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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 변함없는 사랑으로 (엡 6: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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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8건 조회 720회 작성일 17-12-27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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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 변함없는 사랑으로 (엡 6:23-24) 
- 설교 : 서정호 목사 

금년 한 해를 시작하면서 여러분은 어느 말부터 시작하셨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시작한 말은 어떤 말이고, 가장 가까운 사람인 남편이나 아내, 자녀들이나 부모님들에게 시작한 말은 어떤 말입니까? 어떤 덕담들을 나누며 시작하셨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결단하고 서원하면서 다짐한 말들은 어떤 것들이고 신년 인사를 나누면서 약속한 것들은 무엇입니까? 

입으로 하는 말이 중요합니다. 입으로 내놓는 말이 그 사람의 삶을 좌우하고, 평생을 좌우하고, 영생까지도 좌우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말을 하며 사십니까? 어떤 사람의 입은 모함하고 낙심케 하고 화목을 깨는 말을 합니다. 교인끼리의 관계, 목사와 교인의 사이를 멀게 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칭찬과 용기, 화목이 담긴 말을 합니다. 

오늘은 마지막 주일입니다. 오늘은 감사의 말, 칭찬의 말, 소망의 말, 사랑 담긴 말…등 좋은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옆의 분들과 "오늘은 좋은 말, 위로의 말, 격려의 말, 칭찬의 말, 소망의 말만 하십시다"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us)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현재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세 가지 현재만 있을 따름이다. 과거의 현재와 현재의 현재와, 미래의 현재이다. 과거의 현재는 '기억'이라는 형태로 존재하며, 현재의 현재는 '통찰'하는 것이며, 미래의 현재는 '기대감'으로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과거의 좋은 것을 기억하고 지금도 좋은 상태로 지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과거의 나쁜 것을 기억하고 마음에 담아 둔 채 지금도 나쁘게 지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옛날에 상처받아 속상했던 일, 미워했던 것…등을 잊지 못하고 계속 기억하면서 현재에도 상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지난날의 어떤 것들을 끄집어내어 기억하며 살고 계십니까? 

미래는 기대감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으로 알 수 있는 현재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장래를, 2005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십니까? 우리는 아직 2004년에 살고 있지만, 2005년을 예측할 수 있고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사람이나, 일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예측합니다. "나는 안돼. 나는 틀렸어…" "우린 안돼. 우리 애는 틀렸어. 그 사람은 안돼." "이 일 안돼. 그 일 안돼. 소용없어."하며 사람과 일에 대해 절망적으로 예측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흘러가는 시간 
사람들 모두가 이맘때가 되면 "세월이 참 빠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국어사전에 보면 "세월"을 "흘러가는 시간"이라고 했습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시간은 시시각각 우리에게 상처를 주다가 마지막에는 최후의 일격을 가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시간'이 지나가면 이런 저런 일들이 사람들의 마음에 좋은 일로,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모두 상처로 남는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 주름이 지고, 나이가 들어 몸이 불편한 것… 등 모든 것이 마음의 상처로 자리 잡는다고 합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대로 세월이 흐르면서 과거에 하고 싶었던 것, 할 수 있었던 것을 하지 못하게 되면 상처로 다가어거나 상처로 남습니다. 2004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이런 저런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고… 이렇게 저렇게,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알게 모르게 우리가 상처를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이때에… 모두 용서하고 덮어주고 평안한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자기는 용서하고 덮어 주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평안한 마음을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4절에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변함이 없다고 하는 말은 한결같다 혹은 꾸준하다는 말인데 이에 반대되는 말로 변덕, 변절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이 변덕이란 것은 무척 피곤한 말입니다. 우리가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사람을 만나 사귈 때 변덕스러운 사람을 만나면 참으로 피곤합니다. 좋다고 할 때에는 자기의 살이라도 다 먹일 것처럼 하다가도 얼마 안가면 완전히 돌아서서 꼴도 보기 싫다고 합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럴 이유가 아무것도 없는데도 그렇게 합니다. 자기가 손해를 봐서 그렇다면 손해를 배상해 주면 되는 것이고 다른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하면 사과하고 고치면 되는데 이런 저런 이유도 없이 싫다고 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변덕은 사람에 대해서 싫증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물건이나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나 처한 환경에 대해 싫증을 느낄 수는 있지만 사람에 대해서 싫증을 느끼는 사람은 참 피곤한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가 예수 믿을 때 예수님께 싫증을 느끼면 그것은 곤란합니다. 그러면 믿음 생활에 변덕이 생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 이와 비슷한 의미로 변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변절이란 좀 다른데 반드시 이해관계가 따릅니다. 그래서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 버립니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 이익이 있다고 생각되면 절대 변절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금이라고 손해가 될 것 같으면 혹은 이용가치가 없으면 안면을 완전히 바꾸어 버립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한결같은 사람, 변함이 없는 사람, 꾸준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본문이 가르쳐 주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를 기록하고 마지막 6장 23절에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했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향해 선언 한 평안의 복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우리 가정, 우리 교회, 우리나라에 있어야 합니다. 참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좋은 옷, 비싼 옷을 입고 싶어 합니다. 맛있고 비싼 음식을 먹으려 하고, 좋은 집에 살고 싶어 합니다. 이런 의식주의 욕구가 모든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비싼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비싸고 넓은 집에 산다고 해도… 평안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평안, 평강, 안녕>은 돈이 많다고, 큰집에 산다고, 비싼 옷을 입고 좋은 대학에 다니거나 들어간다고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참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참 평안은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평안의 복음을 전한 곳이 감옥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 에베소 교회를 향해 평안을 빌었습니다. 참 평안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평강의 주께서 친히…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살후3:16) "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7)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요16:33)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요14:27) 

