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며 살자 (골 03:15-17) 사람이 사는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스러운 존재가 되고, 스스로는 행복한 존재가 되며, 다른 사람을 살리는 창조적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존재로 살기 위해서는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나 자신은 행복하며, 다른 사람을 살려주는 창조적인 존재가 됩니다.
성경에서 감사를 가장 많이 고백한 사람은 다윗과 사도 바울입니다. 다윗은 수많은 환난과 역경 속에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감사를 고백했습니다. 시편은 다윗의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고백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 생애를 보면 가난과, 굶주림과,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일생을 나그네이자 감옥에 갇힌 죄수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복음을 위한 목표 속에서 그는 언제나 가슴으로부터 샘물처럼 흘러나오는 감사를 하나님께 고백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15-17절)
사도 바울이 이 편지를 기록한 곳은 별장 침대나 안락한 저택이 아닙니다. 로마의 감옥입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힌 죄수의 몸으로 골로새 교인들에게 감사하며 살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감사하는 믿음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은 감사하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감사는 존재가 될 때 나 자신이 행복하고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이루실 모든 뜻이 이루어집니다. 물론 감사가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면 마땅히 감사하는 자로 살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게 합니까? 그리스도의 구원이 내게 성취될 때 그리스도의 평화가 내 마음에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15절)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로, 이웃과 갈등을 이루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시므로 화목 제물이 되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원수 된 것을 화목하게 하시고, 이웃과의 갈등과, 불협화음을 청산하고 서로 서로 화목하며 살게 하셨습니다. 이 은혜를 입었기에 우리는 마땅히 감사하며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부부가 서로 화목합니다.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 직장에서 동료 간에 화목합니다.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 어떤 환경 속에서도 서로 화목하며 평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요 14:1),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도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고 부활하신 후에도 우리에게 평강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요 20:19)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원을 얻은 자로서 어떤 경우라도 감사를 고백해야 합니다.
감사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상대적인 감사와 절대적인 감사입니다. 상대적인 감사는 환경과 조건의 영향을 받습니다. 기분 좋으면 감사하고 기분 나쁘면 불평하고, 잘되면 감사하고 잘 안되면 불평하고, 자기 뜻대로 되면 감사하고 자기 뜻대로 안되면 불평합니다. 절대적인 감사는 환경과 조건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므로 어떤 환경과, 어떤 형편에서든지 감사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 3:17-18). 우리는 모든 감사의 근거가 하나님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지방을 지나가실 때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님을 보고 멀리 서서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고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예수님께서 저들에게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시니 저희가 제사장에게 가다가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네 몸을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라"는 말은 '네 몸이 건강해진다'는 약속입니다. 원래 문둥병자는 건강한 사람과는 100m의 간격을 두어야 하며 제사장에게는 접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제사장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라'는 말은 "너는 건강한 사람이 될 것이다"라는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
저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제사장에게 가다가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사람 사마리아인이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돌아와 예수님 발아래 엎드려 감사하다고 사례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면서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홉명은 어디에 갔느냐"고 찾았습니다. 왜 찾았습니까? 아홉 명도 구원을 받아야 하는데 예수님께 감사하지 않으므로 구원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감사하지 않는 자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감사할 때 구원의 확증이 나타납니다.
감사하는 예배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16절)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감사하며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감사로 받을 때 그 말씀이 내 속에 풍성히 거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서 물질을 드릴 때 헌금이 됩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로 노래를 부를 때 찬양이 됩니다.
수도원과 감옥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외부와 차단되어 있습니다.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수도원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감사가 있고, 찬양이 있으므로 천국이요, 감옥은 불평과, 불만과, 원망과, 탄식과, 후회가 있으므로 지옥입니다.
우리가 똑같은 가정에서 살지만 불평하고, 불만하고, 탄식하고, 원망하는 가정은 지옥이요, 감사와, 찬송과,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하면 천국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천국입니까 지옥입니까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하늘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매주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릴 때마다 감옥같은 심령을 천국으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옛날 농촌에는 물을 뿜어내는 펌프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제가 시골에서 목회할 때도 펌프가 있었습니다. 이 펌프는 그냥 펌프질을 하면 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물을 한바가지 퍼다가 펌프에 붓고 펌프질을 하면 물이 펑펑 쏟아집니다. 저는 펌프질을 할 때마다 마음속에 솟아오르는 은혜가 있었습니다. '마음속에 은혜의 생수를 한 바가지만 부어라 그리고 예배하고, 찬송하고, 기도하라 그러면 감사가 샘물처럼 솟아오를 것이다.'
우리가 말씀을 통하여 신령한 생수가 우리 속에 충만히 임하면 감사가 샘물처럼 솟아오를 것입니다. 이때 내 심령은 천국이 되고 주님의 영광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시 116:1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시 103:2)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받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풍성한 감사로 채우십니다.
감사하는 삶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17절)
이것은 인간관계를 말합니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일로 살려주고, 말로 살려주라는 것입니다. 상대에게 무엇인가 은혜를 받았을 때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면 그 사람을 살려줍니다. 그런데 감사를 잊어버리면 마음이 상심이 됩니다.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일할 때 일의 능률이 오릅니다.
한번은 구걸하는 분이 교회에 와서는 나에게 천원만 달라고 그래요. 그래서 천원을 주었더니 깍듯하게 인사를 하면서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너무 배가 고파서 그러는데 짜장면 한 그릇 값만 더 주시죠." 그래요. 그래서 또 짜장면 한 그릇 값을 주었습니다. 감사하다는 말 한 마디 때문에 제 주머니에서 짜장면 값이 금방 나오는 것을 보고 한가지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하면 얼마나 풍성한 축복을 주실까.'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에게 더욱 감사할 일이 넘치게 하십니다.
