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주일] 삼위일체 신앙. 왕상 18:36-40, 행 4: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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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삼위일체 신앙
성경 : 왕상 18:36-40, 행 4:8-12.
예전이나 지금이나 장맛비가 많이 와서 지방 마다 피해가 발생합니다. 철로가 유실되고 논밭이 물에 잠기기도 합니다. 해마다 반복되는데도 불구하고 미리 대비를 하지 못하고 있다가 번번이 당하게 됩니다. 이렇게 지구 안에 작은 나라에서도 해마다 반복되는 일도 알지 못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우주를 만드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마음을 알 수 있을까요? 사실 불가능하게 보이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의 사자들을 통해서 성도들인 사람들에게 가르쳐주신 것만큼은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아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또 성령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 세분의 위는 다르지만 예수님과 성령님이 하나님과 서로 대화도 하시고 회의도 하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결정을 따라 온전히 일하십니다.
(창 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마 3: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요 11: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이 세분 하나님은 언제나 함께 계셨고 같이 일하셨으며 영광과 능력이 동일하시고 완벽한 하나를 이루고 계신다. 그래서 이를 삼위일체(三位一體 The Trinity)라 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도 [삼위일체 신앙]이어야 합니다. 창조주 성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구세주 성자 예수님에 대한 신앙과, 보혜사 성령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골고루 균형을 갖추는 것이 바른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신앙]
1. 성부 하나님께 대한 신앙.
왕상 18:36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야곱)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기도할 때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았다.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했다.
엘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자를 잡되 그들 중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했고 그들을 기손 시내로 잡아 내려가 다 죽였다. 갈멜산 위에서의 이 사건은 다신사상(多神思想)이 가득한 이 세상에 하나님은 홀로 한 분이심을 명백히 나타낸 대표적인 사건이다. 구약성경이 중요한 이유는 다신사상이 가득한 이 세상에 유일신 사상을 확립해준 것이다. 유일신 사상은 처음부터 있었다.
에덴동산에 인간이 창조된 때부터 유일신 사상만 있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하자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되었다.
(롬 1: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롬 3:10)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죄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는지라. (전 3:11) 하나님 대신에 여러 가지 우상을 만들어 섬기게 되니 이것이 다신 사상입니다. 지금도 일본 국기에는 태양이 들어있습니다. 태양신입니다. 아랍국가에는 초생 달이 들어있습니다. 달 신입니다. 동양 여러 나라에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이 있습니다. 짐승 신입니다. 생일에 음력을 쓰지 말고, 양력으로 바꾸라고 권면하는 이유는 음력을 쓰면 ‘띠’가 나오고 띠는 바로 이 짐승 신과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신사상에서 온전히 떠나야 합니다. 그리고 유일하시고 참되신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다신사상은 참으로 넓게 퍼져있고 사람에게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내에도 들어와 있기도 합니다. 바로 요즘에 문제가 되고 있는 ‘종교다원주의’와 ‘혼합주의’ 신앙입니다. 평화도 중요하고 연합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과 우상이 같다’거나 ‘모든 종교는 같다’고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모든 아버지는 똑 같다. 그럼으로 내 아버지다? 말도 안 되는 이기주의와 인본주의 사상인 것입니다.
또 유일신교라 해서 이슬람과 기독교를 같이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슬람은 기독교와 다릅니다. ‘알라’는 ‘여호와 하나님’과 다릅니다. 이슬람이 기독교국에 침투하면서 ‘알라’는 ‘하나님’과 같다는 속이는 전법을 쓰고 있습니다.
한국이란인교회 이만석 목사(57)님은 하나님과 알라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코란을 보면 알라가 성경의 하나님과 전혀 다르게 되어 있다면서 목회자들조차 혼동하는 것을 개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시다] 창조주 성부 하나님을 제대로 믿으면 엄청난 은혜를 받게 된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정녕 믿는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정녕 믿으면 세계가 달리 보이게 됩니다. 자연은 그냥 자연이 아니고 하나님의 정원이 되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하여 창조하시고 관리 운영하시는 아름다운 정원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영원하심 지혜와 능력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 된 우리들도 그의 광대하심을 따라 얼마든지 뻗어나갈 수 있게 됩니다. 그의 영원하심을 따라 영원해지게 됩니다. 그의 지혜를 따라 얼마든지 지혜롭게, 그의 능력을 따라 얼마든지 능력 있게 될 수 있습니다. 지식이 있게 되며 진리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2. 성자 예수님께 대한 신앙.
