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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범사에 감사하라 /단 6:10, 살전 5: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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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631회 작성일 17-11-17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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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6:10, 살전 5:16~18 범사에 감사하라

 

 

태풍의 중심부에 바람이 전혀 불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태풍의 눈입니다. 그곳에서는 도리어 푸른 하늘이 보입니다. 그곳에서는 자기가 태풍의 한 가운데 있는 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고난, 문제, 시험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거기에 휩쓸리면 방황을 하고 고민을 하고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태풍 속에 있어도 태풍의 눈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평강을 누리며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한 해를 돌아보니 어떠하십니까? 계속되는 어려움으로 불평이 나옵니까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하신 은혜를 생각하면 감사가 나옵니까? 교회적으로도 금년 한 해를 돌아보면 교우들 중에 아픈 분들이 어느 해보다 많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을 지켜주셨습니다. 투병생활을 통하여 그들이 믿음으로 잘 감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경기침체가 계속 되다보니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정들이 어느 해보다 많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경상비 헌금은 작년보다 10%이상 늘었습니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게 마련이지만 함께 신앙생활 하던 교우들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떠난 것이 어느 해보다 많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신실한 가정들이 많이 오셨습니다. 같은 사건을 보면서도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우리의 반응은 달라집니다.

 


감사절은 11월의 넷째 목요일이고 그 앞의 주일을 추수감사주일로 지킵니다. 감사절을 영어로 Thanksgiving day라 하는데 감사를 드리는 날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주변의 이웃에게 감사를 표시하는 절기입니다. 설교 후에 성찬식을 거행하는데 성찬식을 Eucharist라고 합니다. 그 단어는 ‘은혜에 기쁨을 느낀다’는 의미를 가진 eucharisteo라는 헬라어 동사에서 왔습니다. 성찬에 참여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기뻐하고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니 추수감사주일에 성찬식을 거행하는 것이 뜻 깊다 하겠습니다.

 


이번 추수감사주일에는 감사와 관련된 다니엘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는 열여섯 살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왔습니다. 바벨론에 정착한 지 육십 여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는 백발이 성성한 팔십 노인이 되었습니다. 다리오왕은 120명의 방백을 세워 왕국을 다스리게 하였고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었습니다. 다니엘은 그 당시 3명의 총리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는데 그가 다른 지도자들보다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왕은 그에게 국사를 주관하는 책임을 맡기려고 했습니다. 이 사실을 안 다른 총리들과 방백들이 시기하여 다니엘을 제거할 음모를 꾸밉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충성된 자요 부정을 저지른 적도 없고 자기의 직무를 게을리 한 적도 없었기에 도무지 흠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그들이 다니엘을 고소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들은 다니엘이 매일같이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을 알고 왕 앞에 나아가서 한 법령을 시행하도록 요청합니다. 내용인즉슨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자는 것입니다. 다리오왕은 어리석게도 그들의 의도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조서에 어인을 찍었습니다. 왕이 허락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감히 누가 나보다 높은가' 하는 교만한 마음이 발동되었기 때문입니다. 죄악 된 자존심을 세우게 하는 것이 사탄의 계략입니다.

 

물론 다니엘이 30일 동안 기도하지 않으면 별 문제없이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경건생활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집에 돌아와 전에 하던 대로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이 열린 방에서 하루에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합니다.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갈망하는 기도를 드렸을 겁니다. 황폐한 성전과 잃어버린 하나님의 영광의 회복을 위하여 기도를 드렸을 겁니다. 그리고 자신의 직책이나 미래에 대하여 걱정하기는커녕 도리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왜 다니엘이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였을까요? 성전을 짓고 나서 봉헌할 때에 솔로몬이 드린 기도 때문입니다.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성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오며 주의 종이 이 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왕상 8:29-30) 물론 다니엘이 기도하고 있던 당시에 예루살렘 성전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침략했을 때 파괴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지금 성전이 없을지라도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곳에 성전을 다시 세우실 것을 믿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그 거룩한 곳을 향하여 감사하며 기도를 드렸습니다.

 

다니엘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무리들이 몰래 지켜보았습니다. 그들은 재빨리 왕에게 나아가서 다니엘을 고소합니다. “왕이여 유다에서 사로잡혀 온 사람들 중의 하나인 다니엘이 건방지게도 왕과 왕이 내린 금령을 돌아보지 않고 여전히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합니다. 그를 사자 굴에 던지소서.” 다니엘의 진실함을 아는 왕은 근심하여 그를 구하고자 애를 썼으나 신하들이 자꾸 재촉을 하니 어쩔 수 없이 허락합니다. 왕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다니엘에게 "네가 항상 섬기는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실 것이라" 말해줍니다. 왕은 그날 밤 궁에 돌아와서 금식하고 악기 연주를 그치게 하고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아침 일찍 그는 사자 굴에 달려갑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였느냐?” 이때 굴 밑에서 다니엘의 음성이 들립니다.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였나이다” 왕은 너무 기뻐합니다. 다니엘을 건져낸 후에 왕은 뜻밖의 조서를 내립니다. “왕국의 모든 백성들은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라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라 그는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라.”