오늘 이 시간,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있습니다. 단 그 평안을 받아들이느냐, 그 평안을 누리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예배의 자리에 있는 것 그 자체가 평안이요, 감사의 조건입니다.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평안합니다.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감사한 일입니다. 더욱이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보장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천국 시민이 된 것, 오늘 영암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 이 모두가 감사의 조건입니다. 

돌이켜 보면 감사 
2004년 한 해 동안에 어떤 일이 있었으며, 누구와 만났는지, 어디를 갔었는지, 무엇을 했는지…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생각해 보면 살게 하신 것도 감사하고, 일하게 하신 것도 감사하고, 하나님이 써 주신 것도 감사합니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 봐도 감사합니다. 물론 힘들고 어려운 때도 있었지만 감사한 일이 더 많습니다. 여러분도 범사에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한다. 
금년에 가까운 사람들, 식구들이나 배우자, 부부 사이에 또는 친척들 때문에, 같은 교회 안에서 믿음의 식구들로부터 한 숨 짓고 마음 아파하고 눈물 감춘 이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사람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받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영암교회에서 신앙 생활하는 것은 교회의 시설이나 행사, 프로그램 때문도 아닙니다. 더욱이 사람 때문에, 어떤 목사 때문에 영암교회에서 신앙 생활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의 중심으로 바라보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셔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 말씀처럼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교회에 와서 다른 것을 바라보면 실망하게 됩니다. 사람을 바라보면 결국 실망하게 됩니다. 사람을 바라보게 되면 좋을 때는 좋지만, 말 한마디와 얼굴 표정 하나에도 마음에 상처받고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변함없이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변함없이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도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의 그리스도 안에서의 사랑도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필요할 때만 믿고, 필요할 때만 사랑하는 것은 참된 믿음도, 참된 사랑도 아닙니다. 유리할 때만 믿고 사랑하는 것은 참된 사랑도, 믿음도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 에베소교회 교인들에게 쓰는 편지의 마지막을 다음 같이 마무리 지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엡6:24) 변함없이 사랑해야 진짜입니다.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변함없는 신앙생활이어야 그 믿음이 진짜입니다. 조금만 이상하고, 자기의 생각과 다르면 변하는 사랑은 가짜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도, 교회를 향한 사랑도, 목회자를 향한 사랑도, 가족을 향한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변함없이 사랑해야 그것이 진짜입니다. 변하는 것은 가짜입니다. 

은혜 받는 비결 
은혜 받는 비결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은혜를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은혜 받으면 결과가 있습니다. 

