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잘 아는 것이 복이다. (마 5: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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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잘 아는 것이 복이다.
성경 : 마 5:1-10. 552. 279. 549. 478.
10월 9일(금)이 한글날이 있는 주간입니다. 우리는 한글이 어려운 줄 잘 모르는데 외국인이 보기에 한글에 ‘사람’과 ‘사랑’이 발음이 비슷한데, 참 의미가 있다고 해서 외울 때. “사람이니 사랑해야 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이렇게 기억한답니다. 그럴듯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보면 외국인들은 참으로 어려워하는 것이, 우리는 의미를 대개 이해하는데, 영어로는 도저히 번역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한글 단어가 많지요.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 꽃’ 시에 ‘가는 길에 놓인 진달래꽃을 사쁜이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현상을 잘 알려주는 ‘아리까리하네.... 누리끼리하다, 거무티틱하다.. 시푸르딩딩하다.’ 다른 언어로는 표현하기 좀 힘듭니다. 요즘 세계적 인기를 끄는 방탄소년단이 부르는 한글 노래의 뜻을 알려고, 외국인들이 한글을 배운답니다.
이처럼 한글이 우수하고 외국인도 많이들 좋아하는데, 막상 국내에서 그동안 많이 외면당했던 것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오히려 나라 말을 귀히 여겨, 아름다운 한글 간판을 많이 만드는 편입니다. 한국인 스스로 한글의 우수함을 자랑하려면, 한글을 더 잘 알아야되는 것처럼, 믿는 사람은 자신이 섬기는 예수님이 얼마나 좋은지 바로, 잘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난 예수님을 믿어서 참 좋아, 너도 믿어, 하지요. 안다는 것을 생각해보니, 안다 / 모른다. 바로 안다 / 잘못 안다. 많이 안다 / 적게 안다. 알고 행한다. / 알고도 행하지 않는다. 안다로 여러 것을 생각할 수 있지요. 예수님 신앙에 대해, 되도록 바르게 많이 알고, 아는 대로 실천하는 것이 좋은 신앙생활입니다. 교회를 꽤 다녔는데, 세상에 살면서 말과 행함이 기독교인답지 않다. 왜 그럴까요? 기독 신앙을 잘 모르든지, 알고도 행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교회 다니면, 야고보서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를 거의 아는데, 알고도 행하지 못하니 안타깝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 잘 믿는다는 것이, 어떤 것으로 알고 계십니까? 주일예배에 빠짐없이 출석하고, 교회 일에 봉사하고, 정성껏 헌금하면, 잘 믿는 것이지요. 예배드리는 것, 성경 읽고 기도하는 것에서 신앙생활을 멈추지 말고, 그에 힘입어 성도답게 살아야지요. 어디서나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겨야 합니다.
그런데 잘 알면서도 선데이 크리스천, 주일날만 교인, 평일에는 안 믿는 이와 같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을 믿어 누리는 귀한 복을 잘 모르기 때문이거나, 확실치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복에 대해 나눕니다. 하나 질문을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복 받아 누리길 바라실까요? 아니면, 복은 맛만 살짝 보여주고, 죄인이니까 힘들게 신앙 생활하는 것을 원하실까요?
“교회 다니고, 믿는 자답게 사는 게 어려워?” 하나님이 그리 하신 것이 아니지요.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복을 충만히 누리기 원하십니다. 함께 구약 민 6:24-26을 읽습니다.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며, 제사장인 아론과 후손들에게 전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이렇게 축복하라 하신 겁니다. 여호와께서 우리가 은혜와 평강의 복을 누리기를 바라시지요.
또, 신 28:1~10을 읽습니다. ‘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3)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4)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5)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6)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7) 여호와께서 너를 대적하기 위해 일어난 적군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라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8)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9)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할 것임이니라. 10) 땅의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이름이 너를 위하여 불리는 것을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무엇이나, 어디서나 복 받으라 하시지요. 신 28장을 축복의 장이라 하는데, 앞부분은 많은 복을 받는 방법에 대해, 뒷부분은 저주를 피하라는 것인데, 저주를 피하면 복을 누리는 것이니, 28장은 다 복 받으란 말씀입니다. 신약에 와서, 함께 읽은 말씀이,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 가르치시며, 그 시작에 팔복을 말씀하시지요. 예수님도, 우리가 복 받기를, 가장 먼저 바라셨습니다.
