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주머니/골로새서 3: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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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주머니/골로새서3:15~17
2010년 11월 21일 장안중앙교회 주일낮예배 추수감사절 설교.
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설교:
오늘 추수감사절입니다. 저는 오늘 예년처럼 '감사'가 무엇인가? 또는 감사는 왜 해야 하는가? 감사하면 어떤 복을 누리는가? 이런 것을 살펴보려 하지 않겠습니다.
오늘은 감사는 어디서 나오는가?
어떻게 해야 우리 입술에 감사와 찬양이 넘쳐 나는가? 이런 것을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려 합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 "걱정도 팔자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걱정을 많이 하는 사람을 조롱하는 말입니다. 걱정을 많이 하는 사람은 사주팔자에 적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근심 걱정하는 생활 습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 말이고……. 왜 우리는 감사가 잘 안 나오고 왜 근심 걱정 염려가 나오는 것일까요? "감사하자" "감사하자" 굳게 결심해도 잘 안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엔돌핀"이라는 것이 우리 몸 건강에 좋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감사하며 즐겁게 사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호르몬이랍니다. 이 엔돌핀은 몸에 해로운 병균을 죽이는 능력이 있답니다.
그런데 최근에 이 엔돌핀보다 5000배나 더 뛰어난 호르몬이 발견되었다 합니다. "다이돌핀"이라는 것인데 이 다이돌핀은 우리 몸에서 기적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있답니다. 이것은 어떤 때 생기느냐면 우리가 뭔가를 통해 감동을 받거나 깨닫게 될 때 생긴답니다.
특히 신령한 은혜에 감동되고 마음에 깊은 은혜가 있으면 우리 몸속에 다이돌핀인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는 사람은 장수하고 건강하게 사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신명기 34장 7절에 보세요.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하였습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말입니다. 늙으면 눈이 흐리고 기력이 쇠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달랐습니다. 왜일까요? 그는 하나님을 통해 수많은 은혜와 감동을 누렸던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능히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오늘날도 대체로 장수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근심 걱정이 없고 감사와 감격 속에서 은혜를 맛보며 살아가는 사람은 영육이 건강한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도 주님의 은혜 속에서 늘 감사가 넘치는 삶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세요.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행해 기록한 서신이 골로새서입니다. 그 당시 골로새 교회는 이단의 미혹과 잘못된 가르침으로 흔들리고 있었을 때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들의 신앙을 견고케 하고 그들이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인지를 가르치기 위해 이 서신을 기록했습니다.
골로새서 1,2장 전반부는 교리적인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리고 3,4장은 실천적인 부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오늘 본문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감사 생활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3장 1절을 다 같이 봅시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이 말씀은 구원 받은 성도라면 이제 차원이 다른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땅에 것을 추구하며 살지만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다면 위의 것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위의 것을 찾는 삶 중에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감사하는 삶인 것입니다.
먼저, 구원 받은 사람은 우상 숭배 하지 말아야 하고, 거짓말 하지 말아야 하고, 더 나아가서 남을 용서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 이어서 하는 말이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감사는 어디서 나오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 보면 해답이 있습니다.
본문을 가만히 살펴보면 감사를 하려면 감사의 주머니를 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감사의 주머니가 우리에게 있으면 감사하자 맹세하고 결심하지 않아도 저절로 감사가 터져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감사의 주머니는 어떤 것일까요?
1. 그리스도의 平康(평강)이 감사의 주머니입니다.
15절 말씀을 보세요.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누가 감사 할 수 있느냐? 그리스도의 평강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평강이 뭘까요? 그리스도께서 누리신 평강입니다. 그것은 십자가 고난을 눈앞에 두고서도 누렸던 평강입니다.
그 평강이 우리 맘속에 임하면 우리 속에 그저 감사와 감격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왜 그리스도께서 누린 평강이 그렇게 중요할까요?
그리스도께서 누리신 평강은 환경이 가져다 준 평강이 아니고 성령의 위로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부터 누린 평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의 단적인 예를 보세요.
