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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주일]살아있는 말씀 (히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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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547회 작성일 17-12-08 15:08

본문

살아있는 말씀(성서주일) 

히브리서 4:12

오늘은 세계 교회가 함께 만국성서주일로 지킵니다. 

독일의 신학자 본 회퍼는 그의 저서“윤리”가운데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좋은 말씀도 아니고, 옳은 말씀도 아니고, 아름다운 말씀도 아니고, 재미있는 말씀도 아니다. 이것은 살아있는 말씀이다”고 했습니다. 오늘 택한 본문은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例: 어떤 신학생이 새벽기도회에 갔다 와 기숙사에서 성경을 큰소리로 읽었다. 물론 같이 있는 기숙사생들에게 방해가 된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야고보서를 읽다가 성경을 덮으며 무릎을 탁 치며 하는 말이“참 잘 썼다”라고 했다.

여러분은 성경 말씀을 읽고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참 잘 썼다고 받아들이는가? 옳은 말씀으로 받아들이는가? 좋은 말씀으로 받아들이는가? 아니면 참 귀한 말씀으로 보는가? 이상과 같은 자세로 성경을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니다.“성경은 살아있는 말씀이다”“바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이렇게 내 마음 속에 다가올 때부터 나는 그리스도인이 된다.

우리가 잘 아는 신학자 칼 발트의 신학의 주제는「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 하신다」 이다. 그의 저서엔 이 말이 수없이 반복되어 나온다. 여기서 말씀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요한복음 1: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했다. 즉 예수 그리스도, 살아있는 그리스도 그가 바로 말씀이다. 이것이 첫째다. 둘째는 케리그마다. 이는 초대교회시절 제자들을 통해 선포된 말씀을 말한다. 기독교의 특징이 바로 여기에 있다. 어느 누가 깨달은 진리가 아니다. 경험한 바를 증거 한다. 말씀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증거하는 것이다. 주께서 보이시고 주께서 행하시고, 주께서 죽으시고, 주께서 부활하신 것은 제자들이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귀로 듣는다. 몸소 체험한 것이다. 그 체험한 바를 순교적인 생활을 통해 그대로 증거 한다. 그 증거 되는 내용이 케리그마 다. 셋째

는 기록이다. 증거 되는 내용이 기록된다. 기록된 계시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칼 발트 曰“하나님의 말씀이 성경 안에서 우리를 기다린다”고 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이란 개념이 아주 중요하다. 육신으로 나타났고, 선포되었고, 성경 안에서 오늘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살아서 역사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증거다.

例: 한 젊은이가 성경을 하도 열심히 보고 있기에 좀 유식하다고 자처하는 젊은이가 빈정거 리며 묻는다.“당신이 뭘 안다고 성경을 그렇게 열심히 보는가?”“영감된 하나님의 말 씀이기 때문이요”“그래? 그러면 그 책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임을 아는가?”“내가 성경을 읽어가는 동안 성경이 나에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요”라고 아주 간단하게 대답 했다. 여러분! 성경 그 자체가 읽는 그 사람에게 호소하고 있을 때 그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例: 영국의 유명한 저널리스트가 국회의원, 변호사, 의사, 교수 등 소위 지성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다. “당신이 만약 3년 동안 감옥에 갈 일이 있다면 가지고 가 읽고 싶은 책이 있다면 세 권만 소개하라 했더니 응답자의 98%가 제일 먼저 성경을 꼽았다고 한다.

여러분은 지금 감옥에 간다 할 때 무슨 책을 읽어야겠는가? 성경밖에 없다.

例: 92 세에 돌아가신 어느 老의사의 말이다. 그는 평생 과묵한 성품으로 많은 책을 읽어 왔는데 노년에는 시골로 낙향해 무의촌에서 봉사하며 여생을 보냈는데 어느 날 그를 방 문한 조카가 삼촌 그 많던 책은 다 어떻게 하고 진찰대 위에 큼직한 성경책 한 권만 놓여있느나“고 물었더니 曰”나이 여든이 넘으니 이제는 어떤 책도 필요가 없구나. 신문을 읽거나 뉴스를 들을 필요도 없다. 이제 내가 읽어야할 책은 오직 성경뿐이다“고.

그렇다. 여러분! 나이 쉰이 넘은 분들은 생각을 바로 해야 한다. 이 책 저책 읽어 봤댔자 기억에 남지도 않는다. 이제 내가 읽어야할 책은 오로지 성경뿐이다. 그러기에 오늘 베델 회원 중 60 이 넘은 이가 성경암송.

우리교회 주보에 실린 성경교실을 공부하는 어떤 교우가 간증을 답안지에 이렇게 적었다.

“목사님! 저는 출애굽기를 공부하여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믿음직하고 넓으신 주님의 품에 인류를 품으시는 영광을 역력히 보고, 친히 나도 만나 뵈옵는듯 한 감회를, 성령이 나의 마음속에, 나의 영적시야에 T.V. 영상을 보듯 나타내 보이시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를 공부케해주신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왜 이런 고백이 나오는가? 살아있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여러분! 이제 내가 읽어야 할 책, 가까이 해야 할 책은 오직 성경뿐이다. 왜? 혹 내 기억이 희미해질 때에라도 하나님의 말씀만은 반드시 생각이 나야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내 운명을 걸고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성경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① 먼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다고 했다.

