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된 신앙을 위한 투쟁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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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17)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납니다. 이일은 오로지 믿음에 근거하여 일어납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한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한 것과 같습니다.“ [표준새번역]
우리 신앙고백과 영성
우리 빈들공동체는 지난 26년 전 <세상에 수많은 교회 가운데 또 하나의 교회가 아닌 새로운 교회>가 되게 하자는 고백으로 출발했습니다. 빈들공동체가 창립예배를 드릴 당시까지만 해도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오늘 이 정도까지는 비난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빈들공동체 창립예배를 준비하던 초기 교우들은 한국의 주류교회를 보면서-교회가 저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는 군부독재독재시절이었습니다. 많은 교회들은 군사독재권력을 향해 침묵하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엄혹한 시기에 교회를 창립하면서-앞으로 우리가 함께 할 이 교회는 어떤 신앙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인지 스스로 질문했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자기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교회-어두운 세상 희망의 불을 밝히지 못하는 교회-이웃의 아픔을 보듬기 위하여 가슴을 열지 못하는 교회-적어도 우리가 새롭게 시작하는 교회는 이런 교회가 되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창립하면서 빈들공동체는 불의한 세상과 권력을 향해서, 그리고 무사안일해져가는 교회를 향하여, 무관심과 타성에 젖은 우리 자신을 향해서 <빈들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그 사명을 다하겠다는 고백으로 세상에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26년이 지났습니다.
빈들공동체는 절실하게 <빈들의 소리>가 필요했을 때 온 힘을 다해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해왔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는 과거와 같은 <빈들의 소리>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시대가 변한 탓입니다. 군사독재시대가 끝나고 민주시대가 왔습니다. 그래서 창립20주년이 되면서 시대에 맞게 새롭게 빈들공동체 신앙고백문을 손질했습니다. <생명살림과 화해와 평화>를 우리 선교의 방향으로 삼고-<빈들의 소리>는 그 내용 가운데 하나로 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세상의 수많은 교회 가운데 또 하나의 교회가 아닌 새로운 교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애쓰고 수고한 것 보다 더 많은 걸 우리에게 주셨을까? 이런 성전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을 거라고 상상조차 못해온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어찌하여 이런 좋은 성전을 주셨을까? 기드온의 300용사라는 부흥의 비전에는 당신의 섭리가 어떻게 거기 깃들어 있을까? 저는 빈들공동체 창립교인이고, 또 담임목사로써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이 축복들에 대해서 많은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저의 모든 질문들을 다 아우르는 하나의 해답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받은 많은 축복은 때가 언제인지 모르나-빛을 잃어가는 한국교회를 다시 거룩하고 순결하게 개혁하는 하나님의 사역에 우리를 쓰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루터 종교개혁
오늘은 494주년 종교개혁주일예배로 드립니다.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그 대학의 신학교수였던 마틴 루터는 '95개조 반박문' 대자보를 비텐베르그 성당의 정문 벽에 붙여 부패한 교회를 비판합니다. 이렇게 출발한 종교개혁의 기폭제는 면죄부였습니다. 당시 교회는 죄인들에게 죄를 고백하는 고해성사를 철저히 의무화시켰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제를 찾아가 고해성사를 합니다. 그러면 고해성사를 받은 사제가 그 당사자의 죄를 보속-죄짐을 벗겨주는 선행이나 고행-하기 위한 과제를 내줍니다. 그러나 보속행위도 사람들에게 온전한 참회가 되기에 부족했습니다. 교리적으로-누구든지 영세를 받았으면, 지옥에는 가지 않지만 대부분은 괴롬과 고통이 많은 연옥으로 가게 됩니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이 연옥에 대한 공포가 얼마나 컸던지-경건한 사람일지라도 값비싼 면죄부를 사지 않고 배겨낼 도리가 없었다고 합니다.
면죄부의 폐단이 극에 이른 것은-‘95개조 반박문'이 나붙기 4년 전-1513년 교황의 자리에 오른 레오 10세 때였습니다. 레오10세가 교황대관식을 마친 이후에 <산 조반니 인 라테라 대성당>으로 행차하며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 부었습니다.