예수님과의 관계가 타산이 없어진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전부를 주었습니다. 이 죄인들에게 타산적인 관계를 초월하여 자기를 희생하였습니다. 은혜 받은 마리아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가장 값진 것을 모두 예수를 위해 썼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인생을 보람 있게 사는 사람은 타산을 초월한 관계 속에서 시간도 물질도 마음도 주며 살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많이 드리고 감사하는 사람. 
이 땅에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운 헌신이 많이 있지만 마리아의 헌신이야말로 참으로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긴 것입니다. 많은 은혜를 받고 많이 드리고 감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나는 작아지고, 내 것은 없어지고, 모든 것이 다 주의 것으로 드릴 것밖에 없습니다. 은혜를 깨닫고 보면 일생 빚진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은혜는 받을수록 삶은 행복하여진다. 
어느 때가 제일 행복합니까?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생각할 때 행복하여지는 것입니다. 똑같은 환경과 현실 속에 산다 할지라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 받아들이면 모든 삶이 다 흑자 인생이 될 것입니다. 

은혜를 받은 자는 겸손하다. 
고침 받은 문둥병자는 예수님께 나와 엎드렸습니다. 은혜 받은 자의 고백은 겸손으로 표현됩니다. 은혜를 받고 보면 나의 나 됨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를 받은 자는 감사한다 
사마리아 성에서 문둥병자 열 명이 다 깨끗함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만이 예수님에게 감사를 고백했습니다. 이 문둥병자는 자기가 받은 은혜를 헛되이 하지 않았습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신앙의 표현이며, 신앙의 아름다운 열매인 것입니다. 한량없는 은혜 가운데 살면서도 항상 우울한 심정으로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 찬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 자는 행복합니다. 

은혜를 받은 자는 자기 할 일을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빚진 자의 심정도 깊어 갈 것입니다. 내가 건강이 있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건강을 주셨습니다. 내가 지혜가 있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도록 지혜를 주셨습니다. 내가 물질이 있어서 바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위해 바치도록 물질을 주셨습니다. 축복의 원리는 분명합니다. 은혜를 고백한 자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있는 자에게 더 있게 하십니다. 감사하는 자에겐 더 감사할 수 있는 조건을 주십니다. 

이것들 중에 놀라운 것은 평안입니다. 은혜가 임하면 모든 두려움, 공포, 불안, 초조, 좌절감, 정신적 질환과 긴장으로부터 해방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은혜로 극복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히4:16과 같이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으려면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즉 은혜를 갈망하고 목말라 하는 사람에게 이런 은혜를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는 것입니다. 모쪼록 우리 영암교회 성도들이 우리 주님을 변함없이 사랑해서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 목회자를 사랑하는 마음, 성도들을 사랑하는 마음,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살았음에, 같이 있음에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이제 여러분이 감사해야 할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십시오. 이해해야 될 사람을 이해하고, 용서해야 될 사람을 용서하고, 덮어 주어야 할 사람은 덮어 주십시오. 

여러분, 상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으시렵니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기도를 해도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5장 24절에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용서하더라도 속으로 용서해야 합니다. 미워했던 사람에게 가서 "그동안 미워했었는데 이제 용서하려고 한다"는 말을 전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기억해 내는 현재도 좋은 것이어야 하고 예측하는 미래도 좋아야 합니다. 자신을 향해, 자식을 향해, 영암교회를 향해, 이 나라와 이 민족을 향해, 이 세계를 향해서 좋은 것을 예측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예측을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줄로 믿고 긍정적인 예측을 해야 합니다. "잘 될 것이다. 잘 된다. 잘 할 것이다. 좋을 것이다. 좋다. 할 수 있다.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좋은 말로 예측하시기 바랍니다.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변함없는 믿음을 가지고 살 때, 여러분의 자녀를 향해, 교회를 향해,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할 때, 그 사랑이 변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함께 임할 줄 믿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 지어다" 그 은혜가 여러분의 삶속에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목회기도> 

