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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주일 -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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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582회 작성일 21-10-26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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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 (딤전 1:4)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05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06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07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 도다.

● (딛 3:9)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은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11 이러한 사람은 네가 아는 바와 같이 부패하여 스스로 정죄한 자로서 죄를 짓느니라.

● (히 7:1)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자라. 02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3)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04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 (히 7:6)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07 논란의 여지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

흔히 과거의 역사를 배워야 한다고 말하며 잘못되거나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 하지만, 실은 과거의 역사만을 파헤치고 배우는 것이 다가 아니라, 지금도 흐르고 있는 역사 안에서 삶 가운데 실천하며 배워야 합니다. 종교개혁이 일어 난지 5세기가 훨씬 지났는데, 그 유구한 세월동안 지난날 일어났던 이 놀라운 사건의 배경과 출발, 과정과 결말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듣고 배웠던가? 그런데 과연 얼마나 개혁이 이루어졌는가? 세상에는 역사를 만들어 가는 사람이 있고, 역사를 왜곡하는 사람들이 있고, 역사 안에 그냥 숨겨지는 사람도 있고, 더러는 역사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우린 역사를 만드는 사람인가? 역사 속에 무의미한 존재로 사라지며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꿈틀거리는 지렁이처럼 살고 있는가? 이것이 참 중요합니다. 많은 역사학자들이 과거를 연구하고 말하지만 그 역사의 인물처럼 실천하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말입니다. 이제 그 종교개혁을 통해 ‘그때 그곳’의 스토리가 아니라, ‘지금 여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다가올 실제적인 역사의 주인공이나 조연으로 살며 무엇이 중요한가 알아보고자 합니다.

1. 첫째, ‘아니요’ 라고 하는(homo negans) 삶의 태도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로써 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철저히 순종하는 삶을 추구하고 지향해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나님의 진리와 반대되게 흘러가고 있다는 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몸담고 섬기고 있는 신앙의 공동체도 하나님의 진리에서 동떨어져 있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런 세상과 변질된 공동체의 문제들에 대해서 ‘아니요’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아니요’라고 하면서 반대하면 현상을 고수하고 체제를 유지하려는 기존 다수세력으로부터 큰 저항과 비판에 직면하기 십상이겠지만 역사가 새롭게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의 기치를 들었던 초기인 1518~20년 어간에 그는 천주교 교권 및 정치세력으로부터 극심한 위협을 받고 자기 목숨을 부지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출두한 보름스(Worms)회의부터 종교개혁이 진행되는 모든 과정에서 어떠한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아니요’라고 하는 단호한 태도를 취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부정과 비판의 태도는 루터의 경우처럼 자기희생이 따르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거룩한 부정, 거룩한 반대로서 바로 나를 통해 내시는 선하신 성령 하나님의 분노이기에 그는 결코 중단하거나 포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시대처럼 이 시대에도 우리 하나님은 이런 거룩한 분노를 낼 수 있는 당신의 도구이며 동역자이며 대리자들을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막 사는 세상에 위정자나 종교 지도자들이나 가정에 가장들이 깨닫고 회복할 기회를 허락하는 시간이 누군가의 “아니요” 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유 없는 반항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한 진리의 소릴 말하는 것입니다.

2. 둘째, 복음의 본질 외의 주변적, 변질적인 것에 대한 배격입니다.

중세 천주교는 너무 종교화되어 예수님이 가르치신 복음 외에 다른 것들을 많이 갖다 부쳤습니다. 그들에게는 면죄부 판매마리이아 숭배 등 여러 가지 비성경적인 교리수립, 다양한 성례와 절기의 제정, 위계적인 성직자 세계 구축, 엄숙하고 형식적인 미사집행, 웅대하고 화려한 성당 건립 등 보여지는 경건의 겉치레, 모양만 있었지, 참된 경건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그들의 세계 안에 교권주의, 배금주의, 물질주의, 향락주의가 팽배하고 전반적으로 심각한 세속화 현상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에 종교 개혁자들은 개혁의 과정에서 이런 것들을 청소하고 수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루터칼빈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유일성과 절대성을 중심으로 성경적 교리를 확립하고, 성경에 나오는 세례와 성찬 외에 복잡한 성례들을 줄였으며, 다양한 허례허식이나 성직교권주의, 교회 내의 세속적 얼룩들을 지우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천주교의 가장 큰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복음을 왜곡시킨 것이었기에 루터와 칼빈은 1천년 동안 파묻혀있던 복음을 구출하여 그것의 본질을 회복시키는 데 주력하는 역사의 주인공들이였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면 어느새 종교 개혁자들이 폐기했던 중세교회의 잔재들이 즉 썩고 부서진 시체들이 부스스 되살아나기 시작했음을 봅니다. 예전 및 절기중심주의, 십자가 행진과 성지순례, 교회의 화려한 치장 및 성경탑 건립, 심지어 루터나 칼빈을 기념하는 거리나 동상 만들기, 교권주의의 득세와 전반적인 세속화 등 그야말로 본질이 아닌 껍데기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때나 지금이나 형식주의나 세속주의의 껍데기를 벗어 버리고 복음의 본질을 고수하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오직 천국 복음중심의 사역과 삶으로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책인 하늘의 생명록과 언행록에 우리 선교초대교회 성도들의 이름으로 도배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셋째로, 철저한 하나님중심 사상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루터나 칼빈은 오로지 ‘Solus Deus’(오직 하나님)의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한 칼빈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매우 경계하면서 철저히 하나님을 드러내는 데 진력을 다했다고 합니다. 그의 사상은 하나님 중심이고, 그의 가르침도 하나님이 중심이며, 그의 삶도 하나님 중심입니다. 그의 머리는 온통 하나님 생각으로 가득 차있었고, 그의 입에는 하나님이라는 말이 떠나지 아니했고, 그의 손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항상 쥐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그는 ‘하나님으로 충만한 사람’, ‘하나님에 취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자화상은 어쩌면 이런 종교개혁 후예들답지 않게 은근슬쩍 자기이름, 자기인기, 자기영예, 자기영광을 수립 하려고 하고 있는지 모르는데, 이는 정말 부끄러운 일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완용이 당시에 자신의 삶이 역사에 기록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 알기만 했더라도 대대로 가문의 창피함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칼빈은 그리스도인이 사는 것은 그리스도를 ‘우리의 삶이 노출하는 것’(vita nostra repraesentet)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영광이 자기와 가정, 교회와 제네바 시에 가득한 것만 아니라 온 세상에 그 영광이 가득차기를 꿈꾸어 왔습니다. 칼빈 신학의 지향점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인 것이었습니다.

우리 성도가 참으로 진리를 따르는 백성이 되어 하나님만을 경외한다면, 반드시 주께서 여러분을 높여 주시고 영생의 복을 누리며 기업을 물려주실 것이며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 (마 6: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 (계 3: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 (계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 (계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 (계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종교개혁의 후예들인 우리들은 이런 개혁자들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면서 모든 부질없는 것들을 다 던져버리고, 이들처럼 순전하게 전적으로 복음과 하나님 중심으로 행하며 사는 것이 참으로 지혜로운 삶이 될 것입니다. 우리 선교초대교회 성도들은 모두 하늘의 지혜를 받고 누리고 섬기며 행동하는 귀한 예수님의 신부로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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