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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제목: 눈먼 세상에 그리스도가 오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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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140회 작성일 26-03-1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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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제목: 눈먼 세상에 그리스도가 오신 이유.


교독문: 127. 사순절 (4). 말씀: 눅 4:18-19. 찬송가: 252장. 나의 죄를 씻기는.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1. 세상은 눈 뜬 사람들이 모인 눈먼 세상입니다.


우리는 모두 눈을 뜨고 있습니다. 부모도 보고, 자녀도 보고, 건물도 보고, 눈치도 보고, 길도 보고, 사람도 보고, 돈도 보고, 뉴스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눈을 뜨고 있어도 보지 못할 수 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3:13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눈먼 사람이 있습니다.


1. 눈이 없는 사람. 


2. 눈이 있지만 보지 못하는 사람.


3. 눈이 있지만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 사실 세상은 세 번째 사람들이 가장 많습니다.


 


2.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인간은 잘 못 봅니다.


참으로 유명한 목사님이 자신의 책 중에 마지막으로 460페이지짜리 책을 출판했습니다. 무려 5번 교정을 봤습니다. 수백만 원을 들여 교정을 봤습니다.


그런데 책이 나오고 보니 한 집사님이 75곳의 오타를 발견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또 발견했습니다. 결국 100곳이 넘는 틀린 글자가 나왔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눈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눈이 있지만 못 본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3. 더 무서운 눈멀음은 편견입니다. (설마가 아닌 혹시나 하는 사람이 지혜롭습니다)


눈이 멀었다는 것은 단순히 못 보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마음속에 정답을 정해 놓고 보는 것입니다. 나는 옳았고, 나는 확인 했다고 고집 부림이죠.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이 바로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병자를 고쳐도, 죽은 자를 살려도 그들은 말했습니다. “귀신의 힘이다.”왜 그랬을까요?


이미 그들은 마음속에 부정적인 결론을 내려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예 눈 먼 사람이면 즉 맹인이면 죄가 없지만, 해서?


◆요한복음 9:41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죄가 그대로 있다.” 자기가 보았고, 본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람은 더 이상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혹시나 하고 자기의 부족을 인정하는 사람은 다시 다른 사람의 눈과 말을 들으려 하기에 교정을 보게 됩니다.


 


4. 육에 속한 사람들의 세상은 사실 영적 시각장애인들의 도시에 삽니다.


사람들은 이것은 잘 봅니다. 돈, 권력. 이익. 경쟁. 성공. 그러나 하나님, 영혼, 영원, 심판, 구원이것은 거의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였다.” — 고린도후서 4:4 세상의 신, 즉 우상숭배를 만들고 부추기는 마귀는 사람의 눈을 뽑지 않습니다. 눈을 가립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육에 속한 세상은 잘 보는데 영에 속한 하나님은 안 보이고 못 보게 됩니다.




5. 그래서 예수님의 사명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을 보십시오. ◆눈먼 자를 고치셨습니다. 귀신 들린 자를 고치셨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그러나 그 기적들의 진짜 의미는 이것입니다. 영적인 눈을 열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명을 설명할 때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


예수님은 단순히 병을 고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사람의 영적인 눈을 열러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이유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목적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이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기에 그늘진 곳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 됩니다.


 


◆아주 가난한 집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이 먹지 못 하고 입지 못 하고 살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어머니는 병들어 누워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돈만 생기면 술을 마시고 가정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엉망이었습니다.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아이들이 홑바지를 입고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옆집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아이들이 야단이었습니다. “엄마! 우리도 고기 먹고 싶다.” 어머니는 울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그래. 엄마가 베 한 필을 짜서 팔아서 고기 사줄 께.” 그리고 아픈 몸을 일으켜 아들에게 고기 한번 먹게 하여 주려고 기를 쓰고 베를 짰습니다. 며칠 걸렸습니다. 죽을힘을 다 한 것입니다. 자기가 아파서 시장에 팔러 갈 수 없었습니다. ◆남편에게 팔아서 고기를 사오라고 하였습니다. 어머니와 아들은 꿈에 부풀어 기다렸습니다. 고기 먹을 생각을 하니 너무나 기분이 좋았습니다. 집안을 들락날락하였습니다. 그러나 해가 졌는데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아들 손을 붙들고 시장으로 나가 보았습니다. 남편이 장터에 앉아서 화로에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온 종일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시각장애인입니다. 보여야 할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이 시각장애인입니다. ◆그러나 삭개오를 보며 배울 것을 배워 봅니다. 삭개오는 부자였습니다. 세리장이었습니다.


높이 있는 부자였습니다. 그늘진 곳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올리브나무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그동안 율법을 어기고, 토색한 것을 스스로 말했습니다.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갑자기 삭개오는 그늘진 곳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안 보이는 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하여 영적인 눈이 회복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6. 우리가 계속 거듭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령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눈이 멀었을 수도 있고, 편견에 사로잡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한 번 깨닫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 눈이 열리고 열리도록 말씀과 기도로 영적으로 가려지는 백태와 어둠의 그림자들을 그리고 들보를 빼내고 닦아 내는 과정입니다. ◆어제 몰랐던 것을 오늘 깨닫고, 오늘 몰랐던 것을 내일 깨닫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고후 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신앙은 한 번의 깨달음이 아니라, 죄를 닦듯이 영적인 눈을 닦고 계속 눈이 열리는 여행입니다.


