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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17회 작성일 19-05-16 07:21

본문

두 종류의 집 (입관-1)

(고후 5 : 1-10) 277, 301, 493

신자는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장차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이어 받을 자이다. 그래서 이 땅 위의 집과 하나님 나라의 집 즉 두 집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1, 장막 집.

하나님의 말씀은 땅에 있는 우리의 집 곧 이 땅의 삶이 '장막 집'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신다. 이 장막 집은 야외에 다 치는 천막집을 가리킨다. 이것은 언제든지 이동하기 쉽게 만든 간이 집이다. 이것은 언제든지 거두기 쉽게 지은 집이므로 내구성이 전혀 없다. 우리가 학위에 소유하고 있는 집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이것은 역시 장막 집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가 이 땅을 떠날 때 이것은 모두 없어지고 아무 의미도 지니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2, 영원한 집.

이 땅 위의 장막 집과 반대되는 집은 곧 영원한 집이다. 그것은 하늘나라에 있는 것인데. 그것이 하늘로부터 우리에게로 와서 우리를 덧입게 하는 것이다. 고인은 한평생을 살면서 이 하늘나라에 있는 집을 사모하고 열망했다. 그는 이제 그토록 사모하던 집을 가기 위해 이 장막 집을 떠나려 하고 있다. 잠시 후면 그는 그곳을 가기 위해 조용히 관 속에 들어가게 된다.



이것을 지켜보는 우리는 슬퍼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진지하고도 엄숙하게 바라보며, 앞으로 그가 거주할 영원한 집이 있음을 확신하자. 성도는 약속된 천국의 집이 있으므로 사모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주 안에서 자는 자의 복 (입관-2)

(살전 4 : 13-18) 277, 301, 493

본문에 자는 자리는 표현이 세 번, 쓱은 자라는 표현이 한번 나오는데, 특히 주 안에서 잠자는 자의 누릴 복락에 대해 강조되고 있다.



1, 영원히 깨는 복

주 안에서 자는 자만이 영원히 깨는 복락에 참여할 수 있다. 이 땅에서 아무리 부귀영화에 심취해 있을지라도 주님을 모르면 영원히 어두움 가운데 헤매일 것이며 사망과 흑암이 지배하는 곳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주님 안에 있는 자는 살아서는 물론이고 죽어서도 영원히 깨는 복을 받게 될 것이다.



2, 부활에 참여하는 복.

본문에서 예수 안에서 자는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산다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사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성도는 예수님과 연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재림하실 때 모든 성도는 부활의 영광스런 몸을 입게 될 것이다.



3, 위로함을 받게 되는 복.

오늘 본문의 말씀은. "소망 없는 다른 이아 같이 슬퍼하지 않게"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우리는 죽음 이후의 영광과 안위를 보기 때문에 멸망당할 자와 같이 더 이상 슬퍼할 필요가 없다. 오늘 고인의 영광을 마음속에 그려보며 우리 또한 위로를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하자. 성도의 죽음은 영원히 사는 부활의 복이므로 큰 위로와 소망을 갖게 한다.





그리스도인의 죽음 (입관-3)

(롬 14 ; 7-9) 277, 301, 493

바울은 믿는 자들에게 권면의 말을 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위하여 살아야 할 유일한 대상은 오직 그리스도뿐이라고 선포하였다.





1. 이웃을 섬기는 삶.

그리스도인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웃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이웃의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서라면 거기에 따르는 회생이 어떠한 것이라도 그리스도인은 그것을 감내해야만 한다. 성령에서는 사도들에게 역사하셔서 굶주린 백성들에게 기쁨의 소식을 전하게 하기위해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여행을 하게 하셨다.



2, 그리스도를 섬기는 삶.

그리스도인외 목적은 그가 행하고 말하는 모든 것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사적인 생활에서 분만 아니라 공적인 생활에서도 밝히 표명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성도의 삶은 그리스도의 삶이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고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도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기도 한다.



3. 죽음을 예비한 삶.

신자의 삶은 죽음을 잘 예비하는 데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오늘 고인 된 OOO 성도는 죽음을 잘 예비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살았을 때 이웃을 위해. 주님을 위해 사는 삶으로 초지일관하였다. 이제 그는 편안히 예비 된 천국의 복락에 참예하게 될 것이다.

성도의 죽음은 이웃과 주님을 섬기며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야 한다.





성도가 얻을 안식 (입관-4)

(시 7:13-17) 277, 301, 493

성도가 이 땅 위의 삶을 살 때 믿음을 지키고 충성된 삶을 살므로서 받는 복락은 무엇인가? 그것은 여러 가지 이겠지만. 본문에서는 안식을 얻으리라고 하였다.



1,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신다.

하나님의 장막 속에 있는 성도는 편안한 안식을 누릴 것이다. 이는 마치 뜨거운 사막을 여행하는 나그네가 시원한 오아시스를 만나 그 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과 같다. 성도는 현생에서 얼마나 많은 고난 가운데서 방황했던가! 하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안식의 장악을 두르심으로서 위로와 안식을 공급해 주신다. 여기에서 성도는 영원한 안식과 위로를 얻게 된다.



2, 그들의 목자장이 되신다.

주님은 자신을 믿는 성도들의 대 목자장이 되셔서, 그들을 영원한 생명 강가로 인도하시고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공급하신다. 이 땅 위에 있는 지도자는 흠이 많고 불완전하지만 주님만은 의로우시고 완전하셔서 결단코 실패하지 않으신다. 그는 또한 사랑이 풍성하신 분이시기에 고통의 눈물을 씻어 주시고 위로와 안위의 말씀을 들려주신다. 구분 안에 참 평화와 기쁨이 있다.



현생의 삶을 사는 성도는 언제나 찬바람이 휘몰아치고 흔들리는 불안한 세상 가운데 처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삶 속에서도 고인은 믿음을 지키고 천국의 빛나는 소망을 바라보면서 충성, 헌신된 삶을 살았다. 그러므로 고인이 누릴 천국의 영광과 안위는 지극히 크다고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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