여기에 지출한 돈은 전임교황 율리오 2세가 남기고 간 교황청 재산의 4분의 1가량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치는 그의 재위 기간 내내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레오 10세의 무분별한 사치로 교황청의 재정은 고갈이 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레오 10세는 성직을 매매하고 면죄부를 발행합니다. 이 면죄부가 루터개혁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비텐베르크 성당문에 붙였던 <‘95개조 반박문’>이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이 대자보를 부치고 난 다음 몇 년 뒤-1521년 1월3일 루터는 파문을 당합니다. 파문을 받은 루터를 심문하기 위해 1521년 보름스(Worms) 종교재판에서 루터는-<성경의 증거와 명백한 이성에 비추어 나의 유죄가 증명되지 않는 이상 나는 교황들과 공의회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겠다>-며 맞섭니다. 보름스 종교재판에서 루터는 <내가 여기에 섰나이다. 나는 달리 할 수 없나이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아멘.>이라는 기도를 남깁니다. 지금도 루터가 생존했던 집에는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곳에 그리스도가 계시니라.>는 경구가 붙어 있다고 합니다.
개혁신앙-오직 믿음 / 오직 은혜 / 오직 성경
종교개혁은 부패한 제도교회의 왜곡된 교리에 철퇴를 가했지만 결론은 신앙과 영성의 개혁이었습니다. 루터는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서 면죄부를 사야하고-면죄를 사기 위해서는 돈을 마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가르치는 교회에 대항해서 ‘아니요!’라고 외쳤습니다. 구원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흘린 보혈의 공로요-구속의 은총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 개혁신앙이었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오직 믿음(sola Fide)으로-오직 은혜로(sola Gratia)로 구원을 받는다는 구원의 진리를 분명하게 세웠습니다. 여기에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가 더해져 개혁신앙의 세 기둥이 세워졌습니다.
? <오직 믿음으로>
믿음은 맡기고 살아가게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주님을 의지하고 기대게 합니다. 인생의 문제를 자꾸 생각하면 근심이 생기지만-주님을 자주 생각하면 인생문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힘이 생깁니다. 주님 사랑과 구속의 은총을 자주 생각하며-주님께 나를 맡기고 살아가는 삶이 믿음입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면서 교황과 공의회의 권위에 맞설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믿음으로> 자신을 주님께 맡겼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 <오직 은혜로>
구원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사람의 공로보다 새롭게 강조되고-신앙의 근본을 말씀에 세운 건 종교개혁의 위대한 공로입니다. 전적으로 타락한 우리는 주님 앞으로 감히 나아갈 수조차 없는 존재였습니다. 오직 은혜로 우리가 구원에 이르게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오직 성경으로>
루터 종교개혁이 우리 신앙과 영성생활에 미친 가장 지대한 공헌은 단연 <성경>입니다. 당시에는 보통사람들은 성경을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독점적으로 읽을 수 있는 구별된 소수가 존재하고 있었으니-그들이 바로 사제들이었습니다. 성경은 사제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사제들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말씀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는 ‘어떤 이유-어떤 이름’으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독점적으로 읽을 수 있는 구별된 소수>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성경을 독점하고 있던 사제들에 대항하여 <만인사제론>을 주창합니다. 루터의 <만인사제론>으로 우리 신앙과 영성생활은 그 누구의 도움 없이도 직접 말씀을 통하여 주님과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루터는 종교개혁 이후에-라틴어로만 읽던 성경을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독일어로 번역하였습니다. 종교개혁의 신앙과 영성 가운데 한축인 <오직 성경으로>는 세계 각국이 자기 나라 말로 성경을 번역하여 읽을 수 있게 했습니다. 루터 종교개혁이 남긴 지대한 공헌입니다.
성경말씀이 우리 신앙의 기준이 되게 한 것은 오늘 날까지 계속 이어져오는 루터 종교개혁의 아름다운 결실입니다. 루터를 포함하여-루터 이후의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을 일반 대중의 언어로 바꾸고,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었습니다. 종교개혁은 인류의 역사에 실현된 하나님 구원의 영적인 혁명이었습니다.
말씀 선포와 교회를 통한 양육
교회는 종교개혁 이후에 나타난 두 가지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 선포>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교회를 통한 양육>입니다. 특별히 말씀의 선포-즉 설교는 교회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 말씀선포(설교)
교회가 제정한 교리를 지키는 것이 믿음생활로 생각한 사람들이-종교개혁으로 믿음은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롬10:17)믿음은 들음에서 생기고, 들음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에서 비롯됩니다]는 바울의 가르침을 따라서-종교개혁자들은 들려지는 말씀인 설교를 강조했습니다. 설교에서 인간의 말 그 자체는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매 주일 설교는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우리에게 선포되는 말씀입니다.
<듣는 말씀-설교>에 대해서 지나치게 강조한 종교개혁자들은 예배 시에 악기사용을 금지하고, 교회의 장식물이 되는 성상이나, 그림들을 극도로 배제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에 집중하여 경청함으로써 말씀에 온전하게 순종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설교를 들을 때 예배에 임재하시는 성령께서 기꺼이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래서 설교 말씀을 들을 때는 ‘아멘’으로 화답하며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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