 


◆신약성경 최고의 복음의 사람 사도 바울도 처음에는 복음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을 죽였습니다. 율법으로 구원받는 것이지, 복음으로 구원받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안 보이니까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정오의 하나님의 말씀이 빛보다 강한 빛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렸고 두려움에. 바울은 놀라 물었습니다. “누구십니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그 사건이 있은 삼일 만에 아나니아 라는 전도 인을 통해 바울은 눈에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복음이 보였습니다. 예수님이 보였습니다. 그 전까지는 눈을 뜨고 있었으나 영적 시각장애인이었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4장에서 복음이 보이지 않던 여인의 눈을 열어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가고 계셨습니다. 사마리아 지역을 가실 때 목이 마르셨습니다. 마침 수가성에 우물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깊은 우물이었습니다. 물을 길어 올릴 두레박이 없었습니다. 그 때 마침 한 여인이 물을 길러 우물로 나왔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물을 좀 달라.”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십니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우물가에서 물 이야기로 시작하였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시던 예수님은 남편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여인들에게 최고 관심사는 남편이었습니다. “네 남편을 불러 오라.”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이 여인의 과거, 현재, 미래를 보시는 예수님임을 보고 이 여인의 눈이 떠졌습니다.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물을 길러 왔던 육적인 여인이 영적 여인으로 눈이 떠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여인이 고백합니다.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드디어 이 여인은 복음이신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인 복음을 전하는 여인으로 탈바꿈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요 4;28-29)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예수님은 이 땅에 눈 먼 자의 눈을 열어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영적인 눈입니다. 복을 보는 눈입니다.


 


하늘나라가 안 보이는 부자.


◆눈은 떴으나 이 땅만 보이고, 하늘나라가 안 보이는 시각장애인이 있습니다.


눅 12장에 등장하는 부자가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어느 해에 농사가 잘 되었습니다. 소출이 많고 곡식이 풍부하였습니다. 미처 쌓아 둘 곳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이 중얼거림을 듣고 계시던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늘나라가 보이지 않는 영적 시각장애인이 지구상에서는 즐비합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영적인 것을 볼 수 없기에 결국 모두 지옥으로 가야 하는 이들이기에 우리는 한 명이라도 더 복음을 듣고 구원받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1961년 구소련은 지구 역사상 첫 유인 우주선 보스토크 1호를 발사하였습니다. 그 우주선에 탄 첫 우주인은 가가린이었습니다. 그는 첫 번 우주에 올라가 지구를 보면서 말했습니다. “여기서 지구가 잘 보인다. 아름답다. 기분이 좋다. 지구는 푸른색이다.” 지구 밖에서 지구를 첫 번 보고 한 이 말 때문에는 가가린은 지구에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주 역사상 첫 우주인을 뽑는 시험에 수많은 사람들이 지원하였습니다. 그 중에 19명이 남았습니다. 19명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막상막하였습니다. 한 명만 필요하였습니다. 누구도 19명중에 누구를 뽑을지 몰랐습니다. 마지막 시험은 우주선에 탑승하는 시험이었습니다. 모두 신을 신고 우주선에 올랐습니다. 그 때 가가린 하나만 신을 벗고 우주선에 올랐습니다. 이것에 심사 위원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작은 차이 하나로 가가린이 뽑힌 것입니다.


◆그가 우주여행을 하고 돌아 왔을 때 당시 구소련 대통령 후리시쵸프가 환영하며 물었습니다. “우주에서 하나님을 보았는가?” 가가린이 대답했답니다. “아무리 보아도 하나님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눈으로 보는 줄 알았습니다. ◆맛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먹어 보며 혀로 보아야 압니다. ◆차고 뜨거운 것은 눈을 보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만져 보아야 합니다.


◆음악이 좋은 지 나쁜지는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귀로 들어 보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는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껴보는 것입니다.


◆먹어 보는 것도 보는 것입니다. 만져 보는 것도 보는 것입니다. 들어 보는 것도 보는 것입니다. 느껴 보는 것도 보는 것입니다. 하늘나라가 보이지 않는 영적 시각장애인이 많습니다. *이젠 영적인 갈급함으로 영의 것을 눈으로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영은 영으로만 볼 수 있습니다. ◆고전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런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영적인 것은 영으로 봅니다.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으로 보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영은 성령으로 보는 것입니다. ◆눈으로 본다. 맛본다. 냄새 맡아 본다. 들어 본다. 만나 본다.


 


7. 그래서 진짜 신앙인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제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주님, 내 편견이나 고집을 깨뜨려 주십시오.”


“주님, 제 영적인 눈을 열어 주시옵소서.” 다윗도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시 119:18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눈이 열리면 성경이 새롭게 보이고, 사람이 새롭게 보이고, 세상이 새롭게 보입니다.


 


◆결론은 태중에 아이가 눈은 있어도 볼 수 없었던 것처럼, 세상은 태어나야 볼 수 있고, 거듭나야 영적인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아직 이 세상은 눈 뜬 사람들이 모인 눈먼 세상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사람의 눈을 열어 줍니다. 그래서 진짜 기적은 이것입니다.


병이 낫는 것보다 돈을 버는 것보다 성공하는 것보다 눈이 열리는 것.


오늘 우리의 기도는 이것이어야 합니다. “주님, 내 눈을 열어 주십시오.”


 


◆예수님은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하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다시 보게 됩니다. 성도여러분도 영적인 눈을 뜨시길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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