하나는, 갈릴 호수를 건너는 중에 풍랑이 닥쳤을 때 그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배 한 쪽 편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죽게 되었다고 난리인데 주님은 그야말로 평안하십니다.
제자들이 깨우면서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난리를 치자 "어찌하여 두려워하느냐 이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고 책망하십니다. 그때 주님이 누리셨던 것이 평강입니다. 환경과 전혀 상관없는 평강입니다.
두 번째로, 십자가를 대하는 주님의 자세 속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그 엄청난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피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으셨기에 힘들고 어려워 겟세마네 동산에 철야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뜻이 뭔지를 깨닫고 당당하게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때 누리셨던 그 마음이 평강의 마음입니다.
우리 주님이 하신 유명한 말씀 한 구절을 소개합니다.
요한복음14장 27절입니다. 다 같이 읽습니다.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이 주신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고 차원이 다른 평강입니다.
왜일까요? 세상이 주는 것은 평강일 때도 있으나 오히려 불안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돈이 우리를 평안하게 하나 그것은 정반대로 불안을 주기도 합니다.
권력이 평안을 주기도 하나 반대로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도 주는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것은 양면이 다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평강은 참 평강입니다. 그러기에 근심도 두려워 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이 주시는 그 평안을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그러면 우리 속에 그저 감사가 넘쳐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그 평강은 누가 누리는 것일까요?
따라서 합시다.
"너희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것이 우리 주님의 인사입니다.
이것은 또한 사도바울이 즐겨 쓰던 인사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세요.
"은혜"와 "평강", 이것은 어떤 것일까요?
구원과 관련이 있습니다. 은혜는 구원의 시작이고 평강은 구원의 결과입니다. 아멘입니까?
그러니 은혜를 받아 구원을 누리고 구원을 누리는 자만이 하나님이 주시는 참 평강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구원이 없으면 평강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를 모르는 사람은 참 평안이 없습니다. 죄 사함이 없는데 어떻게 평강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죄 문제가 해결이 안 된 사람은 영원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죽음이 두렵습니다. 그러니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걱정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나는 왜 구원을 받았는데 평강이 없을까?" 고민하는 사람이 있나요? 그런 사람은 구원을 한번 점검해 보셔야 합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구원을 받았는지 점검하세요. 아직도 확신이 없다면 저를 개별적으로 만나 주시기 바랍니다.
2. 주님의 말씀이 감사의 주머니입니다.
16절을 보세요.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렇습니다.
감사는 두 번째로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 거할 때 나타납니다.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해지면 그 말씀을 가르치고 권면하게 되고 그래서 신령한 찬양과 노래가 나오게 되는데 그때 감사가 넘쳐나게 됩니다.
그러기에 말씀이 감사의 주머닙니다.
말씀을 잘 듣고 깨달으면 감사는 저절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속에 감사가 부족한 것은 욕심이 가득하고 탐심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늘 부족합니다. 늘 만족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러니 감사가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해지면 만족이 느껴집니다.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은혜가 넘쳐나게 됩니다. 결국 감사는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남편을 전도하고 싶은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남편이 교회에 가겠다."고 한 바로 그 날, 아내가 심한 감기에 걸려서 함께 교회에 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남편이 혼자 교회를 다녀오겠다며 갔습니다.
교회에서 돌아온 남편이 평생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아내를 뒤에서 꼭 안아주었습니다.
아내는 "도대체 목사님이 뭐라고 하셨기에 남편이 변하였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왜 그러냐? 물어도 남편은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다음 주일에 목사님을 만나서 질문했습니다.
"목사님! 지난주 설교 말씀이 뭐죠? 혹시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셨나요?"
그러자 목사님이 눈치도 없이 사실대로 말했답니다. "아니요. 네 원수를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을 명심하세요. 주의 말씀이 임하면 그 사람의 삶과 인생이 변화된다는 사실입니다. 아멘?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점은 그들의 인생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후에 과거와 다른 삶을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베드로를 보세요. 평범한 어부가 말씀이 들어가니 위대한 사도가 됩니다.
