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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주일]기독교 가정의 어린이 교육(마18장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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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른곰
댓글 0건 조회 526회 작성일 17-04-28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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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주일설교>기독교 가정의 어린이 교육(마18장1-5)
 강영래 목사(주님의 영광교회)


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3.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
 
동양과 서양의 뚜렷한 다른 점은 동양은 부모에 대한 효를 강조하며 어른 위주의 글이 많지만, 서양에는 아이들 위주의 글이 많습니다.

신라의 진평왕 때의 글을 보면 여러 해 동안 비가 오지 않아 백성들이 흉년으로 인하여 먹을 것이 없어 허덕였습니다.

이런 때에 “어른들은 자식을 종으로 팔아 음식을 사먹었다.”는 기록이 있고, 또한 “임금은 어른들에게 먹을 음식과 의복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고아들에게 그렇게 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오히려 자식이 굶주린 부모를 위해서 자기 허벅지 살을 베어 대접했다는 기록은 있어도, 부모가 자식에게 자기 살을 베어 먹였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만큼 동양은 어른 위주의 사회이고 효를 강조하는 사회입니다.

서구 사회에서는 옛날부터 “펠리칸”이란 새를 “미덕의 상징”으로 사랑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펠리칸이라는 새는 만약 자식이 먹을 것이 없을 때는 자기 창자를 꺼내서라도 먹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새를 사랑했다는 것은 어린이를 사랑하고 잘 키우자는 어린이 위주의 사회란 것을 증명해 줍니다.

중세기 알사스 지방에서는 시골에 아이들이 태어나면 농민들이 땅 주인에게 바치던 곡식과 짐승 등을 면제해 주었습니다. 심지어 땅 주인은 가난한 농민의 산모에게 짐승을 바치는 것을 면제해 주면서 그 대신 자기 몫으로 바쳐야 할 짐승을 잡아 산모에게 먹여서 건강하게 아이들을 잘 키우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편은 산모에게 짐승을 잡아 먹였다는 증거로 닭이면 닭 머리를 잘라 두었다가 지주에게 보여주어야 된다는 규정까지 있었습니다.

그만큼 서양은 아이들을 중요시하고 아이들을 위한 사회입니다. 서양에서는 학교 버스가 가면 그 길의 모든 차들이 가다가 멈춰서 비켜 준다고 합니다, 물론 효도도 중요하나 아이들도 잘 양육해야 하는 것을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미국의 아이들이 하나님께 쓴 편지를 한 데 묶어 책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책이 2-3개월만에 무려 100만부가 판매되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답니다.


그 책 속에 소개된 글을 소개하면,
“하나님, 나도 친구로 끼워주세요.”
“하나님, 당신은 부자입니까? 아니면 그냥 유명하기만 한 것입니까?”
“하나님은 어째서 TV에 한 번도 안 나오시나요?”
“하나님, 성경은 아주 좋은 책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책도 쓰시나요?”
“하나님, 영어 하실 줄 알죠? 그러리라 믿고 지금 영어로 편지를 쓰고 있어요.”
“하나님, 내가 하나님이 되었다고 해도 당신만큼 멋있게 해내지는 못할 거예요. 힘을 내세요.”
“하나님 전에도 편지를 썼는데 나를 기억하시나요?”

어린이는 참으로 싱싱하고 귀엽고 깜찍스러운 이미지입니다. 어린아이들을 보고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어린이는 가정의 꽃이요, 나라의 소망입니다.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저는 이 시간 이 땅에 있는 어린이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특별히 그늘져 있는 어린이들에게 광명의 빛이 비춰지기를 위해서 기도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영국 사람들은 돈을 벌면 먼저 노인들을 위해서 쓴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국을 “노인의 왕국”이라고 말합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돈을 벌면 먼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쓰기 때문에 프랑스를 “젊은이들의 천국”이라고 말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돈을 벌면 먼저 어린이들을 위해서 돈을 쓰기 때문에 미국을 “어린이의 왕국”이라고 부른답니다. 미국은 어린이에 대한 관심이나 교육시설, 교육방법, 또한 그들에 대한 인격적인 예우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앞서 있는 나라라고 합니다. 미국에서 어린이 학대를 가장 무섭게 다룹니다.


첫째로 우리가 어린이들에 대하여 인격적인 관심을 갖는 근원은 “새 생명의 무게” 때문에 그렇습니다.

  “모든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이 주셨다.”라고 해서 하나님이 주신 새 생명이기 때문에 귀하다는 것입니다.

