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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어떻게 감사드릴 수 있을까/골로새서 3: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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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른곰
댓글 0건 조회 561회 작성일 20-11-03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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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감사드릴 수 있을까

 

골로새서3:5-17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본문 말씀 가운데 15절 말씀을 다시한번 읽겠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사도 바울이 사랑하는 믿음의 자녀들을 향하여 간절하게 권면하신 말씀입니다. 너희는 여러 가 지 은혜를 많이 받았는데 감사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감사해야 할 일이 있을 때 감사하 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 아닌가? 라고 말씀하실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시지요.

 

한 번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갈릴리와 사마리아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어떤 한 촌에 들어 가셨습니다. 거기서 문둥병자 열 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가운데는 사마리아 사람도 한 사람 끼어 있었습니다. 여러 분이 잘 아시는 대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에는 감정이 좋지 않아서 서로 접촉하기를 꺼려했습니다.

 

그러나 문둥병 환자들은 다같이 불행한 병에 걸려있기 때문에 불행한 가운데 서로 동정 하면서 한 집안이 되어서 여기저기 쫓겨다니며 유대 사람이나 사마리아이나 사람 할 것 없이 같이 지냈던 모양입니다. 그 당시 문둥병은 죽음과 같은 불치의 병이었습니다. 사실 이 사람들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이 병은 전염성이 있어서 이 병에 걸리면 격리시켰습니다. 사회에서 추방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병에 걸린 사람들끼리 모여 지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친구를 가질 수가 없었고 단순히 같은 병에 걸린 것 때문에 함께 지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 예수님이 이 사람들이 있는 곳 가까이로 지나가시게 되었습니다. 이때 이 사람들은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예수 선생님,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그들은 소문으로만 듣던 예수님을 직접 뵙게 되니 너무 감격해서 그냥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주님을 향하여 절실하게 소리 질렀습니다. 예수님은 열 명의 문둥병 환자를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제사장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은 이 사람들은 서로 쳐다보았을 것입니다. 저희는 예수님이 말씀을 들으 면서 아무런 느낌도 변화도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병에서 깨끗해져라 고 하시면 온몸이 불덩어리 같이 뜨거워지든지, 감당할 수 없는 경련을 일으키든지, 온몸에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짜릿하든지, 어떤 체험이 있기를 기대했는데 그런 체험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님의 말씀을 들은 이 사람들은 기대하는 바와는 달랐지만 실망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했 습니다. 믿음에는 반드시 순종이 따릅니다. 순종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저희가 제사 장에게로 가다가 다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많은 문제와 요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열심히 기도는 하는데 응답받지 못하는 일이 많 아 실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다음 단계를 위하여 충분한 힘을 허락해 주십니다. 그리 고 주님은 언제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열 사람의 문둥병 환자는 함께 고통을 받았습니다. 함께 울었습니다. 함께 한숨쉬었습니다. 함 께 절망 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기도하고, 함께 말씀 듣고, 함께 순종했더니, 함께 병이 나았습니다. 그들은 함께 기쁨이 충만하여 제사장들에게 가서 그들의 몸이 깨끗이 나은 것 을 보이고 다 나았다는 증명서를 받았습니다. 이제는 일반 사회 사람들과 같이 지낼 수 있었고 그립던 가족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뻐 뛰며 세상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오직 사마리아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깨닫 고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예수님께로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 돌리는 감사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열 사 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않았느냐? 그 아홉은 어디있느냐? 이 사마리아 사람 한 사람밖에는 하나 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없느냐? 라고 하셨습니다. 열 사람의 문둥병자들이 병고침을 위하여 다 함께 예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다함께 완전히 깨끗하게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만이 돌아와서 감사를 드렸습니다. 열 사람이 간구했는데 한 사람만이 돌아와서 주님께 찬양했습니다. 그러면 다른 아홉 사람은 왜 주님께 감사드리지 못했습니까? 이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닙니 다. 이것이 바로 타락한 인간성의 일면입니다. 이 사람들처럼 우리도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했 을 때 하나님께 구원해 달라고 간절히 간구합니다. 그 후에 우리가 그 어려움에서 건짐을 받았습 니다.그런데 그 어려움에서 건짐 받고 나서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지키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영국의 트렌치 감독은 예수님의 행하신 이적에 대해서 주석을 써 내려가다가 자기가 믿는 바로 는 모든 은혜 가운데 감사할 줄 아는 은혜는 제일 드문 은혜라 고 말했습니다. 우리 동양에 내려 오는 말 중에도 원수는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 라고 한 것이 의미있는 말이라고 생각합 니다. 은혜를 구하는 이는 많지만 은혜를 받은 다음에 그것을 기억하는 이는 적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특별히 주의하지 않으면 우리도 그 아홉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옛 날 다윗도 스스로 자기 영혼을 깨우면서 하는 말이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송하여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라고 했습니다. 이 열 사람 가운데 아홉 사람이 은혜를 잊어 버렸는데 이상하게도 전부가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을 비교해 보면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이 유대인이요, 또 은혜 를 깨달아 알 만한 사람이 어떤 면으로 보든지 유대인이 아닙니까? 이 유대인들은 말하자면 아브 라함의 자손입니다.모세의 율법을 배운 사람들입니다. 여러 선지자의 교훈을 들은 사람들입니다. 매 안식일이면 회당에 나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유대인 아홉은 전 부가 은혜를 잊어 버렸습니다. 은혜는 잊어버리기가 쉽습니다. 은혜를 받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으례히 받을 것으로 생각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은혜가 너무 크면 잊어버리기가 쉽습니다. 작은 은혜는 기억하지만 큰 은혜일수록 오히려 잊어버리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열심히 간절히 하는 사람도 은혜를 잊어버리기가 쉽습니다.더구나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믿음의 결과로 은혜를 받았는데도 그 은혜를 잊어버립니다. 믿음있는 사람도 은혜를 잊어버리 기 쉽습니다. 왜 우리가 감사하지 못합니까? 축복 대신에 고민거리에 정신을 쏟고 있기 때문에 감사하지 못 합니다. 아홉 사람의 문둥병 환자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친구도 잃고 재 정적으로도 궁핍했습니다. 지난날의 고통이 오늘의 기쁨을 소멸시키는 일이 많습니다. 벤허 라는 작품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현재의 축복에 감사하는 것만이 지난 날의 고통을 잊을 수 있다 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사람 혼자 돌아와 감사하는 것을 보시고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않았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고 말씀하셨습니다. 열 사람의 문둥병자가 다 나음을 받았지 만 그 은혜를 깨닫고 돌아와서 감사드린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나머지 아 홉 사람은 예수님의 은혜를 잊어 버렸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감사드릴 수 있습니까?

