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주일 - 자녀에게서 어버이를 봅니다 (엡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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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녀에게서 어버이를 봅니다.
교독문: 98. 어버이 주일. 말씀: 엡 6:1-3. 찬송가: 579. 어머니의 넓은 사랑.
(엡 6: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5)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6)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7)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 시간에 “자녀에게서 어버이를 봅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자녀에게서 어버이를 어떻게, 무엇을 본다는 말씀일까요? 그걸 말씀드리기 전에 질문하나 드리려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 보셨습니까? 하나님은 너무나 영광스럽고 거룩하셔서 죄인이 함부로 보려다가는 죽는다는 말씀도 있지만 동시에 성경에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말씀도 있습니다.
(요 3: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요 3: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요 6:46)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요 6: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 그런데 요한복음 14장을 보면 빌립이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할 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 하셨습니다.
이 부분이 아주 중요합니다. 어떤 자녀는 부모의 영광을 높이는 자녀가 있는가? 하면, 어떤 자녀들은 부모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자녀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모형인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시고 자기의 의는 다 내려놓으신, 자신을 부인하는 삶을 육신으로 계실 때에 확실하게 순종으로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뜻을 알아야 본을 보이는 삶과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보이지 않을까? 해서 이 시간에는 저나 여러분에게 좀 다른 방법으로 어떻게 하나님을 볼까? 일단 여러분의 제 2의 하나님의 영광이신 부모를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서 함께 하나님을 보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부모는 하나님 보다 너무 부족한 분들이지만, 하나님 아버지가 어떤 분인가를 보여주는 지상의 작은 모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부모에게서 하나님을 봅니다. 그 눈을 열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부모에게서 하나님의 사랑을 봅니다.
부모의 조건 없고 아낌없고 희생적인 사랑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배웁니다.
요 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셨습니다.
마 7:11에도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이 구절에 부모의 사랑을 비유로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독일 속담에는 "한 아버지 열 자녀 기를 수 있어도 열 자녀, 한 아버지 모시지 못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그런 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부모와 자녀의 사랑의 차이입니다. 자식에게 하는 것에 반에 반만 해도 효자 되고, 남편이나 아내에게 대하는 것 십분의 일만 해도 대단한 효자가 될 텐데 그렇지 않는 우리 자신이 늘 원망스럽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부모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배운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부모의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무조건적입니다. 희생적입니다.
● 일본 전설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아들이 자라서 어떤 여성과 교제하다가 결혼까지 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여자가 무서운 병에 걸렸습니다. 이 병은 산 사람의 간을 먹어야 낫는 희귀병이었습니다. 청년은 애인을 살리려는 욕심에 그만 어머니를 살해하여 간을 꺼내 가지고 애인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너무 정신없이 달려다가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간을 떨어뜨렸습니다. 그때 땅에 떨어진 어머니의 간이 말을 하더랍니다. "얘야, 어디 다친 데는 없느냐?" 전설이긴 하지만 이것이 바로 부모의 마음임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사랑 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도 이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이것은 복음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부모를 통해서 보여주는 복음이기도 합니다.
2. 부모에게서 하나님의 거룩을 봅니다.
사랑하는 부모이지만 자녀가 침범할 수 없는 선이 있다는 말입니다. 출 21:15에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했습니다. 출 21:17에도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레 20:9에도 “무릇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 그가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였은즉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 가리라.” 부모에게 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육신을 사용하든, 말로라도 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구약시대가 아니지만 부모에 대한 불가침의 정신만은 그대로입니다.
● 유명한 철학자 피타고라스와 플라톤도 부모는 하나님 다음이며, 하나님처럼 존경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부모를 사랑해야 하지만 부모가 하나님은 아닙니다. 부모에게 제사하며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고 우상이 되는 것과 과하게 섬기는 것은 하나님 앞에 또한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랑의 하나님이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범하면 안 됩니다. 히 12:28-29에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거룩을 범하면 죽습니다. 범죄한 영혼은 죽을 것이라. 하나님을 경외하시고 두려워하시기 바랍니다. 섬기고 싶어도 섬기지 못하는 상황을 맞은 형제, 자매들도 있습니다. 부모님 살아 계실 때에 하나님 아버지를 대하시듯 섬기시길 바랍니다.
3. 부모에게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봅니다.
출 20:12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사도 바울도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1-3) 했습니다.
지상의 부모는 하늘 아버지의 모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모 공경 잘하면 복 받습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 잘 경외하면 복 주심을 보여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부모를 잘 공경하면 장수의 복, 건강의 복, 형통의 복을 주신다는 약속 그대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모가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십니다.
