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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주일]책임 있는 부모가 되자 (막 9: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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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723회 작성일 21-04-28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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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주일]책임 있는 부모가 되자

(막 9:14-29)

14)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15)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매우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16)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 17)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18)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19)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20)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21)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 니이다. 22)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더라. 25)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26)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27)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28)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 성도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의 사랑하는 자녀나, 태신자가 영원히 살기를 바라는가? 아님, 언젠가는 죽겠지만 그 때가지만 잘 살고 죽어 완전 소멸되기를 바라는가? 아님, 죽을 때 죽더라도 적당히 즐기고 놀다가 지옥 불에 떨어져 영원한 영벌을 받는 것이 좋겠는가?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늙고 병들었을 때 제자들이 스승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습니다. "선생님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가장 소중한 메시지 한 가지만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눈을 지그시 감고 얘기 했습니다. "아테네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시민들을 향해 간절히 외치고 싶은 말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제자들이 물었을 때 소크라테스는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사람들이여 재물을 모으는 일에만 충성하지 말고 그것을 물려받을 어린이들에게 좀 더 사랑과 정성을 쏟으라. 이것이 내 일생에 얻은 가장 귀한 교훈이다" 역사의 위대한 철학자가 우리에게 한 말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아이들입니다. 이 말은 이 아이들이 있는 곳이 미래라는 말입니다.

우리 민족, 이 세계의 장래는 교육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들은 간혹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망각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녀교육을 잘하는 것이 부모에게 맡겨진 가장 중요한 사명인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사실을 귀하게 여기셨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무시하고 천시할 때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오히려 그들을 품에 안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성경에서도 (엡 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자녀들을 잘 교육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하면 우리 자녀들을 잘 가르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1. 자녀를 위해 대속물이 되고자 하는 부모입니다.

책임에 대한 용어를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를 위해 대속물이 되고자 하는 부모가 성경이 말하는 책임 있는 부모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많은 기적을 일으키셨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의 목표는 섬김을 받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희생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 오늘 우리 자녀들을 위한 목표는 무엇입니까?

진정 자녀를 사랑하여 영원한 삶을 가르치는 자녀들의 영혼을 위한 것입니까? 아니면 내가 자녀를 통해서 세상적인 무엇(자랑과 이익)을 얻기 위한 것입니까? 아니면? 내가 낳은 자니까 무조건 남보다 잘되어야 한다는 집착인가요? 우리 성도는 자녀교육에 대한 부모교육의 목표가 자녀 살리기인지, 아니면 부모의 체면과 잘 먹고 잘사는 즉 사는 문제 때문인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귀신 들린 아이를 대한 제자들의 관심은 어디 있었습니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서기관들과 변론을 합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변론함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무엇 때문에 토론하고 논쟁을 합니까?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묻습니다. “너희가 누구든지 다가오는 내일을 막을 수 있는가? 아님, 내일을 앞당길 수 있는가?”

자! 이들은 본질을 떠나서 이 아이를 통해 자신들의 능력을 시험해 보고 있는 것입니다.

"할 수 있다, 또는 없다, 적어도 나는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귀신을 내어 쫓을 수 있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이 사명을 감당해 왔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그 아이 속에 있는 귀신을 쫓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패하고, 망신당하고 말았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믿음이 없는 세대요."(막 9:19)라고 했습니다. 귀신을 내어 쫓는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나를 드러내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겨 사랑하는 긍휼과 믿음으로 기도하고, 주의 영광을 드러내고, 주님을 구세주로 믿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목표가 잘못되었기에 옳고 그름과 능력에 대하여 변론하게 된 것입니다.

제자들의 실패는 자신들의 능력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의 자녀교육의 관심이 내 능력과 내 믿음을 드러내려고 했던 것 아닙니까? 다시 말하면 자녀들을 통해 "내가 이런 자녀를 키웠다"에 나도 모르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좌절하고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녀들에 대한 성경적인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라고 가르치는 바른 교육에 목표를 두기 보다는 나 자신과 가문과 자기 사랑적인 자랑에 두기 때문이 아닙니까?" 자녀를 사랑하는 만큼 그 어떤 것보다도 자녀 그 자체로만으로 내 마음은 충분하고, 그 이후는 그 자녀의 그릇을 말씀으로 채우는 것이 중요함.

