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느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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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말씀 : 느헤미야 1장 1-11절
할렐루야. 오늘도 예배에 참석하신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지난 주일 8월 9일은 한국 기독교 전체가 민족의 통일을 위하여 ‘남북 평화통일 공동기도주일’로 지켰습니다. 70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통일을 위하여 한국 기독교 모든 교회가 합심하여 기도하자는 취지였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일 오후 세시. 서울시청 앞 광장에는 주최측 추산 약 30만명의 기독교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소 과장이 있겠지만, 이렇게 수많은 인파가 몰린 대형 집회였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사회적 신뢰를 많이 잃은 탓에 각종 언론에는 많이 비치지 못했고, 또 일각에서는 이런 집회를 한들, 통일에 어떤 영향을 미치겠냐며 큰 교회 목사들의 쇼맨십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어제는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70년. 광복 70주년 기념일이었습니다.
광복이라는 말은 공동기도에서도 잠깐 언급하였지만, 빛이 회복되다. 빛이 돌아오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일본의 제국주의의 희생양이 되어 36년간 우리 민족은 어둠속에 살아왔고, 다시금 빛을 보기 위해 부르짖은 민중들의 기도와 눈물, 그리고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한 독립운동가들의 수고와 땀을 하나님께서 들으셨고, 우리에게 광복. 빛이 회복되는 역사를 허락하셨습니다. 하지만 광복 직후 우리 민족은 남과 북으로 갈라져 해방 70년을 맞이하고 있지만, 동시에 남북 분단도 70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완성되지 못한 반쪽의 기쁨을 해마다 맞이하는 광복절을 누리고 있습니다.
특별히 올해(2015)는 70주년입니다. 이 70이라는 숫자가 성경에는 상당히 의미가 있는 숫자입니다.
그 이유는 남 유다가 바벨론에게 망하고, 포로로 끌려간지 정확히 70년 되는 해에 소위 말하는 고레스 칙령이 선포됩니다. 페르시아의 왕이었던 고레스가 포로로 잡아온 사람들을 다시 고국으로 돌려보냅니다. 그게 70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혹시 우리 민족도, 하나님의 손 안에서 70년의 분단 사건이 다시금 회복되지 않을까. 기대하며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멸망했던 이스라엘이 70년 만에 회복된 것처럼 우리 나라도 머지 않아 하나님의 손 안에서 한반도가 하나되는 기쁨을 누리며, 온전한 광복절을 맞이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은 기억과 망각사이에서. 라는 제목으로, 우리의 역사 속에서 기억해야할 것들을 망각하고 살지는 않는지 함께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기억이라는 단어와 망각이라는 단어. 우리는 지난 모든 사건을 기억할 수 없습니다. 특별한 사건, 우리의 삶에 의미있다고 생각되는 것만을 기억하며 살아가고, 또한 원하든 원치않든 우리 뇌 속에 각인되는 사건을 기억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기억해내지 못합니다. 혹자는 이것을 망각의 은혜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망각이라는 은혜가 없었다면, 모두다 극심한 고통속에서 살아가야 할것입니다. 시간이 약이다. 라는 말을 통해서도 알듯이 망각이라는 기억의 지움, 기억의 잃어버림이 있기때문에, 지난 아픔을 잊고, 오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보면서 기억해야할 것과 망각해야할 것, 기억과 망각 사이, 그 경계선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느헤미야가 조국 이스라엘의 참담한 소식을 듣고 괴로워하면서 기도하는 장면입니다. 느헤미야는 바벨론의 땅에서, 나라가 바뀌고 페르시아 왕조가 등장한 그 곳에서 유대인으로서 상당히 높은 지위에까지 올라간 매우 유능한 인물이었습니다. 왕의 술 맡은 관원장이었으니, 요즘으로 말하면 청와대 비서실장 정도로 왕과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형제 중 하나인. 하나니라는 사람이 유다와 예루살렘의 상황을 이야기 해줍니다.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고 있고,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는 보고가 들려옵니다. 이 보고를 듣고 느헤미야는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기도의 내용이 5절부터 11절 중반까지에 나와있습니다.느헤미야의 기도를 요약하면, 우리가 주님 주신 율법을 지키지 못한 죄를 범하였고. 그래서 주님께 벌을 받았지만, 다시금 주의 법을 지키면,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시겠다는 그 약속을 기억해 달라는 것입니다.
