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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주일] 다음 세대와 다른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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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른곰
댓글 0건 조회 594회 작성일 19-05-04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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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주일] 다음 세대와 다른 세대

교독문: 96. 어린이 주일. 말씀: 삿 2:7-15 찬송가: 565. 예수께로 가면.

미국의 사회학자 잉크하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세대별 가치관의 격차가 가장 큰 나라는 한국이다.” 그러니까 세계에서 우리나라만큼 세대 간의 차이가 심한 나라가 없다는 말입니다. 역사를 보면 사람들이 사는 곳에는 언제나 갈등과 차이가 존재해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쌍둥이도 세대 차이를 느낀다고 말할 정도로 정말 세대 간의 차이가 큰 나라입니다.

세대에 따라서 가치관이 다르고 사고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세상은 사람들을 세대로 구분합니다. 그래서 기성세대, 신세대라는 말이 나오고 그 중간에 끼어 있는 세대를 낀 세대라고 부르기도 하고 고리타분한 쉰 세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어느 세대에 속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회학자들은 함께 공존하고 있는 이 세대를 아날로그 세대디지털 세대로 구분하기도합니다.

● 시간과 돈을 유행을 어떻게 대응하는가? 에 따라서 세대차가 나는 것입니다.

음식문화만 해도 그렇습니다. 나이가 드신 분들은 질보다는 양을 선호했습니다. 그래서 5000원 짜리 설렁탕을 먹고 후식으로는 자판기에서 나오는 커피를 마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젊은 사람들은 500원짜리 컵 라면을 먹고 분위기 있는 카페에 가서 5000원짜리 커피를 마십니다. 핸드폰을 보세요. 10대, 20대는 가방이나 청바지 뒷주머니에 넣고 다닙니다. 그런데 40대 이상 되신 분들은 경찰관처럼 허리에 무전기처럼 차고 지갑과 같은 곳에 넣어서 다닙니다. 전화를 걸 때에도 10대, 20대는 단축 다이얼링을 씁니다. 그런데 40대 50대가 되면 일단 안경 걸치고 호주머니에서 수첩 꺼내서 보고 일일이 번호를 누릅니다. 세대 간의 차이는 어느 시대나 있어왔고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때로는 세대 간의 차이가 사회의 분열을 조장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세대 간의 차이가 역사 발전의 동인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나이가 아니라 습관이 세대 차이를 만들기 도합니다. 어린 청년인데도 삶의 지혜를 일찍 터득해서 지나치게 아끼다보니 어른아이가 되죠.

□ 서로 다른 두 세대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세대가 함께 공존하며 살고 있듯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도 두 세대가 나옵니다. 10절을 다 같이 보겠습니다.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그 세대와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가 나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전쟁을 아는 세대와 전쟁을 모르는 세대입니다. 전쟁을 아는 세대는 기성세대를 말합니다. 요즘 말로 하면 오프라인(off-line)세대로 그들은 광야에서 태어났습니다. 길게는 40년 이상 광야의 훈련을 받았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직접 통치하시는 신정국가의 정치, 경제, 문화를 경험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호렙산에서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요단강이 갈라지고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것을 직접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먹었으며 바위에서 터져 나오는 생수를 마셨습니다. 수많은 기적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 평생을 전쟁에 참여하였던 전쟁을 아는 세대였습니다. 어느 정도 주요 도시를 점령하자 그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힘들게 일하면서 나라의 기초를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6.25를 거치며 4.19를 경험한 세대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또 다른 세대가 나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도 먹어본 적이 없고, 바위에서 솟아나는 샘물을 마셔본 적도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은 적도 없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들은 기적다운 기적을 경험해 본 적이 없습니다. 농사를 짓고 양을 치는 평화로운 가정에서 태어나 별 고생을 모르고 자란 세대였습니다. 전쟁을 아는 세대와 전쟁을 모르는 두 세대의 갈등과 대립이 50여 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 오늘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쟁을 아는 세대의 입장에서 보면 전쟁을 모르는 세대들이 너무나 철부지와 같습니다. 화염병을 던지기도 하고 촛불시위를 하는 그들이 정말 위험하고 불안한 존재들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너희들이 공산주의의 허구를 알아?” “우리가 피와 땀과 눈물을 통해서 이루어 놓은 나라인데 노인을 폄하해” 라고 반응합니다. 반면 전쟁을 모르는 젊은 세대는 전쟁을 경험한 세대를 향하여 냉전적이며, 수구적이라고 말합니다. 고리타분하다고 말합니다. 구닥다리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변화와 개혁이 필요한 대상이라고 말합니다.