성경만 아니고, 동양의 유학에서도 복을 가르칩니다. 서경이란 책에, 다섯 가지 복이 나오는데,
● 첫째는, 장수입니다. 오래 사는 것이 복이지요. 우리나라에 지금 백 세 이상 어른이 천 칠백 분이나 계시니, 이젠 ‘백세 사세요.’로 부족하고 ‘백 이십 세 사세요.’할 때입니다.
● 둘째 복은, 부요한 삶을 누리는 것이요,
● 셋째가, 평안의 복입니다. 오래 부자로 살아도, 우환이 없이 건강하고 편안해야지요.
● 넷째가 주위에 덕과 사랑을 베푸는 것이 복이지요.
● 다섯째가 제 명대로 살다가, 별로 아프지 않고 편안히 죽는 것입니다.
9988234 아시죠?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 편찮고 죽는 거지요.
우리가 이런 복을 누리길 원하는데, 실상 팔복을 가르치신 예수님은 어떤 삶을 사셨나요? 이 복과는 거리가 멀었지요.
● 첫째로, 장수하지 못하고 서른 초반에 죽으셨고,
● 둘째, 부요하지 못했습니다. 눅 9:58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편히 쉴 집 한 칸이 없었지요.
● 셋째로, 예수님은 흠모할 곳이 별로 없는 분임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 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 넷째로, 예수님은 덕과 사랑 베풀기를 좋아하셨지만, 백성들은 그것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기는커녕, 비난하고 박해했지요.
● 다섯째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치욕과 고통 속에 돌아가셨으니, 세상의 눈으로 보면 편안히 돌아 가시지 못했지요.
이렇듯 예수님의 삶은 인간이 누릴 복과 거리가 멀지만, 예수님이 그리 사신 것은, 우리 모두가 복을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잠시 누리다 사라지는 일시적인 복, 건강이나 부나 명예를 누림이 아니라, 영원한 복, 궁극적인 복, 천국 영생의 복이지요. 그걸 잘 아는 사도 바울은 ‘(고후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영혼을 볼 때)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육으로 볼 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이라 성경에 남겼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낮아짐으로 우리가 높아졌고, 그가 고통을 받음으로 우리가 치유를 받았고, 그가 죽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는 영생 천국을 누리게 되었음을 믿습니다. 할렐루야!
이것을 바로 알아야, 예수님이 팔복 중 처음 말씀하신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알지 못하면 ‘복이 있나니’란 말씀에 귀가 솔깃했다가, 이어지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라는 말씀엔 그게 뭐 복이야 외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을 바로 알려면,
1. 예수님께서, 스스로 가난해지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부자가 천국 가기 힘들다곤 했으나, 그리스도인은 가난하게 살라는 말씀은 없습니다.
2.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을 마음이 소심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의견을 내세우지 못하고, 순둥이처럼 살아야 한다, 아닙니다. 기독교인은 겸손해야 하지만, 심지를 굳게 하고,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할 말을 분명히 하고,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나타냅니다.
3. 하나 더 생각하면, 심령이 가난한 것을, 즐겁게 살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먹고 마시는 잔치 자리를 즐기셨습니다. 기독교는, 감사하고 기뻐 찬양하며 서로 사랑하고 축복하는 곳입니다. 어찌 그럴 수 있나요? 참된 복을 받았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말씀 전에, 심령이 가난하지 못해,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부터 살펴봅니다.
인간은. 개인이나 국가나 자신들만의 평안과 번영을 추구하면, 충돌이 일어나, 개인 간에 싸움이 벌어지고, 국가 간에 전쟁이 일어나지요. 요사이 일본 아베 총리나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자기 나라의 유익을 힘써 구했으나, 얼마 안 가 부메랑이 되어, 자기 나라에 해를 끼치고 있지요. 그런 것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심령이 가난해지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을 정리한 것을 천천히 읽습니다. “어제의 성공에 교만하지 않는 사람, 어제의 신앙에 머무르지 않는 사람, 초심을 계속 지켜나가는 사람, 빈 마음을 가진 사람, 열린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미래가 더 큰 것을 아는 사람,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미래를 향해 나아갈 줄 아는 사람, 이런 사람이 심령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이들은, 다른 교우들과 이런 것을 나눕니다. 주님만으로 기쁨을 삼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싶고, 가슴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 귀하게 여깁니다. 모든 길이 막혔을 때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하지요, 이런 사람이 심령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심령이 가난해지는 것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을 허는 것이지요.
