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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절의 준비와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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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894회 작성일 17-12-02 22:39

본문

제목: 대강절의 준비와 신비.

교독문: 115. 구주 강림(1). 본문: 눅 1장 26절 ~ 38절. 찬송가: 103. 우리 주님 예수께.

그리스도의 임재

1) 그리스도가 없는 인생은 앙꼬 없는 찜빵이요, 죽음의 광야와 같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죄악이 세상에 들어왔고,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게 되고 저주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8 : 19-21에 기록되었듯이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로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즉 죄로 인해 황폐된 곳은 사람의 심령뿐 아니라. 온 피조물의 세계도 마찬가지여서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남을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광야의 메마른 땅은 메시야가 임하기전의 사회 상황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성령의 임재가 없는 인간의 심령도 메마른 광야와 같습니다.

2) 메시야 통치의 시기가 도래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죄성을 회복시키시기 위해서 독생자를 우리에게 보내시고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마 1:15)고 호소하였습니다. 이제 복음을 믿고 구주의 강림을 준비하는 자는 누구나 죄로부터 해방을 얻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세계를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성경 안에는 영생의 길이 있지만, 유대인들은 그것을 알기만 했지 그 영생의 실체이신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진리의 영은 성령뿐이기에, 성령을 받은 자만이 진리를 알 수 있습니다.

● 아직도 이 땅에는 예수님이 없는 크리스마스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만일 크리스마스를 즐거운 파티 기분으로만 넘긴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탄생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고 나 자신에게도 긍정적인 변화를 주지 못하는 허망한 시간이 되고 말 것입니다. 낮은 데로 오신 그리스도의 성탄 하신 깊고 높은 뜻을 헤아려 그 사랑을 실천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성탄절에 우리 모두의 마음이 작은 구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성탄을 준비하며 기다려야 할까요? 오늘은 교회 절기로 대강 절이 시작되는 주일입니다. 대강 절은 성탄절에서 거슬러 올라가 네 번째 주일부터 시작하여 크리스마스 전야까지 계속되는데 이 절기는‘그리스도가 오셨고 오시고 있고 오실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 ‘대강절'의 어원은 ‘옴, 도착’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에서 유래했으며 직접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오심을 뜻합니다. 우리는 이 대강절을 의미 있게 보냄으로써 성탄절의 실제적인 의미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간절한 기다림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음 이 땅 위에 오신 놀라운 사건을 진정으로 기쁨과 경외감가운데 체험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어떤 마음과 자세로 대강절을 보내야 할지에 대한 깨달음의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전에 무슨 마음을 가지는가? 에 초점을 두는 것이지요. 즉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서 배웁니다.

● 첫째, 대강절을 통하여 나의 삶이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가운데 있음을 감사하며 지내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있음을 더 깊이 깨닫는 시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리아는 정혼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는 결혼을 앞두고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마음이 부풀은 가운데 새로운 미래를 꿈꾸면서 보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납니다. 그리고는 마리아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소식을 전합니다. 그녀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소식입니다. 그런데 천사 가브리엘은 정혼한 처녀 마리아에게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라고 인사했습니다. (28절). 과연 이것이 합당한 인사였을까요? 정혼한 여인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는 소식이 과연 은혜였으며, 평안한 소식이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 때에 항상 풍요롭고 따뜻하며 충만하고 사랑스러운 하나님의 손길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가브리엘 천사의 전한 소식대로 마리아에게 아기가 생길 때에 결과적으로 일어날 일은 간음죄의 누명을 쓰는 일이요. 그렇지 않는다 해도 사람들로부터 수치와 경멸을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두려운 결과들이 기다리고 있을 뿐 어디서도 긍정적인 결과를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것이 은혜일 수 있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정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주목을 받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목하시고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짐으로 확증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마리아는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는 음성을 듣습니다. 거꾸로 생각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것은 하나님의 시선이 머물러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주목하고 계시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처녀가 잉태한 것과 같은 일말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일을 통하여 예수님의 신비한 탄생이 이루어졌고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볼 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의도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신비한 일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선한 이끄심 가운데 아름다운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목을 받으며 계획하심 가운데 이끌림을 받는 인생가운데 하나님의 신비가 드러남을 알게 됩니다. 비록 지금은 이해하기 힘든 상황가운데 있다고 하더라도 그 상황이 하나님의 의도가운데 포함되어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힘들어하거나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기대하는 마음가운데 내 삶에 일어날 일들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 우리가 하나님의 장기적인 인도하심에 이끌리고 있음을 안다면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은혜'가 아닌 일도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하나님의 주목을 받으며 하나님의 의도가운데 살고 있느냐에 있습니다.

