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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예수님의 해방 (마 4: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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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른곰
댓글 0건 조회 1,220회 작성일 18-08-10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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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해방                                      

마 4:23-25  

방학이라면 얼마나 즐겁고 신납니까?

그런데 며칠 전 어느 신문에 자녀들이 방학을 싫어한다는 기사가 난 적이 있습니다. 각종 학원과 캠프 그리고 과외 
에 학생들이 파김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부모도 자녀를 뒤쳐지지 않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은 몸매, 미모, 그리고 취업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사회 전체가 돈, 명예, 출세, 외모라는 속박 속에 갇혀 있습니다. 과연 어떻게 해야 우리가 참된 자유와 해방을 맛보며 살 수 있을까요?


금번 8.15 광복절은 광복된 지 71주년이 됩니다. 그러나 강대국에 의한 8.15 광복은 이 민족에게 참된 자유를 가져다 주지 못했습니다. 민족은 둘로 나뉘고, 북은 억압 속에 있으며, 남은 여러 가지로 주변국과 불편한 관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실이 보여주듯이, 힘에 의한 광복은 진정한 해방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해방만이 참되고 진정한 해방입니다. 모세가 이끈 출애굽도 참된 자유와 해방을 가져다 주지 못했습니다. 우리에게 참된 자유와 해방을 주실 분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친히 말씀하시기를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요8:36)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해방은 우리가 중요시하는 정치, 경제, 사회적 해방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해방은 인간을 근본적으로 해방시켜 주시는 영적 해방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해방은 무엇인지 깨달음으로, 세상의 억압에서 해방되고, 진리 안에서 자유한 우리 모두가 됩시다.


첫째, 죄에서 해방


우리가 이 땅에서 자유하지 못하고, 삶이 너무나 힘든 것은 죄 때문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을 때는 마음껏 자유와 행복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자유하려는 순간, 죄의 속박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죄는 인간을 병들게 하고, 가난하게 하며,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인해 이런 죄의 속박에서 우리는 자유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고 증거합니다.

예수님은 아무 대가 없이 죄에서 해방되는 은혜를 우리에게 베푸십니다.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우리를 향한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요8:11하).

그런데 당시 그 자리에는 간음한 여인 말고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한 여인을 정죄할 만큼 스스로를 의롭다고 생각한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의롭다 여기는 그들은 단 한 사람도 죄에서 해방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 앞에 계속 남아 있던 간음한 여인만이 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여기서의 교훈을 명심하여 우리 모두 죽는 날까지 예수님 앞에 거함으로 죄에서 자유한 삶을 살아갑시다.


둘째, 질병에서 해방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에서 해방된 사람은 질병에서도 해방됩니다. 예수님 앞에 나아가기만 하면 모 든 병과 모든 약함이 온전케 됩니다. 성경은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마4:23)라고 기록합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면, 그 뜻대로 고쳐주십니다(약 5:15상). 눈먼 자, 귀먼 자, 38년 된 병자 등 수많은 병자를 찾아 오셔서 고쳐 주셨듯이 예수님은 우리를 자유케 하십니다.

우리는 육체의 병뿐만 아니라, 마음의 병에서도 해방시켜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IMF 이후 사람들의 마음은 극심할 정도로 깨지고, 피폐해졌습니다. 가족, 친지, 친구, 이웃, 직장 동료로부터 받은 상처와 아픔이 있습니다. 이같은 상한 마음과 거절된 감정은 육체의 질병보다 더 견디기 힘든 아픔입니다(잠 18:14). 우리는 이런 아픔으로 인해 사람을 미워하기보다, 주님 앞에 상한 마음과 감정을 토해내야 합니다(시62:8). 그럴 때,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는 주님께서는 애통하는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 주십니다(마5:4).


셋째, 가난에서 해방


우리는 예수님이 가난하게 되심으로 말미암아 이미 부요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8:9)고 증거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아멘”했는데, 믿음으로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우리가 기억할 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가난에서의 해방은 부자가 되는 것 그 이상이라는 사실입니다. 물질만 많다고 우리의 마음과 생활이 참으로 풍요로울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가난의 감옥에서 해방되기 위해 물질만을 추구하면 물질의 감옥에 갇혀 참된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진정한 가난에서의 해방은 세상이 중요시하는 물질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가난을 가난으로 여기지 않고, 물질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물질의 많고 적음에 연연하지 않는 것입니다(빌4:11). 따라서 참된 부자란 물질이 많은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대해서 부요한 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12:20-21)고 가르쳐 주십니다. 비록 가난할지라도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부요함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할 때, 하나님은 물질 또한 차고 넘치도록 채워주십니다.


넷째, 죽음에서 해방


죽음에서의 해방이 없는, 죄, 질병, 가난에서의 해방은 참된 해방이 아닙니다. 진정한 우리의 해방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썩을 수밖에 없는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고전 15:50). 오직 예수님을 믿고 영적인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심으로, 우리에게 죽음에서의 해방을 약속하셨습니다(고전15:54).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죽음을 나와 상관없는 일로 여기고, 주님이 곧 다시 오실 것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무감각과 재림과 부활에 대한 무관심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반드시 죽으며, 성도는 예수님 때문에 반드시 죽음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망을 이기고 영생의 천국에 가는데 어떻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고전15:57).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 감사를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봉사해야 합니다. 나아가, 땅의 것에 흔들리지 말고, 천국을 소망하며 주의 일에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 권면합니다. 우리는 이미 죽음을 이기고 하늘에 속한 자입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 천국 백성답게 세상에 없는 것을 보지 말고, 하늘에 있는 것을 보면서 당당하게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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