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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주일]하나님 앞에서 성경대로 살라 (살전 1:2-8, 딤후 3: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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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1,009회 작성일 17-12-08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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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님 앞에서 성경대로 살라

성경 : 살전 1:2-8, 딤후 3:16-17

찬송 : 84장, 205장

 

교회의 좋은 소문은 오직 복음이어야 하고 복음으로 인한 모든 것이어야 합니다. 바울이 교회들에게 전한 복음이 무엇입니까? 많은 교회 중에서도 데살로니가 교회를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과 관련된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문들을 묵상하기 위하여 먼저 다시 복음을 함께 정리하고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평생 고백하고 구하며 자랑하고 전하고 감사해야 할 복음을 함께 먼저 나누길 원합니다.

 

1. 세 가지 복음은? 복음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성경이 복음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성취 그리고 효과적 적용 일체를 기록한 성경이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택한 백성들에게 구원의 길을 완전하게 알려주기 위하여 주신 계시가 특별계시입니다. 그 특별계시는 일반계시로서는 도달할 수 없는 구원을 특별히 알려주는 진리의 내용들입니다. 그 구원에 관한 특별계시를 기록하여 주신 것이 성경입니다. 따라서 성경만이 하나님께서 세상 속에 기록으로 주신 유일한 구원의 말씀 곧 복된 소식인 복음입니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입니다.

복음인 성경의 주인공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특별계시로 주신 진리의 성경은 삼위일 체 하나님의 구속사역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데, 인간 구원과 관련하여 성부 하나님은 계획하시고, 성자 하나님은 성육신하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그 계획을 이루셨으며, 성령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신 구속의 진리를 택함 받은 각 성도들에게 효과적으로 적용하심을 증거합니다. 즉 성경은 이러한 성부 하나님의 구속 계획과 성령 하나님의 효과적인 적용하심을 십자가 구속의 성취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완전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구약성경은 구원자로 오실 예수님을 예언하고 있으며, 신약성경은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과 승천하신 이후에 다시 오실 예수님을 완전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본체로서 그분과 동등하시며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택한 백성 곧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원하여 하늘의 영광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이 복된 소식, 복음입니다. 그리고 택한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성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어 완전하신 하나님이심에도 완전한 사람으로서 나사렛 예수라는 신분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것이 복된 소식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사시는 동안 택한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율법에 온전하게 복종하셨고 우리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의의 요구를 충족시키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진노를 감당하셨으며 죽은 지 사흘 후에 다시 사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할렐루야! 부활은 성부 하나님이 성자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속죄의 희생으로 받으셨음을 선포하는 사건입니다. 이 얼마나 복된 소식입니까? 또한 부활하시고 40일 후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 오르시어 성부의 우편에 앉으셨고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와 영광과 존귀를 얻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성부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포함하여 모든 자기 백성을 위하여 간구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자신의 죄와 부패함, 무능함을 인정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모든 사람을 용서하시며 의롭게 여기시고 자신과 화목하게 하심으로 자녀 삼아 주십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복된 소식 곧 복음입니다.

 

2. 복음의 좋은 소문

 

오늘 이 시대에 교회가 내야 할 좋은 소문은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오직 복음과 복음으로 인하여 주어지는 주님의 삼중의 은혜, 곧 믿음, 사랑, 소망에 관한 것이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서 바울이 지적한 대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나던 복음의 좋은 소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그 소문이 우리와 우리 교회에서도 나기를 축복합니다.

 

첫째로 교회는 행동하는 믿음으로 소문이 나야 합니다(살전 1:3a).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역사’로 소문나 있었는데, 여기서 믿음의 역사란 ‘행동하는 믿음’을 가리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확신에 기초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위대한 선물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관념이 아니라 바울이 갈라디아서 5장 6절에서도 강조한 것처럼 그 자체가 행위로 나타납니다. 믿음이 있다면 주님을 향한 헌신의 행위, 말씀을 실천하는 행위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믿을 때 그에게 말하고, 그를 위해 일하고, 그에게 주거나 빌려주기도 합니다. 믿으면 행동합니다. 주님을 향한 진실한 행동은 믿음 자체를 보여줍니다.

 

무엇보다도 행동하는 믿음은 예배 행위로 표현됩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고백을 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일주일간 힘써 일하고 쉬어야 할 시간에 주님께 감사해서 주일 아침 예배에 나오는 것, 그것이 믿음이며 믿음의 표현이고 행동하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소문난 교회와 소문나지 않은 교회의 차이 중 하나가 예배에 대한 열정과 참여의 차이입니다.

