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도예배설교/요일 4: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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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OOO 성도 추도예배
오늘은 故 OOO 어머니의 추도예배입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이 충만하게 임하는 예배가 되길 원합니다.
찬 송 - 460장
1절 :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크신 은혜라 한이없는 주의사랑 어찌이루 말하랴
자나깨나 주의 손이 항상살펴 주시고 모든일을 주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3절 : 주님다시 뵈올 날이 날로날로 다가와 무거운짐 주께맡겨 벗을날도 멀잖네
나를위해 예비하신 고향집에 돌아가 아버지의 품안에서 영원토록 살리라
말씀 교독 - 옅은 글씨는 인도자가 굵은 글씨는 여러분이 봉독합니다.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소서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다함께) 주의 행사를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시편 90편)
기 도
성경말씀 - 요한1서 4장 7-12절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마태복음 17장 20절에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겨자씨를 구경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도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성지순례를 다녀오시면서 구해 오셔서, 딱 한 번 구경해 본적이 있습니다. 보통 겨자씨는 볼펜으로 점을 찍은 것만큼 작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작습니다. 종이 위에 겨자씨를 펼쳐놓으면 콧바람에 날아가 버릴까봐 숨도 쉴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작은 믿음만 있으면 산도 옮길 수 있고, 못할 것이 없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믿음이 가지고 있는 속성 때문입니다. 믿음은 크고 작음을 따질 수가 없습니다. 믿음은 있든지 없던지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상대방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을 때만 생깁니다. 내게 좋게 할 때는 믿었다가, 내게 싫게 할 때는 믿지 않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내게 좋게 하던지, 내게 싫게 하던지 상관없이 신뢰하는 게 믿음입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은 믿음의 양이 적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제 믿기로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전적으로 신뢰하기 위해 순간순간 틈타는 불신을 이겨내기로 결단 했다는 뜻입니다. 기독교에서는 믿기로 시작한 그 시점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 순간을 마음을 돌이켰다고 해서 “회심(回心)”이라고 하기도 하고,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다고 해서 “거듭남”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믿기로 시작한 그 순간부터 천국행이 시작되고, 능력 있는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믿음과 사랑은 매우 밀접합니다. 믿음 없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고, 사랑 없이 누군가를 믿을 수도 없습니다. 의심이 가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미운 사람을 믿을 수 있나요? 그런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저희 부부가 지금부터 걱정하는 게 한 가지 있습니다. 겨울에 태어날 둘째와 하경이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형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이 일을 놓고 매일매일 기도합니다. 모든 부모님의 마음이 이 한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잘 먹고 잘 입는 것보다는 자녀들이 더 잘 먹고 잘 입기를 바라고, 본인은 사랑받지 못했더라도 자녀들은 서로 사랑하길 원하는 마음 말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의 어머니도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아생전에 그토록 희생하셨으면서도, 하늘에서 또 걱정스런 마음으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땅에 남아 있는 자녀들이 서로 믿고 의지하며 사랑하고 있나 하고 말입니다.
저는 우리 가족에게 오늘 하루가 특별한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서로 의심 없이 믿고 의지하며 사랑하기로 굳게 다짐하는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매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고백합니다. 남들이 기도 할 때 다 그렇게 하니까 아버지라고 부르는 게 아닙니다. 나보다도 먼저 나를 사랑하신이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랑이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족을 위해 청춘을 포기하시고, 우리 가족을 위해 생선 비린내를 사랑하셨던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이 헛되지 않도록, 믿고 또 믿는,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찬 송 - 305장
오늘은 故 OOO 어머니의 추도예배입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이 충만하게 임하는 예배가 되길 원합니다.
찬 송 - 460장
1절 :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크신 은혜라 한이없는 주의사랑 어찌이루 말하랴
자나깨나 주의 손이 항상살펴 주시고 모든일을 주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3절 : 주님다시 뵈올 날이 날로날로 다가와 무거운짐 주께맡겨 벗을날도 멀잖네
나를위해 예비하신 고향집에 돌아가 아버지의 품안에서 영원토록 살리라
말씀 교독 - 옅은 글씨는 인도자가 굵은 글씨는 여러분이 봉독합니다.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소서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다함께) 주의 행사를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시편 90편)
기 도
성경말씀 - 요한1서 4장 7-12절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마태복음 17장 20절에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겨자씨를 구경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도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성지순례를 다녀오시면서 구해 오셔서, 딱 한 번 구경해 본적이 있습니다. 보통 겨자씨는 볼펜으로 점을 찍은 것만큼 작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작습니다. 종이 위에 겨자씨를 펼쳐놓으면 콧바람에 날아가 버릴까봐 숨도 쉴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작은 믿음만 있으면 산도 옮길 수 있고, 못할 것이 없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믿음이 가지고 있는 속성 때문입니다. 믿음은 크고 작음을 따질 수가 없습니다. 믿음은 있든지 없던지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상대방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을 때만 생깁니다. 내게 좋게 할 때는 믿었다가, 내게 싫게 할 때는 믿지 않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내게 좋게 하던지, 내게 싫게 하던지 상관없이 신뢰하는 게 믿음입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은 믿음의 양이 적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제 믿기로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전적으로 신뢰하기 위해 순간순간 틈타는 불신을 이겨내기로 결단 했다는 뜻입니다. 기독교에서는 믿기로 시작한 그 시점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 순간을 마음을 돌이켰다고 해서 “회심(回心)”이라고 하기도 하고,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다고 해서 “거듭남”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믿기로 시작한 그 순간부터 천국행이 시작되고, 능력 있는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믿음과 사랑은 매우 밀접합니다. 믿음 없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고, 사랑 없이 누군가를 믿을 수도 없습니다. 의심이 가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미운 사람을 믿을 수 있나요? 그런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저희 부부가 지금부터 걱정하는 게 한 가지 있습니다. 겨울에 태어날 둘째와 하경이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형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이 일을 놓고 매일매일 기도합니다. 모든 부모님의 마음이 이 한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잘 먹고 잘 입는 것보다는 자녀들이 더 잘 먹고 잘 입기를 바라고, 본인은 사랑받지 못했더라도 자녀들은 서로 사랑하길 원하는 마음 말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의 어머니도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아생전에 그토록 희생하셨으면서도, 하늘에서 또 걱정스런 마음으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땅에 남아 있는 자녀들이 서로 믿고 의지하며 사랑하고 있나 하고 말입니다.
저는 우리 가족에게 오늘 하루가 특별한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서로 의심 없이 믿고 의지하며 사랑하기로 굳게 다짐하는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매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고백합니다. 남들이 기도 할 때 다 그렇게 하니까 아버지라고 부르는 게 아닙니다. 나보다도 먼저 나를 사랑하신이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랑이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족을 위해 청춘을 포기하시고, 우리 가족을 위해 생선 비린내를 사랑하셨던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이 헛되지 않도록, 믿고 또 믿는,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찬 송 - 30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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