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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 예배. 제목: 나를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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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08회 작성일 18-12-3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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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8. 564. 565. 570. 569. 552. 송구영신 예배. 제목: 나를 아는가?

교독문: 93.새해(1). 말씀: 고전 10:1-11. 찬송가: 550.시온에 영광이 빛나는 아침.

이런 민담을 들어보셨습니까? 거울에 얽힌 얘기입니다. 시골에 사는 선비 하나가 한양에 과거를 보러갔습니다. 과거시험을 치른 후에 한양 장터를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광물점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참 신기한 것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손거울입니다. 값이 비쌌지만 시골 촌구석에서 고생하는 아내에게는 안성맞춤의 선물이 될 것 같았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내를 찾았으나 김을 매러 갔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잘 볼 수 있는 벽에 못을 박고 거울을 걸어 놓았습니다. 아내가 얼른 보고 기뻐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선비가 외출을 한 사이에 아내가 집에 돌아와 보니 짐 보따리는 있는데 남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방을 둘러보니 벽에 이상하게 반짝 거리는 것이 걸려 있었습니다. 일어나서 들여다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 안에 예쁜 색시 하나가 들어있었습니다. 한양에 과거를 보러갔던 남편이 과거에는 관심이 없었고 예쁜 색시 하나를 데려온 것이 분명했습니다. 가슴이 떨렸습니다. 분하고 억울했습니다. 남편 뒷바라지 하느라 온갖 고생 다했는데 남편은 자기를 배신하고 다른 색시를 데려왔으니 지난 세월이 너무 억울했습니다. 방바닥에 주저앉아 통곡을 합니다.

그때 시어머니가 들어와 울고 있는 며느리의 얘기를 듣고 놀랐습니다. 어떤 색시를 데려왔나 싶어 거울 안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예쁜 색시는커녕 바짝 늙은 할멈이 있었습니다. 아니 이 녀석이 할망구하고 바람이 났다니! 아들이 한심했습니다. 첩을 데려오려면 젊고 예쁜 색시를 데려와야지 다 늙은 여자를 데려다 어디에 쓰려고 하나? 한심한 아들을 둔 시어머니가 속이 상해 퍼질러 앉아 웁니다. 집안에서 통곡소리가 난다는 얘기를 듣고 들에 있던 시아버지가 헐레벌떡 들어왔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시아버지가 확인도 할 겸 거울을 들여다봤습니다. 거울 안을 들여다본 시아버지가 갑자기 넙죽이 절을 하더니 “아버님, 안녕하셨습니까?” 인사를 여쭙더랍니다. 거울 속의 자기 모습이 돌아가신 자기 아버지와 꼭 닮았던 모양입니다. 거울이 없던 시대에 회자된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만일 한 번도 자기 얼굴을 보지 못했던 사람이 처음으로 거울을 통해서 자기 얼굴을 보았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물론 처음에는 모두 놀랄 것입니다. 자기가 상상했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어떤 이는야,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잘 생겼구나.”라고 흡족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아니, 이게 나야? 실망이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 80이 다된 할아버지가 ‘귀소본능’이 일어나 고향을 찾아갔습니다. 오래 전에 뛰놀던 냇가나 산을 바라보며 감회가 컸습니다. 방학 때라 다니던 초등학교 교실에 가서 의자에 앉아볼 수 있었습니다. 70여 년 전의 일들이 새록새록 생각났습니다. 학교를 나와 논둑길을 걷는데 앞에서 할머니 하나가 손주를 데리고 오고 있었습니다. 이가 다 빠지고 주름으로 가득 찬 얼굴이지만 초등학교 동창생이 틀림없었습니다. “할머니, 70년 전에 이 학교에 다니지 않으셨어요?” “네. 이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때 이동철이라는 학생을 기억하세요?” “글쎄요,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당신처럼 대머리 벗어진 할아범은 없었수다.”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토라진 음성을 내뱉고는 가더랍니다. 늙은 할아범만 보였지 자신의 늙은 모습은 보지 못하는 할머니였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자신을 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과거의 나는 누구였나? 나의 뿌리는 어디서 시작되었나? 현재의 나는 누구인가? 앞으로의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내가 나를 알아야 사람답게 살 수 있습니다. 내가 나를 모르면 조롱거리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Know yourself)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나를 볼 수가 없습니다. 내 눈으로 내 얼굴이 안보입니다. 나를 내 능력이나 내 경험이나 내 지식으로는 알 수가 없습니다. 거울이 있어야 내가 내 얼굴을 볼 수 있듯이 나 아닌 다른 것을 이용해야만 나를 볼 수도 있고, 알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처음 창조될 때는 자신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죄로 말미암아 자기를 볼 수 있는 눈이 망가졌습니다. 판단능력이 사라졌습니다. 죄로 타락한 인간에게 맨 먼저 찾아온 재앙이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나를 모르니 나는 더욱 깊은 죄의 수렁에 빠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추함을 알지 못합니다. 느끼지 못합니다. 이것이 인간 타락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볼 수 있는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은 나 자신을 보게 합니다. 성경은 나 자신을 알고 깨닫게 하는 인생거울입니다. 성경을 펼쳐 읽으면 내가 보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오늘 봉독한 고전 10:1-11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하는 말씀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눈도 열어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과 시작을 하는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며 이 말씀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그리스도인들의 거울은 성경 말씀이며, 성령님의 인도하시는 기도다.”

