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할절]부활을 향한 걸음/사도행전 2: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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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을 향한 걸음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이 말을 들으십시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께서 기적과 놀라운 일과 펴짐으로 여러분에게 증명해 보이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하여 여러분 가운데서 이 모든 일을 행하셨습니다. 이 예수께서 버림을 받으신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계획을 따라 미리 알고 계신 대로 된 일이지만, 여러분은 그를 무법자들의 손을 빌어서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서 살리셨습니다. 그가 죽음의 세력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그를 가리켜 말하기를 ‘나는 늘 내 앞에 계신 주님을 보았다. 나를 흔들리지 않게 하시려고, 주님게서 내 오른쪽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 마음은 기쁘고, 내 혀는 즐거워하였다. 내 육체도 소망 속에 살 것이다. 주님께서 내 영혼을 지옥에 버리지 않으시며, 주님의 거룩한 분을 썩지 않게 하실 것이다. 주님께서 나에게 생명의 길을 알려 주셨으니, 주님의 앞에서 나에게 기쁨을 가득 채워 주실 것이다’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2:22~28>
목숨을 걸고
예수님 부활의 기쁨이 교우 여러분에게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제 선배 중에 대구에서 이주노동자 선교하는 박순종 목사님이란 분이 계십니다. 그가 어제 군 복무 시절에 겪은 ‘부정선거’ 경험을 SNS에 쓴 걸 읽어 보았습니다. 1985년 2월 강원도 화천 민통선 안에서 근무할 무렵 국회의원 선거(제12대) 투표가 있었답니다. 그 선거를 앞두고 “1번이 안 나오면 안 된다고 투표 한 달 전부터 정신교육”을 하더랍니다. 그렇게 정신교육을 했건만 중대에서 딱 한 명, 박순종 일병만 1번을 찍지 않아 중대장에게 불려갔습니다. 중대장이 “그 사람이 네 가족, 친척이냐, 친구 아버지냐?”고 물었고, “아닙니다.”라고 했대요. 그런 뒤 하사관에게 “내려찍기를 당해 멀리 나가떨어지는” 등 안 죽을 만큼 얻어 터졌다고 합니다.
그때 선임병들이 하사를 뜯어 말려 겨우 위기를 모면했고, 박 일병은 이 사건 이후 중대에서는 ‘왕따’ 당했습니다. 제가 박 목사님께 연락해서 “그렇게 될 줄 아셨을 텐데 왜 이름대로 ‘순종’ 안 하고 소신 투표를 했느냐”고 좀 농담 섞어 물어봤습니다. 박 목사님 대답이 걸작입니다. “무슨 소리냐, 내 이름대로 하나님께 순종한 거다.”라고 그러더군요. 당시 중대장은 사병들이 누구에게 기표했는지 확인한 뒤 투표지를 봉투에 넣고 봉인해 발송했다고 합니다. 그런 일을 겪고 박 일병은 “총 들고 탄약고 보초서고 있다가 혹시 연대장이 순찰 나오면 쏴 죽이고 싶도록” 그가 미웠답니다. 사병들 대부분이 생애 첫 투표를 하는 건데 중대장, 연대장은 사단장에게 잘 보이고자 그들 투표의 순정과 양심을 짓밟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분명 법령상으로는 자유·비밀 투표를 하게 돼 있음에도 군 부재자 투표는 예외였습니다. 끊임없이 부정선거가 이어지다가, 1992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제도가 바뀌어 그해 대선부터 군인들도 일반 부재자 투표소에서 함께 투표하게 되었습니다. “군인이 선거자유를 방해하여 폭행·협박· 또는 그 밖의 방법으로 선거권 행사를 방해하면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처벌 조항(공선법 238조)까지 생겨났습니다. 이 같은 제도 개선이 이루어지기까지 군대 내에서 박 목사님처럼 소신껏 투표하다 온갖 욕설과 무차별 폭행을 당한 병사들이 많았습니다. 그 정도만 해도 다행이었고, 심지어 1987년 대선 당시 야당 후보에게 투표했다는 이유로 선임병들에게 구타를 당해 사망한 정영관 상병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토록 무섭고 엄혹한 군부 독재시절, 양심 · 상식 · 진실 · 주권인 ‘소중한 한 표’를 지키고 행사하려다 욕먹고 얻어터지고 기합 받고 의문사를 당한 분들이 계셨습니다.
