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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주일]새로운 피조물이 된 성도의 삶(고후 5: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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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른곰
댓글 0건 조회 702회 작성일 17-10-28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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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피조물이 된 성도의 삶

고린도후서 5:15-18

 

오늘은 10월 마지막 주일로 개혁교회가 지키는 종교개혁기념주일입니다.

올해는 특별히 1517년에 시작된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뜻 깊은 주일입니다.

가톨릭의 잘못된 모습을 개혁하고 올바른 교회를 세워보려는 과정에서 탄생한 교회가 오늘날 개신교로 불리는 개혁교회입니다.

개혁교회는 어떻게든지 성경에 근거하여 바른 교회가 되기를 지향하고 있습니다만

안타까운 것은 개혁의 과정에서 탄생한 개혁교회가 이제는 개혁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고 교회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당연히 전도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교회의 수는 점점 더 감소하고 있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현상들은 교회 스스로 자초한 면이 많습니다.

교회가 올바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교인들이 말씀대로 바르게 살지 못하였기에 나타난 당연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교회는 자기 개혁에 힘써야 하고 교회를 바르게 세워가는 일에 뼈를 깎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은 무엇보다도 우리 성도들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누구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고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총회는 나부터 변화되겠습니다.’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내가 곧 교회고 교회가 곧 나입니다.

내가 변화되면 교회가 변화되고 내가 바꾸어지면 교회도 바꾸어집니다.

웨스트민스터 성당의 지하 묘지에 묻혀 있는 한 영국 성공회 주교의 비석에 이런 글이 새겨 있다고 합니다.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상상력에 한계가 없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다.

좀 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내 시야를 약간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누운 자리에서 나는 문득 깨닫는다.

만일 내가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그랬더라면 세상도 변화되었을지!"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가 먼저 변화되고 내가 먼저 바꾸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족도 바뀔 수 있고 이웃도 바뀔 수 있고 사회도 교회도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도 바뀌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변화되고 바꾸어질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안에 있다는 말은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주님과 교제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안에 있다는 말은 사도 바울이 그의 서신에서 164번이나 사용할 정도로 아주 중요한 말입니다.

그리스도안에 있을 때 누구든지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것이 성경의 말씀인데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가 느끼는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감히 내가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성도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이 정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 백성이 되었다면 여러분은 새로운 피조물이 된 줄로 믿습니다.

스스로 우리 자신을 볼 때는 새로운 피조물같이 여겨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이나 똑같이 생각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이미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선언하셨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될 것이다가 아니라 이미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이 성경의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편지를 보내고 있는 고린도교회는 문제투성이의 교회였습니다.

교회가 4개의 분파로 나누어져서 서로 분쟁하는 교회였습니다.

음행하는 교인들도 있었고 심지어 아버지의 첩과 관계하는 교인들이 있었고 교회는 이것을 용납하고 문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문제, 성만찬 때 끼리끼리 모여서 먹는 문제,

방언의 은사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다른 은사를 무시하는 문제 등 고린도교회는 현대 교회를 방불할 정도로 엄청나게 문제가 많은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런 교회에 편지하면서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2)

또한 오늘 본문에서는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혀 거룩하지 않고 성도라고 하기 어렵고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하기 어려운 고린도교인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볼 때는 부족한 것투성이지만 하나님이 볼 때는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구원받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구세주로 믿고 영접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십니다.

우리를 의롭다고 인 쳐 주십니다.

칭의는 내가 정말 의로워서 의롭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의롭다고 보시고 인정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갑자기 거룩해지고 하루아침에 갑자기 바꾸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한 성도로 불러주시고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인정해주십니다.

이것은 결코 우리의 행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요 은혜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것이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이 그렇게 인정하고 그렇게 불러주시고 그렇게 대우하시는 것 뿐 아니라 실제적으로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은혜도 허락하여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6장의 말씀에서 이 사실을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6:6)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로 여길지어다.”(6:11)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의 십자가와 함께 우리의 옛사람이 죽었다는 것이 성경의 말씀입니다.

물론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니기에 죄가 역사할 수 있지만 그러나 우리는 이미 옛사람이 죽었고 새사람으로 거듭났습니다.

그래서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새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나는 인간인고로 어쩔 수 없다. 죄를 짓고 살 수 밖에 없다.’는 연약한 생각 속에 사로집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죄의 종으로 살아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그리스도안에 있는 순간 이미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죄의 옛사람으로 살던 이전 것은 다 지나갔습니다.