사도 바울은 오늘의 말씀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고전 10:1)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이 말에서 모세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을 거울 삼아 지금 시대도 같으니 너희를 볼 수 있는 거울이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을 향하여 “너희가 누구인지 너희들의 조상 때부터 내가 알고 있다”고 말함으로 모세오경에 기록된 말씀을 통해 너희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렇습니다.

1. 우리가 자신을 알려면 첫째로 뿌리를 알아야 합니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그 뿌리를 모르면 오늘의 내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누구입니까?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1절 후반.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 10:1b-4a)

애굽에서 430년 동안이나 종살이하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종 모세에 의해 탈출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되었습니다. 광야를 지날 때, 낮에는 구름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인도했습니다. 홍해가 가로 막을 때는 바다를 갈라서 육지처럼 지나가게 했습니다. 하늘에서는 만나를 내려주시고 목이 마를 때는 반석에서 샘물이 솟게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3장과 17장에 이 역사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으로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서 풍성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제 갈 길로 달려감으로 하나님을 슬프게 했습니다. 바울은 5절에서 이렇게 지적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고전 10:5)

● 어떻게 그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슬프게 했느냐? (6절 초, 11절초에 본보기로 거울을 봅니다.)

① 악을 즐겨 행했습니다(6절) ② 우상을 숭배했습니다(7절) ③ 음행을 저질렀습니다(8절)

④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물려 죽었습니다(9절) ⑤ 원망을 했습니다(10절)

이렇게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광야에서 멸망한 자들을 성경에 기록한 까닭은 모든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어 깨우치게 하는데 있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의 이 말씀을 읽노라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같이 성경은 우리의 뿌리를 알게 하여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합니다.

2. 셋째로 오늘 2018년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내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난 한 해를 뒤돌아보면서 세월과 함께 떠나보내야 할 것들을 떼어내는 일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내가 누구인지를 보았으면 단장을 해야 합니다. 잘 한 것이 무엇이고,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해서 잘못한 것이 있다면 털어버려야 합니다. 성경에 비춰보면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게 됩니다. 깨달았으면 버려야 합니다. 수정해야 합니다.

악을 즐겨 행 했습니까? 우상을 숭배했습니까? 음행을 저질렀습니까?

주님을 시험했습니까? 원망을 일삼았습니까?

한 해를 떠나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즈음에 영적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 행위를 버려야 합니다. 버릴 때는 용단이 필요합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버릴 때 용감한 사람입니다. 우물쭈물하면 다시 오염되고 맙니다.

성경을 통해서 내가 누구인지를 깨달으면 맨 먼저 찾아드는 마음이 있습니다. “감사”입니다. 광야를 건너는 이스라엘이 구름아래 있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났으며 신령한 음식과 음료를 먹었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돌보시지 않으셨다면 하루도 살 수 없었음을 깨닫게 하는 말씀입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받았기에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홍해의 위기 앞에서 바다를 육지같이 건너게 하시는 하나님의 기적의 은총이 있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릴 때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셨습니다. 목이 마를 때 바위를 쳐서 생수를 솟아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받은 은혜는 말로 형언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처음부터 만대를 불러내었느냐 나 여호와라 처음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사 41:4)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섰을 때 “나는 죄인 중의 괴수”였는데도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의 ‘’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고, 볼 수 없었을 것이고, 행 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믿음을 주시지 않았다면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깨닫고 이렇게 감격하였습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of whom I am the worst) (딤전 1:15)

그러므로 “오늘의 나”된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이제 한 해를 넘어가면서 오늘의 내가 여기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달았으니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새해를 맞이해야 합니다. 그래야 새해에는 더욱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따라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깨우치게 하시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이제 2019년도를 시작하면서 꼭, 필히, 반드시 얻어야 하고 지켜야 할 것이 있습니다.

표어:(시 29:11)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말씀: 빌 3:1-16.

2019년도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많은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반드시 버려야 할 것과 얻어야 할 것, 잃어버려야 할 것과 발견되어야 할 것, 잊어버려야 할 것과 기억하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오늘 새해 첫날 빌립보서 말씀에서는 특히 우리가 버려야 할 것과 얻어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이며, 얻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본문을 통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버려야

사도 바울빌립보 교인들에게 물질주의자들과 세속주의자들의 침투로 말미암아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게 될 때 이 거짓 선지자들 곧 물질 주의자들형식 주의자들세속 주의자들을 책망하시면서 그런 것을 자랑하거나 그런 것으로 구원을 얻는다면 자기에게도 많이 있으나 이 모든 것을 버림은 신령한 것을 얻기 위함이라고 하여 버릴 것이 무엇이며, 반드시 얻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육으로 자랑하고 싶은 것과 의지하는 모든 것을 버립니다.

