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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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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838회 작성일 17-11-19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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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목:가장 중요한 감사

사무엘 라이프워츠라는 변호사가 있었는데 아주 성실하고 유능한 변호사였습니다. 이분의 변호를 통해 사형 구형을 받은 죄수 78명이 사형 언도를 면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78명 가운데 라이프워츠 변호사에게 감사의 뜻을 표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성탄절이 되면 크리스마스 카드가 그토록 많이 들어오는데 이 변호사 덕택에 생명을 건진 죄수들이 보낸 것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는 누가복음 17장에 기록되어 있는 열 문둥병자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는 매일 아침 4킬로씩을 뛰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한번은 유럽 여행길에서 너무 피곤해서 뛰지 않고 늦잠을 자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억지로 일어나서 뛰었는데, 그때 어느 발 없는 노인이 창가에서 자기를 부러워하는 모습을 발견했고, 호숫가에서 휠체어에 의지해서 산책을 하던 중년 신사가 선망의 눈초리로 자기를 보는 것을 발견하고서, 자신의 게으름과 또 건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잊었던 일을 뉘우쳤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에 감사를 해야 합니까? 풍년 주신 것, 장사 잘되는 것, 합격된 것, 취직된 것, 진급된 것, 물론 다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감사는 이방인도 드릴 줄 아는 감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먼저 죄사함받고 구원받은 일에 대해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2. 제목:가진 것을 소중하게

얼마 전에 노트르담 성당의 반주자로 있는 오르간 연주자 한 분이 우리 교회에 오셨습니다. 그는 시각 장애자였습니다. 연주하기 전에 교회에서 두어 번 연습하는 것을 지켜보았더니 놀랍게도 오르간의 수많은 스위치를 몇 번 더듬더니 모두 활용하지 않겠습니까. 그는 바흐를 소화하는 데는 세계적인 권위자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의 연주 솜씨에 감탄하여 어떻게 이렇게 잘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빙긋이 웃더니 “저는 다른 것은 할 수 없으니까요”라고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는 눈이 안보이기에 귀로 살았습니다. 귀를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로 받았습니다.못 가진 것을 달라고 원망만 하고 있겠습니까. 손은 없어도 눈은 있고 눈은 없어도 귀가 있으며 귀가 없으면 발은 있는 것 아닙니까. 가진 바를 선물로 알고 가장 소중하게 활용하는 자에게는 영광이 있습니다. 가진것을 소중하게 알지 못하고 없는 것에 대해 원망만 하는 사람은 승자가 될 수 없습니다. 지난날의 역경은 오늘의 영광을 위하여 필요했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또한 오늘의 고통은 내일의 영광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으로 믿어야 합니다. 바로 여기에 승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신 이가 어찌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주시지 아니하겠습니까. 우리들은 벌써 받았고 앞으로도 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렇게 믿고 받은 바 은사를 극대화하여 최선을 다할 때 거기에 영광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 사랑에 감격하고 있는 동안에는 시험도, 죄도, 율법도 이기며 거짓과 게으름, 나아가서는 나 자신과 세상도 이긴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창조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영원한 승리는 하나님의 사랑안에 확증되어 있고 보장되어 있습니다.

 

3. 제목:감격의 신앙

로스앤젤레스에서 토리 목사가 설교를 했다. 설교 중에 얼마 전에 신문에 대서특필되었던 미담(美談)을 예화로 들었다. 내용인 즉 미시간 호수에서 큰 배가 파선이 되어 많은 사람이 물에 빠졌는데 그 중에 헤엄 잘치는 한 사람이 혼자서 열 일곱 명이나 생명을 구해 주었다는 이야기였다. 그이의 이름을 부르면서 참 이렇게 용감한 것을 우리가 배워야겠다고 말했다. 설교가 끝나자 그 설교를 듣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제가 바로 그 사람이올시다.” 토리 목사는 너무 감사해서 그를 강단 위에 올려 세워놓고 소개하면서 극구 칭찬하고 마지막에 이와 같이 좋은 일을 했는데 무슨 느낀 바가 있느냐고 물었다. 이 사람이 조금 생각하더니 다음과 같이 말했다. “뭐 특별히 느낀 바는 없읍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내가 그때 열 일곱 사람을 구해주기는 했는데 그 중 한 사람도 나한테 와서 고맙다고 말한 사람은 없읍니다.” 이것이 보통 인간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너무 커서 이 은혜를 잊어버리기 쉽고 우리가 어떤 때에 그 은혜를 깨닫는다고 할지라도 곧 잊어버리기 쉽다. “오 주님이시여. 모든 은혜를 내게 풍성히 주셨으니 이제 한 가지 더 주셔서 감격의 마음을 주시옵소서.”

