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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 감사의 영성, 골로새서 2장 6 - 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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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11회 작성일 18-11-09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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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영성, 골로새서 2장 6 - 7절  
 


 


어떤 물건에 대한 품질을 평가할 때, '고급', '중급', '저급'이라는 급수를 매기는 것처럼 사람의 영혼의 품격을 결정짓는 기준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삶'이라는 글을 쓴 '고든 맥도날드'라는 저자가 그의 책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의 영혼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그가 지닌 '영성'이라고 그는 주장합니다.
영성이라는 말을 쉽게 정의 하는 일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영성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나의 영혼의 중심에 모시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말합니다.
영성이라는 것은 세상에 살지만, 세상과 동화되지 아니하며 환경을 초월하여 예수님이 말씀하신 풍성한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영성생활의 극치는 "감사 생활"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이런 생각을 해 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나는 세월이 흐른 다음 어떤 노인이 되어 있고 싶은가?'
영성 있는 삶을 통하여 인생을 보낸 사람은 노년이 되었을 때 "감사"로 마무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의 생애는 늘 감사하는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일으킬 때마다 먼저 '감사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시는 성찬 때도 역시 하나님께 감사하셨습니다.
사도바울도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에게도 '범사에 감사하라'고 권면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감사하는 영혼이 성숙한 영혼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한 사람이 얼마나 성숙한 인격인가 하는 것은 그가 얼마나 감사하는 삶을 살고 있느냐 하는 것으로 측정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골로새서 2장 6-7절에서 바울은 이런 말씀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여기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는 말은 인색한 감사, 억지 감사를 뛰어넘으라는 말입니다.
마음속 싶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감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말씀을 기록할 때 로마옥 중에서 쓰고 있었습니다.
골1:3"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골1:12"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골3:15"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3:17"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니 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옥중에 있는 바울의 영혼은 "감사"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학자들은 이 무렵 바울의 나이가 60세가 넘어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의 영혼은 '아르다운영혼'으로 무르익어 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설교의 시작에서 우리의 영혼에도 "품격","품질"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 믿는 이들에게 있어서 진정한 건강은 '영혼의 건강'입니다.
건강이라는 것은 엄밀히 말해서 육신의 건강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질과 관련이 있는 얘기입니다.
육신적으로 영적으로 구김살이 없는 상태를 건강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성경이 바라보는 가장 건강한 상태는 "평강의 상태"인 것입니다.
병든 영혼은 감사를 모릅니다.
병든 세대, 병든 사회, 병든 문화는 감사가 없습니다.
로마서 1:21 에서 바울은 병든 사회상을 감사를 잃은 사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오늘 여러분의 영적상태, 영성의 품격을 진단하여 보시길 바랍니다.
건강하면 감사로 살고 감사의 사람은 영혼의 품격을 찾고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됩니다.

또 하나 감사의 사람의 특징은 "밝은 면만을 볼 줄 안다"는 점입니다.
밝은 면을 보는 영혼은 은혜 받은 영혼입니다.
같은 눈을 가지고도 어두운 면만을 보는 사람은 그 인생이 어둡고 불행합니다.
남의 어두운 면만을 캐내는 은사를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무엇하나도 긍정적으로 보이질 않습니다.
KBS개그콘서트라고 있다. 요즘에 제가 거기서 의미 있게 보는 코너가 있습니다.
'할매가 뿔났다'라는 개그코너인데 거기 심술궂게 생긴 할매가 나옵니다.
주로 이 할매가 잔뜩 회가 나서 등장을 하는데 시작하는 내용이 이렇습니다.
"아 글쎄 경로당 노인정에 있는데 며느리가 우리 어머니가 가장 건강하고 예쁘시다고 그러더라고" "그게 왜 화가나" "나 안죽을까봐" "나 안죽을까봐 그러는 거 아녜요"그리고 "내가 노인정에서 춤을 추는데 며느리가 어머니는 어쩌면 그렇게 춤을 잘 추세요 하더라고" "그게뭐?" "나 죽으면 춤출려구.." "아 글쎄 며느리가 오더니 내 얼굴에 화장을 해주고 너무 예쁘다고 하잖아. 나 술집내보내려구.." "며느리가 나를 생일이라고 백화점에 가서 그 비싼 옷과 구두를 사주더라구 나 부담돼 죽으라구.." 저도 웃으면서 봤지만 그 할매가 우리들 모습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저 순수하게 있는 모습 그대로 이쁘게 봐주고 참 잘한다. 참 고맘고 감사하다 할 줄 모르고 부정적인 눈으로 보고 오해하려고 작심하고 받아들이고 혹 우리는 "잔뜩뿔난 할매"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았습니다.
밝은 면만을 볼 줄 아는 것도 훈련으로 되어집니다.

