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새벽기도회 설교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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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새벽기도회 설교 모음
● 순 서
고난주간 첫째 날(종려주일) - 예루살렘 입성(막 11:1-11)
고난주간 둘째 날(월) - 예수님의 분노와 성전청결(막 11:15∼18)
고난주간 셋째 날(화) - 한 알의 밀(요 12:20∼32)
고난주간 넷째 날(수) - 사랑과 배신의 날(막 14장 1-11(17)
고난주간 다섯 째 날(목) - 최후의 만찬(막 14:12-25, 요 13:1-11)
고난주간 여섯째 날(금 ,새벽) - 가상칠언(마 27:45∼50)
고난주간 여섯째 날(금. 저녁) - 주님의 수난의 교훈(마 15장 33-39)
● 예루살렘 입성. 종려주일 - (막 11:1-11)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33세를 사셨는데 이제 마지막 다른 사람을 위해서 죽으러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시는 날입니다. 오늘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취임식을 하러 간 것도 아니고, 상 받으러 간 것도 아니고, 경사스런 일로 축하 받으러 간 것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죽으러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두 종류가 있었어요. 예수께서 죽으러 간다고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비난을 합니다. 예수님 형제들은 비난을 했습니다. 또한 바리새인이나 거기 귀족인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면 '아이쿠. 미쳤구나. 뭐라 저 짓하고 있어' 하고 비난을 합니다. 그러나 일부의 사람들은 그것을 환영을 했습니다. 정말 훌륭한 일을 하신다. 당신을 따르고 싶다. “우리가 가진 것은 없지만 제가 가진 최선을 다해서 제가 가진 것은 말은 없습니다. 차는 없습니다. 마차는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가진 나귀래도 타고 가십시오.”
“새끼 딸린 나귀가 좀 불편스럽더라도 새끼가 줄렁줄렁 따라 다녀서 불편스럽더라도 제 나귀를 타고 가십시오. 이 훌륭한 일을 하러 가시는데 저는 무슨 음악을 전공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제 못하는 노래지만 호산나 당신을 찬양하겠습니다.”
“저는 카펫을 살 돈이 없습니다. 양탄자를 살 돈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 가진 겉옷을 깔 테니 이 겉옷을 밟고 가십시오. 당신을 찬양할 수 있는 다는 악기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길가에 흔한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서 흔들 테니 이것을 그저 환영으로 받아 주십시오.”
여러분, 우리가 종려주일을 지내면서 한번 생각해보자. 여러분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부러워하고 칭찬하는가? 하루에 치질을 30개씩 떼네고 3000만원을 버는 의사가 있다. 그것이 부럽고 우리 자식들도 정말로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가?
부잣집에서 태어나 잘생기고 잘나고 공부 잘하고 뭐 이런 애를 보러 가는 것이 귀한 일인가? 아니면 이제 가난하고 병들어서 자기 집에도 있을 수가 없고 이제 조금 있으면 숨도 잘 못 쉬고 먹지도 못하고 눈껍이 끼고 귀가 막히고 대소변도 받아 내야하는 그런 아이들을 돌보러 가는 것이 더 귀한 것인가? 여러분은 어디로 가길 원하는가? 우리의 자식이 어디로 가면 잘했다고 박수를 칠 수 있겠는가?
사랑하는 여러분, 교인이면서도 불의한 방법으로 도적질하고 강도질해서 부자가 되었어도 여러분은 이렇게 이야기 하지 않나요? ‘아 대단하다. 그 사람 대단한 것 같아! 그 사람 축복 받았어’정말 그것이 대단한 것인가? 그것은 지옥이다.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지옥인 것이다.
그런 일을 박수 치면 안 된다. 부러워해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사람이다. 정말 대단한 것은 예수님 같은 분이다.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 자원해서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가는 사람이 대단하다 그 말이다. 우리도...