● 역사를 보면 사람들이 사는 곳에는 언제나 이런 세대 간의 갈등이 있어 왔습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전쟁을 아는 세대가 세상을 떠난 이후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보았고, 기적을 경험하였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전쟁을 통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하였던 전쟁을 아는 세대들이 이 세상을 떠나고 난 다음이 문제입니다. 7절을 보겠습니다.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7절) 여호수아가 살아 있는 동안과 여호수아가 죽고 난 다음에도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는 그들이 여호와를 섬겼다고 말합니다.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

그런데 문제는 영적인 지도자 여호수아가 죽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을 친히 경험한 전쟁을 아는 세대들이 이 세상을 떠나고 난 다음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도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10절) 이전 세대가 다 죽고 나자, 결국 하나님 없는 세대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11절부터 15절까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던 세대의 비참함이 무엇인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①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습니다.(11절) 하나님을 잊어버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여호와를 알지 못한 세대는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황소의 형상으로 만든 풍요의 신으로 돈과 물질로 이룬 풍요가 우상인 것입니다. LA 한아름교회 홍정수 목사님은 "미국 상류층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유대인들이 야훼 하나님에게서 등을 돌려 바알 신에게로 가고 있다"며 "승리와 성공, 풍요, 신분상승, 출세의 욕심을 불어넣는 교회와 목회자, 성도들 가운데 과연 야훼 하나님이 계신가?"고 질문하고 싶습니다. 신학교의 예도 "달동네에 사는 아이들이 성경책을 훔쳐 갈까봐 이중 삼중으로 사물함에 자물쇠를 채우는 모습에서 과연 하나님이 어디 계신가 하는 의문을 가졌다"고 한탄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 자들에게 이 타락한 죄악의 본성을 따라 악을 행하는 것은 가르치고 조장하는 자들이 교역자이며 부모라면 너무나 가슴치고 기도하며 회개해야 할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②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습니다.(12절상) 은혜를 잊어버림.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의 존재의 원인이요, 민족적 자부심의 근거이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여 우상숭배를 한다는 것은 여호와를 버리는 배은망덕한 행위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습니까? 그들을 구원하여 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기적과 이사를 베푸셨습니까? 하나님은 그들 앞서 행하시며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와 이 땅을 차지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은총을 받은 자들이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습니다. (삿 2:13)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인생의 비극은 하나님이 그들을 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버렸기 때문에 찾아온 것입니다.

③ 여호와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그들을 노략하는 자의 손에 붙이셨다. (14절) 교만을 꺽으심.

이렇게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김으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진노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넘겨 주사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시며 또 주위에 있는 모든 대적의 손에 팔아 넘기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하지 못하였으며

④ 여호와께서 재앙을 내리시매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다(15절) 명령과 계명을 지키심.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니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고 우상을 숭배함으로 여호와를 버렸고 그러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노략하는 자의 손에 붙인바 되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여호와께서 재앙을 내리심으로 괴로움이 심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을 경험했고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일들을 친히 경험했던 그 조상들이 오늘 자기들의 후예들이, 아니 자기의 자녀들이 이런 비참과 저주 가운데 빠지게 되리라고 생각을 했을까요? 아마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게 되고, 우상을 숭배함으로 여호와를 버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받게 되고 재앙을 받게 되어 괴로움이 심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자녀들이 이런 비참과 저주 가운데 빠지게 된다고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세상을 떠나고 난 다음에 여러분의 자녀들이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는 모습을 생각해 보세요. 여호와를 버리고, 돼지 머리 앞에 절을 하고, 제사상 앞에서 절을 하고, 어려운 일을 만나면 점쟁이를 찾아가고, 무당을 데려다가 푸닥거리를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래서 나중에는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놓이게 되어 건강도 잃고, 재물도 잃고, 사람도 잃고, 괴로움 가운데서 한숨 짖고 있는 모습을 생각해 보세요.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있어서는 안 되는 일들이 우리가 사는 이 세상과 이 세상을 떠나고 난 다음 세대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다음세대가 다른 세대가 되지 않도록 하려면?

