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신성한 자존감을 가져라 (베드로 전서 2:1-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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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신성한 자존감을 가져라.
베드로 전서 2:1-10절
(벧전 2: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시 8)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6월 첫 주가 시작되었습니다. 6월을 호국의 달이라고 합니다. 수요일은 6월 6일 현충일이고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비극이었던 6,25가 있는 달입니다. 5월이 가정의 달로서 가정의 회복을 위하여 많이 기도했다면 6월은 호국의 달로서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많이 기도할 수 있는 한 달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소금으로 만들어진 한 인형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려고 수많은 곳을 찾아 다녔습니다.
그래서 소금 인형은 여기, 저기를 다니다가 나비에게 물었습니다. “나비야, 나비야, 혹시 내가 누군지 아니?”, “글쎄, 아마도 나보다 세상을 더 많이 돌아다니는 바람이 알지 않겠니?” 그래서 소금 인형은 바람 찾아서 바람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바람아, 바람아, 내가 누군지 말해 주겠니?", “글쎄, 나보다 산이 훨씬 크니까 산에게 물어 보겠니?” 그래서 소금인형은 여러 날 걸려서 힘들게 큰 산에 올라서 큰 산에게 물어 보았으나 큰 산도 대답하기를, “나보다는 훨씬 큰 바다가 알지 않겠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소금인형은 수만리 길을 걸어서 드디어 바닷가에 이르렀습니다. 일찍이 본 여러 것과도 너무 다른 야릇하게 꿈틀거리는 커다란 물체를 보고 소금인형은 황홀해졌습니다. "당신은 누구세요?" 이 말을 들은 바다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내게 들어와 보렴." 이 말을 들은 소금인형은 바다 속으로 첨벙첨벙 들어갔습니다. 바다 속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소금인형은 차츰차츰 녹아 마침내 아주 작디작은 한 점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 마지막 한 점이 녹기 전에 소금인형은 소리쳤습니다. "이제야 내가 누군지 알겠다!"라고. 소금은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바다 속에서 알 수가 있었습니다.
● 어느 정신요양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의사가 한 환자의 방으로 들어섰습니다. 그때 환자는 옷장을 뒤지고, 서랍을 뒤지고 침대 밑까지 뒤지면서 무언가 열심히 찾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을 그렇게 찾고 있소?" 의사가 물었더니 환자가 낙심한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잃어버린 나를 찾고 있습니다...!" 의사는 이 말을 듣고 오히려 자기가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여기에 모인 우리 성도님들은 자신이 누군지를 알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자신이 누군지를 모르고 살아가다보면 심각한 일인 것입니다. 아바? 엄마? 딸? 아들? 손자? 손녀? 삼촌? 고모? 아님? 사장? 회장? 이런 것은 직책과 직분과 위치 일뿐이지 나의 본질은 아닙니다. 우리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때 그때부터 사는 방법과 태도가 달라진다고 합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내가 누군 인지? 본질을 찾아 한번 돌아 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죄로 인한 자존감의 상실 - 우리 인간이 죄로 인하여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죄책감으로 인한 자존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회복해야 할 일이 있다면 자존감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자존감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당신은 누구입니까? 물어보면 대부분 자신에 대하여 누구라고 대답을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에게 지금 당신은 누구입니까? 물어본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고민을 해본다든지, 어떻게 말해야 할지 생각해 본다면 자신의 자존감 문제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보아야 합니다. 자녀들이 나를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해서 아버지입니까? 그것은 아버지일 뿐이지 내가 아닙니다. 자녀들이 어머니라고 부른다고 해서 내가 어머니입니까? 그것은 아무개의 어머니일 뿐이지 나 자신은 아닙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여러분 자신을 누구라고,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깊이 생각할 문제입니다. 기독교 정신 분석학에서는 건강한 사람에 대한 특징을 세 가지로 말했는데 한 번 쯤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 첫째로 자존감이 건강한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사람이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기 전에는 그들이 하나님은 창조주이며 자신들은 피조물이라는 자신들의 위치를 알고 지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속에 죄악이 찾아오니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모르고 선악과를 따먹어서 하나님처럼 되려고 합니다. 거기에는 사탄의 충동질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들을 충동질하여 자신이 누구인지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자존감이 있는 사람은 누가 충동질하며 말을 하든지 자신의 정체를 아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서 남들이 유식하다고 해도 내가 무식한 것은 내가 잘 압니다. 남들이 성공했다고 해도 성공하지 못한 것을 잘 압니다. 당신은 건강하다고 해도 내가 병든 것은 내가 압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가끔 어떤 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목사님께서는 아직도 청년 갔네요. 장가가도 되겠습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제가 왜 아직도 청년입니까!