사도 바울은 모두 오물, 배설물로 버린다고 말합니다. 2018년도와 함께 묵은 때를 다 버립니다.

Ⅱ. 얻어야 할 것

1.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얻고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이상에 모든 것을 버리는 목적입니다.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입니다. 다 버려도 예수 그리스도를 얻고야 말아야 할 중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 성가에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로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도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님 밖에는 없네. 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본문에는 부활에 참예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이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것은 아무 것도 우리에게 생명이 될 수 없으며 부활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온 천하를 얻었다 한들 생명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다고 하겠느냐 그러니 차라리 온 천하를 잃어도 생명을 얻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온갖 것 다 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소유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다. 주님 말씀하시기를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함같이 한 사람이 재물과 하나님을 세상과 주님을 명예나 권세와 주님을 섬길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 가정에 중심에 심장에 예수를 소중히 모시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 믿음을 얻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유익과 영광을 믿음으로 따라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한다는 말은 순교적 신앙을 갖는다는 말입니다. 이 순교적 신앙을 얻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모든 것을 다 내어버리는 이유는 이 순교적 신앙을 얻기 위함입니다. 이 신앙을 얻고 다른 것을 버려야 합니다. 이 믿음은

1) 구원을 얻는 유일의 길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2)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히 12:6)

3) 믿음은 무한한 가능성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막 9:23)

4) 믿음은 세상을 이기는 힘입니다.(요일 5:4)

5) 믿음은 순교하게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최대의 상급입니다. 이것은 첫째 부활의 영광입니다. 이 믿음을 얻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믿음에 방해를 받지 않아야 합니다.

3. 의를 얻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 아버지의 공의를 깨닫고 따라야겠습니다.

이의는 하나님께 난 의라 하였습니다. 율법에서 난 의 즉, 자기 공로나 의로 된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명예나 지위나 권세나 재물도 사거나 얻거나 만들거나 취할 수는 없는 의인 것입니다. <행 8:20>시몬이란 사람이 돈으로 은혜를 살려고 할 때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직 이 모든 것을 버리고 반드시 하나님의 의를 얻어야 할 것입니다. 이의는 믿음으로 또 얻어지는 것입니다. 이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요 죽으심이요 부활입니다. 이의를 얻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마 5:20). 우리는 온 천하를 다 잃고라도 이의를 얻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예수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믿음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의를 얻기 위하여 이 세상 것, 전에 자기에게 유익하던 것, 육체의 모든 자랑, 가문 학식 지위 권세 재물 심지어 자기 생명까지도 미워하고 그것을 버렸습니다.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무익한 것으로 알았습니다. 해 되는 것으로 알고 버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를 얻으려고 믿음을 얻으려고 의를 얻으려고 그리스도를 향하여 온전한 믿음 곧 순교의 길을 향하여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는 그 날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는 그 영광을 바라보고 날마다 달음질하였습니다. 계속 노력하였습니다. 우리도 전에 유익하던 것 귀하게 여기던 것 모두 다 해롭고 무익하고 영원하지 못한 것 배설물 같은 것을 다 내어버리고 오직 하늘로부터 오는 신령한 은혜와 은사를 간구하고 받아 누려서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 범사가 잘되길 원하노라 라고 축복하는 사도 바울의 심정을 우리가 받아 누려야겠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것들을 결심했다면 인내로 승리해야겠습니다.

결심에는 꾸준함이 필요합니다. 바보는 결심만 합니다. 그러나 인내가 없습니다. 쉽게 포기합니다. 탈무드에는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내하는 자의 편이다.> 영국의 정치가 불크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절망하지 말라. 만일 절망하더라도 일하면서 절망하라. 처음에는 성공하지 못 하였더라도 다시 시도하고 다시 도전하라.> 미국의 16대 대통령이 된 에브라함 링컨의 전기를 간단하게 정리하여 보고 놀랐습니다. 1860년 미국의 제 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까지 엄청난 사업 실패와 의회의원에 낙선합니다. 그러나 실패하고 낙심하여 그대로 있으면 실패자가 되지만, 그는 일어나서 또 움직여 자신의 의지와 인내를 보인다면? 어느 누구도 그를 실패자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죠지 와싱톤 미국 초대 대통령도 9번의 전쟁을 치루 얻는데 6번 실패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시 일어나 싸울 때 승리하였습니다.

● 솔로몬의 의인과 악인의 정의는 독특합니다. 솔로몬은 말했습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번 넘어질 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려지느니라.>(잠 24;16)

● 사랑하는 선교초대교회 모든 성도님들은 2019년 오늘 지금 이 순간부터 의인의 삶을 누리시고 한해를 주님의 마음과 사랑으로 충만하여 승리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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