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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말씀

[송년주일]송년 (욥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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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른곰
댓글 0건 조회 725회 작성일 18-12-28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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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 (욥 1:1-22)

     우리는 오늘 2018년이란 한 토막 시간이 지나가려 하고, 또 새해란 시간의 한 폭이 우리 앞에 다가오려는 바로 이 경계선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에 인간의 무상도 느껴보고, 세월의 허무도, 시간의 연륜과 더불어 육체와 정신의 노쇠를 경험해 보기도 합니다. 우리가 가졌던 시간이 소리 없이 사라져 가고, 그 시간 위에 약속되었던 무수한 삶의 단편들도 함께 흘러가 버렸습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가 가졌던 것을 빼앗긴 심정, 그리고 그 빼앗긴 자의 허탈함을 의식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 허탈한 심정이 우리를 더 초조하게 만들고, 불안을 자극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한 해가 다 가버린 것이 마치 인생의 일생이 다 가버린 것 같은, 인생 황혼의 서글픔까지를 느끼고 있습니다. 만일 오늘 우리가 이렇게 착잡하고 심각한 심정으로 이 연말을 맞이하고, 또 바로 이 마지막 주일이 여러분 인생의 마지막 시간인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면, 이 모든 인생의 서글픔을 안고 오늘을 똑바로 산 바 있는 욥을 찾아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들어보아야 합니다.

     욥은 우리 앞에서 연설을 하는 강사도, 강의를 하는 교사도, 훈화를 주는 선배도 아닙니다. 그는 그에게 주어진 인생을 그대로 살아 그 삶이 그의 말이 되고, 그의 말이 또 그의 삶이 되어 오고 오는 새 세대 모든 환경 속에 사는 이들의 모범이요 앞장을 서고 있는 것입니다. 늙으신 이들은 늙으신 욥을 보아야 합니다. 젊은 청년들은 청년인 욥을 보고 들어야 합니다. 순경에 있는 분은 순경에 있는 욥을 보아야 합니다. 역경에 있는 분은 역경에 선 욥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말을 들어야합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욥이 이 말을 하게 된 경우는 그 상태와는 판이한 경우였습니다. 그는 그가 소유하였던 모든 것, 재물과 자식과 건강까지 다 잃어버린 자리에 앉았습니다. 모든 소유가 순식간에 빼앗겨진 그 자리, 거기서는 분노와 원망의 심정조차도 표현할 길이 없을 그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내가 모든 것을 빼앗겼다고 말하지 않고, 먼저 '주가 주셨으니'하고 감사의 심정을 표시하였습니다. 그는 이 참회의 순간, 이 짧은 말을 통하여 그의 과거의 기억 속을 더듬은 것입니다. 이 말은 한 마디이지만, 이러한 이 말이 포함한 기억은 실로 장구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젊음과 어린 시절을 회상하였습니다. 그는 과거라는 주어진 시간 위에서, 주어진 재물의 풍성함과 자녀들의 다복함과 평화스럽고 아름다웠던 삶의 날들을 회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재물을 없는 자들을 도와주는 일과 그의 자녀들의 칠남 삼녀의 손의 손을 붙잡고 하나님의 재단 앞에 엎드려 예배하던 일들과, 농원과 목장들을 산책하던 기억, 무럭무럭 자라가는 자식들의 모습, 영리하고 단정하여 흠잡을 데 없이 커가는 자녀들의 모습, 어린 시절 자기의 무릎 앞에서 재롱을 떠는 귀엽던 기억, 실로 풍부한 과거의 삶의 전부를 이제 영화에 나오는 파노라마처럼 회상하는 것입니다. 실로 영광스러운 과거였고 그 과거는 오늘 살아서 마음속을 접하고 있는 기억이 되어 있습니다.