부모의 허물이 보이면 눈을 감으십시오.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을 시험하심입니다. 아비의 허물을 덮은 셈과 야벳은 자손만대에 복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아비의 허물을 들춰내고 비웃었던 함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부모가 육신적인 면에서 갖춘 것이 없다고 부끄러워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갖춘 사람 많지만 내 부모처럼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나에게만큼은 최고의 존경을 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부모는 세상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나의 생명의 보금자리요. 내 생명의 은신처요 내 생명의 양육자요. 사랑을 체험케 한 첫 사랑이요. 멘토가 되는 최고의 교사요, 가장 진실 된 사랑을 보여준 참된 지도자입니다.
요일 4:20에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다.“ 하신 말씀처럼 보이는 부모도 섬기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잘 섬긴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 젊은이들은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식에게 짐 되려는 부모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바른말이지 부모 모셔서 손해 보는 것 무엇입니까? 도와주시는 것만도 매달 두툼한 월급 드려도 부족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가만 계셔도 부모는 우리의 보물입니다. 공경하면 복은 하나님이 주시기 때문입니다.
살아 계신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내가 힘들고 지칠 때 유일하게 나의 과거에 아름다운 추억처럼 우릴 평안하게 해 주시는 분들이 부모님 아닙니까? 계절 마다 잘 입지도 않거나 쓰지도 않는 더러는 일 년에 한번 입을까 말까하는 옷들도 장롱에서 버리지 못하고 보기만 해도 위로를 받고, 통장에 쓰지도 못하는 숫자에도 단순히 위로는 받아도 은행이나 보험회사가 나를 위해 죽진 못합니다. 정말 나를 잘 사나 못 났거나 죽기까지 사랑하는 부모가 계시다는 사실은 우릴 행복하게 하지 않습니까?
● 혹시 마땅치 않아도 어렵겠지만, 부모 면전에서 "아니오!"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중에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할지라도 면전에서는 흔쾌히 대답해야 합니다. 주 안에서 복음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면, 잘 분별하여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을 대하듯 부모를 기쁘게 해드려야 합니다. “나는 부모가 다 돌아가셨어요?” 그런 말 마세요! 우리에겐 부모가 많습니다. 육신의 부모, 영적인 부모, 믿음의 부모, 연세 많으신 모든 분들도 다 부모입니다. 내 직접적인 부모부터 시작하여 다른 어른들도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겐 잘하면서 자신의 부모에겐 막대한 다면 이 또한 위선입니다.
성경에 자신의 부모에게 잘한 사람은 다 복을 받았습니다. 솔로몬은 임금이 된 후에 그 모친 밧세바에게 그러했습니다. 왕이면서도 어머니가 올 때에 일어나 영접하고 절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소청을 경청했습니다. 요셉도 그랬습니다. 애굽의 총리였지만 늙으신 아버지 야곱을 맞이하기 위하여 일어나 마중을 나갔습니다.
● 조선 시대에 어느 임금님이 한양을 떠나서 개성을 방문했습니다. 사람들이 임금님 용안을 보려고 구름떼처럼 몰려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있는 한 나이 많은 어머니가 그 소문을 듣고 아들에게 청합니다. “얘야 멀리서라도 임금님의 용안라도 좀 뵙고 죽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들은 50리 길을 어머니를 업고 왕이 행차하는 길에서 기다렸습니다. 이것을 본 임금은 행차를 멈추게 하고 그 효자에게 돈 백냥과 쌀 한 섬을 상으로 주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이 소식을 들은 다른 동네 불효자식 한 사람이 돈을 벌기 위해서 어머니가 원치도 않는 걸 강제로 업고 나가서 임금님이 지나시는 그 길가에 나가서 왕을 뵈었습니다. 왕은 역시 그에게도 백 냥을 주라 했습니다. 주변의 그 자를 아는 사람들과 신하들과 군수가 “임금님, 이놈은 불효자입니다. 이놈은 남이 돈 받았다는 말을 듣고 머니를 억지로 엎고 나왔으니 상 대신 벌을 줘야합니다.” 그러자 임금이 “효도는 흉내만 내도 좋은 거야. 그런고로 상주라.”고 했답니다.
효도는 흉내만 내도 상을 주는데 하나님 잘 공경하면 왜 복을 주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하나님 잘 경외하면 복을 주십니다. 시편 128편에 “(시 128: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3)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5)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6)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기독교는 감사와 섬김과 효행의 종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육신의 부모에게 한결같이 받드시고 사랑했습니다. 부모님은 하나님을 보여주는 지상의 모형입니다. 우리 모두 부모님을 통해 하나님을 보고, 부모 섬김을 통해 하나님 섬기는 법을 배우고, 그래서 하나님을 잘 공경하여 하나님께 큰 복을 받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 안에서 부모에게 효도하시는 거룩한 선교초대교회 성도들 다되시길 다시 한번 축복합니다.