신약성경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구약의 유일신 신앙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삼위일체 신앙으로 확립해줍니다. 이미 구약에 언급된 것인데 확립한 것입니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은 구약에 무수히 많습니다.
(시 2: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메사야)를 대적하며―
(시 2: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시 2:12) 그의 아들에게 입 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과 관계된다.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 모두의 죗값을 치르셨다. 이를 인정만 하면 죄 사함을 얻게 된다. 구원을 얻는 것이다. 죄와 사망에서 의와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그 후에도 계속 우리가 죄를 범하지만 계속 우리를 깨끗하게 하신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피는 ‘정결하게 하는 샘’이 되어 우리를 깨끗하게 하고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와 연결시킨다. 화목 시킨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한다 할렐루야!
(찬 258) 샘물과 같은 보혈은 주님의 피로다 보혈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반복).
(롬 3:23) 에서 죄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던 인간이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된다.
(복음성가)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보혈을 지나 아버지 품으로 한걸음씩 나가네
존귀한 주 보혈이 내 맘을 새롭게 하시네 존귀한 주 보혈이 내 맘을 새롭게 하네.
3. 성령 하나님께 대한 신앙.
성령에 대한 예언도 구약에 무수히 많다.
(욜 2: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구세주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은 우리 몸에 비유한다면 몸통에 해당한다 하겠다. 거기에 비하면 보혜사 성령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우리 몸에 팔과 다리에 해당한다. 다시 말하면 능력과 관계된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증인이 되리라. 성령은 권능과 관계가 있다.
머리는 하나님과 관계되고 몸통은 인격과 관계된다면 팔다리는 일과 관계된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알고 또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도 아는 제자들에게, 세상에 나가 일하기 앞서 성령이 임하시기를 기다리라 하셨다.
성령이 임하셔야 제자들의 일이 열매를 맺겠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다렸다. 성령님은 임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권능이 나타났다. 증인의 삶에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다.
하루에 삼천 명(행 2:41) 오천 명(행 4:4)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았고(행 2:38), 새롭게 되었다(행 3:19).
이적과 기사가 뒤따랐다. 성전 미문 앞에서 구걸하던 나면서 못 걷게 된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에 의하여 나음을 받게 되자 모든 백성이 심히 놀라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비상한 관심이 쏠리게 되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두 사도를 체포했다. 이튿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공회를 모여 두 사도를 심문할 때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말하는 말이 권세가 있고 능력이 있어서 저들이 꼼짝할 수 없게 되었다.
(행 4: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가히 폭탄선언이나 다름없다. (행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이 말은 ‘너희도 예수 믿지 않으면 구원을 못 받는다.’는 선언이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권세와 능력, 권능이다. 어찌할 줄 모르게 된 공회원들이 위협하여 놓으려 하자 (행 4: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완전 승리다.
우리의 신앙 체계에 있어서 보혜사 성령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반드시 필요하다. 만약 이것이 없으면 우리는 한 발짝도 못 나갈 것이다. 부흥을 바라나 부흥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유일하신 성부 하나님을 믿고, 구세주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뿐 아니라, 반드시 보혜사 성령 하나님과 함께 해야 한다.
여러분은 성령이 내 속에 계신 것을 아는가? 믿는가? 확신하는가? 그러기를 바란다.
예수님을 그리스도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요 1:12).
(고전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이 사실을 알자.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고백하는 자는 그 속에 성령이 거하신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내 안에 성령님을 잊지 말자.
(갈 2:20)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예수님이 어떻게 내 안에 거하시는가? 말씀과 성령으로!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항상 기억하고 잊지 말고 그분과 늘 대화하자. 크고 작은 일을 의논하자. 함께 자고 함께 일어나고 함께 일하고 함께 걷자. 그러면 일이 아주 가벼워진다. 쉬워진다. 무엇보다 열매가 열린다는 것이 중요하다. 제아무리 발 버둥쳐 보라. 힘만 들고 열매는 없다. 왜? 성령님을 제켜놓고 했기 때문이다.
(찬 191)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을 행함은 주의 팔이 나를 안보함이요
내가 주의 큰 복을 받는 참된 비결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우리에게 머리와 몸통과 팔다리가 있듯이 우리의 신앙체계도 삼위일체 신앙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자. 머리는 창조주 성부 하나님과 통하고, 몸통으로는 구세주 성자 예수 그리스도님을 모시고! 팔다리는 보혜사 성령 하나님과 반드시 함께 하므로 권능이 나타나고 열매를 맺기를 항상 기도하자. 여러분의 앞날에 성삼위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다. 할렐루야!