생명이라는 것은 어른의 것이나 어린아이의 것이나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왜 어른은 존중하고 어린이는 무시하느냐 말입니다. 이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우리는 두 가지 깊은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자의 인권과 어린아이의 인권이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복음이 들어가는 곳마다 그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구약시대나 과거에는 “여자라는 것 때문에,”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당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이 담겨져 있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 생명에 인간의 존귀가 있기 때문에 어린이를 무시한다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어린아이가 가까이 오는 것을 막았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마19:14, 막10:14, 눅18:17)라고 하시며 어린이를 팔에 안으시고 안수하면서 기도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를 남달리 사랑하셨고, 어떤 면에서는 어른들의 추한 인격보다는 어린이의 순수한 마음을 더 귀하게 보셨던 것 같습니다.

또 하나 우리가 어린아이라고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언제나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전신입니다. 그래서 영국의 시인 “워즈워드”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다.”

스웨덴의 여류 교육가이며 사상가인 “엘렌 키”(Ellen Kee)는 그의 작품 “어린이의 세계”에서 “우리들은 어린이 속에서 인류의 새로운 운명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들은 어린이들의 마음 속에 있는 미묘한 시를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어린이야말로 미래의 세계를 창조할 인물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린이는 언제나 어린이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린이를 무시하거나 경시해서는 안 됩니다.

지난 날에는 힘센 남자가 여자를 괴롭히고 어린이를 무시했던 어두운 역사가 있었습니다. 더욱이 부모들이 어린이들을 자기의 액세서리로, 자기의 소유물로 착각하여 자기 마음대로 관리했던 불행스러웠던 때도 있었습니다.

이제 복음이 이 땅에 들어오고 하나님의 생명의 가치를 알았다면 어린이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저들을 위해 새로운 계획을 세워가야 합니다.

1. 이제는 자녀들을 기도로 양육합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로 올라가실 때에 많은 여인들이 그 처참한 모습을 보고 울었습니다. 그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23:28). 참으로 의미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심각하게 보신 것은 가정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부모들마다 자식에 대한 한숨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식은 뜻대로 안 된다.”는 것 때문입니다.

내가 낳고 내가 키우고 그래서 나의 것인 양 생각하고 모든 것 다 바쳐 양육하고 사랑했는데,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자식새끼 하나만 바라보고 살았는데, 그들에게 잔뜩 푸른 꿈을 꾸었는데 막상 키워 놓고 보니까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온갖 정성을 쏟아 아들을 키워 결혼시켰더니 결혼하고 나더니 부모는 뒷전이고 며느리와 손자손녀만 생각하고. 딸을 키워 시집보내었더니 시집어른 섬기고 남편과 자식 돌본다고 친정 부모는 이제는 뒤로 밀려나고. 이래저래 한숨뿐입니다.

이 시간 우리가 기억할 일이 있습니다.
내 배를 통해서 열 달 동안 온갖 고통을 참고 낳은 하나님이 주신 자식입니다.

물론 내가 내 품에서 키우고, 먹이고, 마시우게 하고,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 주며, 재우고 했지만, 나의 자녀들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한 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신 자녀들이기에 사람의 방법대로 키우되, 참 소유주는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에게 그 방법을 묻고, 지시를 받아가면서 기도로 키워야 하는 것입니다..

농사가 잘 되고 못 되고는 농부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물론 땅도 좋아야 하고, 종자도 좋아야 하고, 비도 적당히 와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농부의 정성과 방법에 따라 얼마든지 열매의 질을 좌우할 수 있다고 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가정의 어린이들이 잘 되고 잘 못되는 것은 부모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가 만능은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님이 요구하고 기대하는 자녀를 만드는 데 있어서 부모의 입장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기대하는 뜻대로 이끌어 주시도록 모든 것에 만능이신 하나님 앞에 기도한다고 것은 당연합니다. 자녀를 바르게 키울 능력도 없으면서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도록 기도도 하지 않는 부모처럼 무책임한 부모는 없다.

자녀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언젠가는 하나님 앞에서 준엄한 책임추궁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너에게 준 자식을 어떻게 키웠느냐?”

“네가 얼마나 나에게 물어가며 자식을 키웠느냐?”

“실제로 키워 보니까 네 뜻대로 되더냐?”

하나님 앞에 모두가 심판을 받되 이런 문제에 대해서 반드시 추궁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녀들의 인격이 형성되어져 가는 과정 속에는 부모의 힘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즉 부모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기에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부모님들이 자식을 먹이고, 입히고, 밀어주고, 공부할 수 있도록 돈을 대주는 것 외에 사실상 무엇을 더 해줄 수 있겠습니까?