분명이 세대 간에 갈등은 있습니다. 문화가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 세대 간에 갈등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자녀들이 여호와를 모르는 세대 다른 세대가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여호와가 누구냐? 예수가 누구냐?” 할까 하는 세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목전에서 악을 행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세대가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진노의 대상이 되게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떠남으로 고통스러운 괴로움을 당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의 다음 세대가 다른 세대가 되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 다음의 세대다른 세대가 되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요?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

자기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였으면서도, 자기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을 눈으로 직접 보았으면서도 다음 세대에게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후 대부분의 날들을 전쟁하며 다 보내었습니다. 영적인 긴장 가운데 살아왔습니다. 그때는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하나님만을 섬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어느 정도 전쟁이 그쳐져 가고 있었습니다. 전쟁을 아는 세대가 서서히 칼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평생을 광야와 전쟁터에서 보낸 그들은 생전 처음 땅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 집을 짓게 되고 가축을 기르게 되었습니다. 또 생전처음 농사를 짓기 시작하였습니다. 얼마나 신기합니까?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둔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하고 재미가 있었는지 모릅니다.

또 가나안의 원주민들을 몰아내지 아니하고 남겨둔 자들이, 종들이 힘들고 어려운 일을 대신 하여 주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편합니까? 이래, 저래 종들로 인하여 생활이 편해지고 집을 짓게 되고 농사를 짓는 등 땅을 가꾸는 일에 빠지게 되자 그들 자신들은 신앙을 유지하며 살았지만 후손들에게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신앙교육에 열심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좀 살만 하자, 배가 부르자, 돈이 많아지자, 종들을 부리게 되자 마음이 점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그래서 마땅히 행할 길을 자녀들에게 가르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조상들과 선배들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가난만은 유산으로 물려 주지말자며 잘 살아 보세! 를 외치며 오직 일만 해왔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기성세대는 골병이 들 정도로 일만 하며 자라온 세대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먹고 살만하게 되자 좋은 자가용 굴리게 되고, 큰 집을 짓고 거하게 되고, 여가를 즐기게 되고, 세상재미를 맛보자, 점점 하나님께로부터 마음이 멀어져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자녀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고, 본이 되지 못하고, 마땅히 행할 바를 아이들에게 가르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안락으로 신앙이 무뎌졌던 것입니다.

헤리 채핀(Harry Chapin)이 지은 한 글 제목은 “요람 속의 고양이”입니다.

어느 날 내게,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 아이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세상에 왔지만, 그러나 아이에게는 홀로 밟아야 할 단계가 있었고, 지불해야 할 계산서가 있었습니다. 아이는 내가 알지 못하는 동안 걸음마를 배웠습니다. 또 내가 보지 못하는 사이에 말도 배웠습니다. 나는 항상 바쁜 사람이었기에 아이가 언제 그런 것들을 배웠는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아이는 자라면늘 내게 말했습니다. “아빠, 나는 이다음에 크면 아빠 같은 사람이 될래요. 아시겠죠? 난 반드시 아빠 같은 사람이 될 거예요.” 아이가 물었습니다. “아빠 언제 집에 오실 거예요?” 내가 대답했습니다. “글쎄, 바빠서 잘 모르겠구나. 하지만 아빠가 시간이 나면 그 때 놀자꾸나. 그 때 우리는 즐겁게 놀 수 있을 거야.”