제목 : 삼위일체 하나님을 우리는 믿습니다.
성경 : 마태복음 28:16-20
오늘은 “삼위일체주일”입니다. 그래서 삼위일체에 관하여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어떤 목사님이 옛날에 목사 안수를 받기 위한 최종 면접을 볼 때 면접관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주후 325년에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압니까?"
"그때 교회 역사상 유명한 회의 중의 하나인 니케아 회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목사님이 또 물어보았습니다. "니케아 회의에서 어떠한 일이 있었습니까?"
"그동안 지속적으로 있어 왔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관계를 밝히는 논쟁에서 최종적으로 삼위일체론이 니케아 회의에서 채택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그 목사님은 "앞으로 사역하는 동안 삼위일체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이단이 이 논리를 파괴하면서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라고 권면의 말씀을 주었습니다.
'삼위일체론'은 교회사의 이단 논쟁에 있어서 가장 중심부에 위치해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의 온전한 신성을 부인함으로 삼위일체를 파괴하는 이단이 종종 발견되고 있습니다.
한가지 예로 통일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실패자로 보는 시각을 들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론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기독교 교리의 핵심입니다. 역사상 가장 중요한 교회회의들이 바로 이 점과 관련해서 개최되었습니다. 나중에 기독론에서 논하겠지만 교회사의 3대 회의로 일컬어지는 니케아 회의, 콘스탄티노플 회의 및 칼케돈 회의가 바로 이러한 논쟁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1. 삼위일체론은 무엇입니까?
그러면 '삼위일체론'이란 무엇입니까?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과 성부와 성자는 세 가지 위치를 보이고 있지만 결국 동일 본질이다"라는 이론입니다. 더 쉽게 이야기하면 '셋이 하나다'라는 이론입니다.
이 이론은 이성에 충실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이론이 됩니다. 누가 이론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곳곳에서 이 이론이 사실임을 뒷받침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 창세기 1장 26절을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와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이 말에서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위격(인격)이 하나 이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0장 30절에서 예수께서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이 예수님의 말씀도 성부와 성자의 하나됨을 이야기하며 하나님의 위격(인격)이 하나 이상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17장 22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예수님의 말씀도 하나님의 위격(인격)이 하나 이상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한 분 이상이란 말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기독교는 유일신교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기독교가 하나 이상의 신을 인정하는 일은 기독교가 유일신교임을 포기하고 다신론으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말하고 있는 바에도 충실하고 기독교가 유일신교임을 포기하지 않는 일에도 충실하기 위해 '삼위일체론'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이런 목적으로 삼위일체론이 등장하긴 했지만 인간의 이성으로는 그 깊은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삼위일체론은 가장 어려운 이론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평신도들의 수많은 질문이 이 주제에 쏟아지고 목회자들은 이 질문을 대답하려고 땀을 흘리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우리는 삼위일체에 관한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어떤 사람이 다니엘 웹스터라는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지성적인 사람이 삼위일체를 믿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뛰어난 지력을 가진 사람이 셋과 하나가 같은 것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요?" 그때 웹스터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저는 천국의 수학을 이해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삼과 일이 같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웹스터는 그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의미에서는 한 분이시고 어떤 의미에서는 세 분이십니다. 웹스터는 그것을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하려고 하지 않고 다만 인정하려고 했기에 어떤 의미에서는 피조물의 겸손을 역설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마지막 위임의 말씀인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마28:19)입니다. 우리는 이와같은 삼위가 일체이라는 삼위일체론을 믿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것을 잘 이해하기 때문이 아니고 성경이 우리에게 그것에 대해 가르치고 또한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친히 그렇게 증거하시기 때문입니다.
2. 삼위일체에 관한 잘못된 해석에 유의해야 합니다.
삼위일체는 인간의 이성을 초월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이 이론을 인간의 이성에 병합시켜 이해하려고 해서 이단으로 정죄되기도 했습니다.
삼위일체에 관한 이단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그 두 가지 중의 하나는 "종속설"이고 나머지 하나는 "양태론"입니다.