좋으신 하나님! 이 복되고 거룩한 주일 교회에 나와 예배드린 모든 심령들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있겠다고 하신 그 은혜가 오늘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들 위에, 저들의 가정과 일터 위에 함께 계셔 주시옵소서. 2004년도 마지막 주일 예배를 드리는 이 시간, 한 해 동안 어려운 일도 많았으나 오늘까지 인도하셨으니 감사합니다. 병상에 누웠던 이들이 있습니다. 죽음 앞에 통곡한 이들이 있습니다. 낭패와 실망 때문에 눈물 흘리고 가슴앓이 한 이들도 있습니다. 한숨 쉬었던 이들 모두에게 은혜와 평강의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금년 중에 출생하여 영암교회에 나와 기도 받은 어린이들과 유아세례 받은 어린이들이 있습니다. 저들이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저들 위에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금년 중에 영암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린 이들의 새로운 가정과, 세례 받은 이들, 영암교회에 등록한 이들… 모두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금년에도 교회에서 땀 흘리고 애쓰며 봉사한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구석구석에서 수고하고 애쓴 이들의 정성이 헛되지 않음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이 시간 우리와 함께 있지 못하고 군대에, 외국에, 객지에 나가 있는 이들, 병상에 누운 환자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저들에게도 우리가 받는 은혜를 함께 누리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믿음이 없어 나오지 못한 이들에게는 믿음을 회복시켜 주셔서 저들도 이 귀한 자리에 참여하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50년 동안 영암교회 복음의 행진을 가능케 해주신 하나님! 금년 한 해 영암교회에 부어주신 엄청난 은혜와 축복을 감사하면서 이 복된 시간 성령께서 주장하여 주셔서 한 해를 은혜롭고 감사한 마음으로 마무리하고 새롭게 허락하실 2005년도를 기쁨과 소망과 믿음으로 설계하면서 시작할 수 있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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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인 작성일

마지막에 남아 있는 것




목사님은 11살 때 공산당에게 붙잡힌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가 고문을 당해 시력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앞이 보이지 않음에도 어려운 집안 생활을 돕기 위해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신문을 돌리고 구두를 닦았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돈을 벌어 어머님께 갖다 드렸는데, 어머님은 먼저 십일조를 떼었습니다. 그러자 소년 윤인수는 어머님께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빠도 죽게 했고, 내 눈도 멀게 했고, 전쟁 통에 피란까지 오게 만들었는데, 뭐가 좋다고 힘들게 번 돈까지 바쳐야 합니까?”
“네 말이 맞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믿음까지 잃어버리면 정말로 모든 걸 잃는 거란다.”
목사님은 어머님의 말을 통해 정말로 힘들 때야 말로 하나님께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점자를 배우고 신학교에 들어가 목사님이 되어 정말로 힘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심어주는 일에 평생을 헌신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잃은 순간에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최후의 순간에도 믿음만은 반드시 잃지 마십시오. 반드시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을 갖게 하소서!
어려움으로 인해 믿음이 흔들렸던 과거를 다시 반복하지 마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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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인 작성일

마지막 남길 말은?

독일의 암 병원에서 일어난 얘기이다.
중년의 한 성도가 수술실에서 혀의 암 때문에 혀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게 됐다.
마취주사를 손에든 의사가 잠시 머뭇거리면서 “마지막 남길 말씀은 없습니까?”
라고 질문했다.혀를 사용해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최후의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간호원,조수,견습의사들도 심각하게 그를 지켜보는 사이 침묵과 긴장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모두 ‘만일 나라면,만일 한마디만 남긴다면 무슨 말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암 환자는 눈물을 흘리며 “주 예수여,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세번 반복하며 마지막
감사의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 감사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신앙고백이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용서받고 새로 태어난 기쁨과 감격을 갖고 있는 사람만이
진정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다.이런 사람은 비록 세상에서 환난을 당해도
살아있음을 노래하며 소망에 찬 삶을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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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인 작성일