한번만 모른 체 하고 눈감으면 돈을 많이 벌수도 있고 더 편할 수도 있는데, 더 높아질 수도 있고 명예를 얻을 수도 있고 권세를 얻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를 짓지 않으려고 그것을 버리는 사람이 대단한 사람이다. 우리가 진실로 마음속에서 박수치고 환영하고 부러워해야 할 분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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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난주간 둘째 날(월) - 예수님의 분노와 성전청결(막 11:15∼18절)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부패한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부패한 종교는 인간의 정신을 부패시키고 관계를 파괴합니다.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전체 나라전체를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부패시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복음을 전파하셨다는 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복음을 들고 누군가와 싸우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유대교와 지도자들'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입니다. 유대교는 분명 하나님을 믿는 종교이며 택함 받았다고 생각하는 선민으로서의 특별함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고 율법을 가르쳤으며 유대교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목숨을 걸 정도로 열심을 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 유대교와 싸우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복음을 들고 유대교와 싸우신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유대교가 순진한 백성들에게 가혹한 악행을 서슴없이 저질렀기 때문이다. (마 23:13)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예수님께서는 다음날 월요일에 성전을 찾아가셨다. 그리고 매매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셨고, 돈 바꾸는 자들의 상을 들러 엎으셨다. 또한 비둘기를 파는 자들의 의자를 들러 엎으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15절) 한 평생 인자한 모습으로 약한 자와 병든 자와 소외된 자들을 위로하시고 구원의 손길을 베푸시던 주님의 모습이 분노로 불타고 계셨던 것이다. 그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다.(17절)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신성한 집이거늘 너희는 이 거룩한 성전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어 버렸다'고 하신다. 너희는 만민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하고 소망을 주며 바른 가르침을 주어야 할 자들이거늘, 오히려 백성들에게 상처를 주었고 소망을 빼앗아 갔으며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가난한 서민의 주머니를 착취하는 일에 혈안이 되어버린 강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 왜 성전에 들어가셔서 채찍을 휘두르셨으며 왜 상을 들어 엎으신 것일까? "매매하는 자들"은 소나 양 같은 제물을 판매하는 상인들이다. 이들은 제사장과 결탁하여 순례자들이 정성껏 가져온 제물을 까다롭게 판정하여 불합격판정을 내리고 자기들의 가축을 사도록 만들었다. 이런 과정에 가난한 성도들은 한숨을 지어야 했고, 저들은 폭리를 취하여 제사장과 나눠가졌다. "돈 바꾸는 자들" 역시 제사장들과 결탁하여 남자들은 누구나 내도록 되어 있는 성전세를 거둘 때, 반드시 은화 반세겔로 내도록 했다. 왜냐하면 로마화폐에는 황제의 형상이 새겨져 있으므로 우상으로 취급하여 유대화폐로 환전하여 내도록 했던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환전상들은 많은 차액을 남겨 폭리를 취했고 제사장들에게 뇌물을 바쳤다. 결국, 가난한 백성들은 이리 뜯기고 저리 뜯겨야만 했다.
도무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힘겹기만 했다. 이렇게 힘들 수가 없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더럽혀진 성전을 정결케 하신 이 분노의 사건을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교회대로, 성도는 성도대로, 주님의 거룩한 성령이 머무르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오염되고 부패한 심령을 깨끗이 가꾸어야 하겠다. 이번 고난주간을 통해 깨끗하고 정결한 심령들로 거듭나는 우리 모두가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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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난주간 셋째 날(화) - 한 알의 밀(요 12:20∼32절)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화요일이 되었습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주님께서 인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하는 운명의 날이 올 것입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주님은 한 알의 밀에 대한 비유의 말씀을 하십니다. 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인류가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을 비유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한 알의 밀은 곧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땅에 떨어져 죽는 밀알의 의미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 첫째, 결별의 과정이 있어야만 합니다.
밀알이 가지에 붙어 있는 한, 밀알은 죽을 수도, 많은 열매를 맺을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가지와 결별하는 과정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창 할 일도 많은 33살의 젊은 나이에 죽으셔야만 했습니다. 세상과 이별해야만 했고, 제자들과 이별해야만 했으며, 부모 형제들과 이별해야 하는 아픔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아버지 나를 버리셨나요? 라고 말하실 때 결국 하나님과의 순간 이별을 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주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요? 이별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과감하게 이별을 고하십니다. 왜? 인류의 죄악을 담당키 위해서입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생명의 애착까지도 버리신 분이셨습니다.
사랑하는 아이가 학교를 갑니다. 그 아이가 자라서 더 높은 학교로 가며 세상으로 점점 나아갑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참 불안한 것입니다. 그리고 두려운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시간이 점점 흘러 자녀가 자라나는 것이며, 시집, 장가를 가면서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별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완전히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더 나은 열매를 얻기 위함인 것입니다.
둘째, 떨어지는 아픔이 있어야만 합니다.
땅에 떨어지는 아픔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모든 아픔을 맛보셨습니다. 침 뱉음을 당하셨고 뺨을 맞으셨으며 창과 못에 찔리셨습니다. 자존심도 땅에 떨어졌고, 주님의 피도 땅에 떨어졌습니다. 흘리신 눈물도 땅에 떨어졌고 채찍에 맞아 살점도 떨어졌습니다. 그 아픔이 얼마나 크셨던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외치셨습니다. 몸은 땅으로 영혼은 심판을 통해 낙원과 지옥으로 옮겨집니다. 결국 육신의 아픔이 떨어지는 아픔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더 성숙하며 놀라운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셋째, 열매를 맺기 위해서 죽어야만 합니다.