처녀가 아이를 잉태 할 수 있느냐는 마리아의 의문에 천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이 아들이라 일컬으리라"(35절) 우리는 대강절을 보내면서 이 한 여인에게 일어난 일을 묵상하는 가운데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신비가 드러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 둘째,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겸손함으로 당신을 맞을 준비를 하기 원하십니다.

대강 절의 신비는 하나님께서 한 가난하고 이름 없는 여인을 찾아오셨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녀를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실 이를 이 땅에 보내시기로 계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큰일을 이루시기 위해 한 작은 일부터 시작하셨습니다. 그것은 한 작고 보잘 것 없는 자를 찾아오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겸손하게 우리를 먼저 찾아 오셨습니다.

● 우리도 모두 하나님 앞에서 작고 보잘 것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누구도 가리지 않고 찾아오십니다. 문제는 우리 가운데 찾아오신 주님을 우리가 어떠한 마음과 태도로 맞이하느냐에 있습니다. 주님은 겸손하게 누추한 우리를 찾아오셨지만 우리는 그 분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나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며 살아갑니까? 마리아는 하나님께 자신을 맡겼습니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38절). 마리아는 두려움이 있을 것인데 불평이 아닌, 겸손함으로 자신을 열어드렸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신비를 경험할 수 있는 비결은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가운데 겸손하게 기다리는 것입니다.

● 야고보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약 4:6)고 말입니다. 교만한 자는 누구인가요? 하나님을 가르치려는 자, 불평과 불순종 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자발적인 겸손은 자기 비하도 아니고 실망도 아니며 약점의 노출도 아닙니다. 도리어 하나님께로 나아가며 구하는 순종의 길입니다. 허식이나 자존심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면 진정한 겸손이 아닙니다. 우리는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며 겸손의 실천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 어느 날 성자 프란시스코에게 한 사람이 찾아와서 이렇게 질문했다고 합니다. “선생님! 선생님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분입니다. 선생님을 만나기만 하면 사람들이 변하는데 그 놀라운 사역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프란시스코는 조용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어느 날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많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 이 땅에서 가장 연약하고 가장 무지하며 가장 미련한 한 사람을 보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저 사람이다. 저 사람을 통해서 내 강함과 지혜로움과 능력을 나타내리라’ 그것이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신 이유의 전부입니다”

하나님의 선택 기준은 때때로 인간의 선택 기준과 다릅니다. 세상 적인 조건이 전혀 구비되지 않은 사람이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감당할 때 사람들은 그 사람 속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을 목격하고 놀라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을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린도전서 2:28∼29) 그리고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마리아의 겸손함의 다른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마리아의 자기 부인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을 부인할 줄 알았습니다. 자신이 잉태할 것이라는 뜻밖의 선포에 그는 대들거나 따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는 마리아의 고백 가운데서 자기 부인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기를 부인할 줄 아는 자를 통해 일하십니다.

● 어느 추운 겨울 날 새벽 3시였습니다. 한 선교 후보생이 선교사 파송 위원회 검정위원의 집 현관에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그를 오라고 했던 검정위원 목사님은 아침 8시가 되어서야 나타나서 일련의 질문을 했습니다. '글을 읽고 쓸 줄 아는가?' '예, 목사님'. '좋아요. 그럼 Baker(제빵사)의 철자를 맞춰 보게나'. 'BAKER'. '그럼, 2×2는 몇이 되는지 알고 있나?' '넷입니다'. 면접은 이로써 끝났고 검정위원은 만족한 듯 미소를 띄우며 말했습니다. '훌륭합니다. 당신은 합격할 것이오. 내일 위원회로 나오십시오.'. 이튿날 그 검정위원은 선교사 후보생을 다음과 같이 추천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를 부인할 줄 압니다. 추위에도, 푸대접에도, 어떤 멸시에도 참아내는 겸손한 일꾼입니다', 사랑은 더러 바보스럽다.