살아있는 말씀이다. 글 자체가 살아있다. 죽은 글이 아니다. 살아있는 글이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시고, 성령이 살아 역사하시고, 성경이 살아 역사하신다. 항상 현재적으로 생명적으로 역사하는 것이 성경이다. 오늘도 살아서 내게 말씀하신다. 누구에게나 개별적으로 현재적으로 말씀하는 것이 성경의 특징이다. 우리가 읽는 것은 비록 아브라함의 이야기지만 그 이야기를 통해 내게 말씀하시는 바가 있다. 2 천 년 전의 사건이지만 마음 문을 열고 기도하면 읽는 사람의 마음속에 언제나 현재적으로 말씀하신다. 선포된 말씀, 기록된 말씀이 살아서 역사한다는 것을 우리가 체험하게 된다. 또한 이 말씀은 살리시는 능력을 가지고 역사한다.

② 그리고 말씀은 운동력이 있다.

살아서 역사할 뿐더러 살리시고 성장케 하시고 승리케 하신다. 생명은 언제나 사망과 더불어 싸운다. 오늘도 우리는 음식을 먹는다. 모든 음식엔 다 독소가 들어있다. 모름지기 내게 그 독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그 음식이 내게 유익하게 된다.

例: 의사들에 의하면 우리 몸을 흐르고 있는 피 속엔 끊임없이 싸움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 다. 몸에 해로운 병균이 들어왔을 때, 임파구가 나서서 싸워 이겨야한다는 것이다. 이 백혈구가 이기지 못하고 지고 말면 병에 걸리고 마지막엔 죽고 만다는 것이다.

 

이처럼 생명은 사망과 더불어 끊임없이 싸운다. 이 전쟁은 어디서나 계속되고 있다. 우리의 영혼은 죄와 싸우고, 불신앙과 싸우고, 절망과 싸운다. 생명의 말씀이 공급되지 않으면 이길 수가 없다. 여러분! 허망해져 본 적이 있는가? 해선 안 될 말을 한 적이 있는가? 깜짝 놀랄 행동을 했는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그 이유는 내 입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 때문이며, 내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리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며, 인간 지식이나 내 의지를 따랐기 때문이다. 내 입이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내 눈이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초점을 맞추고, 내 마음에 항상 하나님의 말씀이 계셔서 내 마음을 주관하고 계실 때에만 죄를 이기고, 나를 이기고, 세상을 이길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악령의 역사를 이길 수 있다.

③ 말씀은 심판하는 능력이 있다.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모든 것을 딱 자르고 분석한다. 신학적으로 분석하여 우리 영혼의 그릇됨을 예리하게 잘라낸다. 거짓된 위선, 율법주의, 가장된 바리새주의, 그릇된 심령을 강하게 비판해버린다. 또한 외과의사와도 같이 우리의 육체와 관절과 골수도 찔러서 해부해버린다. 사실 말씀에 강한 은혜를 받아 병든 사람이 건강해지고, 육체가 새롭게 되는 체험을 우리는 많이 겪고, 보고 있지 않는가? 심리학적으로도 우리의 마음을 비판하자 마음과 생각을 감찰하신다. 우리의 감정을 날카롭게 비판해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치유하자.

본문 13 끝“들어나느니라”는 말씀이 있다. 들어난다는 말은 헬라 원문대로 보면“짐승의 가죽을 벗기듯”이란 뜻이 된다. 짐승의 가죽을 벗기는 것처럼 우리의 모든 더러운 것을 다 벗겨버려 하나님 앞에 벌개 벗은 모습으로 드러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성경이다. 성경을 읽는 동안엔 교반한 사람이 없다. 누구든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다. 죄인 아닌 사람도 없다. 그러므로 누구도 비판할 수도, 사랑하지 아니할 수도 없다. 오직 십자가 그 사랑에만 의존하게 된다. 그릇된 사상이 얼마나 잘못 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우리는 오늘도 악한 사람과 폭력을 숱하게 보면서“사람이 저럴 수가 있을까”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있을 때에는 충분히 그렇게 되는 것이다.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철학,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사회학,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인간학이 사람을 이토록 무섭게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 없는 도덕이란 아무 소용이 없다. 말씀만이 문제의 해결이다. 말씀만이 구원의 길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말씀만이 죄를 깨우치며, 영혼을 변화시키며, 양심을 밝게 하며, 이성을 깨끗케 만들며, 몸도 사회도 바르게 개혁해나갈 수가 있다. 이를 가리켜 “뉴. 휴머니제이션”즉 새로운 인간화 운동이라고 한다. 이는 오직 복음 안에서 이루어지고, 말씀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오늘 본문 14“굳게 잡을찌어다”했다. 말씀은 자유하다. 디모데후서 2:9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 하니라”함과 같이 살아서 역사한다. 흔히 교회개혁에서 두 기둥을 꼽는데 하나는 어거스틴 이며 또 다른 하나는 마틴. 루터다. 어거스틴은 방탕생활을 하던 중 로마서13:12“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이 말씀에서 거꾸러진다. 마틴 루터는 로마서 1:17“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한 이 말씀을 수 없이 읽었으나 어느 날 마음속에 강하게 역사하여 거꾸러졌다. 

結論: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만국성서주일을 맞아 우리는 말씀에 기회를 줘야한다.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영접하고,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을 섬겨야 우리가 세상을 떠나는 바로 그 순간에도 말씀이 우리를 주님 앞으로 인도해주실 것을 믿고 살아있는 말씀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기 바란다.

찬송 199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해어졌으나

     209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생명의 말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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