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챤 문화선교

선지예술학교

절기말씀

[총회주일]은혜로운 공동체가 되라(행 15 : 1 - 29)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마른곰
댓글 0건 조회 649회 작성일 18-01-20 08:24

본문

은혜로운 공동체가 되라(행 15 : 1 - 29) 
(총회장 안영로목사 설교 참조) 

한국 기독교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와 초대 교회 사역자들의 열심, 그리고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과 국가 사회적 배경이 조화를 이루어 급속히 성장하였다.

1907년 독노회를 조직하고 제 1회 창립 노회에서는 서상륜의 동생인 서경조, 한석진, 이기풍, 송린서, 방기창, 길선주, 양전백 등 7명에게 목사안수를 하여 최초의 한국인 목사 7명을 배출했는데 그 중 이기풍을 제주도 선교사로 파송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독노회를 조직한지 5년 만인 1912년에 감격적인 총회의 조직이 이루어졌다.

1912년 9월 1일 평양의 장로회신학교에 전국 7개 노회 총대 목사 96명(선교사 44명, 한국인 목사 52명), 장로 125명, 계 221명이 모여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를 조직하고 초대 총회장으로 언더우드 목사를 선출했던 것이다. 당시 교세는 교회 수 2천 54교회, 목사 128명, 장로 225명, 세례교인 53008명, 교인 총수 127,228명이었다.

그리고 중국 산동성에 박태로, 사병순, 김영훈 등 3명을 선교사로 파송했다.

이처럼 우리 총회는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독노회를 조직하고 선교사를 파송하였고 총회를 조직한 후에도 선교사를 파송했다는 것이다. 

오늘은 전국 교회가 총회주일로 지키는 날이다. 총회주일은 본 교단에 소속된 전체 교회가 함께 지키는 주일이다. 이 귀한 총회주일에 왜 총회가 필요한지 그리고 총회가 무엇을 하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총회의 성경적 근거는 본문 6절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라는 말씀이다. 여기서 사도와 장로들이 모인 이유는 초대교회의 큰 논란거리인 할례의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서 모임을 가졌으며, 그 모인 회의 결과 육체적인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기독교의 기본 진리가 확정되어졌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총회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교회 교리를 결정하였으며, 그 결정은 권위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왜 총회가 필요할까? 

총회는 초대교회 때부터 시작되었으며 교회 내부적인 문제와 교리적인 문제를 확정짓기 위해서 꼭 필요한 기구인 것이다. 교회의 구성과 조직, 그리고 여러 가지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을 함에 있어서 어느 한 개인이나 개 교회에서 임의로 결정되어질 경우 그것을 성경적이냐 아니냐의 결정이 쉽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만약 개인 한 사람이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되면 그 교회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난 하나의 집단으로 전락할 위험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수가 다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을 근거로 해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은 교회 대표자들이 모여서 함께 의논하고 결정하는 것이 성경에 가장 가까이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총회는 무엇을 하는 기관인가?

총회는 교리 문제를 결정하며, 교회 운영에 필요한 행정의 통일, 치리와 권징의 올바른 이행, 그리고 효율적인 복음전파를 할 수 있으며, 개 교회가 할 수 없는 사업을 총회적으로 힘을 결집할 때 큰 힘을 가지고 연합 사업을 이루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성령이 이끌어 가는 아름다운 교회, 은혜로운 총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 오늘 본문이 주시는 말씀은 어떤 말씀인가? 

1.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교회의 파송을 받아서 제1차 전도여행을 떠났다가 마치고 돌아왔다. 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교회 안에 한 가지 문제가 대두되었다. 그것은 이방인 신자들을 어떻게 신앙의 공동체인 교회 회원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전도 여행을 하기 전에는 교회 안에 유대인들만 있었는데 이제는 이방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에 할례를 받지 아니한 저들이 어떻게 유대인들과 함께 하나의 공동체인 교회의 멤버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문제로 교회 안에 다툼이 일어났다. 바리새파 유대인들은 주장하기를 모세가 명한 할례를 받아야만 기독교 공동체 안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1절을 보니까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고 했다. 구원의 문제까지 비약해 가지고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인디옥 교회에 대두된 큰 문제였다. 

