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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주일]참 열매 맺는 비결/요한복음 15: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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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른곰
댓글 0건 조회 542회 작성일 19-01-05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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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감사예배. 제목: 참 열매 맺는 비결

교독문: 말씀: 요 15:1-10. 찬송가:

여러분 어떤 비결을 배우시길 원하십니까? “동안으로 혹은 예뻐지는 비결”, “돈 버는 비결”, “공부 잘하는 비결” 등, 우리는 여러 가지 비결을 배우기를 원합니다. 저는 새해를 시작하며 여러분들에게 이 모든 것들을 해결하는 한 가지 비결을 알려 드리려고 합니다.

● 여러분 배우고 싶으십니까? 예. 그것은 바로 “열매 맺는 삶으로 사는 것이 비결”입니다.

먼저 목표가 정확해야 합니다. 아름답게 꾸미는 것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사랑 할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아님 자신의 만족이나 즐거움을 위해서? 그냥 남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서? 그런데 정말 누구를 위해서 인가요? 바로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결산하실 때와 마지막 심판 때에 우리가 맺은 열매로 우리를 평가하신다는 것을 잘 알고 그렇게 배웠습니다. 육의 열매, 건강과 자손, 혼의 열매 지식과 자녀들의 가르침과 훈련, 영의 열매 성품과 전도를 통한 영혼 구원의 열매로 구분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것도 다 좋지만 하나님께서 셈하실 때 통과하기 위해 우리가 좋은 열매를 맺는 데에 우리 인생의 목표를 두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러면 구원 받은 우리 성도가 어떻게 하면 극상품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제가 오늘 말씀을 통해 그 비결을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말씀을 잘 듣고 실천해서 풍성한 열매를 맺는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첫째, 하나님은 농부시요,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이십니다. (1-3)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부지런한 농부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무가 좋아야 합니다. 농부도 좋고 나무도 좋으면 좋은 열매 맺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닐까요 ? 1절을 보겠습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농부는 포도원을 건설하시고 좋은 열매 맺기 위해 봄부터 열심히 일합니다. 농부이신 하나님의 유일한 소원은 우리가 열매 맺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열매 맺는 삶을 살도록 모든 것을 준비하시고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계십니다.

2절을 보겠습니다.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봄에 농부는 포도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 잔가지를 쳐줍니다. 이렇게 잔가지를 쳐주는 작업을 전지라고 합니다. 농부가 이렇게 잔가지들을 쳐주지 않으면 잔가지들이 양분을 뺏어가기 때문에 포도나무 가지에서 좋은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 숲에는 자작나무가 많이 있습니다. 저희 교회 홍천에 기도원 산에도 이 자작나무가 좀 있습니다. 이 나무에 차가버섯이나 발굽버섯들이 자라는데 바로 이 버섯 때문에 큰 자작나무들이 넘어지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버섯들이 얼마나 강하게 달라붙어서 양분들을 다 빨아먹는지 그 큰 나무의 속이 텅 비게 되고 결국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불필요한 가지는 양분을 뺏어가기 때문에 봄에 농부는 반드시 전지를 해줍니다.

3절을 보시겠습니다.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 졌으니.” 이 전지작업은 바로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삶을 사는 것이라는 것을 나타내줍니다. 우리 속에는 우리의 열매 맺는 것을 방해하는 여러 가지 독버섯 같은 것들이 붙어있습니다. 영적생명을 좀 먹고 있는 기생충들 때문에 우리가 충만한 삶을 살지 못합니다. 음란과 시기, 질투, 탐심, 거짓, 분 냄과 안일 등의 가지들이 우리의 영적 성장을 방해합니다. 이런 나쁜 영들이 우리가 열매 맺을 모든 기운을 뺏어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영적 독버섯들생명의 말씀을 보내셔서 제거하십니다.

시편 107편 20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서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 도다.” 하나님은 우리를 고치시기 위해 말씀을 보내십니다. 설교를 들을 때,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영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보내실 때, 우리가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삶을 살면 포도나무에 전지를 한 것처럼 우리는 깨끗한 나무와 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말씀에 깨어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양심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성령님께서 복음을 주시거나 죄를 지적하실 때, 곧 바로 회개해야 우리는 열매 맺을 수 있는 깨끗한 가지가 될 줄 믿습니다.