어느 날, 열 살이 된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빠, 공을 사 주셔서 고마워요. 오늘은 저랑 함께 놀아주시겠어요? 공 던지는 법도 좀 가르쳐 주시고 말이에요.” 내가 대답했습니다. “얘야, 오늘은 안 된단다. 오늘은 할 일이 너무너무 많거든” 그러자 아들은 알았다며 혼자 공을 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렇다고 아들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들은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나는 이다음에 크면 아빠 같은 사람이 될 거야.” 아들이 물었습니다. “아빠 언제 집에 오실 거예요?” 내가 대답합니다. “글쎄, 오늘도 바빠서 늦을 것 같구나. 하지만 이다음에 아빠가 시간이 나면 그 때 아빠랑 함께 지내자꾸나. 그 때 우린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을 거야.”

세월이 흘러 어느덧 아들은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내가 먼저 아들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아들아! 네가 정말 자랑스럽구나. 이리 외서 내 겉에 앉아 보렴.” 아들이 머리를 져으면서 미소 띤 얼굴로 말했습니다. “아빠! 제게 지금 필요한 건 아빠 자동차 열쇠랍니다. 물론 빌려주시겠죠? 그럼 나중에 뵈요.”

세월이 자꾸 흘러 나의 머리가 점점 희어져 갑니다.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아들아! 언제 집에 올 거니?” 아들이 대답합니다. “글쎄요. 아버지 바빠서 잘 모르겠어요. 그러나 제가 한가해지면 그 때 함께 지내도록 해요. 아셨죠? 그 때 우리는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을 거예요.”

그 후, 더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나는 은퇴하여 집에 있은 지 오래 되었고, 아들은 먼 곳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어느 날, 나는 아들이 너무나 보고파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들아! 너만 괜찮다면 널 한번 보고 싶구나!” 아들이 대답합니다. “아버님! 저도 아버님을 무척 뵙고 싶습니다. 그런데 통 시간이 나질 않습니다. 아버님도 아시다시피, 요즈음은 세상 살기가 너무나 힘들고 바쁘답니다. 게다가 지금 제 아이들이 심한 감기에 걸려 있습니다. 아무래도 아버님께서 양해해 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버님! 죄송하지만 이해해 주십시오.” 수화기를 내려놓는 순간 불현듯, 생각나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빠! 나는 이다음에 크면 아빠 같은 사람이 될래요. 아시겠죠? 난 반드시 아빠 같은 사람이 될 거예요.” 그 아이는 꼭 나 같은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내 아들은 나와 똑같은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끝.......

이렇게 자식들은 부모를 좋게 보든지, 나쁘게 보든지? 본대로 부모를 배우고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1. 자녀들 앞에서 부부싸움을 하지 말아야합니다. 싸우는 것을 보게 되면 부모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지게 되고, 싸우는 광경을 자주 보게 되면 무의식중에 폭력에 익숙해져가고 가정에 대한 혐오감이 생기며 급기야는 가출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2. 또 자녀들 앞에서 욕, 비판, 정죄, 불평, 불만을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직장 상사나 이웃 친구에 대한 욕설과 불평은 자녀에게까지 공동의 적개심을 갖게 합니다. 특별히 자녀들 앞에서 교회의 목사, 장로, 권사, 집사 등 교인들을 욕하거나, 불평의 말을 하는 것은 자녀들로 하여금 교회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하여 하나님을 떠나고 결국 교회를 떠나게 만듭니다.

3. 또 자녀들 앞에서 <돈, 돈>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소리가 머리에 박힌 자녀는 밖에 나가서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라도 저지를 수 있다는 무서운 마음을 갖기 쉽습니다.

4. 또 부모는 자녀들 앞에서 극단적인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저 녀석들 때문에 내가 못 살어>

<나가버려> <죽어버려> <자식이 원수야 > <너 죽고 나 죽자>등의 극단적인 말은 자녀들의 심성을 극도로 악화시키는 것입니다.

●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의 맡겨주신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어떤 감동을 주고 계십니까?

오늘 여러분들은 자녀들에게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고 계십니까? 세대 차이는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우리들 자녀만큼은 여호와를 섬기며, 경외하는 자들이 되게 해야 합니다.