마지막 잎새에 건 희망

『마지막 잎새』(The Last Leaf, 1907)라는 오 헨리(O Henry, 1862-1910)의 단편 소설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어떤 화가 지망생 처녀가 폐렴에 걸려 날로 날로 병세가 악화되어 갑니다. 이 사람은 삶을 포기한 채 창밖에 있는 담쟁이 넝쿨의 잎파리만 세면서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는 순간 자신도 죽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화가 지망생이 사는 집 아래층에는 가난한 노인 화가가 어렵게 살고 있습니다. 이 노인은 세계적인 그림을 그려보고 싶은 꿈이 있지만 현실은 너무나 각박합니다. 그저 싸구려 광고물이나 그리면서 겨우 입에 풀칠만 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젊은 화가 지망생 처녀가 어느 날 창문을 바라보니 담쟁이 잎새가 하나만 남아 있습니다. 이 처녀는 이제 저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는 날 나도 죽겠구나 하면서 절망합니다. 그런데 그 이튿날 보니까 그 마지막 잎새가 담벽에 그대로 붙어 있습니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지 않자 이 처녀는 삶에 대한 애착을 다시 가지기 시작합니다. 이 처녀가 그 마지막 잎새 때문에 생명에 대한 애착을 갖기 시작했을 때 병이 나았습니다. 드디어 의사가 이 처녀의 완쾌를 알려주던 날, 그 마지막 잎새는 진짜가 아니라 아래층에 사는 노인 화가가 담장에 그려놓은 그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잎새를 그린 그 노인은 그림을 마친 그 날 밤 폐렴을 얻어서 죽고 말았습니다. 오 헨리가 남긴 대부분의 작품은 마지막 스토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反轉)을 이룬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지막 잎새』도 그렇지 않습니까? 폐렴에 걸려 삶을 포기한 처녀 화가 지망생이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는 날 자기도 죽게 될 것이라고 믿었지요. 그런데 폐렴으로 진짜 죽은 사람은 이 처녀가 아니라 그 처녀를 살리기 위해 정성을 다해 마지막 잎새를 그린 노인 화가였습니다. 자신의 운명을 마지막 잎새 하나에 걸고 있는 처녀를 살리기 위하여 죽을힘을 다해 마지막 잎새를 그린 노인은 되려 폐렴을 얻어 죽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반전입니까? 폐렴에 걸려 죽어가던 여자가 마지막 잎새 하나를 그려놓고 폐렴에 걸려 죽은 노인 때문에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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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인 작성일

마술사의 마지막 훈수

 

 

한 TV 프로그램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어느 청년 엿장수가 있었습니다. 최상의 엿장수가 되기 위해선 뭔가 튀는 실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마술사를 찾아갔습니다. 모진 훈련 끝에 마술을 전수받았습니다. 모든 과정을 마친 날, 마술사 스승은 제자 엿장수를 앉혀 놓고 결정적인 마지막 훈수를 해줬습니다. “네가 즐겁지 않으면 보는 사람도 즐겁지 않다!”

그렇습니다. 내가 먼저 타오르지 않는 한, 남을 타오르게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영혼을 싣지 않는 일에 이웃은 마음을 주지 않습니다. 거울은 먼저 웃어주질 않습니다. 내가 먼저 웃어야 합니다. 가장 감동적인 시는 그 시를 쓴 시인이 먼저 감동 속에서 시를 써야 가능합니다. 가장 능력 있는 설교는 설교자 자신이 먼저 하나님 말씀을 받은 확신과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은 냉랭하면서도 남을 불태우려 한다면 그것은 거짓과 위선입니다. 내가 즐겁지 않으면, 내가 하는 일을 보는 사람도 즐겁지 않습니다.

“시드기야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이끌어 내고 왕궁에서 그에게 비밀히 물어 이르되 여호와께로부터 받은 말씀이 있느냐? 예레미야가 대답하되 있나이다!”(렘 37:17)

/한재욱 목사(서울 강남비전교회),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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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인 작성일

마지막을 아름답게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 종로 경찰서에 신철이라는 형사가 있었습니다. 경찰생활만 10년 동안 해온 그는 일본 경찰들에게 잘 보여 출세하기 위해서 독립운동가들을 수도 없이 체포했습니다. 사람 색출을 귀신같이 잘했던 그는 특히 서울로 숨어들어온 독립 운동가들을 많이 잡아들였습니다. 당시 민족대표 33인은 3월 3일을 맞아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만세운동을 벌여 대한민국의 독립의지를 만방에 알리기로 계획해 놓았습니다. 하지만 신철은 어떻게 알았는지 독립선언서를 인쇄 중이던 인쇄소를 습격했습니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신철이 일본 경찰에 보고를 해 계획이 실패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헌데 거기 있던 최린이라는 사람이 신철과 단 둘이 얘기할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라고는 하나 지금까지 당신은 동포들에게 나쁜 짓을 저질러왔소, 하지만 이번만은 나라를 위해 눈감아주시오. 우리가 만세운동을 성공하고 나면 조국은 곧 독립이 될 것이오. 지금까진 나쁜 짓을 해왔으나 마지막은 명예로워야 하지 않겠소?”