교독문: 98. 어버이 주일. 말씀: 엡 6:1-3. 찬송가: 579. 어머니의 넓은 사랑.
(엡 6: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5)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6)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7)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 시간에 “자녀에게서 어버이를 봅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자녀에게서 어버이를 어떻게, 무엇을 본다는 말씀일까요? 그걸 말씀드리기 전에 질문하나 드리려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 보셨습니까? 하나님은 너무나 영광스럽고 거룩하셔서 죄인이 함부로 보려다가는 죽는다는 말씀도 있지만 동시에 성경에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말씀도 있습니다.
(요 3: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요 3: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요 6:46)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요 6: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 그런데 요한복음 14장을 보면 빌립이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할 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 하셨습니다.
이 부분이 아주 중요합니다. 어떤 자녀는 부모의 영광을 높이는 자녀가 있는가? 하면, 어떤 자녀들은 부모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자녀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모형인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시고 자기의 의는 다 내려놓으신, 자신을 부인하는 삶을 육신으로 계실 때에 확실하게 순종으로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뜻을 알아야 본을 보이는 삶과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보이지 않을까? 해서 이 시간에는 저나 여러분에게 좀 다른 방법으로 어떻게 하나님을 볼까? 일단 여러분의 제 2의 하나님의 영광이신 부모를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서 함께 하나님을 보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부모는 하나님 보다 너무 부족한 분들이지만, 하나님 아버지가 어떤 분인가를 보여주는 지상의 작은 모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부모에게서 하나님을 봅니다. 그 눈을 열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부모에게서 하나님의 사랑을 봅니다.
부모의 조건 없고 아낌없고 희생적인 사랑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배웁니다.
요 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셨습니다.
마 7:11에도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이 구절에 부모의 사랑을 비유로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독일 속담에는 "한 아버지 열 자녀 기를 수 있어도 열 자녀, 한 아버지 모시지 못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그런 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부모와 자녀의 사랑의 차이입니다. 자식에게 하는 것에 반에 반만 해도 효자 되고, 남편이나 아내에게 대하는 것 십분의 일만 해도 대단한 효자가 될 텐데 그렇지 않는 우리 자신이 늘 원망스럽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부모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배운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부모의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무조건적입니다. 희생적입니다.
● 일본 전설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아들이 자라서 어떤 여성과 교제하다가 결혼까지 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여자가 무서운 병에 걸렸습니다. 이 병은 산 사람의 간을 먹어야 낫는 희귀병이었습니다. 청년은 애인을 살리려는 욕심에 그만 어머니를 살해하여 간을 꺼내 가지고 애인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너무 정신없이 달려다가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간을 떨어뜨렸습니다. 그때 땅에 떨어진 어머니의 간이 말을 하더랍니다. "얘야, 어디 다친 데는 없느냐?" 전설이긴 하지만 이것이 바로 부모의 마음임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사랑 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도 이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이것은 복음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부모를 통해서 보여주는 복음이기도 합니다.
2. 부모에게서 하나님의 거룩을 봅니다.
사랑하는 부모이지만 자녀가 침범할 수 없는 선이 있다는 말입니다. 출 21:15에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했습니다. 출 21:17에도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레 20:9에도 “무릇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 그가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였은즉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 가리라.” 부모에게 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육신을 사용하든, 말로라도 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구약시대가 아니지만 부모에 대한 불가침의 정신만은 그대로입니다.
● 유명한 철학자 피타고라스와 플라톤도 부모는 하나님 다음이며, 하나님처럼 존경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부모를 사랑해야 하지만 부모가 하나님은 아닙니다. 부모에게 제사하며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고 우상이 되는 것과 과하게 섬기는 것은 하나님 앞에 또한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랑의 하나님이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범하면 안 됩니다. 히 12:28-29에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거룩을 범하면 죽습니다. 범죄한 영혼은 죽을 것이라. 하나님을 경외하시고 두려워하시기 바랍니다. 섬기고 싶어도 섬기지 못하는 상황을 맞은 형제, 자매들도 있습니다. 부모님 살아 계실 때에 하나님 아버지를 대하시듯 섬기시길 바랍니다.
3. 부모에게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봅니다.
출 20:12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사도 바울도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1-3) 했습니다.
지상의 부모는 하늘 아버지의 모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모 공경 잘하면 복 받습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 잘 경외하면 복 주심을 보여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부모를 잘 공경하면 장수의 복, 건강의 복, 형통의 복을 주신다는 약속 그대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모가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십니다.
