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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인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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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13회 작성일 19-05-16 07:21

본문

길이 살겠네 (발인-1)

(고전 15:50-58) 246, 338, 493



고인은 그동안 고통도 많았고 수고도 많았던 이 세상의 삶이었지만 주님께서 예비하신 그 복락의 나라로 가게 되었다. 그는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 것이다.



1, 발인식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환송식이다.

김활난 박사는 죽으면서 내 죽는 장례식은 환송의 의식이 되게 해 달라고 유언했다. 그는 세상을 마지막으로 정리하면서. "길이 살겠네 나 길이 살겠네 저 생명 시냇가에 살겠네"라고 믿음의 찬송을 불렀다. 여기에 참석한 모든 분들도 주님이 오라 부르실 때, 이 찬송을 힘 있게 부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2, 발인식은 경건해야만 한다.

오늘 고인은 장지고 향하여 거기에 묻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의식은 거룩하고 경건해야 한다. 유족들은 혈육의 정으로는 섭섭한 마음 금할 수가 없겠지만 그 고인이 얻을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위로를 받고 오히려 찬송을 불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천국이 약속됐기 때문이다



3 . 발인식은 소망을 주어야 한다 .

발인식에 참여한 모든 조객은 고인의 발인을 보면서 우리가 사는 이 땅의 생은 유한하여서 누구나 한번은 죽는 것이지만 그러나 죽음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영원한 세계가 있는 것을 깨닫고 소망을 가져야 한다. 육체의 죽음은 끝이 아니고 천국의 영원한 생의 시작이다.

우리가 장차 갈 그곳은 영원히 살 수 있는 곳이다. 축복과 기쁨이 언제나 넘치는 그곳이다.





죽음 저 너머의 삶 (발인-2)

(욥 14 : 13-17) 246, 338, 493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다시 살 수 있겠는가? 이러한 질문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답변을 얻을 수 있다.



1 . 철학적인 논증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 놓고 계신다. 하나님은 죽음 이후의 생명을 사모하는 자들에게도 만족을 주기 위해 그것을 예비해 놓으셨다. 인간은 거의 대부분이 내세에 대한 소망을 갖고 있다. 문명인이든 야만인이든 그것이 모든 인류들 가운데 실제적으로 역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의 말씀의 증거

인간 이성과 자연의 빗이 내세에 대한 실제성을 증거 해주고 있지만,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그것을 확실히 볼 수 없고 다만 희미하게 볼 뿐이다. 이것은 주로 인간의 전적타락에 의해. 고 실체는 볼 수 없고 또 보려고 해도 다른 것으로 비취는데 근거한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그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겠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요 11 : 25). 하나님께서는 영광과 존귀와 내세의 영광을 구하기 위해 믿음으로 행하는 모든 자들에게 그대로 갚아주실 것이다.

인간이 죽는 것을 볼 때 죄인이나 예수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 다만 영생의 질이 다를 뿐이다. 죄인은 영원한 지옥불에서 영벌을 받으면서 영생하는 것이요

의인은 하나님과 함께 영광의 세계에서 기쁨의 영생을 얻는 것이다.





여기가 아니라 저기에 (발인-3)

(신 12:9-10) 246, 338, 493

우리는 안식을 기대하기 쉬우며, 잠시 후에 썩어 없어질 것에서 만족을 기대하기가 쉽다. 하지만 요단강 저편, 천상에 영원한 가나안이 있다.



1, 여기에는 진정한 만족이 없다

여기에 있는 인생들은 모든 면에서 제한을 받고 있다. 진토에 앉은 거지도, 백만장자도, 평민도, 주권자도 만족을 얻지 못하고 피곤한 삶을 살고 있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못마땅한 듯이 바라보며 보다 더 나은 것을 얻고자 분주하게 허둥대고 있다. 그렇기 때문 에 이 땅에는 참 만족이 없다.



2, 이 땅은 멸망되어가고 있다.

전능자께서는 목적에 따라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목적이 끝났을 때 보다 새로운 목적을 위하여 새 창조를 하실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 지구는 불에 타 없어지고 하늘은 큰 소리를 내며 떠나갈 것이다. 이로 보아 우리의 영원한 안식은 분명히 여기가 될 수 없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



3, 하나님은 천국에 살도록 요구하신다.

