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주일]두 물고기 사건의 의미 (눅 5:1-11; 요 2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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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물고기 사건의 의미 (눅 5:1-11; 요 21:1-14)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눅 5:1-1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요 21:1-14)
한 해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1년 전 이맘 때 우리 각자의 마음에 품었던 결심들과 지금의 생각들을 비교해 보며 자신의 영적 성장의 열매를 점검해보는 시간입니다.
금년 역시 다사다난했던 한해였습니다.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우리 삶의 곳곳에서 주님의 인도와 사랑의 손길을 느끼며 감격해 하기도 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주님의 재림이 좀더 가까워 왔다는 점입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 누가복음 5장에 나오는 고기 잡는 사건과 부활하신 후 디베랴 바다에 오셔서 제자들로 하여금 153 마리의 고기를 잡게 한 사건에 관한 말씀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두 물고기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을 긴밀하게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작은 복음의 불씨가 큰 복음의 불을 일으킨 사건이요, 예수님 초림으로 시작된 복음이 주님의 재림으로 온전히 성취될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복음은 믿음으로 예수 안에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하나 되게 하는 복음입니다.
두 사건의 배경을 잠시 살펴보면, 먼저 누가복음의 사건은 예수님의 초기 사역 당시 제자들을 부르신 장면입니다. 베드로는 그날 저녁 밤이 맞도록 그물을 던졌으나 아무 것도 얻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던졌더니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의 의미를 가집니다.
요한복음의 물고기 사건은 부활 후 세 번째 보이신 사건으로 종말론적 의미를 가집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흩어진 제자들을 다시 부르셨습니다. 제자들은 이 날도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오른 편으로 그물을 던졌더니 물고기가 153마리나 잡혔습니다. 누가복음에서와 같이 많은 고기가 잡혔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종말의 교회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 두 물고기 사건을 통해 주님이 감추어두신 영적 진리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두 사건은 육적 어획량을 이야기 하심이 결코 아닙니다. 성경은 육적 어획 사건을 통해 영적 복음의 내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주석가 박윤선 박사님은 “예수님은 제자들이 고기 잡은 것을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겠다는 말씀으로 영적인 해석을 하셨다. 그러므로 이 사건도 상징적으로 해석되어져야 한다” 라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두 사건에 나타난 고기의 차이, 그물의 차이, 그리고 시간과 장소의 차이에 주목하여 감추어진 진리를 찾아내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진리의 말씀으로 한 해의 마지막 주일에 서 있는 우리 각자의 영혼의 위치를 점검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고기의 차이에 내포된 의미
눅 5: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요 21:11=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누가복음의 경우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라고 했는데 반해, 요한복음의 경우 그물에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두 사건 모두 고기를 심히 많이 잡았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의 물고기는 너무 많아 셀 수 없을 정도였고 그물이 찢어졌습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가지고 온 세상에 전파하여 무수한 영혼들을 건져낸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그물 속의 가득한 고기는 땅 끝까지 전파될 복음의 세계를 말해줍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의 물고기는 심히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였으나 큰 고기가 153마리로 집계되었습니다. 이것은 큰 성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종말에 세계 선교를 통해 구원받을 참 성도의 충만한 수를 상징합니다.
그물에 잡힌 고기가 153 마리라고 숫자를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에는 깊은 영적 의미가 담겨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바클레이는 교회의 보편성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하여 ‘교회에는 모든 나라 백성들이 들어갈 수 있는 방이 마련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시릴은 100은 이방인을, 50은 유대인을, 그리고 3은 하나님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어거스틴은 ‘자연수인 1부터 17까지를 모두 더하면 합이 153이다. 17에서 10은 율법의 수요 7은 은혜의 수인데, 따라서 이 수는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이 이른다는 의미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광복 목사는 153= 120+33으로 120은 초대교회 120문도의 수, 33은 예수님의 생애의 수, 즉 예수님은 33년 동안 이 땅에 120문도 고기들을 남겨놓으시고 부활하신 것으로 이해했는데, 이 해석이 가장 타당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성도 여러분! 종말에 사는 우리는 모두 영적으로 큰 고기 153 마리의 수에 들어가야 합니다. 큰 고기는 영적으로 장성한 자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런 자는 단단한 식물을 먹으며 지각을 사용하고 연단을 받으며 영적으로 깊고 오묘한 진리를 분변하는 자들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을 맞고 있는 오늘, 여러분의 신앙은 어디에 와 있습니까? 어린 고기의 신앙입니까 아니면 큰 고기의 신앙입니까? 만일 작은 고난에도 불평하고 투정부린다면 아직 작은 고기의 신앙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작은 고기는 큰 파도를 견디지 못하지만 큰 고기는 큰 파도를 타고 더 먼 바다로 나갑니다. 우리가 종말의 3대 해독인 세속주의 신앙, 민주주의 신앙, 혼합주의 신앙을 이기려면 생명의 떡을 먹고 큰 고기로 성장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두 본문에서 고기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가 같지 않았음에 유의해야 합니다. 누가복음에서는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5:11) 예수님을 좇아갔는데도 아무 말씀이 없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는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더니, 잡아서 잡수십니다. 누가복음의 고기는 버려두셨고 요한복음의 고기는 숯불에 친히 구워서 드셨습니다. 여기서 숯불은 이글이글 타오른 불로서, 성령의 불을 예표합니다.