하지만 신철은 아무 대답도 없이 자리를 떠났습니다. 민족대표들은 혹시나 걱정이 되어 당초 예정보다 이른 3월 1일 날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계획을 수정하고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습니다. 결국 3·1 운동은 성공적으로 일어나 전국으로 퍼져가며 독립에 대한 우리민족의 열망을 성공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훗날 조사 결과 신철은 일본 경찰에 만세 운동 이야기를 하지 않은 채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잠적했다고 합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에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이 자유를 위해 목숨 바친 분들의 자손들이 주님을 믿고 큰 복을 받기를 기도하십시오.

* 기도: 주님! 조국의 해방을 위해 힘쓴 분들의 자손이 잘되게 하소서.

* 묵상: 독립운동가의 자손들을 돌아보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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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인님의 댓글

강수인 작성일

마지막 유서




1985년도 8월에 일본에서 여객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4명의 생존자만 있었고 나머지 승객과 승무원을 포함해서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두 사망한 대참사였습니다. 그런데 사고 직후 조사에서 가와쿠치라는 남성이 가족에게 남긴 유서가 적힌 쪽지가 발견되었는데 내용이 일본 전역의 신문에 실려서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세 딸들아,
아빠가 없이도 사이좋게 지내고 엄마를 잘 도와주거라.
아빠는 아마도 무사히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폭발음이 들리고 비행기가 추락하는데 원인을 알려주지 않는구나.
그러고 보니 어제 우리 저녁식사가 가족과 함께한 마지막이 되었다.
여보, 이렇게 돼서 미안해, 아이들을 잘 부탁해.
지금 비행기는 급격하게 추락 중이오.
행복한 인생을 살게 해줘서 모두 고맙고 감사하오.”
어떤 사람은 생의 마지막에 분노를, 또 어떤 사람은 감사를 유서로 남기고 떠납니다. 그러나 가장 값진 유서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최선을 다했다는 사도 바울과 같은 고백입니다.
사명을 삶의 최우선으로 놓는 값진 삶을 사십시오. 반드시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최선을 다하는 사명자의 삶을 살게 하소서!
지금 이 순간, 나의 유서를 작성해보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이렇듯이 우리가 매일 매일 유서를 쓰는 마음으로 살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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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인님의 댓글

강수인 작성일

스마트폰이 생활화된 이후 많은 이들이 시력 저하, 안구 건조증,
조기 노안 등에 시달리며 눈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죠?! 루테인은
 노화로 인해 감소될 수 있는 황반색소밀도(망막의 중앙 및 후면부에
 위치한 황반부에 집중되어 분포한 색소)를 유지시켜 눈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능성 성분입니다.

루테인을 식품으로 섭취할 경우에는 키위, 시금치, 브로콜리, 케일,
옥수수, 오렌지, 당근, 달걀노른자 등에 풍부하며 부족한 부분은 건강
 기능식품을 통해 가능한데 일일 섭취량이 10~20mg이라는 점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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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인님의 댓글

강수인 작성일

정직한 중보기도
오늘은 “정직한 중보기도”라는 내용으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야고보서 5장 16절 말씀에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015년 1월, 당시 8살이었던 찬양사역자
 장종택 목사님의 둘째 딸 온유는 정말 무서운 병을
 만났습니다. 온유는 ‘항NMDA수용성뇌염’이라는
 병에 걸렸습니다.

쓰러져 곧바로 의식을 잃었지요. 중환자실 입원 후,
난소 종양 제거 수술, 혈장 분리수술만 일곱 번,
항암치료도 다섯 번이나 해야 했습니다.
온 몸에 링거 줄을 주렁주렁 달고 누워 지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두 달 동안 무의식으로 죽음 앞에 서 있던 온유가
 고난 주간을 앞두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깨어난 것입니다.
그것도 "예수님, 예수님!"을 외치면서 깨어난 것입니다.

아픈 딸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장 목사님은
SNS에 정직한 중보기도를 요청했던 것입니다.
말 뿐인 기도가 아닌 진심을 담은 중보기도를 부탁했고
 이름도 모르는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딸 온유를 위해 기도해 준 것입니다.

그 수많은 중보자들의 정직한 기도에 치료의 예수님께서
 일하기 시작하심으로 기적적으로 딸 온유가 깨어난
 것입니다. 그것도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말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