이 문제를 우리가 소위 '예루살렘 공의회'라고 말하는 사도행전 15장의 기독교의 첫 번째의 총회를 통해서 해결했다. 

6절부터 11절까지가 베드로의 변론인데 결론이 무엇인가 하면 11절이다.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무슨 얘기인가? 가장 중요한 것이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얻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베드로의 논지의 핵심이다. 

그 다음에 나온 것이 야고보의 이야기인데 그는 성경을 인용하여 베드로가 주장한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논리를 피력했다. 아모스서 9장 11절과 12절의 말씀을 인용한다.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아모스의 예언을 인용해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방인들도 주를 찾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방인 신자들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본문에서 가장 요긴한 원칙을 가지고 결정을 내렸다. 예루살렘 공의회가 탁월한 결정을 내렸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성경에서 예언한 말씀으로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우리 교단의 모든 교회들도 바로 성경에 근거하여 우리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야 할 것이다. 

16세기의 종교개혁은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여는 기적적 사건이다. 그 이유는 그 시대의 현실이 영적, 도덕적, 신학적으로 퇴폐의 지경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질서가 무너지고 패역한 세대로 전락된 중세의 키톨릭교회와 사회의 어두움은 새로운 세계의 출현을 불가피하게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종교개혁 이전 중세시대가 암흑시대로 어두움 속에 방황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움직이지 못하고 절대 믿음, 절대 헌신, 절대 순종의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16세기 초 중세 카톨릭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성경말씀이 봉독 되어져야 할 부분은 성인들의 이야기와 전설로 채워졌다. 이러한 시대적 문제점은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가 본궤도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되었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마틴 루터와 존 칼빈이다. 루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는 믿음에 의해서만 구원을 받게 된다는 주장을 하게 되었고, 칼빈은 초대교회가 살았던 그대로 성도들이 성경에 입각한 삶을 지속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말씀 중심의 교회로 새 출발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보다도 절대 믿음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들의 신앙생활도 절대 믿음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히 11:6). 이처럼 은혜와 믿음은 신앙생활의 첫 번째 조건인 것이다. 

2. 복음증거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본문 22절에 보면 예루살렘 공의회는 복음 증거를 위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파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은 모이면 선교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총회 산하 모든 지교회들도 선교하는 일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8장 18-20을 통해 선교하라고 명령하셨다. 

이 지상명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와 함께 주어졌다.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로 우리는 선교하는 것이다. 
이 지상명령은 지속적인 선교 명령이다. 한 두번 캠페인이나 이벤트로 끄날 일이 아닙니다.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하여야 할 일이다. 
이 선교 명령은 구체적으로 "먼저 가라"는 것이다. 가라는 말은 "떠나라" "경계를 건너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전도와 선교를 하려고 하면 전도 대상자들에게 찾아 가야 한다. 선교 대상자들에게 찾아가야 한다. 

또 하나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것이다. 지구촌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여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전 세계 24,000 종족 중에 복음이 전파된 종족은 13,000 종족이요, 복음이 전파되지 아니한 종족이 11,000 종족이다. 이렇게 지금도 복음이 증거 되어야 할 종족이 많이 있기에 이 일을 위하여 세계 교회들은 같은 사명으로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우리 총회도 80개국에 선교사 900 여명을 파송하였으며, 2007년 총회 선교사 파송 100주년을 맞이하여 2006년 세계선교대회를 통해 2030년까지 성도 300명당 1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15,552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려는 계획과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 귀한 일에 우리교회도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전도하는 일과 선교하는 일은 결코 중단할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선교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선교하는 사명을 뒤로 미룰 수는 없다. 왜냐하면 선교하는 일이 가장 시급한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도 120 여 년 전에는 얼마나 어두운 세상을 살았는지 모른다. 복음의 빛이 들어옴으로 어두웠던 이 땅은 밝아지기 시작했다. 죽어 가는 영혼이 구원받기 시작했다. 주님의 능력으로 병든 자가 고침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병원이 설립되고 학교가 새워졌다. 전국 방방곡곡에 교회 십자가 탑이 우뚝 우뚝 솟아오르게 되었다. 

그러므로 선교는 이웃을 살리고, 한국교회를 살리고, 열방을 살리는 일이다. 우리 교회가이 일에 앞장설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를 바란다.