주님이 준비하신 떡은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숯불에 구운 고기는 연단의 불 속에 익은 고기로, 종말 대환난을 통과한 성도의 모습과 비교됩니다.
계 7:13,14=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대환난에서 나온 자들은 숯불에 구운 고기와 비교됩니다. 두 본문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고기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가 달랐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의 고기는 상관하지 않으셨으나 요한복음의 큰 고기는 친히 잡수셨습니다.
초림과 재림의 비밀이 고기들의 모습 속에 감춰져 있습니다. 누가복음의 그물속 물고기에는 각종 고기들이 섞여 있어서 아직 주님의 식탁에 오르지 못할 고기들로 가득했습니다. 주님은 큰 고기를 잡수셨습니다. 큰 고기만이 주님의 신부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은 마지막 시대입니다. 우리는 종말에 대환난을 이기는 큰 고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거친 파도에도 튀어 오르는 범고래처럼 거대한 대어(大魚)가 되어야 합니다.
작은 일에 고민하고 좌절하는 성도들은 큰 고기가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일생이 길가에 버려져 밟히는 무가치한 잔챙이로 끝날 수는 없지 않습니까?
2. 그물의 차이에 내포된 의미
눅 5: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요 21:6=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누가복음의 베드로의 그물 던짐은 구약교회 율법의 그림자로서 얕은 물과 같습니다. 밤새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그물을 씻고 있는 모습에 구약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얕은 물에는 먹이가 없습니다. 구약의 육적 제사와 의문(儀文)의 죽은 것들 같은 얕은 물에는 먹이가 없습니다.
신약의 복음은 깊은 물과 같습니다. 주님은 율법이 아닌 복음으로 말미암아 사람 낚는 어부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물을 던진 장소의 차이에 대해 좀더 생각해 봅시다. 누가복음과 달리 요한복음에서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진 것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방향으로 던졌음을 나타냅니다. 그물 던짐의 방향만 가지고도 이처럼 엄청난 의미를 발견합니다. 오른 편에 던진 그물에 건져올려진 고기는 예수님 재림 때 주님의 오른 편에 서게 될 양들과 같습니다. 왼편은 염소요 어두움이요 지옥이며 저주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 우편에 서고자 힘써야 합니다. 우편의 양들처럼, 우편의 회개한 강도처럼 용서와 구원을 체험하며 그에 합당한 헌신을 바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오른 편에 던져진 그물에 잡힌 153 마리의 큰 고기들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크게 사용되기를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그물의 차이는 그물 던짐에서 뿐 아니라 그물 찢어짐에서도 현저합니다. 누가복음은 그물이 찢어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5:6).
이것은 신약시대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을 의미합니다. 그물이 찢어져 빠져나온 고기들이 다시 바다로 가듯이, 복음을 받고 다시 타락하여 세속화될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을 보여줍니다.
요한복음에서 그물은 찢어지지 않았습니다.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21:11).
박윤선 목사님은 본문에서 큰 고기가 이리도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물이 찢어지지 않은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교회에 속한 자들을 보호하심을 상징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잡은 고기를 한 마리도 놓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분명 종말과 재림의 상징입니다.
이상과 같이 그물의 찢어짐이 달랐다는 것은 예수님의 초림의 복음 사역에는 다시 세상으로 가는 자들이 있을 수 있겠으나, 재림으로 완성될 복음의 사역에는 다시는 세상으로 가지 않고 다 그물에 담겨져 153 마리의 물고기들, 오른 편 물고기들이 되어 모두 천국으로 인도된다는 놀라운 영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놀랍게도 누가복음의 베드로와 요한복음의 요한은 처음 갈릴리 해변에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부터 달랐습니다. 베드로는 그물을 던지는 것으로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온 세계에 복음 전파의 의미가 있습니다.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마 4:18-20).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세상을 버림을 뜻합니다.
