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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말씀

[부활절] 부활의 선물 (눅 2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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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른곰
댓글 0건 조회 713회 작성일 19-04-18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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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부활절을 맞아 오늘 주의 전에 모여오신 여러 성도님들께, 예수님의 부활의 기쁨과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오늘 다시 사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부활절은 우리 인류에게 죽음의 극복을 선언하신 날이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영생의 소망을 선물로 주신 날입니다. 선물을 받는 자에게 큰 기쁨을 줍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에게 주신 부활의 선물이 무엇인가를 증거해 드림으로, 여러분들이 부활의 선물을 은혜로 받아 큰 기쁨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증거해 드리겠습니다. 선물은 받는 자 외에는 그 기쁨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마음의 문을 활짝 여시고, 우리 주님 주시는 부활절 선물을 이 시간 말씀으로 꼭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인류에게 주신 우리 주님의 부활절 선물은 무엇입니까?


1. 빈 무덤입니다.(눅24:5-6)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예수 그리스도는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ꡓ 이것이 기독교 복음의 첫 소식입니다. 인간은 어느 정도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나라와 민족의 문제, 개인과 가정, 그리고 갖가지 질병과 사건들을 해결할 수 있지만 그러나 죽음의 문제는 극복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그 문제를 해결하신 것입니다. 그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신 증거가 바로 빈 무덤인 것입니다. 빈 무덤이란 바로 죽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부활의 새벽 인류에게 주신 이 ꡐ빈 무덤ꡑ의 선물이 그 어떤 종교와 비교 할 수 없는 보물이고, 그것이 곧 기독교의 생명이며, 진리와 토대이고, 기독교는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 부활의 날 새벽 인류에게 주신 ꡐ빈 무덤ꡑ의 선물이 여러분 모두의 선물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새 생명입니다.(요5:24)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곳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 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ꡓ 부활절은 죽음에 대한 종지부를 찍음과 동시에 새 생명의 창조로 영생을 선포하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을 믿는 자에게 죽음이 없는 줄로 믿습니다. 이 부활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살게 될 줄 믿습니다.


3. 평강입니다.(요20:19)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ꡓ 이것은 두려움과 불안에 떨고 있던 제자들에게 주신 최대의 선물이며, 축복이요, 참으로 넘치는 은혜와 기쁨이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순교적 신앙과 복음 증거의 힘은 바로 이 부활신앙 이었습니다. 맹수와 사자의 이빨 속에서도 그들이 평안하게 순교할 수 있었던 것은 죽어도 다시 산다는 이 부활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죽임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매, 성도는 죽음 앞에서도 평강을 잃지 않게 될 줄 믿습니다.


4. 부흥입니다.(행4: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나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ꡓ 이것은 놀라운 부흥입니다. 우리는 이 부활하신 주님을 내 교회 안에, 내 속에만 가두어서는 안됩니다. 온 세상이 알 수 있도록 높이 외쳐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이 일에 우리는 그 무엇도 아까워해서는 안됩니다. 이 부활 신앙이 민족의 부흥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영적 부흥만이 도덕적, 정신적 부흥을 가져옵니다. 사회부흥과 가정부흥, 그리고 생업과 물질, 경제적 부흥까지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부활 사건을 체험한 제자들의 증거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들은 부활신앙으로 환난과 핍박을 이겨내고 성장했습니다.


<맺는말>

지난 20세기의 인류를 평가한다면, 그것은 분열과 갈등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새롭게 찾아온 새 천년 21세기는 화해와 일치, 용서와 평화, 사랑과 연합의 시대로 열어 나가야 합니다. 아직도 고통과 신음, 탄식의 소리가 세계 도처에서 끊이지 않고 있는 이 현실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념과 체제, 인종과 언어의 장벽을 허물어뜨리고, 새로운 변화와 희망을 꿈꾸는 이 땅의 모든 영혼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꿈과 용기를 주는 기쁜 소식이 되길 우리 모두 하나님께 기원합시다. 오늘도 고달프기만 한 이 인생길, 의심과 두려움에 싸여 가는 이 인생길 엠마오의 길에, 다시 우리 주님 부활의 노래가, 여러분 고달픈 인생 길에, 생명으로 메아리쳐 울려 퍼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부활의 승리 (눅 24:30-39)

 