어떤 성자의 기도다.

 

 

4. 제목: 감사

어느 교회의 목사님 사모는 병원에서 위암 판정을 받고 입을 굳게 다물고 미음도 입에 대지 않았다. 한창 나이에 이 지경이 된것은 개척 교회 시절의 극심했던 고생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해서, 남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자연히 남편과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싹터올랐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은 감리교 신학대학의 윤성범 학장님을 만났다.

“목사님, 얼굴이 어둡군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

목사님은 형편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학장님이 제안을 했다.

“노트를 한권 사다가 아내에게 주세요. 그 노트에 감사할 일만 생각나는 대로 적으라고 해보세요.”

목사님은 즉시 노트와 볼펜을 사들고 아내에게 갔다.

“이 마당에 무슨 감사할 일이 있다고 그러세요.”

사모가 한두 줄씩이나마 노트에 감사할 일을 써내려간 것은 목사님이 방을 나 서고 난 후에도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아주 평범하고 작은 일 부터 적어 나갔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났다. 그녀는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찾아 다니며 감사의 인사를 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그러자 점점 통증은 사라지고, 다리에는 웬일인지 힘이 생겼다. 병원에 가니 의사가 깜짝 놀랐다. 암세포가 사 라졌기 때문이다. 범사에 감사하라. 나 자신의 활기찬 생활을 위해서, 타인에게 기쁨을 선물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복된 손길을 맞잡기 위해 서 범사에 감사하라.

 

 

5. 제목:감사 없는 삶

미국 남부 도시의 큰 정신병원의 구급차 운전수로 일해 온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여전한 일과로 정신병 환자를 병원에 내려 놓고 차를 돌리려고 하는데 병원의 윗층 창문을 통하여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 좀 보시요!" 운전수는 병실 위를 바라보며 "나를 부르는 겁니까?" 라고 했다. 그러자 병실의 창문에다 상체를 내어 놓은 어느 사람이 대답하기를, "그렇소. 그런데 내가 당신에게 한가지 물어 보아도 되겠오?" 했다. 운전수가"무슨 질문인데요?"라고 하자, "당신은 건강한 정신을 가졌다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해 본 일이 있오?"라는 것이었다. 그 운전수는 나중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15년 동안 이 병원에서 일하며 매일 정신병 환자를 운반하면서도 나의 건강과 정신에 대하여 한번도 감사해 본 일이 없었음을 크게 깨달았습니다." 어떤 분이 태어난 애기의 손가락을 하나씩 세면서 열 손가락을 다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감사를 하지 않는 인생은, 마치 돼지가 도토리 나무 밑에서 떨어진 열매를 잘 줏어 먹으면서도 그 도토리가 어디서 온 것인지 위를 한번도 바라보지 않는 것과 같은 인생이다.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들의 뚜렷한 특징인 것이다.

 

 

6.제목:감사 할아버지

어떤 잘 믿는 할아버지 한 분이 있었는데 언제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하고 다니니 감사 할아버지라는 별명을 듣게 되었읍니다. 이 할아버지가 한번은 거리에 나가서 고기 한근을 사가지고 돌아오다가 돌에 걸려 넘어져서 고기를 손에 마침 개 한 마리가 곁을 지나다가 고기를 물고 달아납니다. 할아버지는 물끄러미 보기만 하고 있읍니다. 개는 사라졌읍니다. 이때 할아버지는 "감사합니다" 하는 것이었읍니다. 때마침 어떤 젊은이가 지나가다가 묻기를 무엇이 감사한 일이 있느냐고 했읍니다. 그때 할아버지 하는 말이 "아 이사람아, 고기는 잃어버렸으나 내 입의 입맛은 그냥 있네"하는 것이었읍니다. 사실 고기가 아무리 많아도 입맛이 없으면 별로 감사한 일이 못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캄캄한 밤에도 별을 보고 감사합니다. 검은 구름위의 무지개를 보고 감사 합니다. 슬픔 가운데에서도 소망을 보고 감사 합니다.