어느 해 독일 전역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대다수 국민들이 기근으로 몹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비교적 넉넉한 삶을 살고 있는 老부부가 있었습니다. 이 老부부는 어느 날 동네 공터에서 놀고 있는, 제대로 먹지 못해 몸이 바싹 마른 아이들에게 빵을 만들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곧 집에서 빵을 여러 개 구운 뒤 그것을 공터로 가지고 나와 배고픈 아이들이게 나눠주었습니다.
"이 바구니에는 너희들 한 사람이 한 개씩 먹을 수 있는 빵이 있단다. 모두 한 개씩만 가져가거라. 내일 오면 또 빵을 주마."
할아버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서로 큰 빵을 가지겠다고 달려들어 한 개씩 움켜쥐고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빵을 가져간 뒤에 항상 마지막 남은 작은 빵을 집어드는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크레첸이었습니다. 소녀는 언제나 가장 작은 빵이 자신의 차지가 되었지만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老부부에게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꼭 잊지 않았습니다. 노부부는 그런 크레첸을 매우 기특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날도 노부부가 나눠 준 빵을 감사히 받아들고 돌아온 크레첸은 동생과 함께 나눠 먹기 위해 빵을 쪼개다가 그 안에서 반짝이는 은화 여섯 닢을 발견했습니다. 크레첸은 깜짝 놀라 얼른 은화를 가지고 노부부에게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숨을 헐떡이며 달려온 크레첸을 향해 빙긋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 은화는 감사할 줄 아는 착한 아이에게 주기 위해 제일 작은 빵을 만들 때 넣은 거란다. 크레첸, 네게 주는 선물이다." 할아버지는 크레첸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며, 사랑은 사랑할 때까지 사랑이 아니다. 그리고 축복은 감사할 때까지 아직 그의 것이 아니다."
돈 벌어놓고 감사하지 않으면 그 돈은 내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께 감사하지 않는 자식은 자식이 아닙니다. 남편이 아내를 보면서 감사한 마음을 가질 때 하늘이 내린 보화가 됩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이 소중하고 감사할 때 내 조국이 됩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내가 어쩌다가 이 교회에 오게 되었나.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좋은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나. 너무 감사하다' 하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하늘이 쏟아낸 은혜를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시골에서 목회할 때 토요일만 되면 설교 준비를 했는데 설교 준비를 하다가 주님의 은혜가 너무 크면 교회 밖으로 나와 교회 벽을 만지면서 '오! 주의 성전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성전을 돌았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을 향해서 절할 때는 부모님께서 내게 베푸신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눈물을 흘리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가지 일로 스트레스를 받는데 가장 큰 원인은 상대적인 빈곤 때문에 옵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면 스트레스를 안받는데 내가 다른 사람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하면 스트레스를 왕창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면 자신에게서 다른 사람보다 나은 것을 찾아야 됩니다.
한번은 한 자매가 여신도 회원들과 함께 가난한 지역에 있는 소년소녀 가장들을 돕기 위한 봉사활동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 자매는 강남에 있는 아파트에 살고 있었지만 늘 자기보다 큰 평수에 사는 사람들, 자동차 큰 것 타고 다니는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남편들처럼 돈도 많이 못벌어다 주는 남편이 원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살던 자매가 가난한 동네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좁은 집에 사는 사람들을 보고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여기에 비하면 나는 대궐에서 살고 있지 않는가' 그날로 이 자매의 스트레스가 확 풀렸습니다. 남편이 회사에서 들어오자 이 자매가 남편에게 "여보, 잘 다녀오셨어요." 하고 절을 했습니다. 남편이 평소와 다른 아내의 행동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당신 갑자기 왜 그래" "당신이 너무 고마워서 그래"
옛날에 고생을 많이 한 사람들은 현재의 삶이 모두 감사로 채워집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좀 더 나은 것 때문에 감사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녀로서 감사해야 합니다.
국내 성지순례지 중에 가장 감동적인 곳이 바로 손양원 목사님의 순교 기념관인 애양원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여수 순천 반란사건으로 사랑하는 두 아들을 잃었지만 장례식장에서 이런 감사 드렸습니다.
나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을 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허다한 많은 성도 중에서 이런 보배를 나에게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삼남삼녀 중에서 가장 귀여운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이 함께 순교했으니 감사합니다.
예수 믿고서 그냥 죽어도 복인데 전도하다 총살 순교했으니 감사합니다.
미국 유학 가려던 아들이 더 좋은 천국 갔으니 감사합니다.
내 아들을 죽인 원수를 회개시켜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아들의 순교로 무수한 천국의 열매가 생길 것을 믿으면서 감사합니다.
역경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이길 수 있는 믿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원수의 손에 자식을 잃은 아버지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쓴 글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감사입니다.
주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하나님 앞에 감사할 때 오천명이 먹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주님은 베다니에 있는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요 11:41) 그러면서 "나사로야 나오라" 할 때 죽은지 사흘이나 된 나사로가 무덤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감사의 기적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감사의 기적을 우리에게 보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몸을 제물로 하나님 앞에 드리면서 감사할 때 그 떡을 먹고 그 잔을 마시는 자마다 생명을 얻었습니다.
감사는 운명을 바꿉니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줍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새로운 역사를 창조합니다. 하나님께 축제로 예배하게 합니다.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나에게는 행복이요, 내 이웃들을 살려주는 감사가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