성경에 ‘하나님의 팔이 짧아서 복이 우리에게 닿지 못하는 것이 아니요,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가 막혀서 그렇다.’ 하지요. 막힌 것을 헌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찌꺼기와 응어리진 것이 없애야지요. 기도할 때 대체로 ‘하나님, 가정문제를 해결해 주세요. 진로를 열어 주세요.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해주세요. 공부 잘 하게 해주세요.’ 합니다.
그러나 그런 기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소중히 여기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과 나 사이에 끼어들지 못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절박하리만큼 진심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것이 트이면, 주님이 마련하신 복을 누리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예수님이 너희가 복 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심령이 가난해져라.’ 곧 하나님과의 막힌 길을 열어라, 하신 겁니다. 이걸 알면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 빈 마음, 열린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받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하게 될 줄 믿습니다.
이어 살필 것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나니’하시고 ‘저들이 천국을 누릴 것임이라.’ 하셨는데, 마 5:10 의 팔복의 마지막 복도 천국입니다. 믿는 이가 누릴 가장 크고 귀한 복이 천국, 하나님 나라임을 잊어서는 않되겠습니다. 그 비밀과 그 사실을 잊으면, 세상의 육신의 눈으로 눈앞에 보이는 것만 좇기 마련이지요. 기독교인이 자기의 육신만 아는 세상 복만 좇는 기복적이란 비판이 생기는 이유가 바로 천국을 외면하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정욕이 가난하여 육에 것만 구하는 결국 심령이 가난하지 못한 겁니다. 창 22장에, 백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할 때, 아브라함이 순순히 순종한 것은,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돌아갈 저 본향 천국이 있음을 믿었기 때문이지요. 귀한 아들을 번제로 내놓는 것보다 더 심령이 가난해질 수 있나요? 그럼으로,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이의 조상이 되었고, 우리도 그처럼 심령을 가난하게 함으로, 자신이 복을 받고 후손의 복의 근원이 되라 합니다.
오늘, 성도의 신앙생활은 믿음에 대해 바로 많이 잘 알고, 아는 대로 행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왜, 이런 것을 잘 알고도, 성도답게 살지 못할까요?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거나, 알아도 외면하고, 눈앞의 것에 급급하게 살기 때문이 아닐까요?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셔서 많은 귀한 것을 가르치셨는데, 그 맨 처음에 팔복을 가르치시며, 첫째와 마지막에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하셨습니다. 성도가 바로 알아야 할 가장 귀한 것, 누릴 복은, 세상의 그 무엇이 아니라, 천국 영생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좀 더 알 것은, 저 좋은 천국을 누릴 것이니, 이 땅에서는 어떤 괴로움, 가난, 아픔을 겪어도 좋다, 아니면 금식과 고행으로 살리라, 아니지요. 훗날 천국을 누릴 것을 마음에 확실히 담고, 이 땅도 천국처럼 삽니다. 예를 들어,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지요. 힘껏 이웃에 사랑을 베풀며, 자신도 이웃의 사랑을 받아 누립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요? 오늘 말씀으로, 심령이 가난해지면 됩니다. 주보 안의 글을 여러 번 읽으며, 자신이 부족한 면을 보충하세요.
결론
오늘 말씀 제목을 ‘아는 것이 힘이다’라 하고, 바로 알고 행해서, 하나님이 우릴 위해 예비하신 복을 충만히 받아 누리자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복 받기를 바라시며 주신 최고의 증거는, 그 아들 예수를 이 땅에 보내 흉측한 십자가에 죽게 하신 것과 많은 사람 중에, 부족하고 허물 많은 나를 택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게 하신 겁니다. 그 하나님께서, 너무나 좋은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을 바로 알아야 힘이 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심령이 가난하여져서 오직 그 심령을 채울 하늘의 영원한 것을 구하고 찾고 두들겨, 사후와 예수님 재림 시에 천국에서와 그림자 같은 이 땅에서의 천국을, 모두 주님이 주시는 평강으로 누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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