할렐루야! 오늘은 주님의 부활을 경축하는 가장 큰 기쁨의 날이다. 주님은 인류 구원의 가장 큰 꿈을 이루시기 위해 결단하시고 오래 참고 기다리셨다. 아니 십자가 상에 서 절대 고독과 고난을 겪으셨다. 이제 그 긴 고난의 밤을 지나 광명한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게 되셨다. 이것이 하나님이 새 일을 이뤄가시는 마지막 성취의 단계이다. 하 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일으키셨다. 주님은 사망권세를 깨고 삼일만에 부활 하셨다. 기독교는 생명과 부활의 종교이다. 주님이 만일 십자가의 죽음으로 끝났다면 순교자의 죽음은 될지언정 메시야의 대속의 죽음은 못 되었을 것이다. 이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요 완성이다. 죽음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요, 죽음에 대한 인류의 승리이다. 여기에 기쁜 소식, 복음이 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부 활절 오후에 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두 사람이 지금 석양에 예루살렘을 빠져 나와 엠마오라는 곳으로 걸어가면서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힘없이 걸어가고 있다. 그들은 며칠 전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 를 주고 받으며 걸어가고 있다. 바로 그 순간에 어떤 사람이 그들의 대화에 끼여 들었 다. 그분은 성경을 풀어 최근에 일어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들은 그분과의 만남과 대화가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그들은 날이 저 물 무렵 엠마오 근처 어느 집에 들어가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 순간 그들의 눈 이 밝아져 그들과 함께 만나 대화했던 분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인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때 그들은 예수님이 성경말씀을 풀어주실 때 그들의 마음이 뜨거웠던 것을 기억하였다. 독일의 시인 한스 카로사는 "인생은 만남이며 이 만남이 인생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노래했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실의에 빠졌던 두 제자는 부활하신 그리스 도를 만남으로 그들의 삶이 달라지고 운명이 바뀌게 되었다. 그들은 가던 길을 돌이켜 예루살렘으로 달려가 11제자들과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체 험을 이야기 하고 증거하게 되었다. 주님을 만나고 눈이 뜨이고 가슴이 뜨거워진 심령 은 그대로 그 자리에 거저 주저앉을 수가 없다. 두 제자가 엠마오에서 주저앉아 유숙 하지 못하고 예루살렘으로 뛰어간 것처럼 우리도 뜨거운 마음과 뜨여진 영안을 가지고 사명의 장소로 달려가게 된다. 중국으로, 러시아로, 남미로, 아세아로 달려가게 된다. 아니 뜨거운 마음과 새로운 믿음의 눈,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고 가정으로 달려가고 직 장과 이웃으로 달려가게 된다. 젊은이들만이 달려가는 것이 아니다. 엠마오로 내려가 는 황혼을 사는 사람들도 달려가게 된다. '엠마오'란 말은 '온천' '따뜻한 샘' '뜨거운 물이 솟아나는 우물'이라는 뜻이다. 온천은 몸과 마음이 쉼을 얻는 휴양소이다. 그들 은 '여기가 좋사오니'하고 그곳에 주저앉지 않았다. 그들은 주님의 부활을 경험하였을 때 곧바로 예루살렘으로 달려갔다. 예루살렘은 절망이 있고 아픔이 있는 곳이다. 상 처가 있고 고통이 있는 곳이다. 죄가 범람하고 울음이 있는 곳이다. 불의가 있고 부 정이 있으며 중상모략이 있는 곳이다.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두 사람은 쉼을 위해 찾아왔고 조금이나마 휴식을 취해보려고 내려왔던 엠마오에서 다시 어둡고 죄악 이 관영한 예루살렘으로 향해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뜨거운 가슴과 새로운 인생 과 역사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거슬러 올라갔다. 이런 사람만이 역사의 새 주인공 이 되고 새벽을 일깨울 수 있다. 엠마오에서 부활하신 주님과 만나고 해후한 글로바는 어둠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복된 소식,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부활의 증인이 되었 다. 그들의 가슴 속에는 십자가 앞의 절망이 아니라 부활의 승리로 가슴이 뛰었고, 죽 음으로 끝장나는 삶이 아니라 부활로 이어지는 소망의 삶을 증거하게 된 것이다. 오늘 날에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할 때 내 삶속에 변화가 오고 새 삶의 기적이 일어나게 된다. 마음속에 억제할 수 없는 삶의 감격과 기쁨이 용솟음치게 된다. 저는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모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경험을 통해 삶의 변화가 일어나고 새 소명을 받으며 새 삶의 기쁨과 감격으로 불타오르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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