     그는 땅에 살아 부하였으되 부함으로 그 재물을 내 것이라 자랑하고 욕심을 부리지 않았으며, 자식이 많아도 그것이 나만의 축복이라 자랑하고 교만치 않았으며, 젊음이 내 것이라 방종하지 않았으니 그는 오늘 바로 이 재난의 자리에나 과거의 그 풍요하던 부귀영화의 자리에나 관계없이, 이 주어지는 것들을 모두 주께서 주셨다는 실로 감사 망극한 심정으로 차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의 것이 없이 일생을 사신 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에게 주어진 것들 때문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지는 것이 아니라, 그 선물들을 주시기까지 자기를 돌아보시는, 마리아의 찬양에 한 구절처럼 '이 천한 계집종을 돌아보사' 하는 돌아보심의 선하심을 감격하고 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셔서 나에게 지혜를 주시고 재물을 주시고 어진 자녀들을 주시고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시는 그 하나님의 긍휼을 여기서 감사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지금 가지고 있거나 잃어버렸거나 관계됨이 없었습니다. 그 선물 자체로서의 기쁨이 아니라, 그 선물을 주셨던 그의 그 마음에 대한 고마움이 감격되었던 것이므로, 그의 감사는 환영의 변천을 초월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지나간 시절, 그 시간 위에 얹혀있던 삶의 단편들이 송년과 더불어 우리 앞에서 사라져 없어져가고 또 빼앗겨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잃어버리는 서글픔 보다, 먼저 그것들을 주셨던 하나님의 마음, 그것들을 내게 주시기까지 하신 고마우신 그의 마음을 감사함이 먼저 앞서야만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어지신 부모님은 주시고, 교육을 받게 하고, 건강을 주시고, 어질고 현숙한 아내를 주시고, 영리하고 착실한 자녀들을 주시고, 행복한 가정을 주셨고, 신앙으로 알게 하시며 주님을 공경케 하셨던, 아무것도 없던 나에게 주신 고마우신 하나님의 마음, 그 마음에 감격하고 감사하는 이 마음이 그들의 모든 불행을 이기는 마음인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오늘의 서글픔과 이 불행을 잊으려고 과거의 행복만을 생각하고 있는 이들이 있고, 이 불생을 의식하지 않으므로 잊어보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의식의 상실은 인간성의 자기 파괴이며, 과거의 행복의 기억만으로는 오늘의 불행을 더욱 격화시키는 요소밖에는 더 되지 않는 것입니다. 주어진 것이 아니고 내 것이라 할 때, 빼앗긴 분노와 모자라는 결핍감은 불행을 더 가중시키는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몸과 더불어 주께서 주셨던 그의 고마운 마음에까지 이르러 오늘의 불행과 서글픔을 보아야 합니다.

"거두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그는 그의 불행을 아주 직접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그의 종의 하나가 가져온 메시지는 수많은 목축 떼와 그의 목자들을 스바 사람, 갈대아 사람들이 끌고 가고, 쳐죽였다고 보고 한 것입니다. 또 다른 종의 메시지는 번개가 쳐서 그의 양떼와 목자들을 죽여 버린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또 다른 종은 광야의 열풍과 광풍이 집을 파괴하고, 그의 열 자녀를 몰살케 하였다는 것입니다. 자연의 피해, 인간들의 의한 피해, 갈대아인 스바인의 피해, 하늘로 번개, 땅에서 폭풍의 피해를 그의 파멸의 원인으로 보고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보고에 대하여 한 마디의 결론을 가졌습니다. "주가 거두어 가셨다"고...