먼저 종속설이란 "아리아니즘"이라고 하며 성자와 성령은 성부보다 못한 종속된 상태에서 일체를 이루고 있다는 설입니다. 이 설은 삼위의 동등성을 부인함으로 기독교의 유일신성을 유지하려고 하는 설입니다.
1054년 로마 캐톨릭이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로 갈라진 것은 이 종속설과 상당한 연관이 있습니다. 물론 후에 교회사가들이 말하기를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갈라짐은 교리적인 문제보다는 교권적인 문제가 더 컸던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교리적인 문제에서 이 종속설이 분열을 이끌어내는 결정적 논쟁거리를 제공했습니다.
그때 논쟁의 주제는 "하나님의 역사가 어떻게 나타나느냐"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 당시 동방교회는 "하나님의 역사가 성자와 성령을 통해 흘러온다"고 주장하며 성부와 성자를 하나님의 역사를 수행하는 종속적 존재로 보았고, 서방교회는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에게 직접 올 뿐만 아니라 성자, 성령의 역사도 우리에게 직접 흐른다"고 주장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동일하게 보았습니다.
그리고 양태론이란 "사벨리아니즘"이라고 하며 "하나님은 한분인데 성부, 성자, 성령의 모습으로 자신을 계시하는 것이다"라는 이론입니다. 즉 본질적으로는 하나님은 하나이지만 세가지 형태로 나타난다고 하여 기독교의 유일신성을 유지하려는 것입니다. 더욱 쉽게 이야기 한다면 하나님이란 본질이 성부라는 가면을 쓰면 성부가 되고 성자라는 가면을 쓰면 성자가 되고 성령이라는 가면을 쓰면 성령이 된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삼위일체론을 인간이 이성이 이해되도록 억지로 설명하기 위해 이러한 양태론을 말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물의 세가지 형태를 들어 삼위일체론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즉 물이라는 본질이 어떤 때는 수증기가 되고 어떤 때는 물이 되며 어떤 때는 얼음이 되는데 이것을 삼위일체와 같다고 유추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형태로 삼위일체를 유추하여 양태론을 유추론이라고도 합니다. 우리 주위를 살펴 보면 이러한 형태의 어리석은 유추를 많이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3. 삼위일체를 다양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하여 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태양빛, 태양열, 태양에너지는 하나이지만 세가지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삼위일체의 모습이다"고 하고 설명하며, 또한 어떤 사람은 "한 사람에 의해 나타난 생각, 말, 행동은 세가지로 나타나지만 결국 한 사람의 것인데 이것이 삼위일체의 모습이다"라고 설명하기도 하고, 또한 어떤 사람은 "한 사람이 학교에서는 교수이고 교회에서는 장로이며 집에서는 가장인데 이러한 세가지의 역활이 결국 한 사람으로 비롯된 것이데 이것이 삼위일체의 모습이다"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피조세계의 것을 통한 유추는 삼위일체에 대한 온전한 설명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밖에 삼위일체를 밝히기 위한 다양한 유추들이 있다.
어거스틴은 지식, 감정, 의지의 심리적 통일성을 삼위일체의 모습으로 보았고,
철학자 헤겔은 정, 반, 합의 논리적 통일성을 삼위일체의 모습으로 보았으며,
올쇼우센(Olshausen)이나 쉐드(Shedd)등은 주관, 객관, 주객관의 형이상학적 통일성을 삼위일체의 모습으로 보았습니다.
삼위일체를 인간의 생각 영역으로 유추함으로 삼위일체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하려는 선한 의도를 가지고 다양한 양태론을 내세우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그런 분들을 다 이단으로 모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러한 유추들이 결코 삼위일체를 설명하기에 합당한 것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왜냐 하면 그러한 유추를 통해서 우리는 통일성 안에 있는 명확한 삼위성은 찾아볼 수 있지만 통일성 안에 있는 삼위의 인격성은 결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삼위일체론에 대한 결론은 무엇일까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하나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 명확한 실체를 인간의 이성으로는 대답할 수 없는 것, 이것이 현 시대까지 삼위일체에 대한 결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마 하늘나라에 가서야 그 실체가 온전히 이해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우리는 삼위일체의 정의, 이단설 등을 함께 나누면서 한가지 분명한 사실에 도달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삼위로 역사하셨다는 것입니다. 성부는 창조하셨습니다. 성자는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은 우리를 믿음가운데로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삼위가 하나가 되어 내 안에 역사하심으로 오늘의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을 받고 , 믿음의 역사를 이루어감을 감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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