 


위기의 상황에서 다니엘은 두려움에 떨거나 초조해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감사하였습니다. 감사가 기적을 낳았습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서 던져졌어도 살아났을 뿐 아니라 왕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할 것을 온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을 사자들에게서 구하심으로 다니엘의 무죄를 입증하셨습니다. 다니엘을 고소한 자들과 그 가족들이 사자 굴에 던져졌는데 그들의 몸이 땅에 채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그들의 뼈까지 부수었습니다. 사자들이 다니엘을 죽이지 않은 것은 사자들이 배가 불러서가 아니요 겁을 먹어서도 아니요 하나님이 사자들을 막으셨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다니엘의 삶의 일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심으로 십자가를 지시는 능력을 얻은 것처럼 다니엘은 평소에 드리는 기도를 통하여 담대함을 얻었습니다.

 

믿는 자들이 삶 속에서 죄를 저지르지 않았을지라도 때로 고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요셉이 그랬고 다니엘이 그랬습니다. 심지어 하나님 앞에서 선을 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고난을 당하는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그렇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죄가 없으신 예수님을 저주의 상징인 십자가에 못 박게 허락하셨습니까? 저와 여러분들을 사랑하셔서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다니엘서 6장은 포로기 시대를 살았던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땅에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고난의 단면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지속되었던 다니엘의 기도는 이방 땅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지켰던 유대인들의 삶을 엿보게 합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이 말씀은 다니엘의 감사 기도에 관한 일화를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5:16, 항상 기뻐하라. 현재 명령형. 계속하여 기뻐하라.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기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느 8:10,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물론 여기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잠도 자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마음가짐과 자세로 행동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늘 묵상하면서 그 뜻 가운데 행하라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기도생활을 하는 성도가 얻는 유익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보좌로 나갈 수 있는 능력입니다. 즉 하나님께 담대하게 나갈 용기를 갖게 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 give thanks 다음에 보통 이유를 나타내는 "for“란 전치사가 사용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전치사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암에 걸린 것 때문에 감사할 수는 없습니다. 믿는 자들이 암에 걸려 고생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싫어하십니다. 사업하다 실패한 것 때문에 감사할 수는 없습니다. 믿는 자들이 파산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도 원하지 않으십니다. 여기서 바울은 “for”라는 전치사 대신 “in” 이라는 전치사를 사용합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모든 상황에서 감사하라. 비록 암에 걸렸지만 그 가운데서도 감사하라. 비록 사업에 실패했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께 감사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에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약속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겠다는 것입니다.

 

1. 왜 감사해야 합니까?

1) 우리를 구원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롬 6:17,18,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우리를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해 주신 은혜만큼 귀한 선물은 없습니다. 아무리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누린다 할지라도 죄와 심판으로부터 구원받지 못한다면 불행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의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추수 절기도 따지고 보면 하나님의 구원 섭리와 그 은혜를 예표합니다. 구약의 추수감사절에 해당되는 절기가 오순절과 초막절입니다. 오순절은 첫 추수를 감사하는 절기요 초막절은 마지막 추수를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애굽에서 해방되어 오랜 기간을 광야에서 보내다가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 첫 곡식을 얻게 된 것을 감사하는 절기가 바로 맥추절입니다(출 23:16). 또한 그 해의 모든 농산물을 거둬 타작한 후 창고에 저장하고 나서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며 수장절 또는 초막절을 지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추수 절기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는 절기였습니다.

 

롬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어떠한 질병도, 어떠한 문제도, 어떠한 terrorist도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불확실하고,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모습 이대로 받아주십니다. 사람은 변하고 친구는 혹시 내 곁을 떠날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에 초점을 맞출 때 우리는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랑 하나만을 인하여 일생동안 감사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욥은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 라고 고백하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환난 가운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2) 감사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감사하는 것이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되는 option이 아닙니다.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란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행하기 원하시는 삶의 모습입니다. 바른 감사생활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생활입니다. 바른 감사 생활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2. 어떻게 감사해야 합니까?

'감사하다'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동사는 '야다'인데 문맥에 따라 '찬양하다' 또는 '고백하다'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감사- 사 38:19, "주께 감사하며 주의 신실을 아버지가 그의 자녀에게 알게 하리이다"

찬양 - 창 49:8,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고백 - 시 32:5,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따라서 구약의 감사는 찬양과 신앙의 고백 혹은 죄의 고백인 동시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신뢰하는 믿음의 응답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구원하심을 경험한다면 당연히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하고 그분 앞에 죄를 회개하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 감사는 온갖 고난을 극복하는 힘이 됩니다.

