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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 감사합니다 (골 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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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26회 작성일 18-11-09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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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 감사합니다 (골 3:12~17)


< 목회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헤아릴 수 없는 도우심과 풍요로운 결실 앞에 감사 드립니다.
천지에 흐르는 주님의 호흡과 산천을 적시는 주님의 손길…
그 어느 곳에도 하나님의 흔적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추수감사주일 예배를 받으시는 줄 믿습니다.
오늘 드리는 우리의 몸과 마음, 정성과 물질을 받으시옵소서.
감사의 삶으로 더 많은 행복의 열매를 거두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우리의 삶을 주관하심을 깨닫게 하시고
영육간에 치료와 회복의 기쁨을 맛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귀한 시간에도 군대에 나가 있는 젊은이들, 객지에, 외국에 나가 사는 이들,
병상에 누운 환자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저들도 우리와 같이 예배의 자리에 있는 날까지 평안함으로 지켜 주시옵소서.
오늘 교회에 처음 온 사람들로부터 목회자에 이르기까지,
태중의 아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말씀에 은혜 받고 말씀에 사로잡혀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으로 역사 하시고 부족한 종의 목소리에 기름 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오늘은 기둥교회의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 예배드리는 것…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따라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가 입에서, 생활 속에 넘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의 찬양 한 절만 하시겠습니다.

♬ 날 구원하신 주 감사
날 구원하신 주 감사 / 모든 것 주심 감사
지난 추억 인해 감사 / 주 내곁에 계시네
향기로운 봄철에 감사 / 외론 가을날 감사
사라진 눈물도 감사 / 나의 영혼 평안해

감사할 줄 알면 인생을 다 배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박사 학위를 몇 개를 받았다고 해도 감사할 줄 모른다면 아직 온전한 사람은 아닙니다.
'고맙다'는 뜻을 나타내는 마음을 '감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사는 사람은 마땅히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사람이 할 수 있는 당연한 마음입니다.
오늘 우리는 추수감사주일로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감사의 예물을 드리고,
하루 종일 남여 선교회가 준비한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 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께 "배"나 "고"맙고 "감" "사"하는 마음으로
배, 고구마, 감자(감), 사과를 모아 힘들고 지쳐 어려움 속에 있는
이웃과 나눔으로 의미 있는 감사절을 보내려 합니다.

창원에 이사가 계신 이기백/양숙희집사님이 '감'을 택배로 보내 주셨습니다.
여러분도 가져오셨지요? 못 가져오신 분들은 안타까워하지 마시고 택배로 보내시기 바랍니다.
의미 있는 곳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둥교회 이름으로 보내려고 합니다.

믿음 있는 사람, 믿음 없는 사람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감사는 "덕목"이 아니라 "본질"입니다.
감사 없는 사람은 신앙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는 그 사람의 영성을 측정하는 기준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교회를 사랑하는 지 그 사람의 감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하나님과 관련시키며 모든 일에 감사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매사를 인간적인 눈으로 보고, 판단하며 불평과 불만으로 일관합니다.
그래서 감사와 불평은 할수록 커집니다. 따라서 합니다. "감사와 불평은 할수록 커진다"
감사를 할수록 감사의 조건이 커지고 불평할수록 불평할 일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점점 살기가 힘들어지고 어두워만 가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감사하란 말입니까?
고통을 안고 신음하며 한숨쉬고, 탄식하고 몸부림치며 사는데…
무엇이 감사의 조건이 됩니까?"하고 묻는 이들도 있습니다.
실제로 오늘 많은 사람들이 상대적 불만과 불평 때문에
마음의 기쁨과 삶의 감사를 잃어 버렸습니다.
백만 원이 있으면 이백 만원을 가지지 못해 몸부림칩니다.
이백 만원이 생기면 삼백 만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집이 생기면 차가 없다고 불평입니다. 차가 생기면 차가 더 큰 차, 더 좋은 차를 갖고 싶어합니다.
좀더 좋은 것, 좀더 좋은 환경, 좀더 가지고, 좀더 잘 살고 싶은 욕심이
현대인을 파멸시키고 지옥의 아궁이로 몰아넣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감사는 상대적인 것을 뛰어 넘습니다.
그래서 모든 상황에서 기대했던 반대의 경우도 감사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감사는 여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질적 여유가 아니라 정신적인 삶의 여유와 영적인 삶의 여유를 의미합니다.
"범사의 감사"는 상대적인 감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건적인 감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범사의 감사"는 절대적인 감사요, 무조건적인 감사를 의미합니다.

