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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날]행복한 부부되게 하소서! (엡 5: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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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른곰
댓글 0건 조회 848회 작성일 21-05-16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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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가 좋지 못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주일 남편 혼자 교회에 다녀오더니만 남편의 태도가 아주 달라졌습니다. 생전 부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마디 안하던 남편이 여보 사랑해요! 부인에게 애교를 부립니다. 할일이 없으면 누워서 잠은 자도 집안일이라고는 도와주지 않던 남편이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도 도와줍니다. 부인이 속으로 이 남자가 왜 이래??

 부인은 곰곰이 생각하다 어제 주일 목사님의 설교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 생각을 했습니다. 너무 고마워서 과일 바구니를 사들고 목사님을 찾아 갔습니다. 목사님 고마워요! 어제 목사님의 설교가 아주 좋았다죠! “아내를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설교였나요?” 그러자 목사님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대답합니다. 아닌데요!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설교였는데요...

 5월 21일, 오늘은 부부의 날입니다. 둘이 하나가 되어 진 날, 부부의 날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과 만남을 통해 관계를 형성하며 삽니다. 많은 만남 중에 한 여자를 만나고, 한 남자를 만나 부부가 되었다고 하는 정말 신비한 일입니다. 성경에는 부부는 하나님이 짝지어주셨다고 했습니다(마19:6). 우리는 하나님이 부부로 만나게 했다는 이 사실을 꼭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부부들이 헤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 한다고 하신 말씀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마19:6). 하나님은 이혼하는 것을 미워하십니다(말2:16). 사랑해서 만나 결혼을 했는데 얼마나 힘들면 이혼을 했겠나... 측은지심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결혼 했으면 어려움이 있어도 인내하며 책임적인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겨야 합니다(히13:4). 결혼은 하나님이 만드신 제도입니다.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와를 만들어 같이 살도록 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힘을 합하여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어떤 부부들은 애정 없이 삽니다. 서로 포기하고, 기대도 없이, 어쩔 수 없이 사는 부부들이 있습니다.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한 남자의 아내가 그만 죽게 되었습니다. 이 슬픔을 당한 남자에게 한 친구가 문상을 왔습니다. 그 친구는 빈소에 오자마자 방바닥을 치면서 대성통곡을 합니다. 이 남자는 생각하기를 ‘참 수상하네, 저 친구가 왜 남의 아내가 죽었는데 저렇게 슬피 울지? 저번에 집에 몇 번 오더니 이상하게 된 게 아닐까?

 한참 동안 서글프게 운 친구는 드디어 이 상주에게 인사를 합니다. 상주가 하는 말이 ‘여보게, 내 아내가 죽었는데 왜 자네 아내가 죽은 것처럼 그렇게 슬피우나? 무슨 사연이라도 있나?’ ‘그럼, 사연이 있지. 다 나를 위해서 운다네. 생각해 보게. 자네는 일이 잘 풀려 이제는 자유인이 된 게 아닌가? 난, 언제 일이 풀릴지 기약이 없어 내 모습이 서러워 운다네’

 하나님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 결혼제도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제도 안에서 우리는 행복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노르웨이 극작가 입센은 “결혼 생활의 거친 바다를 헤쳐 갈 나침반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결혼은 미로와 같이 복잡하고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 서양의 격언에도 ‘바다로 나갈 떼에는 한번 기도하라. 전쟁터로 나갈 때는 두 번 기도하라. 그러나 결혼식장에 나갈 때는 세 번 기도해라’ 결혼은 위험한 항행보다, 전쟁보다 더 잘 준비해야 하고, 더 치열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에게 결혼생활에 대한 최고의 나침반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 결혼생활의 최고의 나침반입니다. 이 나침반을 이용해서 방향만 잘 잡으면 둘이서 하나 되어 함께 헤쳐 나가는 인생 항해는 성공합니다. 

 

 오늘 말씀은 부부윤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부부 윤리는 말씀사랑과 존경입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22-23절).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 할지니라>(24절). 아내는 주님께 교회가 복종하듯이 남편에게 복종하고 존경하라는 것입니다.

 

 남편이 지켜야 할 원리도 있습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과 같이 하라>(25절).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28절). 남편은 주님이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부부는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살아야 합니다.

 

 나르시소스라고 하는 아름다운 소년이 살았습니다. 이 소년은 얼마나 잘생겼는지 보는 사람마다 그 얼굴에 매료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이 소년은 물가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면서 그 모습에 반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소년은 물에 비친 자기 얼굴에 입을 맞추려고 얼굴을 가까이 대었습니다.