 


헬라어에서 감사와 은혜가 어원이 같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의 특징은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바울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롬 12:1) 성도들의 삶 전체가 산 제사라고 합니다.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행하는 모든 것이 귀한 향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거룩하게 보시고 우리의 드리는 예배를 기뻐 받으십니다. 전심으로 부르는 찬양, 마음이 아프고 고통스러울 때 행하는 금식을 받으십니다. 우리가 드리는 헌금을 귀하게 보시고 교회와 이웃을 위하여 섬기는 봉사를 귀하게 보십니다. 오직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결한 자세로 하나님께 자기의 중심을 드리듯이 바쳐야 합니다.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만 알아주시면 된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피워드린 향기 나는 삶을 가지고 주님 앞에 섰을 때 상급을 받게 됩니다. 반면에 하나님께 시간을 드리는 것이 아깝고 드리는 헌금이 아깝고 봉사하는 것을 아깝게 여기는 사람에게는 향기가 제대로 날 수가 없습니다. 생색을 내는 데는 열심이지만 하나님께 인색한 자는 삶이 결코 풍요할 수 없습니다.

 


3. 언제 감사를 드립니까?

"범사에"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판티'의 직역은 '모든 것에'입니다. 모든 것에는 좋은 일뿐만 아니라 시련이나 고난도 포함됩니다. 작은 일에서 큰일까지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씀은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다니엘처럼 매일매일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살아가는 삶이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임을 알려줍니다. 감사는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만이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신앙은 우리가 처해 있는 환경 가운데서 무엇을 느끼는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그 환경 가운데서 무엇을 보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현실이 바뀌는 것으로 고난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처한 현실을 주님의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이기게 됩니다. 성도들은 환경이 바뀌어서 웃고 춤추는 것이 아니라, 웃을 수 없는 상황, 춤출 수 없는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과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기쁨과 감격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아갑니다. 비록 현실을 바라보면 노래할 수 없지만, 광야에서도 식탁을 마련하시는 주님, 어둠과 절망의 현장 가운데도 임마누엘로 동행하시는 주님, 그리고 마침내 그 고난을 뚫고 가나안에 입성케 하실 수 있는 그분으로 인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저녁과 아침으로 향을 사르면서 자신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있음을 인정했고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들도 하나님 앞에서 이 향을 사르는 것을 쉬면 안 됩니다. 우리의 감사생활도 지속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속적으로 향을 드리는 것이 우리의 의지만 가지고 되지 않습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에는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권면이 있습니다. 엡 5:20-21,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합니다. 감사한다, 복종한다는 문법적으로 분사. 본동사는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에 걸립니다. 결국은 성령 충만한 성도가 하나님께 온전한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성도가 위로부터 임하는 성령의 능력에 힘입을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말씀하십니다. 반면에 사탄은 "항상 낙심하라 쉬지 말고 원망하라 범사에 불평하라 이것이 너희를 행한 사탄의 뜻이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시겠습니까? 아니면 사탄의 뜻을 따르시겠습니까?

 


주님은 감사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누가복음 17장에는 유대인 아홉 명과 사마리아인 한 명 도합 열 사람의 문둥병자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나음을 받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런데 오직 사마리아인만이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인하여 즉시로 예수님께 돌아와서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 감사하였습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눅 17:17).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며 감사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감사하러 달려온 사마리아인 문둥병자에게 말씀하십니다.“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는 감사드리러 왔다가 영혼의 구원이라는 보너스까지 받았습니다. 사마리아인이 그렇게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믿음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감사의 근원은 믿음이요 감사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우리를 선택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그분의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존귀하게 여기시는 자녀들을 어떤 환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뜻대로 인도하십니다. 어떤 환난 속에서도 우리를 만나 주시고 붙잡아주시는 주님이 계시다는 확신이 우리를 담대하게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고난 가운데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이 드린 감사기도가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감사는 조건에 따른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일에 하나님의 주권을 온전히 인정하고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며 순종하는 삶의 자세라는 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으로 고백하게 되었고 하나님 앞에 예배자가 되었습니까? 허물과 죄로 인하여 죽은 우리를 살리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그저 감사한 것밖에 없습니다. 다니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서도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기도하며 감사하였습니다. 청교도들은 온갖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향한 믿음을 지키며 한 해 동안 거둔 열매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조국을 떠나 낯선 미국 땅에 이민 와서 비록 언어의 장벽이 있고 문화적 이질감이 있는 곳에 살지만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찬식을 통하여 주님의 몸을 상징하는 빵을 들면서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이 새롭게 느끼고, 주님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들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한 번 깊게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빵과 잔을 함께 나눔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임을 확인하며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섬기는 건강하고 행복한 공동체의 일원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살며 날마다 감사의 씨를 부지런히 뿌리며 풍성한 감사의 열매를 거두시는 하나님의 복된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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