오늘날의 감사절 하면 청교도(the Puritan)들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항해술이 취약했던 1620년 오직신앙의 자유만을 찾아
극심한 기아와 병고에 시달리면서 메이 플라워(May Flower)라는 배를 타고
신대륙 아메리카 지금의 미국으로 건너간 102명의 청교도들이
그로부터 갖은 풍토병과 수많은 어려움에 시달리면서 추수를 하여 감사 기념 예배를 드렸습니다.
실로 눈물과 감사가 뒤범벅된 벅찬 감동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들이 바로 현대 미국을 탄생시킨 선조(the Pilgrim Fathers)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드렸던 첫 추수 감사절의 벅찬 환희는
단순히 한 나라의 건국 일화나 한 해의 추수의 감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앙과 자유의 존엄성을, 개척자 정신의 고귀함을 보여 주는 산 실례로서
모든 인류의 가슴속에 진한 감동을 전해 줍니다.
그들은 고통과 눈물의 찬송을 불렀을 것이며, 한숨 섞인 목소리로 기도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살았음에 감사했고 희망이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감사는 환경과 조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인격적으로 신앙적으로 성숙한 사람만이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자

똑같은 음식을 먹어도 감사함으로 먹으면 영양이 되지만, 불평불만으로 먹으면 독이 됩니다.
화가 났을 때 밥 먹으면 소화가 안됩니다. 신생아들도 성질이 대단한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이 젖을 빨면서 분내면 설사합니다.

우리의 가정도
감사함으로 들어가면 천국이지만, 감사함이 없으면 지옥과 같습니다(시편100:4).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시100:4)

우리의 일터에서도
감사함으로 일하면 능률이 오르지만, 불평과 원망으로 일하면 힘 만 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봉사도
감사함으로 하면 기쁨이 되고 은혜가 되지만,
마지못해서 억지로 하는 봉사는 서로에게 원망만 하게 됩니다.

오늘 여러분이 배, 감자, 고구마, 사과를 기쁨으로 가져오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무슨 교회가 가만히 두지 않느냐, 뭘 그런 걸 가져오라는 거야…'하며
투덜대며 가져오신 분들 계시나요?
그런 마음으로 가져오면 뭐하겠어요. 그런 분은 도로 가져가세요.
모든 것에 감사함으로 할 때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도 "감사"할 때 기적의 응답이 옵니다.
예물도/헌금도 인색함으로나 억지로가 아니라 감사함으로 드려야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며 풍성한 열매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우리에게 감사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15절에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16절에는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했습니다.
17절에는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말씀했습니다.

본문 말씀을 잘 살펴보면
우리가 왜 감사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감사의 삶을 지속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왜 감사해야 합니까?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감사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죽어 마땅하여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나를 예수 믿게 하시고
하나님 백성,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천국백성이 된 사람은 감사할 뿐 아니라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아야합니다.

13절에 보면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골3:13)
하나님께서 허물 많은 우리들을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믿음 안에서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불평과 불만과 미움과 증오가 가득하여 그것들이 속을 다스리고 있다면
그 사람의 속마음이 행복하겠습니까? 감사하겠습니까?
자신을 위해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고 평안한 맘, 그리스도 안에서의 평강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내가 용서하지 않고 마음에 품고 있으면 평안이 없어집니다. 평안이 없으면 감사가 없습니다.

성탄의 날에 예수님이 나심을 알리는 천사들이 찬송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2:14)
예수님의 오심은 평화를 선포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다락방 말씀의 자리에서도 제자들에게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요14:27)
예수님께서 마지막 순간 가장 주시기를 원하셨던 것은 평안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두려워하는 제자들 앞에서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
"…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요20:19) 였습니다.

오늘 본문 15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3:15) 했습니다.

예수님은 평강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어 세상이 줄 수 없고 알 수도 없는 평안을 소유한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합니까?

16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골3:16)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에 따라 삶도 달라집니다.
우리 속에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으면 삶도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감사의 내용이 담겨 있고 감사의 방법이 담겨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 있는 사람은 그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운동하기 때문에
그 사람 속에서 나오는 것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 있으니 그리스도의 평강이 가득하고
그리스도의 평강이 가득하면 감사하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물병을 흔들면 물이 쏟아지고,
술병을 흔들면 술이 나오고, 기름병을 흔들면 기름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예수 믿는 우리를 흔들면 예수님의 향내를 풍겨야 하고,
말속에/행동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살았고 운동력이 있음이 드러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듣고/배우고/지키는 삶이 되기 위해 애쓰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감사의 적극적인 표현은 찬양입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16절)
추수감사절에 남녀선교회 찬양잔치를 하는 이유는
1, 2, 3등 뽑아서 상을 주고, 꼴등 망신 주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찬양하기 위해 많은 연습을 합니다. 어떤 선교회는 1년 전부터 테이프를 들으며 연습했습니다.
연습하면서 찬양하게 되고, 찬양하면서 찬양이 생활화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 찬양잔치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속에 역사 할 때… 감사가 가득할 때 시가 절로 써지게 됩니다.
찬양이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범사에 감사할 뿐 아니라 찬양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감사의 삶을 지속할 수 있겠습니까?