그들의 용감하고 외롭고 눈물겨운 저항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이나마 민주주의를 이루고 사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불이익과 쓰린 고통이 뒤따르리라는 사실이 훤히 보이는데도 굳이 고생을 자처해 그 길을 걷는 분들이 비록 소수이지만 꼭 있습니다. 그들의 소금과 빛 같은 역할로 병든 사회가 치유되고 건강을 회복하여 생기를 찾곤 합니다. 이 분들도 알고 보면 다른 평범한 사람들처럼 두려움이나 고통, 가족을 걱정하는 마음이 모두 비슷합니다. 그런데도 고민 끝에 남들이 볼 때 참 ‘바보스런’ 선택을 합니다. 하지만 나중에 돌이켜 보면 그때 그들이 없었다면 이 나라가 어찌 되었을지 아찔합니다.
깨어난 양심
최근 우연치 않게 『민중의 힘, 민중의 교회』(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1987. 4)라는 작은 책을 들춰 보았습니다. 거기서 짧지만 감동어린 글을 하나 만났습니다. 박정희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1, 2호 폐지, 개헌 논의를 요구하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실에서 젊은 목회자 몇 명이 기도회를 열기로 하였습니다. 이날 1974년 1월 17일 오전 8시경에 이해학 전도사(당시 29세)가 집을 나서며 ‘나를 염려하는 이들이여’라는 일종의 양심선언문을 남겼습니다. 그는 이 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저돌적이고 자기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려는 이들을 가리켜 생명의 고귀함을 모르는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간혹 순교자의 고마움은 인정하면서도 그들의 영웅 심리적 사고를 비판하려 듭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가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면서도 그것을 위하여 자신이 참여하지 못하는 데 대하여 반성하기를 꺼려합니다. 나도 그랬습니다....(중략)...때로는 양심의 충동에 성실하려는 사람이 불성실하다고 낙인찍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양심에 성실하기를 쉽게 포기하고, 비굴과 아첨 그리고 굴복에 길들여지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힘을 가진 자는 교묘한 수법으로 자신의 권력을 넓히고 높이며, 때로는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짓밟아 버립니다.
나는 하나님의 나라는 악의 세계가 스스로 물러가고 오는 것이 아니라, 새 질서의 힘이 일어남으로 악이 제거된다고 봅니다. 어둠에 빛이 일어남으로 어둠이 쫓겨 가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사람들은 무언가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안 된다고 외치려 하지 않습니다. 무섭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이나 양심의 명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고 세상의 질서에 따라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질서는 끝나는 질서입니다. 이 질서에 따라 사는 것이 지금은 귀중하더라도 이 시대가 지나면 부끄럽고 치사한 것입니다. 여기에 복음 선포의 필요성을 느낍니다....(중략)...나는 예수님께서 사신 삶을 흉내도 못 냅니다. 그저 그분의 삶이 바른 것이라 믿고 있으며 따르고 싶을 뿐입니다. 그것은 고통스럽고 괴로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알지 못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나는 그 상태를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다만 겪어본 사람들은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잠에서 깰 때입니다. 더 이상 악령에 사로잡혀 춤추어서는 안 됩니다. 양심과 인간의 기본 진리가 주장되어야 할 때입니다.”
이해학 목사님은 빈민선교과 민주화 운동, 통일운동을 열심히 하신 분입니다. 오랫동안 성남주민교회 담임목사로 봉직하시다가 지금은 은퇴하셨고 건강이 안 좋아 요양 중이십니다. 대체 당시 어떤 배경에서 이런 글을 쓰셨는지 제가 이 목사님께 직접 여쭤 보았습니다. “긴 시간 깊이 고심해서 쓴 글이 아니고 그날 아침 막 집을 나서며 신발을 신은 채 마루에서 10~20분가량 급히 막 휘갈겨” 쓰셨답니다. 무얼 하러 가는 지 아내에게도 전혀 말하지 않은 채 떠나는 거라 유서 쓰듯 쓰신 거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유신헌법에 반대하거나 개헌운동하는 자들은 긴급조치로 모조리 구속시키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일을 하러 가는 거였으니 곧 무슨 일을 겪을지 너무 잘 알고 있었던 겁니다.