지금 이 시간 여러분의 자녀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아무 것도 모른다면 우리의 자녀를 하나님 앞에서 책임 있게 양육하기 위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자녀들의 장래와 바른 인격형성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 아닙니까?


기도에 대한 도전을 받아야 합니다.

“한나”라는 어머니는 자식을 얻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며 기도했고, 자식을 얻었을 때 그 자식을 위해서 그토록 기도하며 기도의 자식을 만들었습니다.

“한나”는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하나님을 이런 분으로 바라보고 기도했습니다. “우리의 행동을 달아보시는 하나님,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 하나님, 음부에 내리기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 하나님.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는 하나님,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 하나님, 주기도 하시고 거두시기도 하시는 하나님” 이런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자식을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는 나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소서.” 한나가 이런 하나님을 붙잡고 기도한 것처럼 여러분도 자식을 위하여 그렇게 기도하시다가 응답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자녀를 위하여 기도하면서 몇 가지 기대하는 것이 있습니다. “자녀를 위해서 눈물로 간절하게 기도하는 부모 밑에는 절대로 영적인 방탕아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지금은 세상에 빠져 있고 하나님을 등지고 제멋대로 살아가는 자식이라 할지라도 눈물로 기도하는 부모의 자식들은 반드시 다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여러분에게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해 주시기 바랍니다.


 

많은 기도를 받고 자란 자녀는 언젠가는 그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구체적인 은총의 역사를 체험합니다. 여러분들이 자녀를 위해서 물려 줄 가장 귀한 유산은 기도에 힘쓰라고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기도를 많이 쌓으시기 바랍니다.


 

특히 자녀를 위해서 기도할 때 이런 기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처럼 믿음을 주소서. 솔로몬처럼 지혜를 주시고, 디모데처럼 진실함을 주소서.”

 

여자의 경우는 “에스더처럼 나라를 사랑하는 딸이 되게 하시고, 룻처럼 부모를 잘 공경하는 효녀가 되게 하소서.”

 

여러분들은 자녀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이런 눈물의 기도를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2. 신앙교육입니다.

신6:4 이하를 보면 “쉐마”라고 해서 유태인의 가정교육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거기에 세 가지가 나옵니다.


(1) 첫째, 하나님은 누구신가?

자녀 교육의 근본은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에게도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이시며, 창조주 하나님, 인격적인 하나님, 영원한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2) 둘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지식적으로만 가르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해서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해서 사랑”하도록 가르칩니다.

특히 사랑에 대하여 강조합니다. 이론에서 나아가 구체적인 행동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3) 셋째, “기도의 응답”에 대해서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믿고 기도하면 받은 줄로 믿어라.” 이것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부모들만이 갈등을 느끼고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초 신앙입니다. 사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만사를 해결하고 문제 속에서도 자유하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에게도 그런 믿음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믿고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어린이들의 성장과정과 인격의 형성 속에는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것 못지않은 그들 나름대로의 갈등이 있고 고민이 있습니다. 부모에게 말할 수 없고, 선생님에게 찾아갈 수 없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나름대로의 갈등이 있습니다. 그런 문제를 가지고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때 어린 아이들이 얼마나 잘못되는 지 아십니까?


 

이런 아이들에게 “기도응답에 대한 확신”을 심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와 고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 앞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것과 그 기도에 대해서 믿기만 하면 응답이 된다는 것을 가르치고 생활 속에 적용하도록 해야 합니다.


 

“순종의 위대한 힘”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구원 얻는 것은 믿음으로 되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할 수 있는 비밀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종을 가르쳐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순종을 가르쳐 주면 하나님 앞에 부모에게 선생님에게 어른들에게 권세자에게 순종을 하게 됩니다. 사람의 인격 속에서 순종의 인격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십니까?.


 

요사이 아이들이 왜 그렇게 도전적이고 반항을 합니까? 어릴 때부터 성경적인 교육을 바로 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종의 위대한 힘을 가르쳐 주십시오.