사도바울을 보세요. 핍박자였던 사람이 말씀이 들어가니 위대한 전도자가 됩니다. 그들은 정말 놀랍게 변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안 변하나요?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하게 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큰교회를 다니느냐 작은 교회를 다니느냐 그게 주요한 것이 아닙니다. 정말 필요한 것은 우리의 심령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해야 합니다. 그러면 변화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생각이 변하고 우리의 행동이 변하고 우리의 입술이 변합니다. 그러면 찬송이 저절로 터져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
3. 은혜를 힘입는 것이 감사의 주머니입니다.
17절을 보세요.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그렇습니다. 한마디로 내가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되는 것임을 믿을 때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내가 하는 것이 실상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지만 하나님이 힘주셔서 하는 것이고 말에나 일에나 제가 도구로 쓰임 받을 뿐이지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렘33:3절을 아시지요?
"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십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만들어 성취하시는 여호와십니다. 그분을 섬기는 우리는 이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분이 내가 하는 일을 주관하신다고 믿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도 그분이 일하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행하는 선교사역도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고 그분이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분이 하시는 일을 살펴보게 되면 신묘막측합니다. 그래서 입이 벌어지고 감사가 저절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무슨 말을 하든지 주님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힘입어 했기에 오직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제게 목회 상담을 하자고 해서 만났습니다.
목회가 너무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를 포기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적성도 안 맞고 재미도 교인들도 다 떠나고 해서 힘들어 포기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해를 하면서도 한편으로 동조하면 안 되겠다 생각하고 냉정하게 말했습니다.
"십자가 지는 것이 쉬운 일이냐? 어려운 일이냐? 누구든지 다 질 수 있는 쉬운 일이면 그것은 십자가가 어니다. 그러니 힘들다 포기하면 그것은 마귀가 쾌재를 부르는 일이 될 것이다."
또 한마디 했습니다.
"목회는 적성과 재미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명으로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거룩한 사명이 있기에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사명을 무거운 짐 지는 것처럼 지길 원하지는 않으신다. 즐겁게 기뻐하며 지는 사람을 도우신다."
"그러니 목회를 즐겨라 목회를 재미있게 즐기며 하라 즐겁지 않아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니 어떻게 하실 것인가 맡기고 즐기면서 하라"
"목회가 힘들고 즐겁지 않은 이유는 내가 하려니 그렇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믿어라" 했습니다.
"목사가 오만상 찌그려 가며 목회하는데 어떻게 성도가 행복하게 예수를 믿겠느냐?
목사 먼저 즐겁고 행복하게 목회하면 교인들도 행복하게 되고 그러면 성도는 몰려오게 된다."
제가 말 잘했지요? 그렇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서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 말은 잘한다. 말만 하지 말고 나도 그렇게 목회하자"
여러분. 행복하게 예수님을 믿으시길 축원합니다. 어떻게요?
하나님이 천하 미물만도 못한 나를 창세전부터 아시고 택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매 불러 몸 된 교회에 일꾼을 되셨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무것도 모르던 아를 먼저 아시고 먼저 사랑해 주시고 먼저 불러 구원해 주셨습니다. 믿습니까? 그런데 어찌 즐겁지 않고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더욱이 부족한 저를 목사로 세워 주셔서 복음을 전하도록 이끄시고 힘주시고 은혜 주셨는데 이 또한 어찌 즐겁지 않겠습니까?
저는 장안중앙교회 목사된 것이 너무 너무 행복합니다. 또 하나님이 설교자로 세워주신 것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그러니 감사가 넘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여러분! 감사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내 능력이 아닌 감사 주머니를 갖고 있으면 저절로 나오는 능력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에게 그리스도의 평강이 가득하길 축원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속에 풍성하길 축원합니다.
내게 되어진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감사는 저절로 넘쳐나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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