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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스승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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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447회 작성일 17-05-13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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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참 스승은 누구인가?
교독문: 79. 요한복음 15장. 말씀: 마 23:1~12. 찬송가: 488. 이 몸의 소망 무언가.

마 8:19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말씀하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오늘은 스승의 주일입니다. 우리 일생에 많은 스승을 만나게 하셔서 우리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보통 선생님’은 말을 많이 하고, ‘좋은 선생님’은 설명을 잘하고, ‘우수한 선생님’은 본을 보여주지만, ‘위대한 선생님’은 감동을 준다고 합니다. 나쁜 선생님은 책망도 칭찬도 없는 책임의식만 있고, 더 나쁜 선생님은 그 책임감도 없다 랍니다.
그리스도인은 목사든 평신도든 누구든지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참으로 쉬우면서도 사실 진실하지 못하다면, 자격이 없다면 가룟 유다와 같이 배신 할 수도 있고 온갖 잘못된 신앙으로 사이비 또는 이단이 되기도 하므로 눈에 보이지 않은 자격증 (?)이 요구됩니다.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 하라는 것, 자기의 존재를 버리는 것이요 무욕의 제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존재를 버리고 예수님만 앞세워 살아야 합니다.
자만심 - 나만이 제일이요, 나만 할 수 있다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명예, 물질, 정욕으로 부터 해방 되어야 합니다. 지도자와 가르치는 교사는 길을 인도하는 벗입니다.

영적 지도자의 중요성을 말씀 드리려합니다.
사람은 세상에 출생하여 죽을 때까지 배우며 가르치며 삽니다.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은 짐승이기를 자처하는 것이며, 교만하여 배우지 않는 고집쟁이일 뿐입니다. 가르치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은혜를 알지 못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일 뿐입니다.
원하던 원치 않던 우리 인간은 학생 아니면 선생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평생 학생의 심정으로 살며, 한평생 스승의 정신으로 후배인생들을 대하며 살자' 이것이 성경말씀이 주는 삶의 철학이요 목자로서의 좌우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이라면 자녀의 단계로 시작하여 학생, 친구, 남편이나 아내, 그 다음이 부모의 단계에 이르고 나중에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로서 생을 마치는 것이 보통의 일생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깨달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일평생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백성이요 자녀로서 살아갑니다. 여기서 자녀나 학생은 부모와 선생님에게 배우는 입장입니다. 그렇지만 세상 부모와 세상 학교의 선생님에게만 세상을 배우는 것만은 아닙니다. 또한 세상 가르침에는 영원한 진리, 구원의 진리, 하나님과 함께 사는 진리, 영성을 포함한 전인적인 인간성 섬김의 양육 진리는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영적 지도자들을 교회를 통하여 세우신 것입니다. 영적 지도자를 통해서 구원받은 성도들이 아름답게 신앙의 성장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위대하고 놀라운 꿈을 가지고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 신앙의 지도자란? 사람들에게, 특히 자녀와 학생들에게
첫째로 꿈과 환상을 주는 자이며,
둘째로 복음을 통하여 구원의 확신과 행복하게 사는 삶이 무엇인지를 터득시켜주는 자이며,
셋째로 본을 보이는 자이며, 넷째로 모든 진리를 가르치는 자이며,
다섯째 사랑으로 양들을 돌보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의 모든 지도자는 이 범주에 다 속합니다. 이제 사역자들 목사와 전도사, 간사, 그리고 직분 자 장로, 권사, 안수집사, 집사님들의 중요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합니다.
교사의 위대함과 중요성을 다음의 이야기를 통하여 확실히 하게 됩니다.
● 한 어린 소년이 농부이신 아버지와 마을에 가보기 전까지 농부가 되려고 했었습니다. 마을에서 그는 엔지니어가 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엔지니어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 후에 변호사 사무실을 가게 되었고 변호사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그는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환자를 돌보는 의사를 보게 되었을 때 그는 또 다시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그 다음 주일에 설교를 듣던 그는 목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농부, 엔지니어, 법률가, 의사, 군인, 항해사, 목사-이들 중 나는 무엇을 위하여 태어났습니까?"
그가 기도드리는 중에 세미한 음성이 방안에 메아리치는 것 같았습니다. "너는 그 모두가 되어 보지 않겠느냐?" 그 소년은, "네? 어찌 그렇게 될 수 있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음성이 대답하기를
"그들의 교사가 되면 되지 않는가? 그러면 어떤 아이는 책을 쓰게 될 것이고, 어떤 아이는 좋은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것이고 어떤 아이는 수술을 잘하게 되고, 또 어떤 아이는 설교를 잘 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너는 모든 것 중에 가장 훌륭한 일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들은 네가 그들의 교사가 되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것이 교사나 목자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말입니다.

