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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명절을 어떻게 보낼까? /고전 10:2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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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770회 작성일 22-01-26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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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명절을 어떻게 보낼까? /고전 10:27-33

내일은 음력 정월 초하루입니다. ‘설’이라고 표현합니다. 명절은 좋은 날입니다. 즐거운 날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설과 추석에는 항상 빠지지 않고 행하는 것이 있는 데 그것은 곧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에게는 이 명절이 다가오면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에 반갑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조상에게 드리는 제사 행위가 우상숭배가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사에 참여하느냐 안하느냐, 즉 상을 차려놓고 절을 하느냐 안하느냐를 두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제사를 지내면 반드시 음식이 만들어지고 차려지기 때문에 제사 음식을 먹어도 되느냐 먹지 말아야 하느냐가 대두됩니다. 거기다가 음주문제가 항상 대두됩니다.

음식문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명절에 가족들이 모여서 우두커니 앉아있기가 그래서 놀이를 하는데 대부분 윷놀이를 했으나 요즘은 윷보다는 다른 놀이를 하는 경우가 많아서 거기에 참여해야 하느냐 말아냐 하느냐 문제도 발생합니다.

오늘 읽은 고린도전서 10장 전체 내용이 우상숭배하는 일을 피하라는 내용입니다. 그 가운데도 우상에 올려진 음식문제에 대해 다루면서 오늘 읽은 본문에서 우리에게 보다 분명한 내용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1-13절에서는 자만의 위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자신이 성결하게 살고 있더라도 자만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수하고 범죄하는 자들을 함부로 심판하고 비난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자기를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고 믿고 죄있는 사람을 정죄하다가 자기가 같은 죄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선줄로 여기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향하여 우상숭배하지 말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7절과 14절에서 ‘우상숭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상숭배행위 가운데 하나가 음식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는 쓰지 않았지만 23절을 보면,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옳은 것과 덕스러운 것을 구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할 수 있는 자유가 있고 옳은 것이라 할지라도 교회공동체에 반드시 유익을 주는 것이 아니며, 모든 것이 덕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25절에 보면 시장에 파는 음식은 묻지 말고 먹으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제단에 올렸던 것입니까?’라고 묻지 말고 먹으라는 것입니다. 27절에서는 혹시라도 불신자 중에서 성도인 나를 초청해서 음식을 제공할 때 그 상에 차려진 것을 묻지 말고 먹으라고 했습니다.

만약에 그 사람이 음식에 대해 제단에 올려 진 것이라고 말을 하면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말을 했다는 것은 의도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물이라고 말을 했다면 신앙양심과 그것을 말한 자를 위해서도 먹지 않음이 덕이 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약한 그리스도인들이 그것을 보고 우상과 교류해도 괜찮다는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강한 자는 약한 자들을 위하여 그들의 자유를 절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더군다나 하나님께 감사하고 시작한 행동이라면 형제들의 비방을 받지 말아야 하며 나아가 그들을 넘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와서는 안될 것입니다. 형제의 유익을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와 권리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가치 있는 삶의 자세라 할 수 있습니다.

비단 음식만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해야 되느냐 안해야 되느냐, 참여해야 하느냐 참여하지 말아야 하느냐, 가야하느냐 가지 말아야 하느냐 등의 문제가 언제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판단의 기준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오늘 말씀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결정하든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느냐 안 되느냐입니다.
31절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우리가 세상에서 사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요리문답 제1문에 보면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영광을 돌린다는 의미가 같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19-20절에 보면,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명절을 지키든 생일잔치를 하던, 결혼식을 올리던 모든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돈을 벌던, 공부를 하던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고 살던, 그리고 가난하던지 부요하던지, 건강하던지 병이 들었던지 상관없이 해야 할 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먹는 것까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제사 음식을 먹느냐 먹지 말아야 하느냐를 두고 바울이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일러주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명절이 되면 이런 문제가 대두됩니다. 집안 모두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신앙이 각기 다르면 기독교 신앙이 아닌 사람들은 대부분 제사를 지냅니다.