 

 

7.제목:감사를 잊지않는 사람

물에 빠져 죽게된 사람을 머리칼을 잡아 끄집어내 살려주었더니 다른 사람은 메달을 달아주며 칭찬하는데 살아난 사람은 그때 머리칼이 아파서 혼이 났다고 두고 두고 원망하더랍니다.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긴다"는 말대로 은혜를 잊기가 쉽습니다.

미국 오하이오주 Springfield에 있는 위튼벌그 대학에서는 34년 전에 200달러를 갚지 못했던 학생한테서 백만불을 기부받은 일이 있는데 그 분은 대 Power회사의 사장인 Dr.Stanley Hanley입니다. 그가 성공한 것은 바로 이 감사를 잊지 않는 성품때문일 것입니다.

"기도와 감사함으로 깨어있으라"(골로새4:2)고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제일 가르치기 어려운 수학문제는 우리가 받은 축복을 세어보는 문제이다"라는 서양격언이 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람에게 기쁨을 줍니다.

 

8. 제목:감사의 조건을 찾으라

영국의 유명한 매튜 헨리(Mothew Henry)라는 목사님이 하루는 어떤 골목길을 가다가 매를 맞고 정신을 잃어버리게 되었읍니다. 그러다가 정신차려 일어나보니 온 몸이 상처투성이고 피가 흐르고 있었읍니다. 그는 간신히 일어나 집에 들어오니, 온 식구가 다 깜짝 놀랐읍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서재에 들어가서 그 피투성이의 몸을 가지고 엎드려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는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여, 생명만은 살아 돌아와서 가족들을 만나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또 내가 예수를 안믿었다고 하면 나를 때린 저 강도와 같이 되었을 터인데 예수 믿고, 강도가 안 되고 목사가 된 것을 감사합니다.

또 이 세상의 모든 것 다 잃어버린다 하더라도 내가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하면서 감사의 조건만 찾아서 기도를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9. 제목:감사치 않은죄

전에 미시간 호수에 배 한 척이 침몰했을 때, 노스웨스트 대학의 학생 한명이 뛰어들어가 물에 빠져 죽게 된 사람 23명을 구출해주었습니다. 수십년 후에 토레이 목사님이 설교하면서 그 청년의 용기를 칭찬했는데, 마침 그때의 청년이 백발 노인이 되어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면서“그 사건을 통해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까 “단 한사람도 고맙단 말을 한 일이 없었던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감사할 줄을 모르고, 감사를 잊고 사는 것입니다. “원수는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는 말이 옳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형님 밑에서 개만큼도 대접을 받지 못하고 지냈다고 불평하니까, “당신은 개만큼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라고 책망했다고 합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무례한 사람이라 하나님께도 사람에게도 인정을 받지 못하고, 복도 못 받고 성공도 못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도 영광을 받기 위함이요,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시면서까지 우리를 구원하신것도 세세토록 찬송과 영광을 받기 위하심입니다. 영광 받으실 때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도 누가 신세를 지거나 은혜를 받았을때 와서 감사하면서 칭찬해주면 얼마나 기쁩니까? 하나님은 감사를 통하여 영광과 기쁨을 누립니다.

 

10. 제목:감사하는 생활

J.C.페니는 미국의 부호로 이름난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1929년 미국 증권시장 파동 때 실수로 인해 많은 재산을 날리고 고민하던 중 불면증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였다. 나중에는 대상포진이란 육체적인 병까지 생겨 통증으로 고생을 하며 밤만 되면 죽음의 불안과 공포에 떨며 진정제나 수면제를 복용하고도 뜬눈으로 밤을 새우기가 일쑤였다. 어느 날 아침 고통과 불안에 떨고 있던 페니에게 병원 예배실로부터 찬송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조금 후에 성경을 봉독하고 기도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에게 새로운 사건이 발생하였다. 페니는 당시를 회상하며 고백하기를 “그것은 다만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나는 찬송과 성경 말씀과 기도 소리를 들으면서 캄캄한 굴 속에 서서히 햇빛이 비치더니 나중에는 온 굴 속이 밝아져 마치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진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인생의 새 출발을 하며 예수님의 “너희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을 자기의 사업과 생활의 표어로 정하여 그가 재기한 후 맨처음 교회에 많은 헌금을 바쳐 플로리다에 은퇴 목사를 위해 주택 백 동을 건축해서 헌납하면서 “어떻게 하면 많은 것을 많은 사람에게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며 감사하는 생활 속에 넘치는 복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라고 고백했다.

