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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날]당신을 알겠습니다/ 에베소서 5: 21 -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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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른곰
댓글 0건 조회 693회 작성일 21-05-16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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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알겠습니다 에베소서 5: 21 - 33  

 

5월 21일은 부부의 날입니다. 이 날은 2003년 12월에 국회본회의를 통과해서 작년부터 법정기념일이 되었습니다. 둘이 하나가 되었다 해서 21일로 정했습니다. 부부관계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화목한 가정을 일궈 가자는 취지에서 세워진 날이라도 봅니다.

 

그렇습니다. 부부는 한 가정이 국가와 사회의 기초라면 그 가정의 원초적 기초는 바로 부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서 한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참으로 너무도 중요한 일인데 만나는 것을 보면 참 무모합니다. 두 사람이 만나 결혼하는 것이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이질 않습니다. Feel이 꽂혀서 눈이 서로 먼 상태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 부부입니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매우 냉철하기로 소문난 사람이었습니다.그는 평소 한 미모의 여인에게 계속 청혼을 받았습니다.그러나 한 번도 확신에 찬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늘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습니다. 견디다 못한 여인이 하루는 칸트에게 분명한 대답을 요구했습니다.그러자 칸트가 간단하게 말했습니다."생각해 보겠습니다.

 

" 그리고는 그 후로 칸트는 도서관에 가서 결혼에 대한 책들을 모두 뒤졌습니다.결혼에 찬성하는 의견과 반대하는 의견들을 모아 집중적으로 연구를 했고 마침내 결혼하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는 여인의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문을 열어주는 여인의 아버지에게 칸트가 말했습니다."그 동안 많은 생각을 한 결과 당신의 따님과 결혼하기로 결정했습니다."그랬더니 돌아 온 대답은 "너무 늦었네.내 딸은 이미 결혼해서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됐다네"하는 대답이었습니다.

 

결혼은 이렇게 계산하고 생각하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은 서로 좋아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하는 동기도 가지각색입니다. 어떤 사람은 밥먹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결혼했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우는 모습에 반한 사람이 있고 걸음걸이, 목소리에 반한 사람도 있습니다. 또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친구의 연애를 도와주다 자기가 좋아서 친구의 애인도 빼앗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성이나 합리적인 것이 될 수 없는 것이 남녀의 만남입니다. 이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창하게 결혼을 한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눈이 멀어서 결혼을 하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이미 결혼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지금도 그렇게 배우자가 좋으냐 물으면 한결같은 대답이 "내가 눈이 삐었지"라는 대답입니다. 그런데 그 날을 돌이켜 보면 정말 모든 게 좋았습니다. 팔자걸음도, 비뚤어진 입도 심지어는 코 푸는 모습까지도.... 이게 뭡니까? 바로 감정입니다. 사랑은 논리가 아닙니다. 밥 먹는데 무슨 논리가 있습니까? 걸음걸이에 오묘한 논리가 숨어 있나요? 아니거든요.

 

이렇게 해서 한 결혼이다 보니까 나중에 가서 이성적으로 정신을 차려보면 맘에 드는게 하나도 없거든요. 그래서 이런 것을 방지하겠다는 차원에서 요즘 젊은 사람들은 살아보고 결혼하겠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결혼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이미 100만이 넘었답니다. 안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여준 방법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하여준 방법은 눈이 삐어서 정신없이 하는 것이 결혼입니다.

 

그러면 이제는 제정신이 돌아왔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즉 남편인 나는 아내를 알아야 하고 아내는 남편을 알아야 합니다. 서로 잘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부부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늘 1절에 보면 서로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서로 복종하라는 말은 아내가 원하는 것, 남편이 원하는 것을 해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남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남자는 인정을 받기를 원합니다. 인정받기를 원한다는 것은 자존심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남자에게 권위를 부여했습니다. 그래서 남자는 모든 것이 자기아래 있을 때 행복해 합니다. 안정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남자는 아무리 회사에서 상무 전무로 있으면서 많은 월급을 받아도 늘 회사를 정리하고 나와서 창업이라도 하려고 하는 것은 자기 마음대로 무엇이든지 해보고 싶어서입니다.

 

남자들을 가만히 관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직장에서도 자기 마음대로 못하고, 집에 와서도 자기 마음대로 못하는 요즘 남자들의 축져진 어깨는 살기 힘든 것도 원인이 있지만 진짜 원인은 자기가 왕 노릇 할 수 있는 곳이 없어서입니다. 이런 사람은 정말 살 의욕이 없습니다. 그러나 똑똑한 사람은 자기 살길을 찾습니다. 자기가 왕 노릇할 수 있는 자리를 찾습니다.