여러분,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새로운 나라의 시작입니다. 죽어야만 천국에 들어설 수 있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양의 제물 대신에 우릴 위해 죽으셨습니다.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의 계획안에 죽지 않으면 인류가 구원을 얻을 수 없기에 나(우리) 대신 죽음을 택하셨던 것입니다. 제 2차 대전 당시, 어느 군인이 부상을 입고 한 쪽 팔을 잃게 되었습니다. 야전 병원의 수술대 위에서 팔을 잘라내는 수술을 마치고 회복되어 눈을 뜬 그에게 의사가 말했습니다. "괜찮을 겁니다. 곧 회복될 것입니다. 그러나 좀 안타까운 것은 당신이 한 쪽 팔을 잃은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병사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팔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내 조국에 팔을 바친 것뿐입니다."
내가 주인이었던 삶에서 나라가 주인인 삶을 사는 천국 백성이 되길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우리도 밀알이 되어봅시다. 죽음과 희생을 받아들이고 아픔과 고난을 감수하십시다. 그리고 더 큰 세상을 보게 될 일에 기뻐하시며 긴장해 봅시다. 그리고 이렇게 찬양을 하십시다. '주님! 나의 눈물과 희생은 손해를 본 것이 아니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주님의 영광을 위해 바쳐진 것입니다. 천국 가는 그 날까지 주님을 위해 바치겠습니다.' 이 고백이 주님께 드려지는 고난주간의 새벽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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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난주간 넷째 날(수) - 사랑과 배신의 날(막 14장 1-11(17))
고난 주간 넷째 날 수요일은 사랑과 배신의 날입니다. 옥합을 깨뜨린 한 여인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3~9절). 누구의 배신이 있었는가? 가룟 유다의 배신이 있었습니다(10~11).
오늘은 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사랑 부분을 중점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종려주일에 화려하게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셔서 주님은 3일 동안 계속 예루살렘 성전에 계속 들어가셨습니다. 첫날에는 입성하시고 성전을 둘러보셨고, 둘째 날에는 성전에 들어가 성전청소를 하셨으며, 셋째 날에는 성전에 들어가 밀알의 교훈을 하신 후 사람들과 변론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고난 주간 넷째 날만은 성전이 들어가지 않고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그곳에서 식사를 하실 때였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 한 여자가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진정한 헌신이 무엇인지 가르쳐 줍니다. 어떻게 헌신해야 할까? 우리는 헌신할 때 계산을 초월해야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여자는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그때 그녀에게는 인간적인 계산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것보다 소중한 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소중하게 여기는 성도는 자연히 계산을 초월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물질과 능력을 동시에 주시지 않습니다.” 목회를 하다 보면 정말 그런 것을 느낍니다. 물질이 풍족한 곳에는 이상하게 하나님의 능력이 잘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반면에 가난한 곳에는 오히려 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빌립보 4:13절의 고백이 바로 체험적인 간증이다. 그렇다고 우리 모두 헐벗고 굶주려 가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가? 그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가난 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돈을 개입시키지 말라는 뜻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물질과 계산을 초월하지 않으면 신앙은 자라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여인은 예수님에게 와서 향유만 부어도 충분할 텐데 굳이 옥합을 깨뜨려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어떤 뜻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 여자가 옥합을 깨뜨린 행위에는 주님을 사랑하는 최대의 헌신의 고백이 담겨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 이런 고백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주님! 이 옥합은 당신만을 위해 쓰여지기를 원합니다.” “주님! 이 옥합처럼 제가 주님 앞에 온전히 깨어지기를 원합니다. 주님! 앞으로 돈에 연연하여 살지 않고 주님만을 위해 살겠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사람의 진실을 진실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시기와 질투 때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곳에 있던 일부 사람들이 분노하며 말했습니다. (4절)“... 무슨 의사로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가.”
이 사람들은 여인의 진실을 무참히 짓밟고 있다. 왜 그럴까? 그래야 주님 앞에 헌신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달래고 자신의 양심에 위안거리로 삼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더 나아가 가난한 자를 끌어들입니다. (5절)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그들이 정말 가난한 자들을 생각해서 그런 말을 했을까요?
말은 그럴듯하지만 그것도 자신의 양심의 위안을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헌신할 때 우리의 전부를 드려야 한다. 또한 헌신할 때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십자기에서 죽으신 주님을 위해 헌신하려면, 계산을 초월하고, 전부를 드리되 미루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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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난주간 다섯 째 날(목) - 최후의 만찬(막 14:12~25)(요 13장 1-11절)
3. 수요일 • 유대인이 예수를 배척함과 예루살렘 멸망과 말세를 예언함.
(눅 21 : 1 - 5 - 38)
1)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2)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3)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5)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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