 

예수님을 믿으면 긍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작극적인 사람이 됩니다. 낙관적인 사람이 됩니다. 나아가서 헌신적인 사람이 됩니다. 그런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매사에 부정적이고 소극적이며 비판적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이것은 부모의 마음대로 고쳐질 수 없습니다. 학교 공부로도 안 됩니다. “성경의 가르침”이 있어야 합니다. 믿습니까?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우리는 자식을 지나치게 사랑하고 과잉보호를 해서 어린 자녀들을 비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것을 부모가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도소에서 죄수들이 회심을 하고 간증을 써놓은 책들을 보면, 그들이 범죄한 내용에 보면 그것은 부모가 자기들의 일을 눈감아 주고 자기를 옹호해 주고 잘못을 덮어준 것에 대해서 극심한 한탄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부모 여러분,

자녀를 감싸주기만 하는 것이 아이들한테 지금은 좋을지 몰라도 그들이 성장한 후에 부모들에게 “나를 왜 이렇게 키웠느냐?”고 손가락질하며 항의할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필요할 때는 회초리를 들고 엄하게 징계하는 하나님의 방법을 우리 가정에서도 적용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입니다.

나이 40세가 되어 애굽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부하고 자기 동족과 더불어 고난당하기로 결심한 모세의 그 마음은 어디에서 생겨났습니까? 어머니의 품에서 받은 교육의 결과였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은 지금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아무리 출세하면 뭘 합니까? 아무리 돈을 많이 벌면 뭘 합니까? 아무리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면 뭘 합니까?


하나님에게 버려진 상태이든가 그들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인격이 형성되지 못하였다면, 부모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반드시 추궁을 받을 것입니다, 이런 부모는 자녀 교육에 있어서 실패자인 것입니다.


 

죄에 깊이 물들기 전에, 나쁜 습관에 빠져들기 전에 우리 가정의 자녀들을 예수님에게 인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면서 그들이 그 안에서 신앙의 인격을 이루어 나름대로의 푸른 꿈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을 가시적이고 물질적이고 잠깐 있다가 없어질 것에 치중해서 보지 마시고, 보이지 않는 그의 인격과 보이지 않는 주님의 형상이 어떻게 형성되어 가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서 먼저 기독교교육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러시아의 대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름다운 추억, 특히 어렸을 때의 가정생활과 교회생활에서의 좋은 기억은 장래에 깊은 감화를 주는 법이다. 성스러운 교육은 최대의 교육이 된다. 그런 추억이 많은 사람은 인생을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 지워질 수 없는 교회생활을 많이 경험적으로 갖도록 부모들이 특별히 배려하고 관심 있게 교육시켜야 할 줄로 믿습니다.


 

 

3. 생활의 모범으로 양육하여야 합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마18:6, 막9:4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의도적인 것은 아니지만, 사랑하는 자녀들을 실족하게 하는 일들을 우리 부모님들이 많이 범합니다. 어린아이들은 평범한 생활에서 보면서 배웁니다. 귀로 듣고 배우는 것보다 보면서 배우는 것에 더 민감한 때입니다.


 

보고 배우기를 원하는 그들 앞에 노출된 부모님들의 비인격적인 생활이 어린 자녀들로 하여금 멍들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여러분들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느 통계에 보면, 가정에서 순수하게 자라는 어린이에게 가장 상처를 많이 주는 것은 첫 번째가 부모의 교만이고, 두 번째가 거짓말, 세 번째는 위선입니다. 이런 것들이 어린이들의 인격형성에 먹칠을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부모가 교만하면 한 울타리에서 먹고 마실지언정 어린 자녀들은 부모일지라도 교만한 사람을 멀리한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권위 때문에 거역은 못하더라도 마음으로는 점점 멀어져 간다는 것입니다.

 

교만은 하나님 앞에서도 외면당하고 사람에게서도 멀어지는 것입니다. 행여나 우리 부모님들이 삶 속에서 이 교만 때문에 어린아이들과의 따뜻한 관계가 멀어지고, 그들이 하나님과 등을 지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린이들은 순수하고 진실하고 소박합니다. 그래서 에수님은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18:3)고 하셨습니다.


 

어린아이의 품성의 특징은 겸손, 온유, 순수함, 진실함, 신뢰입니다. 이러한 것에 이질감을 느끼는 않는 부모를 아이들이 반기고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어떤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이고 있습니까? 이론은 참으로 좋은데, 실제 생활 속에서 다 된 밤에 재를 뿌리는 경우는 없습니까?


여러분들의 위선적인 생활과 형식적인 기도와 가식적인 모습 때문에 아이들이 알게 모르게 그들의 인격형성에 상처가 되는 일은 없습니까?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어린이들 앞에서는 교육적인 차원에서 여러분 스스로를 좀 더 믿음으로 단장해야 합니다. 기도로서 단장하시기 바랍니다. 생활의 본으로 단장하시기 바랍니다.


 

기독교인의 가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어린이들의 신앙 교육을 잘 시켜서 여러분의 가정과 심령 위에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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