도 천국의 아버지 품을 그리워 하셨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이 다라면 저는 못살아요. 천국이 나의 고향이기에 늘 그립답니다. 그리워한답니다. 그림을 그리는데 전혀 못 본 것을 그릴 수 있을까요? 그리고 마음에 그리는 그림인 그리움이란이란? 마찬가지로 못 본 것을 그리워 할 수는 없을 거예요? 막연한 그리움도 있을 수 있지만, 우린 그 천국의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같이 육신을 입고 태중부터 어린 아이로 태어 나셨다 해도 천국을 말씀하시듯이 성령께서 우리에게도 동일한 말씀으로 천국에 소망과 그리움을 알게 하십니다. 바로 주님이 우리의 길이고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 어느 목사님이 성탄절 아침에 걸인으로 변장을 하고 몇 몇 교인의 가정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문을 열고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 이가 하나도 없었더랍니다. 그 목사님은 성탄절이 되면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언젠가 제가 속한 모임에서 라면 여러 상자를 마련하여 고아원에 전달한 일이 있습니다. 라면 상자들을 쌓아 놓고 고아들과 기념사진을 찍고는 그곳을 나왔습니다. 그러다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때 한 아이가 우리의 뒷모습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퍽 외로워 보였습니다. 그는 울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에게서 주님의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성탄절 문화는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습니다. 결코 화려한 날이 아닌데도 일 년 중 가장 화려한 날로 바뀌었습니다. 백화점마다 요란스럽게 불을 켜 놓고 호화로운 선물을 파느라 야단입니다. 베들레헴 말구유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입니다.

12월24일 저녁은 환락과 술 취함과 사고의 밤으로 시끄러워졌습니다. 구세주의 탄생일이 연인들의 만남의 날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는 점은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 없는 비신자들이 설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의 가장 귀한 선물을 은밀하게 일하심을 보면서도 우린 화려함으로 치장하고, 장사나 사업수단으로 산타(코카콜라)를 이용하거나 트리를 만들어 팔고 선물을 팔아 수익을 올리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의 잔치는 감사가 있기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방박사들과 양치기들이 주님을 찬양하며 예물을 올려 드리는 경배는 없고 스스로 기쁨에 취해 세상의 놀이에 미혹된다면 참으로 마음 아픈 성탄절이 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예수 그리스도와는 무관한 '이상한 성탄절'을 맞이하는 수가 많습니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선물 상자, 올 나잇은 예수 그리스도와는 거리가 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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