우리가 세상적인 즐거움에 도취되어 제멋대로 살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슬퍼하신다. 우리는 분명히 여기가 아니라 천국에 목적을 두고 살아야 한다. 그때 우리의 삶은 보다 고상해지고 거룩해지며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만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제 고인은 여기가 아니라 저기로 가기 위해 출발을 하려하고 있다. 우리들도 고인과 같이 천국으로 떳떳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





영원한 생명을 향한 열정 (발인-4)

(시 91:16) 246, 338, 493

불안한 현재와 불안한 미래에 사는 인생이지만. 이 땅에서 영원한 생명을 사모하고 그것을 향한 열정을 가진다는 것은 참으로 위대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1, 유한한 인생.

세상일은. 공적인 일이든 사적인 일이든, 모두시간의 제약을 받고 있다. 오늘 본문은 인간과 인간의 행하는 일들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고 있음을 여러 가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이 시간적인 존재인 인간이 그 한계를 극복해 보려고 발버둥 치며 애써 노력해 보지만 역시 인간은 나약하다.



2, 영원하신 하나님

하지만 히나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조금도 받지 않으신다. 그는 인간의 상상을 뛰어 넘어 영원 전부터 살아계신 분이시다. 그는 알파와 오메가가 되신 분으로서 시간 세계에 오셔서 영원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신다.



3,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불안한 인생을 사는 인간일지라도 하나님은 그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심어 주셨다. 그런데 인간이 현생에 급급함으로 이것을 바라보지 못하여 더욱 불안한 삶을 살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한계상황의 지배를 받고 있는 인간이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품고 있을 때, 영원하신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물려받게 된다. 죄를 깨달은 인간이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영생을 사모하도록 은혜를 주셨다.


영원히 멸한 사망 (발인-5)

(사 25:8) 246, 338, 493

하나님은 인간의 죄악으로 인한 죽음위에 생명으로 충만케 하시는 분이시다. 오늘 본문은 인간 최대의 원수인 사망을 이기시고 승리하신 그분을 바라보게 한다.



1,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은 승리 .

산헤드린 공회는 로마와 결탁하여 그리스도를 죽이고 무덤 속에 넣은 후 군병들로 하여금 그곳을 지키게 하였다. 그러나 사망의 권세가 아무리 막강하다 해도 그리스도를 더 이상 그 착고에 매어 놓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사망을 이기었을 뿐만 아니라, 그를 믿는 모든 인생들에게까지 사망에서 부활을 맛보게 하셨다.



2, 사람의 공포를 물리친 승리 .

사망에 대한 인간의 공포는 그의 영과 혼과 감정에까지 스며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우리들은 장차 부활의 영광에 참예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모든 공포의 도가니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사망을 향해 담대히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라고 외칠 수 있는 것이다.



3, 면류관으로 말미암은 승리 .

믿는 자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활할 때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 누림으로 그 승리를 온전하게 확증시킬 수 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승리로 사탄을 멸했기 때문이다. 성도는 이 땅위에 살고 있지만 이미 승리한 자로서 하나님의 질서와 통치 아래서 영원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로 사망을 멸하고 영원한 승리를 얻었으므로 사망을 두려워 말자.





인생에 대한 평가 (발인-6)

(시 90:9-10) 246, 338, 493

인생은 원래가 가치 있는 존재이며, 가치 있는 사역을 하다가, 전능자를 만나 뵈어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얻어야 할 자이다.



1, 인간 연수에 의한 평가

오늘 본문은 인생이 살았던 연수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지상에 태어났던 대부분의 인간들은 70, 80의 생애를 살다가 죽어야만 한다. 그 중 많은 사람들이 유년시절과 어린이 시절을 제대로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

하지만 연수의 길고 짧음이 큰 의미를 주지 못한다. 다만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어떻게 사느냐에 있다.



2, 행위에 의한 평가

인간의 생명은 연수에 의해 평가되기보다 그 행위에 의해 평가된다고 봄이 더 합당하다. 현대 문명의 利器는 이전에 여러 해 걸리던 것을 짧은 시간에 깨끗이 해결 지어 준다. 그러므로 인간은 주어진 순간순간을 어떻게 살았느냐가 보다 중요하다. 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상급을 목표로 그 영광을 기대하며 살아야 한다.



3, 내세 준비에 의한 평가.

현재의 생애를 잘 사는 방법은 내세의 생애를 잘 준비하는데 있다고 봄이 옮다. 그러므로 인생은 초기부터 진정한 기반을 잘 선택하여 합당한 재료로써 맹렬한 불에도 견딜만한 집을 지어야만 할 것이다. 성도의 진정한 준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나의 죄를 위해 죽으셨음을 믿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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