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전도)주일 (2월 17일)]아주 특별한 만남(눅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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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주일(2019.2.17) 제목: 아주 특별한 만남
교독문: 110. 선교주일. 말씀: (눅 15:3-7) 찬송가:
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비유로 이르시되
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선한 목자’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악한 목자’나 ‘나쁜 목자’가 아니라 ‘삯꾼 목자’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요 10:11-12.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선한 목자는 위험할 때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지만, 삯꾼 목자는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저 살려고 양을 버리고 달아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삯꾼 목자는 누구일까요?
예수님 당시 삯꾼 목자가 많았습니다. 보통 한 사람의 목자가 감당할 수 있는 양의 숫자는 300마리이기에 많은 양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목자의 도움이 필요해서 삯을 주고 양을 맡기는데, 그 맡겨서 일을 맡은 사람을 ‘삯꾼 목자’라고 합니다. 삯을 위하여 일하는 목자인 샘입니다.
이 삯꾼 목자는 무조건 하고 엉터리 목자는 아닙니다. 다만 내 양이 아니기 때문에 주인 목자와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광야의 환경이 워낙 척박하고 황량하다 보니 양 주인은 삯꾼에게 양을 맡길 때 대략 10%의 손실, 즉 양이 100마리면 10마리 정도는 잃을 각오를 해야 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삯꾼 목자는 허약해서 쓰러지는 양을 애써 돌보거나 소생시키려 할 필요도 없거니와 길을 잃은 양을 찾아 헤매거나 양을 공격하는 이리나 사자 같은 사나운 맹수와 맞설 필요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선한 목자는 삯꾼이 아니기에 한 마리만 아파도 내가 아픈 것처럼 가슴이 아프고, 한 마리만 길을 잃어도 목숨을 걸고 찾아 헤매고, 사나운 짐승이 달려들면 몽둥이를 들고 생명을 걸고 싸운다. 왜? 남의 양이 아니라 바로 내 양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바리새인 서기관들을 나쁜 용어로 사용하지만 실제로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이나 제사장이 다 타락한 것은 아닌데 전체를 말하듯이 말하게 된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목자가 양의 숫자를 세어보니 100마리여야 하는데 99마리밖에 없었습니다.
한 마리는 도대체 어디 간 것일까요?
바로 이 순간에 선한 목자와 삯꾼 목자가 드러납니다. 그 목자가 삯꾼이라면 아마 양을 찾지 않을 것입니다. 아직 아홉 마리까지는 더 잃어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목자가 선한 목자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오늘 본문에 선한 목자는 잃은 양 한 마리를 위해 99마리는 문제 안 생기게 들에 잘 놔두고, 잃은 한 마리를 찾아 나섰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이 자세히 안 나왔지만 목자는 틀림없이 양을 꽤 오랫동안 고생하며 찾아 헤맨 것이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4절에 “찾아내기까지” 다녔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찾은 후에 목자는 너무 기뻐서 노래 부르며 춤을 덩실덩실 추며 그 양 한 마리를 어깨에 메고 돌아왔다.(5절)고 말하고 있습니다. 너무 고생하고 찾았기에 이렇게 기쁘고 귀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온통 잃은 것을 되찾은 기쁨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가 백 마리 중에서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는 비유이고,
두 번째가 8절부터 나오는 열 드라크마 중에서 잃은 한 드라크마를 찾는 비유이며,
마지막 세 번째가 11절부터 나오는 그 유명한 “탕자의 비유” 즉 잃어버린 둘째 아들을 되찾은 비유입니다.
그런데 왜 누가복음 15장에는 이렇게 잃었다가 찾은 비유가 많이 나올까요?
당시 유난히도 예수님을 잘 따른 사람들이 세리와 창기 같은 죄인들이었는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그들을 경멸했기에 예수님이 세리와 창기들과 함께 하실 때 “왜 예수는 죄인과 함께 하는가?”하고 수군거렸고, 그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고 어리석은 그들을 깨우치기 위해 예수님은 세 가지 비유를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1. 탕자의 비유에서 잃어버렸다가 되찾은 탕자는 세리와 죄인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반면 “왜 저 탕자 놈만 그렇게 두둔하고 잔치까지 베풀어 주냐?”고 투덜거리는 맏아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입니다. 아버지에겐 집에 잘 있으면서 잘 먹고 잘 사는 맏아들도 귀하지만 집을 나가 허랑방탕하며 다 탕진하고 돌아온 저 둘째 아들도 똑같이 귀한 것입니다.
2. 오늘 잃은 양 한 마리 비유에서 선한 목자는 예수님 자신이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은 삯꾼 목자인 것입니다. 나는 목사(牧師)입니다. 즉 주께서 맡기신 양을 치는 목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선한 목자이시고, 그분이 맡기신 양을 맡은 삯꾼 목사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삯만을 위해서 일하는 목자가 아닌, 선한 목자의 뜻을 따라 섬기는 선한 목자가 되고, 물질과 이익만을 따르는 목자가 되지 않기 위해 늘 기도하려고 합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양의 영혼을 찾고 숫자를 셉니다. 그런데 이렇게 세다가 한 마리라도 없어진 것을 발견하면 주님 가슴이 얼마나 아프실까? 생각이 들어 긴장합니다. 그래서 밤낮으로 기도하면서 아버지의 뜻과 양들의 마음을 찾는 것입니다. 혹 몸이 아프거나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 못 나오는 분이 계시면 주님의 마음은 참 아프실 것입니다. 그래서 빨리 회복되고, 해결되어 다시 교회 나오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더욱 양을 섬겨야 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이며, 목사들은 모두 삯꾼 목자입니다. 시작을 죄인과 삯꾼 목사로 시작되어야 참 의인과 선한 목자가 보이게 됩니다.
(눅 10:7)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딤전 5:18)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요 21: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부목사, 장로, 권사, 권찰, 주일학교 부장도 다 목자입니다.
가정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도 똑같은 책임을 가진 목자입니다.
여러분도 영혼의 숫자와 잃은 양의 숫자를 세어야 합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마음, 하나님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양 한 마리를 잃으면 가슴이 찢어져야 당연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내 곁에 있어야할 성도, 가족이 어디에 있는가? 어떤 이유에서든지 양이 사라지고, 그 양이 어디로 갔는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우리 선교초대교회가 목회자뿐 아니라, 모든 직분 자들과 지도자와 모든 성도가 한 마음으로 주님의 선한 목자의 마음을 가진 교회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길 잃은 양, 사라진 양 한 마리를 목사뿐 아니라, 온 성도가 가슴 아파하며 “찾아낼 때까지” 찾아나서는 교회, 그러다가 그 길 잃은 양이 돌아오면 잔치를 베풀며 뛸 듯이 기뻐할 줄 아는 교회! 이런 교회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 성장 학이나 전도 학 이론을 가지고 전도해서 들어온 성도들 중에 10%는 뒷문으로 빠져나가기 마련이라고 주장지만 그런 생각은 잃어도 상관없다는 삯꾼 목자의 생각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단 한 명이라도 그는 하나님께 보시기에 천하보다 소중한 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잃은 양을 찾기 위해 특사로 먼저 선택하셔서 우리를 이 땅에, 그리고 가정과 학교와 사업체에 파송하셨습니다.
미국 교회들이 몰락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후손들에게 신앙을 물려주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들 말합니다.
회개하고 능력 받아서 전도하고 그 귀한 영혼들에게 참 신앙을 물려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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