부모의 허물이 보이면 눈을 감으십시오.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을 시험하심입니다. 아비의 허물을 덮은 셈과 야벳은 자손만대에 복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아비의 허물을 들춰내고 비웃었던 함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부모가 육신적인 면에서 갖춘 것이 없다고 부끄러워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갖춘 사람 많지만 내 부모처럼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나에게만큼은 최고의 존경을 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부모는 세상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나의 생명의 보금자리요. 내 생명의 은신처요 내 생명의 양육자요. 사랑을 체험케 한 첫 사랑이요. 멘토가 되는 최고의 교사요, 가장 진실 된 사랑을 보여준 참된 지도자입니다.
요일 4:20에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다.“ 하신 말씀처럼 보이는 부모도 섬기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잘 섬긴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 젊은이들은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식에게 짐 되려는 부모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바른말이지 부모 모셔서 손해 보는 것 무엇입니까? 도와주시는 것만도 매달 두툼한 월급 드려도 부족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가만 계셔도 부모는 우리의 보물입니다. 공경하면 복은 하나님이 주시기 때문입니다.
살아 계신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내가 힘들고 지칠 때 유일하게 나의 과거에 아름다운 추억처럼 우릴 평안하게 해 주시는 분들이 부모님 아닙니까? 계절 마다 잘 입지도 않거나 쓰지도 않는 더러는 일 년에 한번 입을까 말까하는 옷들도 장롱에서 버리지 못하고 보기만 해도 위로를 받고, 통장에 쓰지도 못하는 숫자에도 단순히 위로는 받아도 은행이나 보험회사가 나를 위해 죽진 못합니다. 정말 나를 잘 사나 못 났거나 죽기까지 사랑하는 부모가 계시다는 사실은 우릴 행복하게 하지 않습니까?
● 혹시 마땅치 않아도 어렵겠지만, 부모 면전에서 "아니오!"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중에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할지라도 면전에서는 흔쾌히 대답해야 합니다. 주 안에서 복음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면, 잘 분별하여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을 대하듯 부모를 기쁘게 해드려야 합니다. “나는 부모가 다 돌아가셨어요?” 그런 말 마세요! 우리에겐 부모가 많습니다. 육신의 부모, 영적인 부모, 믿음의 부모, 연세 많으신 모든 분들도 다 부모입니다. 내 직접적인 부모부터 시작하여 다른 어른들도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겐 잘하면서 자신의 부모에겐 막대한 다면 이 또한 위선입니다.
성경에 자신의 부모에게 잘한 사람은 다 복을 받았습니다. 솔로몬은 임금이 된 후에 그 모친 밧세바에게 그러했습니다. 왕이면서도 어머니가 올 때에 일어나 영접하고 절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소청을 경청했습니다. 요셉도 그랬습니다. 애굽의 총리였지만 늙으신 아버지 야곱을 맞이하기 위하여 일어나 마중을 나갔습니다.
● 조선 시대에 어느 임금님이 한양을 떠나서 개성을 방문했습니다. 사람들이 임금님 용안을 보려고 구름떼처럼 몰려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있는 한 나이 많은 어머니가 그 소문을 듣고 아들에게 청합니다. “얘야 멀리서라도 임금님의 용안라도 좀 뵙고 죽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들은 50리 길을 어머니를 업고 왕이 행차하는 길에서 기다렸습니다. 이것을 본 임금은 행차를 멈추게 하고 그 효자에게 돈 백냥과 쌀 한 섬을 상으로 주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이 소식을 들은 다른 동네 불효자식 한 사람이 돈을 벌기 위해서 어머니가 원치도 않는 걸 강제로 업고 나가서 임금님이 지나시는 그 길가에 나가서 왕을 뵈었습니다. 왕은 역시 그에게도 백 냥을 주라 했습니다. 주변의 그 자를 아는 사람들과 신하들과 군수가 “임금님, 이놈은 불효자입니다. 이놈은 남이 돈 받았다는 말을 듣고 머니를 억지로 엎고 나왔으니 상 대신 벌을 줘야합니다.” 그러자 임금이 “효도는 흉내만 내도 좋은 거야. 그런고로 상주라.”고 했답니다.
효도는 흉내만 내도 상을 주는데 하나님 잘 공경하면 왜 복을 주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하나님 잘 경외하면 복을 주십니다. 시편 128편에 “(시 128: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3)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5)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6)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기독교는 감사와 섬김과 효행의 종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육신의 부모에게 한결같이 받드시고 사랑했습니다. 부모님은 하나님을 보여주는 지상의 모형입니다. 우리 모두 부모님을 통해 하나님을 보고, 부모 섬김을 통해 하나님 섬기는 법을 배우고, 그래서 하나님을 잘 공경하여 하나님께 큰 복을 받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 안에서 부모에게 효도하시는 거룩한 선교초대교회 성도들 다되시길 다시 한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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