<우린 모든 일에 자신의 삶 가운데 고수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그 고수에겐 무엇인가 대단한 전문적인 재능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에겐 영적인 고수가 누구인가요?
바로 가르치는 교사들입니다. 그리고 고수들의 특징은 스스로 고수가 되려고도 남에게 불려 지기를 원하지도 않습니다. 자기를 높이기 위함이 아니라,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상대의 유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던 중에 본이 되는 위치까지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들의 보모와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부모는 때론 약하여 원망도 하고, 푸념도하며, 실수도 합니다. 그러기에 실수가 없으신 참 고수는 바로 사랑으로 본을 보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아버지 마음을 가지신 주님!
그분은 자기를 알리기 위함 보다는 맡겨진 일에 온 힘을 다하여 최선을 다하시고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능력을 입고 일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알아 달라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믿기만 하면 구원 받는다고 말하시는 사랑이 넘칠 뿐입니다. > 우리는 예수님의 본을 따라 가는 자들임.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니까 항상 상전 대하듯 높임 그런 부모인 스승이 되십시오)
● 교육에 꼭 필요한 요건이 있습니다. 선생님에 대한 신뢰와 고마움과 존경심이 없이는 온전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육은 돈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시설이나 교육 기자재의 현대화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고마움이 없이는 교육은 죽은 것입니다. 선생님에 대한 참된 존경과 고마움이 있을 때 비로소 교육은 시작되고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히 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 세계에서 제일 우수한 민족이 바로 유대민족이라고들 말합니다. 노벨수상자의 22%(480명중 93명), 세계 200대 재벌의 15%, 미 의회 정치인의 10%, 미국 변호사의 30%, 법대, 의대교수 중 50%, 언론사, 예술가, 과학자 등 각각의 분야에서 최고의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민족이 바로 유대인입니다. 어떻게 소수민족인 유대인들이 이처럼 많은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을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대답은 그들의 교육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유대인들의 교육 시스템 가운데 어떤 요소가 저들의 후손들을 세계의 어느 종족과도 비교할 수 없는 두각을 나타내는 존재가 되게 했을까요? 선생님의 한마디 말씀이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그 말씀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대인을 각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두각을 나타내는 민족으로 키운 힘이 되었습니다. 즉 교육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교육의 주체인 선생님을 가장 존경하는 민족, 그런 사회풍토가 유대인을 가장 강인한 민족으로, 다방면에 걸쳐 세계 최고의 두각을 나타내는 민족으로 키운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교육을 가장 귀하게 여겨온 족속들입니다. 그리고 교육의 주체인 랍비를 존경하였습니다. "랍비"라는 말은 "위대하신 분" 또는 "존경할 사람"이라는 뜻의 말입니다. 유대사회에서 가장 존경을 받는 사람들은 정치가도, 재력가도, 사업가도, 군인도, 관료도 아니라 랍비들, 즉 선생님들입니다. 랍비들의 가르침을 묶어놓은 책이 탈무드(마빈 토케이어-정통 유대인 랍비 마빈 토카이어(Marvin Tokayer -2017년 현재 75세) 작년도에 우리나라에 방문했지요.)인데, 탈무드가 유대사회에서 가지는 권위는 어느 정도인가 하면 성경에 버금갈 만큼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교육은 여기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선생님을 존경하면서 자라도록 만들어진 사회적 분위기, 사회적 전통을 가지고 있었고, 사회는 선생님에게 가장 성스러운 권위를 부여했던 공동체가 유대인 공동체요 사회였습니다. 이런 것이 유대인을 유대인 되게 하는 교육의 힘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우리의 현실은 지금 선생님을 모두 죄인으로, 부도덕한 사람들로, 돈만 아는 돈 벌레로 깔아뭉개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풍토에서 무슨 교육이 이루어지겠습니까? 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한국교회는 19세기 프로그램으로 20세기 교사가 21세기 어린이를 가르친다.” 옳은 말입니다.
 참된 교회학교는 청소년들에게 영적인 감동과 감격을 주는 곳입니다. 학교교육은 이성과 경험을 강조하는 지식적 머리교육이며, 교회학교는 계시와 영성을 강조하는 가슴교육입니다. 그러므로 비교의 대상이 아닙니다. 교회는 지식보다 성령님의 감동을 심어주는 곳입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부속품이 아닙니다. 그들만의 신앙과 문화와 교제를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한국 교회는 정말 어린이를 가슴에 품고 미래를 준비해야 될 줄 믿습니다.
21세기 한국교회가 사막으로 변질 될 수도 있고, 푸른 초원으로 변모, 변화 할 수도 있습니다.

