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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할절]부활의 사람들/막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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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른곰
댓글 0건 조회 763회 작성일 21-03-30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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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사람들

막 16:1-8

어제 비가 내리고.. 일부지역에서 내린다고 합니다.. 이것은 지금 절기가 내가 내리는 곡우절기가 가까이 와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곡우는 곡식곡자에 비우자입니다.. 곡식을 위한 비가 내리는 때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참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현명했는지를 알수 있습니다.

이 비는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이들에게.. 생명을 살리는 비입니다..

주님은 지금 이 부활절기, 곡우절기에 세상에 비와같이 희망과 생명을 파종하라고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주님은 지금 갈릴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눈물과 아픔의 땅, 시련과 소외의 땅 갈릴리 그곳에서 주님은 지금 부활의 씨를 뿌리라고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모두 주님의 사랑의 씨를 뿌리는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예수님은 사명을 시작한뒤로 갈릴리 호수 지역에서 활동하시면서.. 가르치시고, 고치시고,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갈릴리라는 지역은 도시와는 다르게 외진곳.. 문화혜택을 받지 못하고,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의 부유함과.. 화려한 예배가 드려지는 곳에서.. 떵떵거리고.. 부족한 것이 없는 자들에게가 아니라.. 과부와 고아.. 그리고 병든자들.. 귀신들린자들.. 가난한 자들 곁에서 그들을 보살피며 하늘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자 주님은 주로 활동하시던 곳을 떠나 예루살렘에 들어가십니다.

예수께서 어린나귀를 타고 그곳에 들어갔더니.. 놀랍게도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입구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예수님을 맞이합니다.

그들은 종려나무와 옷가지를 도로변에 깔아놓고 예수님 일행은 맞이합니다.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왕처럼.. 메시야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 멀리있는 주님이 가까이왔을 때 사람들은 외칩니다..

“호산나 호산나...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 이 말의 뜻은 구원해 주소서.. 구원해 주소서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오심은 구원입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이유는 우리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큰 그림이었습니다,

그 구원은 어떤 구원입니까? 그것은 그들 삶가운데 있는 고통에 대한 구원이었고.. 자신의 잘못을 용서해달라는 구원이었고.. 외로움에 대한 구원이었고.. 사람이 죽고 난후에 다가올 하나님 나라에 대한 구원이었습니다.

이 세상은 거짓과 암투.. 그리고 상처와 아픔.. 이런 죄악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차게 된 이유를 성서는 에덴동산의 사건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뱀의 거짓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인해서... 그곳에서 쫓겨나고.. 죽음이라는 터널을 들어가야 했고,, 고난이라는 삶을 살아가야 하고.. 세상의 모든죄들은 아담과 하와 이후로 유전되어 우리에게까지 왔습니다.

지금 세상을 바라보면.. 엘니뇨 현상.. 이상기후들.. 북극의 빙하들이 녹고..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우리앞에는 겨울이 사라지고 봄에 눈이 오고.. 비가오지 않는곳에 홍수가 넘치고.. 비가 많은 곳에 가뭄이 왔습니다. 이것들은 하나님이 주신 이 세상을 우리가 잘못 관리함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세상이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위험신호입니다.

특히나 지금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지금 전세계가 아우성입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아주 조그마한 바이러스에 의해 세상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보면서 우리앞에 다가온 징조들이 무엇인지 우리는 되돌아보아야 하고

또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그날을 생각하며 오늘을 살아가야 할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들에게 나귀타고 다시 오신다면.. 우리모두 호산나.. 호산나 외칠수 있는 우리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새끼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성전을 깨끗하게 하시고.. 그리고..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시고 유대지도자들에게 잡히십니다..

빌라도 앞에.. 대제사장 앞에서 번개같이 재판을 받 십자가형을 받게 됩니다.

골고다언덕에서 십자가위에서 모든 피와 물을 흘리시고 죽으십니다..

그리고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사람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동굴무덤에 모셔둡니다..

그리고 큰 돌로 입구를 막아놓았습니다

안식일의 날이 지나고 평소에 예수님곁에 있던 세여인이 새벽, 해가 막 돋은 때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예수님이 묻힌 무덤을 향해 갑니다.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였습니다.

그녀들은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도 못하고 볼품없이 돌무덤에 묻힌 예수님의 시신에 향료를 발라 드리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더는 그분의 온화한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온화하면서도 맑게 빛났던 그분의 눈빛과 만날수도 없습니다.