본문 골로새서 3장 17절에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골3:17)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말할 때도, 일을 할 때도 무엇을 하든지 예수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힘입어, '힘입어'라는 말은 '~을 통하여, ~때문에'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연결될 수 있는 통로는 예수님뿐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나는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예수님을 힘입을 때
감사의 역사가, 감사의 기적이, 감사의 열매가 맺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헬렌켈러를 잘 아실 것입니다.
그녀는 보지 못했습니다. 듣지 못했으며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내가 3일동안 볼 수 있다면" 이라는 글을 써서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녀는 말하기를 "만약 내가 사흘을 볼 수 있다면
첫날에는 나를 가르쳐준 설리번 선생님의 얼굴을 보고
산으로 가서 아름다운 꽃과 풀과 빛나는 노을을 보고 싶습니다.
둘째 날에는 새벽에 일어나 먼동이 트는 모습을 보고
저녁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하늘의 별들을 보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 날에는 아침 일찍 큰길로 나가
부지런히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표정을 보고, 아름다운 영화를 한 편 보고,
저녁에는 쇼윈도의 상품들을 구경하고 집에 돌아와 사흘 간 눈을 뜨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헬렌켈러의 소원은 보통사람들이/우리들이 일상생활 중에 겪는 보통의 일입니다.
우리는 오늘 아침에 눈을 뜨고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강단에 장식된 꽃을 보고 과일을 봅니다.
날씨 맑은 날 동트는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 빛을 볼 수 있고
저녁 노을을 보고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침마다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을 볼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영화를 볼 수 있습니다.
진열되어 있는 상품들도 얼마든 지 볼 수 있습니다.

헬렌켈러가 3일 동안만 눈을 뜨게 해 준다면 보고 싶다는
그 3가지의 소원이 우리에게는 날마다 날마다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감사하지 못합니까.
우리는 눈이 있고, 귀가 있고, 입이 있고… 건강이 있습니다.
오늘 대한민국에 살고, 예수 믿어 구원받은 사람으로 사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눈물 흘리며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저는 우간다에 갔을 때 눈물을 흘리며 다녔습니다.
그때 저를 안내해 주었던 선교사가 이상훈 선교사입니다.
그 이야기가 보도된 자료를 화면으로 보시겠습니다.

☞ 화면을 보시지요. 6분 - 생명 살리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추수감사절에 얼마나, 어떻게 감사하시는지요?
살았다는 것만으로, 오늘 먹을 것이 있는 것만으로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닌지요?
우리가 우간다, 르완다… 그리고 여러 나라의 어린이들을 도울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더 베풀며 살지 못해 죄송해 하며 살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현재 255명의 어린이들을 돕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조금만 더 관심가지면 500명 이상 우리 교회를 통해 도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감사하십니까?
예수 믿는 것/천국을 소망하며 사는 것/오늘의 삶의 조건
그리고 여기에 있는 것… 모든 것에 감사하십니까?
비록 살기 힘들지만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질서를 통해
아침에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 감사하십니까?

제가 아프리카에 가서 눈물을 흘리며 다녔던 기억들을
지금 다시 되뇌이는 것은 여러분이 그곳에 저와 함께 가보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얼마나 감사하며 살아야 하고 우리의 사랑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하는 것을 함께 느꼈으면 하는 마음에서
영상을 보여 드린 것입니다.

성경에 "항상 감사"하고 (살후1:3),
"모든 일에 감사"하고 (살전5:18),
"모든 사람을 위해 감사하라"고 가르칩니다(딤전2:1).

여러분!
이제 감사를 발견하는 삶이 되십시오.
말하는 삶이 되십시오.
표현하는 삶이 되십시오.
감사에 성공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움 없이 살려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게 살아야 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감사의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이 거룩한 주일에, 이 거룩한 추수감사주일에 감사를 다시 한번 전했고 들었습니다.
잠시 귀로 듣고 그치는 자가 아니라 범사에 감사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한해를 돌이켜 보며 최선을 다해서 추수감사예물을 준비했습니다.
성도들의 정성을 보시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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