위대한 스승
한 소년이 ‘위대한 스승’을 만나기 위해 오랫동안 방황했습니다. 소년은 깊은 숲과 황량한 사막을 헤맸으나 ‘위대한 스승’을 찾지 못했습니다. 소년은 너무 지쳐서 나무 밑에 털썩 주저앉아 쉬고 있었습니다. 그때 흰 수염과 맑은 눈동자를 지닌 한 노인이 나타나 소년에게 물었습니다.
"소년아, 왜 그렇게 방황하고 있느냐?” 소년이 대답했다. “위대한 스승을 찾고 있습니다.”
노인은 얼굴 가득히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네가 찾는 위대한 스승이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 주마. 지금 곧장 너희 집으로 돌아가라. 그러면 한 사람이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뛰어나올 것이다. 그 사람이 바로 네가 찾는 ‘위대한 스승’이란다”
소년은 ‘위대한 스승’을 빨리 만나고 싶어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소년이 대문을 두드리자 한 여인이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뛰어나와 소년을 맞았습니다. 그 ‘위대한 스승’은 바로 소년의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최선의 교육자입니다. 어머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스승인 것입니다.

교회와 가정에 참 지도자는 말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질적으로 자녀를 믿어주고, 소망을 주고, 사랑을 주는 부모인 것입니다. 비록 온전한 부모가 많지 않고, 내 맘에 흡족한 부모가 아니라도 나는 부모에게 흡족한 자녀인가? 를 먼저 생각해 보면서 겸손한 감사의 눈이 열려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세운 학교입니다. 부모는 그 학교의 교사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자녀들을 말씀 안에서 잘 양육하도록 부모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섬기라고 하십니다. 
(딤후 4: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고전 4: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부모는 세상의 가치관에 대항해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가치관을 심어줄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가 산업화 분업화되면서 하나님의 학교로서 가정의 기능은 점차 약화되어가기만 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일반 학교 교육에 맡기고, 가정은 단지 잠자는 곳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한국 사회의 비극은 부모가 더 이상 교사이기를 포기한 데 있습니다.
그리고 맡긴 학교의 교사에게 돈으로 매수하거나 내 세상적인 욕심을 이루기 위해 피치 못하여 떠맡긴 내 부하 직원 정도로 생각하지는 안는가? 생각하면서 안타까움을 갖습니다.
하나님이 세운 교회와 그 교회에 연결된 작은 학교인 가정은, 무엇보다도 자녀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는 곳이 돼야 합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의 기를 살려주어야 합니다. 부정적인 말과 꾸중보다는 긍정적이고 칭찬하는 말을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버릇 나빠지는 것을 우려하거나 교만 할까봐서 칭찬도 못하시는 부모가 계시다면, 당신의 과거와 현재를 보시길 바랍니다.
어렸을 적 부모의 말 한마디는 그 사람의 운명을 바꾸어 놓습니다.

아무리 부족해도 “너는 앞으로 위대한 사람이 될 거야”라고 말해주어야 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역사를 창조하고 있는 위대한 존재라는 신성한 자존심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긍정적인 가치관으로 인격이 형성되는 것은 물론 하나님이 원하시는 도구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저는 어려서 어머님의 태몽을 자주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방 안에 가득한 뱀들 가운데 가장 큰 손과 발이 있는 뱀이 어머님 품으로 들어 왔답니다. 처음에는 내가 마귀인가? 했습니다. ^^
(마 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모든 세상의 지혜와 성경적 말씀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게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내게 힘들 때 마다 힘이 되는 말씀입니다. “에이 그래 다시 한 번 해보자!”

지나긴 삶의 여정 가운데에서, 좋든 나쁘든 스승이나 은인의 도움은 큰 영향을 끼칩니다. 스승은 꼭 필요하고 기다리던 때에 여러분 앞에 나타나, 함께 여정에 오르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줍니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결국은 모두가 스스로 성장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목적은 스승의 부축을 받으며 독립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도 다른 이의 스승이나 은인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어려움에 빠진 다른 누군가에게 무한히 큰 깨우침이 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도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 은인으로 남을 것입니다.

바로 진정한 인생의 고수는 자녀를 소리 없이 높여주고, 조용히 추억으로 사라지는 부모와 같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이 계심으로 다음 세대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지요.
이제 그리스도인이 어떤 일을 감당해야 하는지 조금은 윤곽이 잡히셨으리라 믿습니다.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내가 세상 끝날 가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말씀은? 담대하라고 힘을 주시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지켜 볼 꺼야! 하는 말씀도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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