1장 9절의 말씀입니다.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아오게 하겠다고 하신 그 말씀. 모세와의 약속을 기억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합니다. 이 기도에서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억해달라고 요청하지만, 이것은 느헤미야가 이방땅에서도 하나님의 율법을,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모세에게 말씀하셨던 그 말씀에 대한 기억. 그것이 느헤미야로 하여금 하나님께 간곡히 기도하게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한다는 것. 이것은 구약에서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구약성경을 한문장으로 요약하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기억하라. 애굽에서 종되었을 때에, 너희를 구원하신 여호와를 기억하라. 광야에서 너희를 먹이시고 입히신 여호와를 기억하라.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시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너희를 보호하신 여화를 기억하라. 마침내 가나안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신 여호와를 기억하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기억하라는 메시지가 구약 전체의 핵심입니다. 비록 이방인의 땅에서 이방왕을 섬기고 있었지만, 느헤미야는 그 말씀을 늘 기억하고 있었고, 그것을 근거로, 하나님께 요청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이 백성을 다시금 기억하여 주십시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구원사건을 기억하며,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4절에서도 느헤미야는 ‘수 일 동안 슬퍼하며 하나님께 금식하며 기도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6절에 보면 주야로 기도하고, 주님 앞에 자복하며 기도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느헤미야는 사랑하는 동족 이스라엘을 위해 금식하며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뿐만아니라. 느헤미야는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닌 실천하는 지도자이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1장 이후를 계속 읽다보면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페르시아의 고위직을 내려놓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페르시아에서 살았으면 엄청난 부귀명예를 누리며 잘먹고 잘살았을 텐데, 그는 사랑하는 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일을 맡아 총독이라는 직책으로 일하였는데, 총독으로 받아야할 보수, 쉽게말해 월급도 안받고, 한푼의 페이도 받지않고, 그저 민족을 위해 일을 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참으로 대단한 지도자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 성벽 재건이 쉽게 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떠난 예루살람은 이미 이방인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이방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에는 갈등과 긴장이 계속됐습니다. 그들은 느헤미야가 하는 일을 조롱하며 방해하였습니다. 이런 어려움에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셨다고 믿었던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실천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그는 정말로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을 기억하며 나라를 사랑했던 애국자였습니다. 그것도 몸소 실천하는 애국자였습니다. 이것이 느헤미야의 위대함입니다.
이제 우리의 역사를 한번 기억해보겠습니다.
우리의 조상들도 일제의 압제에 맞서 어둠속에서 느헤미야와 같이 눈물로 하나님의 구원을 소망하며 행동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130년전 구한말 시기에 감리교의 아펜젤러와 장로교의 언더우드라는 젊은 선교사들이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500년 동안 뿌리깊은 유교문화가 자리잡고 있었고, 그보다 훨씬 오래된 불교의 문화가 약 1500년을 뿌리내리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서양의 종교인 기독교는 상당히 어색한 소리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내용을 들어보니, 참으로 매력적이었습니다. 복음이 들어오기에 앞서 1800년대 초반부터 가난한 농민들의 봉기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국가와 양반들, 부패한 정치인, 탐관오리들의 가혹한 세금과 차별에 대하여 더이상 견딜수 없어 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1811년 홍경래의 난을 비롯해서 전국각지에서 크고 작은 민란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다가 크게 발발한 사건이 바로 동학농민운동이었습니다. 그때가 1894년인데.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제물포항을 통해 들어온지 딱 10년 후의 일입니다.
이미 한국사회는 격동적인 변화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 시기에 맞추어 개신교 선교사들이 와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들의 메시지는 이러했습니다. 예수라는 분이 있는데, 그분은 일단 차별없는 사랑을 전한다고 말해줍니다. 모든 인간이 하나님 앞에 평등하며, 이제 곧 하나님 나라가 온다고 선포하신 분. 그분을 믿어보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너를 사랑하신다. 아무 힘도 없고, 당장 먹을 것도 없던 가난한 민중들에게 가장 높은 신, 하나님이. 너를 사랑한다. 너를 위해 죽으셨다. 그래서 너는 그분을 믿고 받아들이면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간다. 지옥같은 이 땅에서도 천국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이 말씀은 매우 매력적인 말씀, 말 그대로 복음.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말로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을 직접 보여 주었습니다. 당시 아무나 받을 수 없던 교육을 누구에게나 차별없이 전해주었고, 특별히 아이들, 여자들, 천민들도 동등한 인간 대접을 해주는 교회는 민중들에게 환영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초기 개신교 지도자들은 학교와 병원을 짓고, 민족의 개화를 위해 다방면으로 힘썼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 나라의 국가 지도자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자기들의 밥그릇 지키기에만 급급했습니다. 결국 지도자의 무능은 국권의 피탈로 전개되었고, 우리나라는 하루 아침에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암흑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 때에 민족의 독립을 위해 최전선에서 싸운 이들이, 일찍이 복음을 받아들인 개신교 지도자들, 교회 지도자들이 상당수를 이루었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을 비롯하여, 백범 김구, 이승만 초대 대통령까지. 이름은 드러나지 않지만, 무수히 많은 무영의 독립운동가들이 교회를 중심으로 모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고, 민족의 해방을 부르짖었습니다.