이렇게 기도합니다.자녀를 내 물질이나 보이는 것들을 물려주기 위해 부어 투자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착각을, 그리고 나도 모르게 나의 삶을 자녀에게서 보상받으려고 하는 유혹을, 다 너를 위한 것이라고 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부모 자신이나 체면을, 이기심을 위했던 것임을 고쳐주소서 그리하여 그들이 나에게 속해 있지만 내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하소서.”

나로 하여금 부모의 권리보다는 의무를, 자녀의 성장보다 내가 먼저 성숙해 지므로 그들을 훈계하게 하소서. 그들을 이끌어 주되 강요하거나 협박하지 않으며 그들을 돕되 대가를 기대하지 않으며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실패할 수 있는 자유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지 않게 해 주소서. 그들의 슬픔과 기쁨과 기쁨을 가볍게 취급하지 않으며 그들의 성공과 실패를 과소평가 하지 않고 그들의 하찮은 질문과 사소한 행동방식에도 진지하게 반응하며, 매사에 그들을 존중하므로 써 존경받는 어른이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유명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유능한 사람으로 인류의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유일한 사람으로 우리의 자녀들이 자라나게 해 주소서.”

우리는 자녀들을 섬기는 자로, 대속 제물로 살아가는 그 자체를 감사하게 여기고 그것을 우리의 믿음의 삶으로 여길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로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2.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는 부모입니다.

자녀들에게 용돈을 주는 것만큼 기도하고 계십니까? 옷 사 입히는 것만큼 기도하십니까?

기도해 주십시오. 제가 읽은 책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톱밥에는 톱질을 하지 말라" 톱밥은 지나간 과거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톱질을 해 봐야 의미가 없습니다. 다른 말로 얘기한다면 지나간 과거가 우리의 미래를 보장한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과거에는 톱밥을 다 버렸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이 톱밥에 송진이 묻히는 순간 이것은 어느 나무보다도 단단한 합판이 될 수 있었습니다. 사랑으로 사람들의 세포가 연결되어 이렇게 살아가듯 톱밥에도 송진이나 접착제가 들어가면 사람들에게 유익한 새로운 물건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부모의 사랑과 관심으로 과거보다 더 튼튼한, 쓸모 있는 재료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예수님의 관심은 귀신 들려, 생명을 위협받고 두려움에 떠는 아이가 고침을 받으려고 왔지만 주님의 관심은 아이보다는 그 아버지에게 관심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아이에게 믿음이 있는지 묻지 않으셨습니다. 그 아버지는 "주여 하실 수 있거든 내 아이를 낫게 해 주시기 원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그 아버지에게 믿음이 있는지를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 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 때에 아버지는 "내가 믿나이다."라고 소리쳤습니다. 주님은 아버지의 믿음을 보시고 이 아이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아버지가 믿음이 없으면 아이가 병이 나아도 또 다시 그런 일을 당했을 때 또 그와 같은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믿음이 있을 때 이 아이에게 또 다른 문제가 있을지라도 그 문제를 해결할 만한 능력이 하나님에게 있음을 알고 마땅히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기본이기에 그 믿음을 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 아이의 병이 문제가 아닙니다. 나의 믿음이 문제입니다. 부모의 영적인 생활이, 믿음의 생활이 자녀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의 자존심, 신앙인의 명예는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 내가 병 고치는 능력, 가지고 있는 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하느냐에 있습니다. 주님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탈무드에 보면 "어리석은 사람은 자녀들에게 재산을 남긴다. 양식 있는 사람은 자녀들에게 지식을 남겨 준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자녀에게 신앙을 남겨 준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신앙의 본을 보이는 지혜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아이들 속에 들어갈 수 있도록 늘 기도하고 본을 보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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