그러면 음식을 만들 때부터 갈등을 빚습니다. 초대교회 때, 특히 고린도교회에서는 우상에게 올렸던 제물을 먹어야 되느냐 말아야 하느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대답을 보면 좀 명쾌하지 않은 듯 합니다.

27-28절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차려놓은 음식은 어떤 것이냐 묻지 말고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불신자가 ‘이것이 제물입니다’라고 말하거든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말을 했다는 것은 이미 우리의 믿음을 떠보는 것이 됩니다. 하지만 아무런 말도 없이 차려놓고 먹으라고 하면 묻지 말고 먹으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음식은 감사함으로 먹으면 버릴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4장 3-4절 말씀,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무슨 행동을 할 때 해야 되느냐 하지 말아야 하느냐를 놓고 갈등을 할 때 판단의 기준은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느냐 안되느냐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31절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다양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는 것, 하나님이 하신 사역을 통하여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우러러 보게 하는 것, 하나님께 감사하는 고백을 하는 것도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오스트리아의 작곡가이며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죠셉 하이든(1732-1809)이 1798년에 창세기와 밀턴의 실락원을 근거로 하여 “천지창조”라는 거대한 오라트리오를 작곡하였습니다. 그러나 비엔나에서 첫 연주회를 하던 날 하이든은 몸이 불편하여 다른 사람에게 지휘를 맡겼습니다.

그런데 하이든 자신도 놀랄만큼 그 연주회는 대성황이었습니다. 아름다운 곡이 청중을 감동시키고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연주가 끝나자 청중은 기립박수로 환호하였습니다. 그때 지휘자는 청중을 향하여 “이 영광을 받을 분은 저기 2층에 계신 하이든 선생입니다”고 하자 청중들은 뒤돌아서서 2층 발코니에 앉아 있는 하이든을 향하여 박수를 보내었습니다.

그때 하이든은 조용히 일어나서 청중을 진정시킨 후 “제가 이 곡을 작곡한 것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지혜와 감동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고 하였습니다. 하이든은 일생동안 주님께 드려 영광 돌릴 목적으로 작곡생활을 하였으며 자신의 존재와 노력 목적이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께 두고 살았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꼭 위대한 일을 해야만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감사의 말만 잘해도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골로새서3장17절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고린도후서4장15절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넘치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불평과 원망하는 것은 무엇이 될까요? 하나님께 영광을 가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17장 11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시기 위해 가실 때 마침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어떤 마을에 들어가니까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님을 멀리서 보고는 소리를 높여 고래고래 고함을 치며 외쳤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에 예수님은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셔서 다 고침을 받게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중요한 것은 열 명중 한 사람만, 그것도 유대인이 아닌 유대인이 무시하는 이방인 사마리아 사람만 예수님을 찾아와서 발아래 엎드려 절하며 감사했습니다. (16절). 이렇게 감사의 마음을 갖고 찾아온 사마리아 사람을 두고 표현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감사하며 돌아온 사람이 하는 행동을 가리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주위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18절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그러면서 외친 마지막 은혜와 복이 무엇입니까?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치유와 구원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성도 여러분, 감사하는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한다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느냐 안되느냐는 것을 판단하는 것은 어떻게 판단하는가? 감사를 잘해도 영광이 되지만 오늘 본문 내용에 보면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는 판단을 하게 하는 행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32-33절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하나님께 영광이 되려면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유로 덕을 쌓는 일은 개인적인 구도적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구체적인 삶이 현장 속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하여 구현됩니다. 모든 사람들의 유익ㅇ르 구하는 일로, 즉 개인의 유익보다는 공동체의 유익, 교회의 유익을 위하는 일로 나타납니다. 나 혼자 기뻐하는 일만 해서는 안됩니다.