     여기 일시에 불행을 당한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말할 수 없는 불행을 안고는 원망과 분노에 차 있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죽음을 가지고 의사를 원망합니다. 재물의 피해를 가지고 남을 원망합니다. 불행보다 더 큰 불행은 남을 원망하고 가지는 스스로의 고통이며 그 고통은 불행보다도 더 큰 것입니다. 자기의 불행을 남에게까지 파급시키고 있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스스로 남과 격리시키고 있습니다. 자기의 고립을 스스로 자처하고 있습니다. 원망이라는 고독의 감옥을 쌓고 스스로 그 속에 갇혀 저주하고 있습니다. 벼락을 저주하고 광풍을 원망하고 스바인과 갈대아인을 저주하고 원망하면서 모든 불행은 남 때문에 온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기 욥은 주의 주셨음을 아는 마음으로 '주가 거두어 가셨다'고 직접적인 결론을 얻게 한 것입니다.

     주가 거두어 가신 것입니다. 키에르케고르는 '그는 자기의 것을 거두어 가시는 주님의 뒷모습을 보는고로 그는 절망을 몰랐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오히려 주셨던 것을 거두어 가시는 모습을 보고 아는 까닭에 주님의 참 모습을 더욱 깊이 알게 된 것이며, 세상을 이기는 힘이 생겨진 것입니다. 주는 우리 앞에서 우리의 세상을 거두어 가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세상을 극복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또한 세상을 이기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가 거두어 가신 것은 우리 앞에서 우리 영혼에 거침이 되는 세상을 거두어 가신 것이며, 참되신 당신의 생명과 그 기쁨, 그 영원한 감사를 거두어 가신 것은 아닙니다. 주가 우리에게서 거두어 가신 것은 잠정적인 가치요, 시간적인 단편이며, 물질적인 것들이요, 결코 영원한 기쁨이며 참된 생명이며 영원한 가치며 보배를 포함하는 진리들은 아닌 것입니다. 주님께서 거두어 가신 것은 교과서들이요, 그 속에 담긴 지식 자체는 아닙니다.

     주께서 거두어 가신 것은 체육기구들이고, 그로 인하여 얻은 바 있는 건강 자체는 아닙니다. 그것들은 오히려 거두어져야 하는 의족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감사는, 주신 이 때의 마음도, 거두어 가시는 불행의 때의 마음도 한결같은 것이었습니다. 때의 변천 환경의 상이(相異)가 그의 감사를 단절시키거나 변하지는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인간과 자연의 하나님이 모두 긍휼의 대상이 될 수가 있었으며, 그 불행을 가져다주는 모든 환경이 오히려 창조자의 고마운 사신처럼 친근하게 느껴지고 다정함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너는 내게 대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오직 주님뿐 주님만이 거두어 가실 수 있다"고 확신하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욥은 세상을 이겼고 바위처럼 우뚝 서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리에까지 나아간 것입니다. 세상에는 모든 불행과 고난을 영웅적으로 쓰려하고, 바로 승리한 그 순간에 실패하여 넘어지는 자가 있습니다. 주는 무자비한 폭군이 아닙니다. 그의 사랑이 변함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는 그의 것을 주시고 또 거두어 가시는 까닭은 그의 뜻을 이루어, 썩어질 우리의 속에 썩지 아니할 생명을 주시려고 하심이며, 없어질 세상 영화 대신 하나의 영원하신 영화를 주시려는 크신 경륜이심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오직 그의 있음이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심을 깊이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더 깊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식하였고, 그의 영원하신 경륜에 감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참된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때는 역경을 넘어선 그 자리에서입니다. 참된 사랑은 참된 비애 속에서만 순수하게 알려지는 것입니다. 참된 생명은 죽음의 사투 속에서만 경험되는 것입니다. 참된 영원은 시간의 단절 속에서만 의식되고 자각되는 진리입니다. 여기 이 자리에서 깨달아지는 하나님의 사랑, 거기서는 오직 그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밖에 다른 길을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의 절대를 찬양하고, 그의 무변을 찬양하고, 그의 사랑을 찬양하고, 그의 경륜의 광대함을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분의 안에서 나서, 그분의 안에서 자라고, 그분의 안에서 살고, 그분의 안에서 그분에게로 돌아가는, 그러므로 세세에 영광은 오직 그분만이 홀로 받으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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