롬 9:3절에 보면 바울은 구원받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친척들을 인하여 고통 하면서 사랑하는 이들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이 구원받기를 원한다고 했다. 

행 20:31절에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위해 밤낮 3년 동안 눈물을 흘리며 사역을 했다는 것이다. 이 눈물은 에베소 사람들이 구원받기 위해 흘린 바울의 한없는 눈물이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처럼 우리도 한국교회를 위해, 죽어 가는 영혼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복음을 증거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한스 킹슬리는 젊은 날에 인생의 미래에 대한 분명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조용히 바닷가에서 파도를 벗삼아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나는 너를 위해 생명을 주었건만 너는 나를 위해 네 생명을 줄 수 있느냐? 그리고 나에게 전부 순종하는 것이 너무 큰 것이냐?" 

그는 그 이후 생명까지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어주신 그 분의 사랑에 매료되어 복음을 위해 한 평생을 살았던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행 20 ; 24절의 말씀처럼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오늘 우리들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3. 실력과 인격을 통해 헌신해야 한다. 

시각 장애인 강영우 박사는 미국의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보좌관으로 있다. 그는 고난 속에서 주님의 얼굴을 보았고, 인간의 한계상황 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최근 3C 혁명이라는 저서를 통해 "글로벌 인재상"을 제시한 바 있다. 즉 실력(Competence), 인격(Character), 헌신(Commitment)의 삼요소를 갖춘 사람이 진정한 실력자라는 것이다. 열등감과 패배감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실력이 필요하고, 미성숙한 인간에게는 고난과 역경이 주는 인격의 연단이 필요하며, 불평만 하고 행동이 없는 자들에게는 헌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이 시대를 이끌어 가면서 교회와 총회의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실력과 인격 그리고 헌신의 3박자가 동시에 충족되어야 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대를 이끌어 가는 종이 되기 위해서는

첫째는 말씀의 실력을 쌓아야 한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시 119:105) 되심을 알고 말씀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한다. 말씀 중심으로 살기 위해서는 날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그 말씀이 삶 속에 살아 움직여야 한다. 성 어거스틴은 방탕한 삶을 살다가 "집어서 읽어라. 집어서 읽어라" 는 소리를 듣고 성경말씀을 펴서 읽었다. 그 말씀은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3-14)는 것이었다. 그는 말씀을 통해 새로운 인생 길을 걷게 되었던 것이다. 

두 번째는 인격이 좋아야 한다.

좋은 인격은 섬기는 인격이다. 예수님은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요13:14)고 했다. 예수님께서 몸소 실천해 보여주시면서 우리에게 명하신 것이 바로 섬김이다. 따라서 섬기는 자가 될 때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성자 슈바이처 박사는 서른 살이 되었을 때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내가 세계와 이웃들을 무엇으로 섬겼는가?" 를 고민하다 마침내 주어진 모든 명성을 포기하고 의학을 공부해 흑인들을 섬기기 위해 아프리카 콩고로 떠났다. 그는 섬기는 자의 삶이 크고 가치 있는 삶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슈바이처는 오직 한 번 뿐인 인생을 섬김을 받기보다는 섬기는 삶을 살기로 결단한 것이다. 

세 번째는 헌신하는 것이다.

새들백교회의 목사인 릭 워렌은 그의 저서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알고 그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사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다" 고 했다. 그 목적이 바로 헌신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연설가인 이우라 야스우끼는 보편적인 기업의 인력 구성을 진단하는 자리에서 꼭 필요한 사람 20프로, 있는 편이 나은 사람 30프로, 없어도 상관없는 사람 40프로, 있어서는 안 될 사람 10 프로로 분석했다. 그리고 그 상위 그룹이 상승할 수록 좋은 회사라고 말했다. 교회에서는 한 사람의 온전한 헌신이 대단한 위력을 드러낸다. 그러나 좋은 교회를 위해서는 교회 역시 꼭 필요한 헌신의 사람이 많아야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헌신해야 한다. 헌신할수록 믿음이 성장한다. 헌신할수록 인격이 성장한다. 헌신할수록 실력이 성장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 무엇인가? 예루살렘 공회의에서 말하는 것이 무엇인가?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믿음으로 살라는 것이다. 은혜로 사는 사람들은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귀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교회와 총회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