항상 나보다는 공동체 전체를 생각해야 합니다. 나만 복받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교인 전체가 복받는 길을 선택하면 결국 나도 그안에 포함되어 나도 자연적으로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일을 하든지, 예컨대 명절을 맞든 좋은 일을 맞이하던지 할때에 항상 많은 사람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나를 통한 온 가족을 기쁘게 하든지, 나를 통하여 온 교우들이 기뻐하게 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명절에는 상대방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미풍양속인 선물을 드릴 때입니다. 그러므로 명절은 섬김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이런 좋은 기회를 선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맏며느리가 음식을 다해놓으면 나타나는 동서가 있으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 믿는 내가 예수 믿지 않는 가족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을 기쁘시게 하려면 자신의 유익을 구하면 안됩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해야 합니다. 소수의 이익보다는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 일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가리는 일들을 너무 많이 자행하면서도 나는 예수 잘믿는다고 자부하는 교만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십시오.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우선은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것인가를 말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통해서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베드로전서2장12절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우리를 향하여 나쁜 사람이라고 표현하면서 달려들때에 조심해야 합니다. 같이 반응을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습니다. 반드시 선하게 대해야 합니다. 그래야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그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 보면 32절에 보면,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나아가서는 교회 성도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내가 하는 크고 작은 수많은 일들을 통해서 교회에 오고싶어져야 하고 하나님을 믿고 싶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위해 모든 사람을 유익하게 하고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면 어떤 결과가 주어지지 아세요?

복음이 전해집니다. 즉 내가 하는 사역이 어떤 사역이든지,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복음이 전파되는 기회로 삼으십시오. 복음전파는 곧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33절 하반절에 보면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고 했습니다. 구원 받게 하는 것이 곧 복음전파요, 선교입니다.

우리가 명절에 가족이나 친지들이나 친구들이나 이웃에게 복음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일부러 가기도 어려운데 명절은 만남의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전도하기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이런 만남의 기회가 왔을 때는 말보다는 행함으로 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가족들에게는 의도적이라도 좋습니다. 귀한 선물을 드리더라고 마음을 기쁘게 하고 예수 믿는 내가 좀더 희생하고 불신가족들에게 ‘쉬십시오. 제가 할께요’라고 한다면, 예수 믿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우리는 상대방들이 어떻게 나를 대하느냐에 따라 대응을 다르게 하면 안됩니다. 그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나오더라고 우리는 일관되게 처신해야 하는데 그 처신하는 행동은 어떠해야 하느냐? 나의 유익이 아닌 남의 유익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법으로는 절대로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지 않습니다.

로마서15장 5-6절 말씀,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어떤 모습입니까? 오직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자신의 뜻을 포기하는 것을 본받아야 합니다. 저주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오히려 그들을 용서해달라고 하는 사랑하는 마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사실 오늘날 사단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게 가로막는 일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보다는 오히려 영광을 가리는 일들이 너무 많이 나타나고 있어서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여러분, 운동장에서 승리하거나 볼을 넣거나 득점을 얻은 뒤에 그라운드에서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하나님을 생각나게 합니다. 연말이 되면 대중매체들은 연애인들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상을 주는 행사를 많이 합니다.

그때 기독교인들이 수상소감을 말할 때, 믿음 좋은 분들은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립니다’ ‘이 상을 받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등의 멘트를 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 됩니다.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전도가 됩니다.

그런데 최근에 밝혀진 내용 중의 하나가 불교계가 대중메체들에게 이런 반응을 하지 못하게 압력을 가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종교의 자유를 달라고 야단법석을 하면서 앞으로 이 민족의 장래를 어렵개 할 가능성이 있는 이슬람사람들에게는 거리를 유유히 다니면 확성기로 포교하도록 경찰이 도와주기까지 하는 것은 가많이 두고 신앙고백적 차원에서 자신의 고백조차 가로막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을 자행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토록 참 종교인 기독교가 어려움을 당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설을 맞아서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셔야 할 것은 이 모든 것을 통해서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기회로 삼는다면 명절도 무조건 배척할 것이 아니라 복음의 통로가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명절이든 가족사에 기쁨이 되는 행사를 하든, 아니면 세상에 살면서 당신이 하는 모든 일들을 통해 많은 사람을 기쁘게 하고 유익하게 함으로 인해 많은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는 것이 되어 오직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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