 

11. 제목:감사하는 훈련

남아메리카 주 멕시코 어떤 마을에 온천과 냉천이 옆에서 가지런히 솟아나는 신기한 곳이 있읍니다. 한쪽에는 부글부글 끓는 온천이 땅에서 솟아오르고 그 옆에는 얼음물과 같이 차가운 냉천이 솟아오릅니다. 그러니까 그 동네 아낙네들은 빨래 광주리를 가지고 와서 온천에서 빨래를 삶고 냉천에서 헹구어 가지고 깨끗한 옷을 집으로 가져갔읍니다. 그 모습을 본 외국 관광객들이 안내하던 멕시코 사람에게 물었읍니다. "이곳 부인들은 참 좋겠읍니다." "왜요?" "찬물과 더운물을 마음대로 거저 쓸 수 있으니까요. 이곳 사람들에게는 온천과 냉천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많겠군요?" 그랬더니 멕시코 안내원의 대답이 "천만예요." "왜요?" "이곳 아낙네들은 감사하기보다는 불평이 많습니다." "어떻게요?" "더운물과 찬물이 땅에서 나는 것은 괜찮은데 빨래하기에 꼭 필요한 것이 나오지 않아서 불평이 많습니다." "그건 무엇입니까?" "비누가 나오지 않으니까 불평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이렇습니다. 죄인 인간은 감사하기보다는 불평하는 것이 상례입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감사보다 불평이 더 있읍니까? 죄가 가리어서 그렇습니다. 욕심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회개하여야 할 것입니다.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훈련을 쌓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그의 자비를 기억하고 주신 복을 세어보면 감사가 생기게 됩니다.

 

 

12. 제목:감춰진 은혜

탈무드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읍니다. 어떤 랍비가 당나귀를 타고 한마리 닭과 등불과 천막을 싣고 여행을 떠났읍니다. 가도 가도 집은 없고, 해는 저물어 하는 수 없이 길 옆에다 천막을 치고 나귀와 닭은 천막에다 묶었읍니다. 닭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는 '꼬끼오'하고 아침을 알려 주는 시계 역할을 하기 때문이었읍니다. 랍비가 천막 속에서 등불을 켜고 성경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어 등잔대가 넘어지고 그만 불이 꺼졌읍니다. 할 수 없이 성경을 덮고 기도를 하고 잤읍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밤사이 맹수들에게 나귀와 닭이 죽고 없어졌읍니다. 그는 찢어진 천막을 챙겨서 주위를 살펴보니 자기가 바로 동네 가까이서 잤다는 것을 알았읍니다. 그래서 동네에 들어갔더니 온 동네가 야단법석이 났읍니다. 어제 밤에 강도떼가 이곳을 쳐들어와 사람들을 죽이고, 물건을 빼앗고 그야 말로 수라장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 때 랍비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를 했읍니다. 만일에 등불이 켜 있었거나. 닭이나 나귀가 살아서 소리라도 내었다면 자기도 틀림없이 죽었을 것인데. 이 세 가지를 미리 잃었기 때문에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잃어버린 것이 많았읍니다만, 잃어버린 것 보다는 더 중요한 것을 얻었기에 그는 하나님께 감사했읍니다. 이처럼, 우리도 때로는 역경에 처하지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가 더 크다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내게 주신 어떤 여건 속에서라도 항상 감사할 수 있는 깊은 신앙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13. 제목:감탄사를 연발하자

인간의 삶은 보통 명사와 동사로 이루어 진다.가령 떡을 먹는다.길을 간다.하나님을 믿는다.그 단순한 삶의 구조에 형용사가 추가되면 그 언어의 모양은 느킴을 전혀 달리한다.달콤한 떡을 먹는다.아름다운 길을 간다.좋으신 하나님을 믿는다.하지만 아직도 그 무었인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여기에 감탄사 하나가 추가 되어야 한다."하나님을 믿는다" "좋으신 하나님을 믿는다" "참 좋으신 하나님을 믿는다" 이 세가지 표현은 내용상 같아 보이지만 그 깊은 뜻과 내재된 힘은 완전히 다르다.