태산처럼 고요하게 앉아 계시던 주님의 모습을 뵈올수 없다는 슬픔이 여인들의 얼굴에 짙은 그림자로 내려앉았습니다. 갑작스런 스승의 죽음에 당황한 제자들은 끈 떨어진 연처럼 절망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지만, 머리로 주님을 이해하고 따른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을 세포 하나하나의 떨림으로 느꼈던 여인들은 예수님의 시신이라도 곱게 수습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길을 가면서도 여인들은 깊은 침묵 속에 있었을 것입니다. 말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들은 심정으로 이미 하나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윽고 무덤이 가까웠을 때 한 여인이 말합니다. "누가 우리를 위하여 '그 돌'을 무덤 어귀에서 굴려내 줄까?"

그녀들은 주님에 대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은 이미 돌문을 넘어.. 예수님의 시신을 어루만지고 있지만,

현실은 무덤을 막은 그 무거운 돌문을 굴릴 힘이 그녀들에게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도착해보니 놀라운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 돌덩이는 '이미' 굴려져 있었던 것"입니다.

수많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왜 문이 열려있지?.. 혹시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가지 않았을까??.. 유대인들이 해코지 하지 않았을까??

여인들은 어리둥절해졌지만 급하게 않고 무덤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곳에 웬 청년하나가 흰 옷을 입고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몹시 놀랐습니다. 그런데 그가 여인들을 향하여 말을 꺼냅니다.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6-7)

여인들은 예수님에게 향품를 발라드리려고 왔는데..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떠하겠습니까? 죽은사람이 살아났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죽엇던 나사로가 살아난 이야기나.. 예수님이 살아나신 이야기를 들어보았기에 그리 놀래지 않을수 있으나.. 죽은 분이 살아났다라는 말에.. 세여인은 얼이 빠질 만큼 놀라서 무덤에서 뛰쳐나와 도망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못하였습니다.

생각해보면..우리는 이 장면에서 의아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녀들은 그렇게도 주님을 사랑했던 여인들이건만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에 왜 그렇게 놀랐을까요?

그것은 전혀 예기치 못한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초의 충격이 지나고, 여인들은..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나서야 사람들은 부활이 환상이 아니라 현실임을 깨달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 부활이 여러분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 자기를 버리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도 죽기전까지.. 우리처럼 죽음의 현실을 피하고 싶었던 보통 사람의 삶을 사셨습니다. 참인간이시면서 참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영이 성육신하여 참 인간이 되신것입니다.

주님은 33년의 삶을 살면서.. 눈물을 흘리시기도 하고.. 잠을 주무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두려움도 느끼셨습니다..

마태복음 26장에 보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눈물로서 기도하십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시옵소서..”

또 27장에는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 말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십자가 위에서의 이 절규는 우리들 모두의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의 쓴잔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셨습니다. 부활은 이런 고통과 고뇌와 죽음 이후에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죽지 않으면 부활이 없습니다.. 죽어야만 부활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다들 세례를 받으셨을 것입니다.. 우리 장로교에서는 간편하게 성수를 머리위에 뿌려서 세례를 줍니다.. 그런데.... 유대교에서 했던 물세례는 세례를 받는 사람이 두손을 가슴에 얹고 목회자가 그 사람을 뒤로 젖혀서 물속에 들어갔다가 잠시후에 바로 꺼내줍니다.

물세례는 교인이 되었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다른 의미는 이전의 나는 물속에 빠짐으로서 나는 죽고 물속에서 나옴으로 그리스도인 내가 나온다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세례를 통해서 새로운 사람이 되어지고.. 부활한 사람들이라고 말할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의 죽음은 당하지 않았고.. 고통도 당하지 않았지만.. 우리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믿음으로 부활한 사람들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로 죽은 우리모두에게 믿음의 심장을 넣어주셔서 부활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믿음으로 부활한 사람들은 더 이상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치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까?

더 이상 이전의 옛사람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에베소서4장 22절 이하는 “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2-24)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안에는 이전의 습성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나의 잘못된 말로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고.. 나의 잘못된 생각을 다른이들에게 강요하고..

그럼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함에도 내 가족만 사랑하고..

나에게 유리한 것들만 생각하고 산다면.. 그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이전에 내가 변한 것을 보지 말고.. 내가 변하지 않는 것을 보십시오..

10년전과 내가 얼마나 변했습니까? 그리고 내가 얼마나 변화되지 않았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변화된 모습만 생각하고 변화되지 않는 것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으로 인해서 자신은 변화된 그리스도인이라 생각하면서 여전히 미움과 욕심으로 살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여러분에게 아직도 잡은 것이 많다면 내려 놓으십시오..

세례를 통해서 처음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을 만난 그 모습으로 돌아가십시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신앙으로 산다는 것은.. 여러분 안에 성령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변화시킬수 있도록 여러분의 마음을 하나님께 내어 놓으십시오..