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나입니다. 내 정체의식을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의 평판에 의해서 내 생각이 휘둘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장점이든 단점이든 다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건강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휘둘리며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은 정체성이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25시"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주인공은 요한 모리츠라는 사람인데 농사를 지으며 무식하지만 순박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세계 2차 대전이라는 혼란의 물결에 휩쓸려 이유 없이 고생을 하게 되는데 한 때는 유태인으로 오해를 받아 이곳저곳으로 끌려 다니며 고문을 다하고 멸시와 박해를 당했습니다. 또 한 때는 세계 최고의 월등한 민족의 씨라는 평가를 받는 등 찬양하는 사람들에게 받들려지기도 했습니다. 여기저기로 끌려 다니던 주인공 마침내 연합군에게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재판관이 "너의 진짜신분이 무엇이냐?"고 묻는데 모리츠는 그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이 정말 누구인지 자신도 알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너무 긴 세월 오해를 받고 살았으며 너무나 많은 고생을 했고 타인에 의해 멸시와 천대를 받다 보니 자신이 누구인지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25시의 주인공처럼 오늘날도 세상에 떠밀려 살아가다 보니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자존감의 회복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회복의 길인 것입니다.
● 두 번째로 자존감이 건강한 사람은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진다고 합니다.
자기 행동에 대해서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자 하는 마음에는 자존감이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존감이 약한 사람은 다른 사람 탓을 하며 책임을 회피한다고 합니다.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자존감이 낮아지는 반응중의 하나가 바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담이 죄를 짓고 자존감이 낮아지니까 선악과를 따먹은 책임을 자신의 아내 하와에게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 어떤 사람이 부부싸움을 했다고 합니다. 남편이 유달리 화를 내고 난리를 치니까.
부인이 견디다 못해서 "여보 당신이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에 와서 자꾸만 짜증을 내는데 왜 그러는 거예요?" 그 남편이 무어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나는 본래부터는 안 그랬는데 너하고 살면서 이렇게 되었다"고 했답니다. 아니, 자신이 나빠진 것이 아내 때문이겠습니까? 꼭 잘못하는 사람은 이렇게 남에게 책임을 돌립니다. 내가 상대로 인해 바뀌는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 것.
이런 사람은 자존감이 낮은 사람입니다. 모든 책임은 내 책임이올시다. 변하는 것도, 선택하는 것도 바로 나, 그 사람이 자존감 강한 사람인 것입니다. 자존감이 회복된 사람은 자신이 누군지? 알뿐더러 자신의 죄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회개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 세 번째는 자존감이 강한 사람은 현실을 즐깁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현실을 도피합니다.
그러나 자존감이 강한 사람은 현실에서 도피하지 않고 도전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현실을 도피하기 위하여 술이나 약물 중독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또한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자살을 많이 하게 됩니다. 자신이 무너져 내리니까 살아갈 소망도 없고 의욕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을 도피하는 심정으로 자신의 생명을 끓은 것입니다. 자신의 얼굴에 대한 자존감이 낮아서 전혀 밖으로 출입을 끓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고, 사람들과 부딪히면 미안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는 것 자체가 자존심이 상해서 사람들을 무조건 피하는 경우의 삶들이 있다고 합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현실을 회피하며 방황하는 사람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을 찾아서 만족으로 채우고, 거듭나라고 하십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그리고 내 모든 것에 감사 할 줄 아는 선함이 바로 진리 안에서 팜 평안을 얻은 영적인 삶인 것입니다. 오직 성령님이 임하시면 모두 행복하고 기쁨이 넘치며, 믿음으로 기도하는 삶이 됨.
그러므로 자존감이 회복되면 현실을 극복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담대함이 생기는 것입니다.
2. 자존감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이제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하나님을 만나볼까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잠시 오늘 본문의 배경으로 들어갈 볼까요? 오늘 말씀을 기록한 베드로는 너무나도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베드로는 출신도 어부인데다가 글도 몰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기록한 성경도 자신이 직접 기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말로 하면 실라가 대필하여 기록된 성경이라고 합니다. 왕 같은 제사장인 베드로가 이렇게 자존감이 낮은 백성임에도 담대함을 얻은 것은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구하는 성령 충만이 답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에 자족하며, 감사로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직분 자에게 하늘의 영광을 보이시며, 오직 하늘에 것을 구하는 성도들을 찾아 복을 나누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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