이날 기도회는 11명이 참석했는데 그 중에 이규상, 이해학, 김진홍, 김경락 등 6명이 구속되었고 언급한 네 사람은 징역 15년형을 받았습니다. 이해학 목사님은 1973년 9월에도, 이른바 ‘남산 부활절 사건’으로 구속된 박형규 목사님 소식이 실린 재일교포 신문을 등사해 배포하려다가 끌려가서 조사받던 중 모진 고문을 당하신 적 있답니다. 그래서 이번에 끌려가면 또
비슷한 고문을 당할 거
라는 생각에 몹시 두려워 모골이
송연하였으나 바로 직전 1973년 10월 19일, 서울대 법대 최종길 교수가 중앙정보부 고문으로 사망한 사건이 벌어져 비교적 가벼운 고문을 당하였다고 합니다. 더욱이 미국 카터 정권의 압력으로 수감된 지 약 1년 만에 풀려났습니다. 이 목사님은 “한국교회가 양적으론 크게 성장했지만, 진리를 팔아 성장한 게 아니라 금송아지를 팔아 성장했고 성도들 정신을 흐리게 하고 그게 구원이라 착각하고 있다”고 지적하십니다. 그러면서 “우울하고 음침하게 살 필요는 없지만 지금이라도 좁은 길, 십자가의 길을 기쁘게 가려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고 일갈하셨습니다. 또 자신은 “작은 것 하나에 정성을 기울이는 게 십자가이고, 거기서 생명이 돋아나는 게 부활이라 생각하신다”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새겨 들어야할 귀한 말씀이 아닌가 싶습니다.
부활을 향해
사실 부활신앙 막연하고 형이상학적인 어떤 게 아닙니다. 이 세상의 죽임의 세력에 맞선 생명의 꿈틀거림입니다. 불의에 맞선 정의이고, 무뎌진 양심의 회복이며, 절망스런 상황에서조차 끝까지 참고 견디며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여한 본연의 형상과 소명을 되찾는 일이기도 합니다. 부활신앙은 이 세상에서도 풍요롭고 안락하게 누리며 살고 죽은 다음에도 다시 살아나 영생을 누리겠다는 이기적 믿음이 아닙니다. 불법과 폭력, 불의와 비양심으로 사람들의 영혼을 병들게 하고 죽이는 세력에 맞서, 세상 통치자들이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한 예수 그리스도가 여전히 살아 계신다는 사실과 그분의 가르침이 진리임을 선포하는 일입니다. 또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 좁은 길을 올곧게 따르는 삶이 바로 참 부활신앙입니다. 예수님 제자 중에 베드로는 겉보기엔 용감해 보이나 실상 비겁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체포당해 안나스 대제사장 집에서 신문 당하실 때, 베드로는 열두 제자 중 유일하게 그 장면을 멀찍이 떨어져 지켜본 사람입니다. 그 위험한 곳까지 간 걸 보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을 텐데, 막상 “당신도 그와 함께 있었던 사람이지?”라고 주변의 하녀를 비롯한 사람들이 묻자 그는 “무슨 소리냐, 나는 그를 모른다”며 세 번이나 강경하게 부인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돌아서서 베드로를 똑바로 쳐다보셨다”(눅 22:61)고 나옵니다.
아마 베드로는 이때 예수님의 강력한 시선을 평생 잊지 못하였을 겁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마음이 약해지고 흔들릴 때마다 그 예수님의 눈길이 떠올라 감히 다시는 배신하기 힘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이후 첫 설교에서 예루살렘에 몰려든 순례 객들에게 과감히 외칩니다. “여러분은 예수를 무법자들의 손을 빌어서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서 살리셨습니다. 그가 죽음의 세력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처형당한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려내셨다는 부활의 선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불과 얼마 전 예수님이 십자가 처형을 당하셨는데, 예루살렘 한복판에서 이처럼 외친다는 건 매우 위험천만한 행위였습니다. 실제로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은 예수의 부활을 선포하다가 유대 집권자들에게 붙잡혀 투옥당하고 매를 맞기도 합니다(행 4:2-3, 5:40). 그럼에도 사도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행 4:20)며 예수님의 부활을 더욱 과감히 선포합니다. 한동안 두려움과 비겁함으로 가려지고 무뎌졌던 그들의 신앙 양심이 성령의 임재로 다시 살아나 힘껏 고동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부활의 새벽은 그저 가만히 있어도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 새벽을 향해 과감히 나아가는 사람들이 맞이합니다. 바울은 제자 디모데에게 “믿음과 맑은 양심을 가지고 싸워야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양심을 저버렸기 때문에 그들의 믿음은 파선을 당했습니다.”(딤전 1:19)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처럼 믿음과 맑은 양심을 간직한 채 뒤틀린 세상 질서와 부단히 싸우며 부활의 새벽을 향해 용감히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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