 그리고 팔을 뻗어 안으려고 그 팔을 물속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러나 물에 파문이 일었고, 얼굴이 흔들렸습니다. 이 소년은 자기 얼굴이 도망가는 줄로 착각해서 ‘가면 안 돼! 가지 마~’ 하고 달려 붙으려다 그만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꽃이 한송이 피어났는데 그 꽃의 이름이 수선화라고 합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 소년의 행동과 마음가짐, 즉 자아도취적 증세를 가리켜서 전문용어로 나르시즘(Narcissism) 이라고 합니다. 부부관계의 결정적인 문제는 이 나르시즘이 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고, 협력하고, 마음을 모아서 살아가는 것이 결혼관계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자기 생각만 하면서 거기 푹 빠져들기 시작하면 다른 한쪽은 상처를 받습니다. 그러다 보면 부부관계에 금이 가고 깨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혼은 행복하기 위해서 합니다. 그런데 이 행복은 참 이상합니다. ‘나부터 행복하겠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라. 그래서 내가 행복해지면 너에게 행복을 쬐끔 나눠 줄게’ 그런 마음속에는 행복이 없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놓았어요. 그럼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가? ‘당신부터 행복 하세요’ 상대방을 행복하게 만들 때, 진정한 행복이 나에게 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행복의 원리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천국에 갔더니 사람들의 얼굴이 빛이 나더랍니다. 그런데 지옥에 가보니 모두 피골이 상접하여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천국이나 지옥이나 음식은 똑 같더랍니다. 문제는 숟가락에 있었습니다. 숟가락의 길이가 아주 길었습니다. 천국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 남에게 떠 먹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얼굴이 빛이 났습니다.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긴 숟가락으로 입식을 먹으려하니 입에 넣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옥은 다 같이 불행해진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남을 향한 배려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에 신경을 쓰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나도 함께 더불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나만 행복해지겠다는 이기주의적인 마음은 버려야 합니다. 나의 행복만 증대시켜야 된다는 생각은 마귀가 준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더불어 행복해지기를 원하십니다. 부부사이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 남을 향한 배려를 가지고 삽시다. 더불어 행복을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부부는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 둘이 한 육체가 될 지니라>(31절). 사랑은 한 방향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한 방향을 보십시오. 행복관에서 한 방향을 보십시오. 인생관에서 한 방향을 보십시오. 사명감에서 한 방향을 보십시오. 그러면 차이는 극복 될 것입니다. 행복의 수준도 향상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자연적인 사랑 감정이 얼마 동안이나 유지될까에 대한 논문들이 많습니다. 논문에 보면 인간의 자연적인 사랑 감정은 1년 6개월에서 길어야 3년이라고 합니다. 불같은 사랑을 하고 있어도 사랑의 관계증진을 위해 아무 노력도 안하면 그 사랑이 싹 식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사랑한다고 해서 영원히 가만히 있어도, 내가 뒤로 나자빠져 있어도 계속 사랑의 불길이 타 오를 수 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학문적으로 증명된 것입니다. 부단히 사랑을 위하여 노력하고, 수고하고, 가꾸어 가는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저희 결혼 주례를 하셨던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결혼의 바다에는 암초가 많다. 결혼 전에는 두 눈을 뜨고, 결혼 후에는 한 눈을 감아라.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한 눈에 반해서 결혼을 합니다. 쌍꺼풀이 예뻐서, 귀여워서, 잘생겨서, 돈을 잘 벌어서... 결혼을 하고 정신을 차리고 두 눈을 뜨고 배우자를 보니 살맛이 안 납니다. 상대방의 허물이 보입니다. 저런 인간과 어떻게 평생을 사나...     

 인생은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만남은 필연적으로 서로에게 영향력을 주게 됩니다. 선한 영향력도 있습니다. 악한 영향력도 있습니다. 부부가 서로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돕는 배필로 하와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하와의 말 때문에 아담의 인생까지 망쳐져 버렸습니다. 돕는 배필이 되라고 했더니, 망하게 하는 배필이 되었습니다.

 여자 말 안 듣는 남자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남자 여러분! 여자 말 다 들으면 망합니다. 여자말보다 하나님 말씀을 잘 들어야 삽니다. 여자말보다 목사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기도도 안하고, 잠만 많이 자는 여자 말 듣다가는 큰일 납니다. 육신적인 정욕으로만 가득 차 있는 여자 말 다 들으면 인생이 종 칩니다.

 성경에 나오는 최악의 부부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입니다. 이들이 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세 시간 간격으로 죽었습니까? 부부 둘 다 정신을 못 차렸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성령을 속인 것을 아내도 알았습니다(행5:2). 삽비라는 잘못된 길로 가는 남편 아나니아를 보고도 잘못 되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부부 둘 중에 적어도 한사람은 깨어 있어야 망하지 않습니다.   

 부부뿐만 아닙니다. 우리 사람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면 삽니다. 우리는 만나는 모든 관계 속에서 선한 영향력을 미쳐야 합니다. 만약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서 좋은 영향력을 못 받는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내가 그 사람을 좋은 영향력으로 정복을 하던지, 아니면 그 관계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만나서 안 좋은 영향력만 계속 온다면 정리해야 합니다.  

 

 저는 예찬교회 담임목사로서 예찬교회 부흥 말고는 다른 소원이 없습니다. 많은 새 가족이 오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런 마음이 있습니다. 새 가족을 누구에게 붙여주면 정말 하나님의 마음으로, 담임목사님으로 마음으로, 잘 돌보며 교회에 정착 시킬 수 있을까? 우리 모두 새 가족에게 좋은 본을 보입시다. 새 가족에게 의도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주어야 합니다. 새 가족을 좋은 본으로, 선한 영향력으로 잘 붙들어 주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부부사이를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로 말씀합니다. 주님은 교회를 피로 값 주고 사셨습니다(행20:28).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이처럼 친밀합니다. 부부사이도 이처럼 친밀한 사이입니다. 부부는 하나님이 맺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맺어 주신 부부의 만남을 통해 더 큰 행복을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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