나를 내려놓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참된 부활이 여러분에게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살리기위해 자신을 온전히 바친사람이 경험할수 있는 것이 곧 부활의 영광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실때에 부활하실 것을 알고 십자가를 지셨을까요? 그렇지 않을것입니다. 만일 그랬다면 십자가의 비장함은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다시 살 것을 아는데.. 굳이 피땀을 흘려가 이 잔을 내게서 돌려달라고 기도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의 고통과 아픔들.. 그리고 어디에도 말할수 없는 절대적인 고독,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 당신의 영혼을 맡기는 그 과정은 연애인들이 하는 연기가 아니라 현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부활의 소식은 예기치 않은 소식이고, 기쁜 소식이고, 우리에게 소망이 되는 소식입니다.

우리 앞에도 예수님이 걸었던 십자가의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은 누구나 겪어야 하는 길입니다. 하지만 그 길을 끝까지 십자가를 매고 우리가 걸어갈수 있느냐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살다가 인생길에서 우리는 어려운 일을 겪을 수도 있을것입니다.

실패할때도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갈등할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이야말로 우리를 하나님앞에 드러내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들기위해 나를 버리는 행위..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위해 세상의 것들을 버릴때에..

주님의 마음속에.. 또한 하나님의 생명책에 우리의 이름들이 깊이 새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겪어내야 하는 고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은 오히려 하나님과 우리를 더욱 가깝게 해줍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통이 하나님 믿음안에 사는 영적 자유를 빼앗아갈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부활에 대한 분명한 경험이 있고.. 확신이 있고.. 소망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런 확신이 있음에도.. 난감한 현실을 만날때가 있습니다.

도무지 문제를 풀어갈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아 막막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속에 사랑이 있다면,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편에 서 있다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성경이 말하는 것처럼.. '무덤의 그 돌덩이'는 이미 굴려지게 될것입니다.

입구를 단단히 막았던 돌을 사라졌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예수님을 보고자하는 마음이 그만큼 컸기에 가능했습니다.

해결결하기 어려운 문제 때문에 낙심하고 계십니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이미 그 문제를 풀고 계십니다. 우리가 믿음가운데.. 사랑을 가지고, 용기를 가지고 문제에 직면하다보면.. 하나님이 이미 내 삶속에 개입하셔서 내 생의 문제를 풀고 계심을 깨닫게 될것입니다.

잘 모르시겠습니까? 여러분의 과거를 돌아보십시오..

어느누가 그 어렵고 힘든 터널을 이기게 해주셨는지 생각해보십시오..

나는 재주도 능력도 없었지만.. 알 수 없는 뭔가에 의해서..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우리를 그 길에서 벗어나..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앞에 있던 그 돌들은 이미 굴려놓으셨다라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무덤 안에 있던 젊은 청년은 그녀들에게 주님을 만날 곳이 어디인지를 가르쳐주었습니다. 그곳은 갈릴리입니다. 제자들과 주님이 함께 땀흘리던 곳, 사랑으로 사람들을 돌보던 곳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신학이라는 무덤을 찾아갑니다. 교리의 무덤을 찾아갑니다.

하나님을 찾기 위해 수백 억을 들여 화려하게 지은 교회를 찾아갑니다.

신앙생활을 통해 뭔가 얻으려고.. 또한 가지려고 합니다.

나에게 많은 복을 주시는 하나님.. 내가 더 많은 것으로 풍족해지기를 원하는 하나님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그러나 여러분.. 우리의 주님께서 가신 갈릴리는 귀신들려 사는 사람들.. 과부와 고아.. 삶에 찌들고.. 상처받은 사람들에게로 미리 가셨습니다.

천사가 알려준.. 주님께서 가신 그 길.. 갈릴리.. 우리도 그 길을 가야 할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모두 갈릴리로 갑시다..

주님 주신 각자의 사명을 따라 일어나 일해야 할 차례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당신의 손과 발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물론 아픔이 있는 모든 곳에 갈 수도 없고, 모든 일에 뛰어들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요구가 있을 때 응답할 수는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곁에 살고 있는 이웃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한 걸음 더 그들 곁에 다가설수 있습니다.

몸을 낮추어 그들의 심정을 헤아릴수 있습니다..

그들의 벗이 되려고 시간을 낼 수는 있습니다.

우리가 그처럼 세상의 아픔을 치료하기 위해 주님의 손과 발이 되려고 할 때.. 우리는 그 낮은 자리에서 우리는 주님의 미소와 만나게 될 것입니다.

지금 비록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낮은곳을 향해 걸으셨던 그 주님의 길을 따라 걷는 우리 안로교회 교인들 다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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