 

예배는 행동하는 믿음의 가장 중요한 실제입니다. 행동하는 믿음으로 소문난 교회는 한결 같이 준비된 예배 시간에 성도들이 자기 가족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까지 초대하여 예배 실을 가득 채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 혼자만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예배에 초대하기 위해 정열적인 노력을 다합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았음을 믿는 믿음은 ‘증거’, ‘전도’, ‘예수님 자랑’이라는 행동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사실 전도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는 것이며, 그 고백으로 다른 이들도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며 믿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행동하는 믿음은 예수님을 자랑해야겠다는 고민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복음 전도의 사람으로 그리고 전도자가 되기를 소원하는 기도자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로 교회는 수고하는 사랑으로 소문이 나야 합니다(살전 1:3b).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랑의 수고’로 소문이 났는데, 이는 사랑을 하되 ‘수고하는 사랑’을 했다는 말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인하여 갖게 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계속되는 특별한 관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받은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의 사랑의 관계를 감사와 헌신으로 표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합니다. 무관심 속에서는 관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갖게 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곧 사랑을 유지하고 풍성하게하기 위해서는 수고가 뒤따라야 합니다. 그 수고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하나님의 뜻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서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는 것을 지적하면서 하나님께 충성하는 수고자들의 모습을 성령의 열매로 말씀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함으로써 다양한 섬김을 나타내야 합니다.

 

본문 말씀의 수고하는 사랑에서 ‘수고’라는 말은 ‘자르는 것’, ‘채찍으로 때림의 고통’, ‘아픔 중에 애쓰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고난과 고통이 있을지라도 그것을 감수하면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며, 교회에서 봉사하고, 성도들을 사랑하는 것이 수고하는 사랑입니다. 육체의 현저한 일들로 인하여 가정이 깨어지는 이 시대에 말씀으로 가정을 지키는 일과 기도로 교회와 교회의 연약한 성도들을 위해 축복하는 일도 수고하는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수고하는 사랑은 삶 속에서 대화로 나타납니다. 힘들지만 함께 믿음의 대화를 나눌 때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함께 모여 기도하면서 문제를 풀어갈 때 진정한 사랑의 꽃이 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인내하는 소망으로 소문이 나야 합니다(살전 1:3c).

데살로니가 교회는 ‘소망의 인내’로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여기서 소망의 인내란 소망을 붙들되 상황이 안 좋고 어려울 때 도 인내하며 ‘소망을 버리지 않고 품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소망이란 구원의 소망을 의미하는데,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빌립보서 1장 6절 말씀대로 그 구원을 온전히 이루실 것을 확신하고 바라는 것입니다. 이 구원의 소망은 하나님이 이미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5장 2절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에서는 사랑을 마지막으로 강조한 것(고전 13:13)과 달리, 여기에서는 소망을 마지막에 둔 것은 데살로니가전서가 종말론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소망은 종말론적이기에 결국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시고 승리하신다는 확신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좋은 소문으로 일어나는 소망은 목숨 걸고 인내하는 소망입니다. 인내하는 소망은 비굴하거나 상황에 따라서 변하는 소망이 아닙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리스도인의 자존심을 지키는 소망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존심이 있어야 합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어디에서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존심을 지키는 사람과 그 교회는 좋은 소문이 나게 됩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리는 이 세상 삶으로 끝나는 인생이 아니라 장차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존심을 가지고 소망의 삶을 사는 자는 세상의 물질에 유혹당하지 않고 세상의 관계 유지에 매이지 않으며 담대합니다.

 

3. 성경대로 살라

 

그러면 어떻게 이러한 소문이 나는 교회요 성도가 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이러한 좋은 소문이 나려면 항상 ‘신전의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말씀대로-성경대로’ 살아야 합니다.

칼빈은 종교개혁을 주도하면서 철저하게 삶의 모토로 삼은 것이 ‘하나님 앞에서’와 ‘성경대로’였습니다. 칼빈이 그의 종교개혁운동과 그의 글들 그리고 실천적 삶을 통해서 모든 자들에게 위대한 인물로 소문이 날 수 있었던 것은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성경대로’라는 신앙의식과 삶의 태도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내가 서 있다는 고백을 하며 말씀대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모든 사람들과 대화하며 하나님과 이웃을 섬길 때 행동하는 믿음, 수고하는 사랑, 인내하는 소망이라는 좋은 소문이 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인식할 때든 하지 못할 때든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 앞에서 우리는 말씀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그때 소문은 저절로 나게 됩니다. 소문은 내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을 향한 교회의 힘이 됩니다.

 

이제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2017년 이후로 항상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우리 교회와 한국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성경대로 살면서 오직 복음과 복음에 기초한 행동하는 믿음으로, 수고하는 사랑으로, 인내하는 소망으로 지역사회와 조국 땅과 세계 곳곳에 소문나길 기도합니다.

 

문) 은혜 언약의 중보는 누구신가?

답) 은혜 언약의 유일한 중보는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 그는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시며 성 부 하나님과 한 실체이시요, 동등이시며 때가 차매 사람이 되셨으나 계속하여 영원히 전연 판이한 양성을 가지신 한 위 하나님이시요 사람이시다.(대요리문답 제36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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