어두운 면만을 보는 것도 그 인생의 관정이 그렇게 훈련되어 왔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밝은 면만을 볼 줄 아는 눈이 열려지게 되시길 축원합니다.
잃은것 , 없는것 만을 바라보기 보다는 아직도 남은 것 , 아직도 할 수 있는 것, 내 안에 감추인 보화를 보게 되면 행복해 집니다.
여러분 영성같은 사람은 삶이 다릅니다.
어떤 상황속에서도 긍정적인 면, 감사한 일, 밝은 면을 보려고 합니다.
또 한가지 감사하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족할 줄 모릅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족할 줄 압니다.

왜 교만한 사람은 자족할 줄 모르는 인생이 됩니까? 그것은 그가 스스로 자신은 더 많은 복을 받아야 하고 더 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은 더 인정받을 자격이 있고 대접받을 자격이 된다고 여기는 사람입니다.
근본적으로 이러한 교만이 일상 속에서 “불평”의 사람을 만들게 됩니다.
반면에 겸손의 사람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살아갑니다. 그리하여 그가 성공한 이유에도 소박함을 유지할 줄 압니다.
사울 왕은 처음에는 ‘겸손’으로 출발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 초심이 유지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는 왕위마저 박탈당하고 맙니다.
겸손의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압니다. 자신이 노력하고 인정할 줄 압니다. 사도 바울이 그런 신앙으로 살았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 로라 ”(고린도전서 15장 10절)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살아왔음을 고백 하십니까 또 한 가지 감사의 사람은 믿음의 시각으로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본다는 것은 남이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것이고 하나님의 원리를 따라 바라보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는 것과는 다른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모든 것을 기적을 창조하는 자료로 보셨습니다. 고난 고통 역경마저도 우리 예수님에게 기적의 준비단계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의 시각으로 우리 문제를 다시 보면 “모든 상황 속에서 감사”가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께서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최선의 결과를 주시는 분이심을 신뢰하기에 감사할 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난파선의 유일한 생존자가 작은 무인도에 상륙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자기를 구하여 주십사고 간구하였습니다.
그리고 수평선을 바라보았지만 단 한 척의 배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결국 지쳐서 포기하고 작은 오두막을 짓고 배에서 건진 모든 것을 거기 두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고기 잡으러 나갔다 돌아오니 오두막이 불에 타고 있었습니다.
이 무인도에서 살아남으려면 오두막에 있는게 전부였는데 모든 게 불 타 버리니 그는 절망에 빠지고 맙니다.
그런데 다음날 배 한척이 무인도로 다가와 이 사람을 구조합니다.
'내가 여기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당신이 불을 피운 연기를 보고 온 겁니다"
당장은 모든 것을 다 잃은 것 같아도 이 순간의 고난도 날 살리시는 하나님의 계획일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 믿음으로 살아갈 때 범사에 감사가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생각하여 보라 그들이 당한 고난이 결국엔 축복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일 당할 때 쉽게 부정적으로만 해석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믿음의 눈을 가지고 오히려 감사하며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라고 못 할 수 없듯, 감사도 역시 표현할 줄 알지 못하면 감사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감사를 사랑을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이 있으시길 축원합니다.
누가복음 17장에 예수님은 열 명의 문둥병자를 고쳐 주십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만이 예수님께 와서 감사드립니다.
이때, 예수님이 안타깝게 말씀하십니다.
"열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있느냐" 그리고 감사가 표현 된 사마리아 사람의 감사를 받으시고 그에게 더 큰 축복을 주십니다.
그의 믿음은 감사하는 믿음이었습니다.
"감사를 표현하는 믿음"입니다.
영혼의 품격은 "감사"에서 결정이 납니다.
지금 이대로의 모습에 대해 감사할 줄 알고 감사를 표현할 줄 아는 크리스챤의 삶을 살아가게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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