2. 둘째, «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

많은 신자들은 노력에 비해 열매가 부족합니다. 해마다 흉작입니다. 그래서 농부이신 하나님 아버지는 늘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 우리의 노력에 비해 열매가 없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복음을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열매 맺는 비결을 잘 몰라서 입니다. 내 모습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것. “이 부분이 좀 부족하네. 바꾸어 가야지. 좀 더 노력해야지..” 하는 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주 “좀 더 노력하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노력으로 열매 맺는 것이 아님을 깨달으시길 축원합니다.

우리는 죄인 즉 죄 성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아무리 닦는다고 해서 또 세상에서 죄가 묻고, 더러움이 묻고, 물로 닦아도 육은 깨끗해질지 몰라도 영적으로는 하얗게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13장 2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이 말씀은 우리의 전적 타락을 잘 알려주는 대표적인 말씀입니다. 흑인이 아무리 깨끗이 씻는다고 해서 그 피부를 희게 할 수 없고,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없듯이 우리 인간도 우리 노력으로 선하게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장 22절은 죄에 대한 우리의 무능력을 이렇게 선포합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네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네가 많은 비누를 쓸지라도 네 죄악이 내 앞에 그대로 있으리니.» 아무리 좋은 비누를 쓸지라도 우리는 우리 스스로 깨끗해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게 우리 육입니다. 육에는 죽음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완전한 타락했고, 우리 육은 여전히 육이고, 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잘 모릅니다. 그래서 많은 애씁이 있습니다. 노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절망입니다.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오늘 본문 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스스로의 힘으로 애쓰고 노력하는 신앙에는 열매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를 악물고 애쓴다고 해서 사랑, 자비, 평화가 나오지 않습니다. 자유함과 해방과 행복이 없습니다. 거기서 나오는 것은 분노와 판단과 정죄와 원망뿐입니다.

아마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죄를 이길 수 있었다면, 예수님께서 오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괜찮은 모습이라면, 개선의 여지가 있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해결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내가 최선을 다했으나 그 이상은 나는 할 수 없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 이상의 모든 것을 다 해주셨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은혜인 것입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시기 때문에 은혜인 것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이 복음의 진리를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영접하지 않습니다. 깨닫게 되면 포기하여 아주 자포 자기하여 살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달이 스스로 빛을 낼 수 없듯이 우리 스스로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생명이 아니고, 진리가 아니고, 길이 아닙니다. 그런데 자기가 하나님인줄로 착각하고 하나님이 되려고 합니다. 내가 길. 진리. 생명이 되려고 하니 얼마나 힘이 듭니까? 이것이 문제의 근원인 것입니다. 우리가 넘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사람들은 내가 그래도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적으로 주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자기 재능으로 자기 시간으로 자기 노력으로 무엇을 이루려고 노력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분들을 위해 시련을 허락하십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각 개인을 다루시는 방법은 지극히 달라서 신비롭고 독특하고 다양합니다. 하나님의 시련의 목적은 연단을 통해 우리를 강하게 만드시는 것도 있겠지만 그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린아이와 같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부족한 죄인이며, 우리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고 주님을 의지하여 겸손히 낮아지라는 것입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는 예수님 말씀이 진리임을 깨닫고, 예수님만 의지하는 자리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진리를 깊이 오직 믿음으로 주께서 도우실 것을 알고 깨달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3. 셋째, 열매 맺는 유일한 비결은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 다같이 5절 말씀을 다시 읽겠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이 말씀은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할 때 자연스럽게 열매가 맺힌다는 것입니다. 가지의 역할은 붙어있는 것입니다. 바로 ‘연결’입니다. 우리는 생명이 아니기 때문에 생명과 연결 되어야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은혜이며, 열매 맺는 비결인 것입니다.