이들은 느헤미야와 같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노예로 있던 히브리 민족을 구해주지 않으셨습니까. 광야에서 그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지 않으셨습니까.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던 이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동방의 작은 나라. 우리 나라도 하나님께서 구해주시면, 우리가 해방을 맞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이렇게 경험하지도 못한 하나님을 성경속에서 발견하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기도는 결국 응답되었고, 온 국민들의 수많은 희생과 피혜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해방을 맞이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 사건에 대하여, 우리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손길에 대하여 ‘망각’하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 민족이 당한 수치스러운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 때 가장 큰 피혜를 입었던 유대인들이 홀로코스트, 600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학살당하면서도, 전쟁 이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Forgive but not Forgot / 용서합니다. 하지만 결코 잊지는 않습니다. / 물론, 이 용서는 독일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전제되었기 때문입니다. 엊그제 발표한 일본의 아베총리의 발언이 제대로된 사과가 있지 못해 아쉬웠지만, 지난주에 일본의 전 총리였던, 하토야마 유키오씨가 한국을 방문하여 서대문 형무소를 찾아, 사과하며, 잘못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의 진정한 사과가 있다면 우리는 용서하되 잊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해방을 맞이하고 7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사건도, 우리 민족의 아픔도 ‘망각’하고 살지는 않나 돌아봅니다. 특별히 북한의 형제 자매들을, 우리 동포를 ‘망각’하고 살지는 않나 생각해 봅니다.
다니엘 튜더라는 영국인 기자가 우리나라를 향하여 이런 책을 썼습니다.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책 제목입니다. 외국인 기자가 10년 넘게 한국생활을 하면서 우리 나라를 경험하고 돌아본 이야기를 제법 객관적으로 써내려간 책인데. 그가 보기에 우리나라는 기적을 이루기는 했지만, 기쁨은 잃어버린 나라라는 것입니다. 이 제목속에 우리의 현대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자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아팠습니다.
민족의 해방과, 전쟁 이후. 우리나라는 그동안 전무후무한 기적같은 일들을 일구었습니다. 가장 단시간에 최고의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 가장 단시간에 정치 민주화를 이룬 나라. 그리고 이 두가지,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세계 역사상 유일한 나라. 수많은 한강의 기적을 이루긴 했지만, 행복지수는 OECD국가중에 최하위권에 속해있고, 청소년의 행복지수는 전세계와 비교해도 가장 낮은 수치입니다. 자살율은 세계 1위라는 오명이 수년째 계속되고 있고, 사회적 양극화로 인해 느끼는 상대적 빈곤과 박탈감으로 인해 우울증이 점점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기적을 이루기는 했지만, 기쁨은 잃어 버린 나라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하나님 앞에 잃어 버린 기쁨을 다시금 회복하는 일. 느헤미야를 통해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 사건을 기억하고,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눈물로 기도할 때, 그리고 기도할 뿐 아니라. 나아가 행동할 때에. 우리는 기적과 기쁨을 동시에 누리는 위대한 대한민국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또한 통일한국을 위해 기도하며 준비하기를 소원합니다. 점점 통일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각이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그냥 이대로 살면 안되냐. 물론 그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우리 민족에게 통일은 필수적입니다. 우리는 고통받는 북한의 백성들을 망각하지 말고, 기억해야할 것입니다. 통일에 대한 인식과 북한에 대한 인식의 변화. 이것이 우리의 준비가 될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민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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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전용재 감독회장 남북공동기도주일 설교문,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 다니엘 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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