적어도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신자의 가장 기본인 온전한 주일성수를 통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감사로 제사 드리는 찬양과 감사예물과 십일조에 대하여서 만큼은 정직하게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녀들의 건강문제, 진학문제, 취업문제, 결혼문제 등, 세상 살아가는 문제에만 신경을 쓰고 있지 하나님의 사람으로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 밖에도 우리는 자녀들에게 돈을 주기 전에 돈 쓰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공부만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우선적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잘살기 위한 것보다, 바르게 살도록 먼저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이미 다 큰 자식 어떻게 하겠느냐? 고 그냥 방치해 두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이제라도 자녀의 신앙문제를 놓고 몸부림치며 기도하며,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도록 하셔야합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태신자와 자녀들을 가장 사랑하는 일입니다. 지나치게 전쟁을 말하는 것도 무리가 되고, 지나치게 나의 슬픔과 아픔을 말하면 그 것이 그대로 자녀에게 부정적인 면으로 자리 잡게 된다는 것입니다. 감사와 찬양과 믿음의 소망, 은혜와 긍정적인 마음을 삶 가운데 물려주어야 합니다.

● 엘리 제사장을 보십시오. 그는 자녀들이 잘못되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냥 불상하다고 방치하다가 결국 전쟁터에서 모두 죽게 되며 그 죽음의 소릴 듣고 의자에서 떨어져 죽습니다.

(삼상 4:17~22) “소식을 전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였고 백성 중에는 큰 살륙이 있었고 당신의 두 아들 홉니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였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나이다. 18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가 많고 비대한 까닭이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사십 년이었더라 19 그의 며느리인 비느하스아내가 임신하여 해산때가 가까웠더니 하나님의 궤를 빼앗긴 것과 그의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은 소식을 듣고 갑자기 아파서 몸을 구푸려 해산하고 20 죽어갈 때에 곁에 서 있던 여인들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아들을 낳았다 하되 그가 대답하지도 아니하며 관념하지도 아니하고”

● <만종>을 그린 <밀레>가 파리에 공부하러 갈 때 할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하나님의 뜻을 어긴다든지 믿음이 없어진다든지 하는 것보다 오히려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잊지 말아라. 너는 화가가 되기 전에 먼저 올바른 크리스천이 되어라. 그릇된 일에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림을 그리려거든 영원을 위해서 그릴 것이며 늘 하나님의 심판의 나팔 소리가 들려 올 것을 생각하고 살아라.” 나의 마지막과 이 땅의 마지막을 아는 자녀들은 결코 좌절하지 않습니다. 결코 자살 하지 않습니다. 결코 방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날을 기억하도록 하면서 교육을 시켰던 할머니의 영향을 받아 밀레는 그렇게 영향력 있는 화가가 된 것입니다. 자녀들의 영적인 모습을 더 이상 방치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체험하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체험하도록 해야 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도록 해야 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어떻게 우리의 자녀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체험하게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우리의 자녀들로 인하여 다른 세대가 아니라 동일한 신앙을 고백하며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할 수 있을까요? 말씀을 듣게 하십시오. 그리고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게 하십시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으로 일하게 하십시오. 의의 말씀이 오늘 자신 안에서 경험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조상들이 율법과 절기를 지키는 것은 칼 같이 했지만 자손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는 기도와 그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듣는 법을 가르치지 못하고 바알과 아세라를 좇은 것이 큰 문제였음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오늘 우리의 자녀들에게 마땅히 행할 바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또한 그들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하지 못하면 우리의 다음세대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세대가 되어 버릴 것입니다. 가치관이 전혀 다른 세대, 감각적인 세대. 자신의 야망만을 위해 살아가는 다른 세대가 되어버릴 것입니다. 우리의 다음 세대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세대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신앙의 본을 보이며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의 경험을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번 한주간도 가정의 달 가운데 특별히 오늘은 어린이 주일이며 다음 주는 어버이 주일도 있는 가정의 주간입니다. 건강한 가르침과 본으로 가정과 교회가 회복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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