 

그 사람들이 나가서 하는 일이 동우회를 만듭니다. 회원이 몇 명 안 되어도 그 자리에서 회장자리를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회장이 되면 회사일이나 집안일이나 그 다음은 뒷전입니다. 그 자리에서 열심히 합니다. 이것이 남자입니다. 남자는 인정받는 자리에 가면 살아납니다.

 

남자들이 왜 바람피우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아내가 미인이고 최고의 대학을 나왔어도 바람을 피웁니다. 그런데 자기 남편이 바람피운 여자를 보면 그야말로 너무 평범한 여자입니다.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자기를 왕같이 대해주는 여자 앞에서 자기의 돈도 시간도 명예도 다 갖다 바치는 것입니다. 남자는 인정해 주는 사람 앞에서는 맥을 못 춥니다.

 

회사에서 어떤 과장이 부장에게 결재를 맡으러 갔는데 보지도 않고 사인을 합니다. 과장이 묻기를 아니 보지도 않고 결재하십니까? 물으니까 “김과장이 해온 것은 보증수표야! 나는 자네가 하는 일을 전혀 불안하지가 않아. 자네는 우리 회사의 보배야.” 이 말을 들은 과장은 그 부장에게 목숨 바칩니다. 저녁에 과장들끼리 저녁을 먹고 술을 먹으면서 자기를 인정해준 부장을 욕을 할 때 같이 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변호해 줍니다. 그리고 나중에 가보면 결국 그 과장은 나머지 과장들과 그 부장을 위해 멱살 잡고 싸우고 있습니다.

 

이것이 남자입니다. 이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여자에게 남자를 왕같이 대해주라는 것입니다. 복종하면 왕이 되는 것입니다. 남자를 가정에서 머리로 왕으로 대해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아셨기에 당신이 귀하게 쓰셨던 사람들을 크게 인정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고향 떠나라 내가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했을 때 그는 다 버리고 떠납니다.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특별히 알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에게는 그는 내 마음에 합한 자다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평생 충성합니다. 바울도 다메섹에서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고 특별히 그를 찾아와 주셨을 때 그는 스스로 나는 예수님의 제자다 하면서 주를 위해 평생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배신한 베드로를 찾아와 주었을 때 그는 십자가에 거꾸로 순교를 당하지 않습니까?

 

예수님도 남자였습니다. 예수님이 가장 기분이 좋았던 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백부장이 말씀만 하시라고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 때 내가 이스라엘 사람 중에 이런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다고 하면서 네가 믿은 대로 되라 하고 기뻐하셨습니다. 또 한 여자가 향유를 깨뜨려 예수에게 붇고 머리로 그의 머리를 닦을 때 자기를 이렇게 인정해 주는 그 여인을 주변에서 다 욕해도 그를 감싸주시지 않습니까? 남자는 인정해 주면 행복합니다. 아무것도 없어도 인정받으면 그는 목숨 바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도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은 곁길로 갔습니다. 가인이 자기의 제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자기 동생 아벨을 죽이지 않습니까? 가룟유다가 예수님에게 책망 받고 예수를 팔지 않습니까? 사울왕이 자기 나름대로 제사를 드리고 전쟁에 임하겠다고 했는데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 이후로 믿음생활이 엉망이 되지 않습니까?

 

남자를 망가뜨리려면 무시하면 됩니다. 남자를 일찍 죽게 만들려면 늘 무시하면 됩니다. 그가 하는 일에 늘 기를 죽이고 시비를 걸고 뒤에서 흉보면 됩니다. 따라서 진정으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남편과 행복한 가정을 갖기를 원하신다면 일주일에 보약3첩만 먹이시면 됩니다. 그 보약은 홍삼이나 녹용이 아닙니다. 남자들은 이런 것 아무리 해다 줘도 바가지 긁으면 아무 효험이 없습니다.