마리아가 만일 자신을 주장하고, 자신의 뜻대로 할 마음만 먹고 있다면,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거부하고 반항했다면, 하나님께서는 구태여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님을 보내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겸손과 자기부인 이것은 하나님의 강림의 모습이자 의미이고 또한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그분을 맞이하는 우리의 모습이어야 할 줄로 압니다. 우리의 모습 속에서 주님의 오심은 그 신비가 더 분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 셋째, 하나님의 평안이 여러분의 마음과 삶을 지배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마리아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녀의 마음에 평강으로 화답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평강이 임했기에 마리아가 그 모든 일의 결과를 담대히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행동할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께 드린 기도의 응답을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성경 적인 표적은 '하나님의 평강'이 마음에 자리 잡는 것입니다. 이미 가브리엘이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라고 말했을 때 이 말 안에는 기도의 내용과 기도의 응답이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기에서 기도의 내용이라 함은 천사의 말을 통해 전한 하나님의 은혜요 기도의 응답이라 함은 평안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가운데 있는 은혜를 받게 될 때 평안은 그 응답으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말씀을 받는 우리가 얼마나 믿음으로 그 말씀에 합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합할 수 있는 토대가 37절에 나와 있습니다. 즉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친히 성취해 가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덮으셔서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 가시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이 우리를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해 가신다는 사실을 암시해 줍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은혜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일어날 앞으로의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친히 이끌어 가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마음은 주께서 주시는 평안으로 가득 찼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하나님께서 친히 그 말씀을 성취하실 것을 믿으며 말씀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게 될 때 우리는 진정한 평안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말씀으로 찾아오시는 주님의 음성 안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있음을 알아야겠습니다. 대강절의 신비는 바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친히 이루어 가심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데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알린 이 소식이 항상 그리고 특별히 이 대강절 기간에 우리 마음가운데 울려 퍼지길 바랍니다.

대강절 주요 행사

프로그램대강절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준비 기간이며 그 절정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인 만큼 대강절 기간은 들뜨지 않고 경건한 가운데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한다. 대강절 행사는 대부분 곧 이어질 성탄절 행사의 일환으로 행해진다. 여기서는 대강절 교유의 행사만을 살펴보고자 한다.

(1) 대강절 주일 예배대강절 기간에는 네 번의 주일이 있다.

주님의 오심을 예비하는 이 네 번의 주일 예배는 각기 다른 개회 성구가 낭독된다.(첫째 주일 슥 :9:9, 둘째 주일 눅21:28, 셋째 주일 사 40:3,10, 넷째 주일 눅 1:46,47). 이러한 예배 의식을 통해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시며, 우리는 왜 그분의 오심을 기다려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자녀들과 예배에 함께 참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자녀들에게 잊혀 지기 쉬운 대강절의 의미들을 설명해 준다. 이때 화환과 촛불을 사용하여 예배를 드린다면 더욱 기억에 남는 대강절 예배가 될 것이다.

(2) 촛불 예배. 빛은 세상을 밝히는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지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며 이교의 어둠을 내쫓는 그리스도인의 기쁨을 상징하기도 한다.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그리스도를 기념하기 위한 촛불 예배는 주로 성탄 전야에 행해진다. 촛불 예배로 가장 인상적인 것은 1974년 행해진 펜실바니아 주에 있는 중앙 모라비안 교회의 촛불 예배로 웅장하고 장엄함 오르간과 오케스트라의 연주 속에 성탄절 이야기 낭독과 기도, 축가 등이 행해졌다. 각 교회에서 진행되는 촛불 예배도 경건한 마음으로 주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는 가운데 드려진다면, 비록 웅장한 규모의 촛불 예배는 아닐지라도 그리스도 앞에서 우리를 돌아보는 의미 있는 촛불 예배가 될 것이다.

(3) 대강절 찬송 부르기. 성탄을 즈음하여 캐롤이 불리워지기는 하나, 대강절 기간에는 주의 오심을 기다리는 경건한 마음으로 주의 강림에 관한 찬송을 부르도록 한다. 대강절에 자주 불리는 찬송으로는 12,13세기에 만들어진 '임마누엘 오소서' 등이 있으며, 칸타타로는 '크리스마스 이야기' 등이 있다.

(4) 성경 읽기 대강절이란 절기는 곧이어 올 화려한 성탄절 때문에 그 의미가 가리워지기 쉽다. 그러므로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메시야에 대해 예언하고 있는 성서 구절들을 읽고 이에 관련된 성경 공부를 함으로 그 의미를 묵상하는 것이 좋다. 이러한 기회를 통해 그동안 궁금했던 문제들을 질문할 수 있도록 하여 보다 심도 있는 성경 공부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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