죄를 거부하며 새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되었고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받았습니다.

 

세계적인 대 문호 빅토르 위고는 1841년까지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어느 정도 방탕한 생활을 했느냐 하면 아버지의 방탕한 생활 때문에 딸이 비관하여 강물에 뛰어들어서 자살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방탕한 사람이었는데 딸이 죽고 난후에 그가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파리에서의 도시 생활을 접고 시골로 내려가서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그 때 나온 작품이 레미제라블, 노틀 담의 꼽추, 노틀 담의 파리, 빛과 그림자, 리블라 등의 명작입니다.

빅토르 위고가 죽었을 때 장례식을 국장으로 치러줄 만큼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는 방탕하던 사람이었는데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 새로운 삶을 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에게도 하나님은 옛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은혜를 주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은 얼마든지 죄의 삶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확신을 갖고 새로운 피조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특별히 3가지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먼저는, 자신을 위한 삶으로 살지 않아야 합니다.

 

15절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의 삶이 나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한 삶이 되어야한다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가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살아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나 자신을 위한 삶을 고집한다면 절대 새로운 피조물의 삶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기 이전에 항상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았습니다.

내가 내 인생의 목적이고 내가 행복하고 잘 살기위해 일을 하였고 내가 영화롭게 되기 위하여 수고하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은 이후에도 나 자신을 위하여 산다면 그것을 어떻게 새로운 피조물의 삶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새로운 피조물의 삶은 나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위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옛날, 어떤 왕이 매일 여러 장식이 주렁주렁 달린 눈부신 의복을 입고 거울 앞에서 자신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며 뽐냈습니다.

백성은 어떻게 살든지 왕은 자기만을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시종이 왕이 매일 들여다보던 거울을 치워버렸습니다.

다음날 왕이 자기의 모습을 보려고 거울을 찾았으나 거울은 보이지 않고,

창문을 통하여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지치고 굶주린 모습이 보였습니다.

창백한 여인과 굶주린 아이들이 보였고, 먹을 것을 찾으며 쓰레기통을 뒤지는 아이들과 허리가 구부러진 노인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왕은 자기의 화려한 의복을 벗어버리고 평민들이 입는 소박한 옷으로 갈아입고 백성들 가운데로 나아가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오직 자기만을 바라보며 살고 있습니다.

사람이 자신만을 바라보고 관심을 쏟고 있는 동안은 그 무엇도 볼 수 없고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혹시 자신만을 바라보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신만 보다가 예수님도 이웃도 보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로마서 14장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새로운 성도의 방향은 결코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한 삶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살아야 새로운 피조물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16절에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살지 아니하노라 고 했습니다.

이 구절을 새 번역 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우리가 그 어떤 사람도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지 않겠습니다.”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지 않고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보아야 그것이 새로운 피조물의 삶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기 이전에는 육체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면 이제는 신앙적인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보아야 합니다.

얼마 전 신문에 하버드 학생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공부하느냐?” 질문하면서

한 시간 덜 자고 공부하면 미래의 아내의 얼굴이 바뀐다.” 는 생각을 하면서 공부한다. 는 이야기가 소개되었습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더 잘 살고 더 잘 먹고 더 좋은 집에 살고 더 좋은 자리에 올라가고 더 행복해지자는 세상적인 관점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새로운 피조물이 된 성도는 세상적인 관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할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말할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살아갈까?’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세상적인 관점을 다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보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지금까지 자랑했던 세상적인 자랑을 다 버렸습니다.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면서 세상이 얼마나 악한가를 보기 시작하였고 그 악한 세상을 구하기 위하여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고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세상을 섬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결과 사도 바울은 새로운 피조물로서 가장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셋째로,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성도는 화목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18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우리는 세상과 화목해야 하고 이웃과 화목해야 하고 화목의 직분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분열이 일어나고 분쟁이 일어나고 다툼이 일어나면 그것은 결코 새로운 피조물이 된 성도의 삶이 아닙니다.

화목의 역사가 일어나야 그것이 새로운 피조물의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10월의 마지막 주일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주일에 우리는 다시 한 번 교회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교회를 새롭게 개혁해야 합니다.

비판받는 교회에서 존경받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외면 받는 교회에서 환영받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멸시받는 교회에서 사랑받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의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나 자신의 이기적인 삶을 버리고 주님을 위한 삶으로 살아야 합니다.

세상적인 관점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모든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 속에서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해야 합니다.

신분에서나 성품에서나 현실 속에서나 새로운 피조물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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