 

이런 것 안 해줘도 남자가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는 보약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칭찬입니다. 남자는 칭찬만 해주면 펄펄 날아다닙니다. 남자가 늘 지쳐있고 힘이 없다 라면 그 집안은 틀림없이 아내가 바가지만 긁고 칭찬이라고는 한마디도 없는 가정일 것입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남편 칭찬 해 본적이 언제입니까? 밥 안 해 준 것보다 더 심각한 일입니다. 부부는 살다보면 사람인지라 안 좋은 것만 보입니다. 그러나 좋은 것만 보려고 노력해야 행복하고 칭찬도 나옵니다. 예수를 믿는 부인들은 남편을 꼭 인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인정하는 것이 남편 말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여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겠습니다.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교회를 위하여 죽으시고 교회를 사랑하는 것 같이 아내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아내를 사랑하려면 희생해야 합니다.

 

아내를 위해서 무엇을 희생해야 합니까? 여자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 희생이 아니면 안 됩니다. 여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여자가 원하는 것은 자기의 말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여자는 말하는 재미로 삽니다. 태초에 남자가 외로운 것을 알고 여자를 돕는 배필로 창조하셨는데 아마도 남자가 심심하니까 옆에서 말하도록 창조해 주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하와가 뱀과 이야기를 하는데 청산유수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에 더하기도 하고 빼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사탄에게 넘어가고 또 말로 남편 아담을 설득해서 아담까지 선악과를 먹게 합니다.

 

여자는 말을 좋아합니다. 유치원에 가보면 남자아이들과 여자아들이 노는게 틀립니다. 유치원나이의 여자아이들은 3000단어를 아는데 그 단어를 100% 다 구사한답니다. 그래서 말을 잘 합니다. 똑똑해 보입니다. 그런데 남자아이들은 같은 나이인데 1000단어밖에 모르고 그 중에서도 25%밖에 구사를 못한답니다. 250단어입니다.

 

그래서 아이들 노는 것은 보면 여자아이들은 소꼽놀이를 하며 인형과도 얘기하고 많은 대화를 하며 놉니다. 그러나 남자 아이들은 이런 단어밖에 안씁니다. 뿅! 쾅! 띵아 띵아! 따따따따!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부터 남자와 여자를 이 언어에 있어서 차이를 두셨습니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서도 남자는 하루에 1만2천 단어를 쓰고 여자는 하루에 2만5천에서 3만 단어를 쓴답니다. 남자는 출근해서 하루에 1만2천 단어를 다 쓴답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서는 말 한마디 할 기력이 없는 것입니다. 말이 지겨운 것입니다.

 

그래서 물! 밥! 그리고 텔레비전보고 신문보고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자는 집에 하루 종일 혼자 있으면서 5천 단어밖에 못씁니다. 그러니까 아직2만에서 2만5천단어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현관문 열어주면서 계속 말이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는 대부분 시끄러! 피곤해! 결론이 뭐야! 그런데 여자는 결론이 없답니다.

 

무슨 결론을 내기 위해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오늘 산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냥 들어주면 됩니다. 그런데 남자가 이야기 듣는 것이 자기를 희생하지 않으면 힘듭니다. 그러나 여자는 얘기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들어 줄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아내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면 살아납니다.

 

우리나라가 중국이나 일본에도 없는 병이 있습니다. 그것은 화병입니다. 이 화병은 말을 못하고 속에다 넣어놓은 것들입니다. 밖으로 나와야 하는데 안에서 쌓인 병입니다. 우울증 편두통 이런 병은 다 말을 못해서 오는 병이랍니다. 그래서 착한 여자들이 일찍 죽습니다. 말을 들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자들은 병이 없습니다. 따라서 똑똑한 여자들은 살길을 찾습니다. 그 살길은 말할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들이 교회에 나와서 교제하고 기도하고 구역 예배드리면서 서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 하는 것은 굉장히 좋은 것입니다. 남자의 희생은 여자의 말을 들어주는 희생입니다. 말을 들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사마리아여인이 예수님을 만난 것은 자기이야기 다 들어주니까 예수님 만난 것입니다. 오늘 남자들이 아내에게 주님같이 대접받으려면 아내의 말을 다 들어주면 됩니다. 우리는 한 부부가 서로 모르는 가운데 감정으로 만납니다. 감정이 식어질 때 이제는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이성적으로 알고 서로 원하는 것을 채워주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부는 노력해야 합니다. 서로를 신뢰하고 서로를 불편하지 않게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대하듯이 가정에서 서로를 대할 때 그렇게 조심스럽게 대하면 서로를 존중할 수 있습니다. 우리 부부는 너무 함부로 대합니다. 그러면 가정이 안정될 수 없습니다.

 

지난주에 심방간 우리 권사님 가정은 올해 50년을 살았습니다. 두분이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습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오래오래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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