요한은 그물을 깁고 있을 때 부름을 받았습니다.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마 4:21-22).
그물을 깁는 것은 고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 아닙니까? 이것은 종말의 교회와 "해 입은 여자"의 모형입니다. 요한은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고 했는데, 이것은 말세에 참 성도들이 복음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는 헌신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복음의 그물이 찢어지지 않고 보존된 것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의 오른 편에 선 양들의 회중에 소속되는 놀라운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3. 시간과 장소의 차이에 내포된 의미
눅 5: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요 21: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누가복음의 물고기 사건의 중심 시간은 밤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했다고 기록합니다. 밤은 영적 타락의 시간을 상징합니다. 밤이 새도록 그물질을 했다는 것은 구약 율법의 영적 어두움을 뜻하는 것으로, 우리는 여기서 율법에 속한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는 영적 암흑에 있음을 봅니다.
이들은 밤이 새도록 수고했지만 잡은 것이 없었습니다. 즉 율법으로는 제사드리는 것과 안식일 준수, 그리고 절기를 지키는 것 등으로 수고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닫는 데는 어두웠으므로 구원을 얻을 수 없었음을 뜻합니다. 초림의 예수께서 오셔서 복음의 빛으로 구원의 문을 열어야만 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그 시간을 ‘날이 새어갈 때에’(when the morning was now come)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날이 새어간다는 것은 새벽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는 재림이 가까이 임박했음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해석됩니다. 예수님은 종말에 재림 주로 오시는 새벽별이십니다(계 22:16).
이처럼 두 물고기 사건에서 그물질을 한 시간대가 다르게 기록되어 있는 것은 구약교회와 종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종말의 때가 가까울수록 구약의 율법으로 어두워진 밤이 서서히 물러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마지막 때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오는데 사람들은 현세적인 쾌락과 향락에만 눈이 멀어 탐욕의 왕관만을 쓰려고 합니다. 그러나 참으로 위대한 면류관은 천국에서 주님으로부터 받을 영광의 면류관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두 사건의 장소인 갈릴리 호수의 이름이 ‘게네사렛 호수’와 ‘디베랴 바다’로 다르게 표기되어 있음 또한 우리의 주목을 끕니다. 성경이 이처럼 같은 장소를 다른 명칭으로 사용하는 데에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게네사렛’은 ‘수금(harp)'이란 뜻으로서 거문고 모양을 한 히브리 지명인 ’긴네로트‘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호수‘란 표현은 바다보다 작은 개념으로 ’게네사렛 호수‘는 구약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반면 요한복음의 ‘디베랴 바다’는 당시 세계 전체를 지배하던 로마 황제의 이름을 딴 명칭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통해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을 상징합니다.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물고기를 잡는 사건 하나에도 이처럼 엄청난 의미, 놀라운 하나님의 경륜이 담겨 있습니다. 신비롭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지명, 인명, 사건 등을 통해 엄청난 구속사적 계시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를 보배처럼 감추어 두시고 우리로 하여금 찾을 수 있게 하셨고 찾기를 또한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찾은 자들에게 엄청난 축복과 은혜의 보화로 채워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한 해의 끝 날에 서서 자신을 돌아봅시다. 여러분은 153 마리에 속하는 큰 고기로 성장한 성도입니까? 여러분은 고난과 연단의 숯불에 익은 고기로 주님의 식탁에 올려져 있습니까?
요한복음의 그물은 오른 편으로 던져져서 엄청난 수의 큰 고기를 잡아올렸지만 찢어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오른 편에 서게 될 양입니까, 아니면 왼편의 염소 무리에 속합니까?
지금은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는 새벽녘입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계 22:16). 여러분의 가슴에 품은 영혼의 어장은 게네사렛 호수입니까, 아니면 디베랴 바다입니까? 우리 교회가 품고 있는 어장의 크기는 호수입니까, 바다입니까?
새해에는 우리 위에 큰 고기의 비전을 내려 주옵소서!
새해에는 광명한 새벽별 되신 주님을 기다리는 마라나타의 신앙으로 더욱 무장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새해에는 우리 모두 광대한 세상을 향해 복음을 들고 행진하는 그리스도의 군사들로 우뚝 세워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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