내게 아름다운 부분이 있다면 그건 내가 아니고, 생명 되신 주님이십니다. 나에게서 부족한 부분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바로 주님을 간구하고 열심히 극복하며 믿음으로 열매 맺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잘 사라지지 않고, 나는 완전히 바뀌지 않습니다. 욕망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바뀌지 않습니다. 욱하는 성질. 조급한 마음 사라지지 않습니다. 거짓도. 시기, 질투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나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도와 간구로 주님을 바라며 열매 맺는 것입니다. 잠잠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죽은 사람처럼 겸손히 낮아져 죽는 것입니다.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께 붙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십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생활로 살아 있는 주님과의 소통이요, 연결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넘어지면 크게 좌절하고 낙심합니다. 그것이 원래 우리 모습인데.. 그리고 넘어진 것이 한두 번, 아닌데.. 마치 자신이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 것처럼 실망을 합니다. 우리는 악해서, 넘어지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아니 그것은 당연합니다. “넘어지고 더럽고 악하고...” 이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그것이 더 육을 강하게 하는 것입니다.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보이십니까? 바로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과 연결이 끊어진 것. 주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려운 환경, 바람과 파도 때문에 주님을 놓친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내가 넘어진 것은 좌절할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내가 주님을 의지하지 않은 것입니다. 주님안에 거하지 않은 것이 문제인 것이지요.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결단하는 것은 아직 승리의 원리를 모르는 것입니다. “아뿔싸. 내가 주를 놓쳤구나.” “내가 주님 안에 거하지 않았구나.” 이렇게 말해야 옳은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아무도 거룩하지 않습니다. “내가 왜 그랬을까.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하고 자기를 개선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육은 절대 개선되지 않습니다. 오직 성령이 임하셔야 합니다. 거듭남의 비밀이 바로 첫 열매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시작을 보이십니다.

물가에 심기운 나무. 그 나무가 어떤 종류의 나무이든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그 나무가 물가에 심겼느냐, 시냇물과 연결되었느냐. 뿌리가 물을 빨아들이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바로 생명의 근원과의 연결이 중요한 것이지요. 연결 바로 이것이 신앙의 기본 원리입니다. 하루 24시간 주를 붙잡는 것. 이것이 신앙의 기초입니다. “나의 어떠함이 아니라 주님을 붙드는 것이 복음입니다. 주의 사랑과 관용과 자비를, 주의 은혜를 계속 붙드는 것이 복음입니다.” 모든 열매가 주님께 있다는 것을 알면, 나의 더러움, 부족함, 못난 것에 좌절하지 않습니다.

대신 무한한 풍성함이 있는 그분께로 자꾸 나아가게 됩니다. 사람들은 실패를 두려워하고 괴로워하는데, 사실 실패를 통해서는 더 주를 바라보게 되고, 성공을 통해서는 오히려 주를 잃게 됩니다. 성공, 좋은 성품, 물질적인 필요..그런 것들이 오히려 갈망을 잃게 합니다. 성질이 더럽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분들. 이런 분들은 주님을 바라보는 데에 유리합니다. 게으른 사람들, 의지가 약해서 작심 3일이 아니라 하루도 안가는 분들. 자기 안에 의지할 강건함이 없는 분들. 이런 분들이 복음의 은혜를 누리는 데에 유리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이유와 갈망이 더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간절한 갈망을 가지고 주님과 연결되면 우리는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주님과 늘 연결된 삶을 살 수 있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넷째,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 가만히 거하라고 하면 많이 당황해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래도 뭔가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자문하는 분도 있습니다. 또 정말로 아무것도 안하고 영적으로 안일해지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 안에 지속적으로 거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7절을 보시겠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이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말은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는 삶입니다.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는 삶이란 우리가 말씀을 늘 묵상하고,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삶입니다. 9절을 보십시요.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신 사랑으로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이 사랑을 늘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늘 기억하는 것이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결국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예수님 말씀과 사랑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둘은 하나입니다. 10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예수님은 예수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임을 알려주십니다. 결국 열매 맺는 삶을 한마다로 표현한다면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예수님의 말씀에 늘 붙어 있은 삶입니다. 말씀에 순종함으로 예수님과 늘 연결되어 있는 삶이 바로 풍성한 열매 맺는 비결임을 깨달으시기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러면 예수님 말씀에 순종해야합니다. 사랑과 순종은 연결되어 있거든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분의 말씀에 불순종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 거한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삶을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해에는 예수님 말씀을 생명보다 더 소중히 여기고 말씀 묵상에 전념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순종하기 어려웠던 말씀을 올해는 꼭 순종함으로 예수님을 더욱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농부이신 하나님은 지금도 열심히 일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이십니다. 우리가 24시간 그분께 붙어있기만 하면 좋은 열매 맺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열매 맺는 비결은 연결에 있음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올 한해 예수님 말씀에 순종함으로 예수님 사랑 안에, 말씀 안에 거함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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