수많은 신앙인과 교회들 속에 감탄사가 아주 결여된 것을 볼수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많은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된다.사실 우리는 온누리에 가득찬 하나님의 선물들을 바라볼 때마다 탄성을 지르지 아니할 수가 없다.나를 향하신 주님의 크고 작은 사랑의 섭리를 해아려 볼 때마다 그저 숨막히는 감탄만이 있을 뿐이다.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통해 감탄사를 받기 원하시지 동사나 명사를 합성해 놓은 형식적인 말들을 원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죄악의 먹구름이 하나님과 불신자 사이를 차단한 탓에 진정한 감격의 대상을 보지 못하는 이방인들이 피조물을 섬기고 그것을 향해 감격하며 감탄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본보기가 아닌가 한다.그들은 몰라서 그리하는 것이며 우리는 피조물을 창조하신 그 놀라운 솜씨를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감탄하며 이런 위대한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알고 만나고 배운 심령들이 여전히 세상을 향해서는 떨며 반응하되 하나님을 향해서는 아무 감격없이 습관적이고 무감각한 영적 자세를 가진 모습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결승전이 진행되는 농구 경기장보다 콘서트가 벌어지는 음악당보다,정치적 경쟁이 부딪치는 운동장보다 우리들의 예배와 찬양이 저조하고 생동감이 없어야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농구의 3점슛이 터질때마다 폭발하는 환호로 열광하면서도 주님의 승리와 영원한 약속을 향해서는 닳고 닳아 맨질맨질해진 신앙의 껍데기만 드리는 수많은 믿는다는 자들은 회개와 깊은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수많은 감탄사를 원하신다.감탄사가 없는 하루는 축복의 하루 일수가 없다.감탄사가 없는 기도는 진정한 기도일 수가 없다.감탄이 빠진 찬양은 낡은 레코드판의 지처버린 회전일 뿐이다.우리가 전심으로 "오,주님!" 하고 한번만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훌륭한 기도요,찬양이 된다.그러나 내 배만 섬기며 적당히 나의 목적달성을 위해 주여라고 억만번 외친다고 해도 소용없는 짓이다.하나님의 기쁨과 나의 축복을 위해서 영혼의 감탄사를 개발하자.

태초부터 우리안에 가득했던 그 생명력이 죄와 고통속에 무디어 졌다.이제는 그 감동의 샘을 회복해야 할때다.호흡마다 주님을 감탄사로 부를 수 있다면 우리은 20세기의 시편기자가 될것이다.무감각한 예배순서지의 토막토막 사이에 순수한 감탄사가 들어와 자리를 잡을때 주님이 원하시는 살아있는 예배도 가능해 질 수 있다.죽음의 포로 수용소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강철같은 의지의 철인이 아니라 벽돌틈에 들꽃 한송이에 감동하며 감사할 줄아는 어느 신앙인이었다고 한다.

무서운 속도로 길 위를 질주하면서 길가에 어떤 꽃들이 피어있는지 바람은 어떤 향기로 나를 스치고 지나갔는지 기억조차 없다면 그 삶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산는 것인가? 오직 하나님만이 생명의 감동을 영원히 주신다.사탄과 세상이 공모하여 다량생산한 모조품들이 탐스러운 상품으로 포장되어 널려 있지만 그 가짜 감동으로는 영원한 감사를 얻을 수 없다.신앙인들에게 엄습해 오는 위험,하나님을 알되 더 가까이 나아가 그분을 느끼려 하지 않는 그 교묘한 변명,거룩이라는 선을 그어놓고 지금도 오라하시는 하나님께 스스로 건너가지 않는 그 의도의 저변에는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는 고질적 교만이 깔려있기 때문이다.예수님은 알라딘 램프의 거인이 아니다.필요할 때마다 펑하고 나타나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다시 램프로 들어가서 나의 호출만 기다리는 그런 심부름꾼이 아니다.그분은 이시간 바로 나와 함께 감탄사를 나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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