 

첫째로, 은혜를 잊지 않아야 합니다. 모든 은혜 가운데 감사할 줄 아는 은혜는 보기 드문 은혜 입니다. 세계적인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r)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세 가지 큰 덕을 가르친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 믿음과 소망 그리고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 이라고 했 는데 자기로서는 꼭하나 더 넣을 것이 있다고 하면서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 가운데도 은혜를 구하는 이는 많지만 받은바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사 람은 심히 적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문자 그대로 조금 전에 말씀드린 문둥병자와 같이 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 이었는데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죄사함을 받고 구원함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십자가의 은혜를 늘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드립니까? 우리가 깊이 생각지 아니하고 늘 힘 쓰지 아니하면 이 큰 은혜를 잊어 버려서 감사생활을 하지 못하기가 쉽습니다. 여러분,우리가 세상에 처음 올 때 무엇을 가지고 왔습니까? 벗은 몸으로 왔습니다. 빈 손으로, 그저 핏덩이로 왔습니다. 이 세상에 난 다음에 그냥 내버려두었다면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것을 목욕시키고, 젖먹이고,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눕히고, 말도 하나하나 가르쳐주고, 학교에 보내주고 다 커서 한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키움을 받았는데 어머니의 은혜, 아버지의 은혜도 모르고, 모든 축복의 근본이 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지 못하고 혼자 된 것 처럼 생각하는 분은 없습니까? 성경에 보면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내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라고 했습니다. 짐승은 오히려 그 주인을 아는데 사람은 부모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그 임자가 되는 하나님을 모르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 까?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1장에서 그 당시 불신세계에 대해서 말할 때 두 가지로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한다 고 했습니다. 믿지 않은 세상 사람들의 생활을 보면 하나님이 계신 것을 어느 정도 압니다. 그러면 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합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할 줄 모릅니다. 세계의 어느 문헌을 보아도 우리 성경처럼 감사하라 는 말과 찬양하라 는 말이 많이 나온 책은 없습니다. 이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는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 그러면 성경에는 왜 이렇게 감사하라 는 말이 많이 나옵니까? 본래 성경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 님을 믿는 경건한 사람들의 손을 통해서 쓰여진 까닭입니다.우리가 오늘을 감사주일로 지킵니다. 첫 번째 감사주일은 1620년 102명의 청교도가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영국을 떠 나 늦가을 이맘 때 미대륙에 도착했던 때입니다. 오늘의 미국은 부강한 나라이지만 그때는 그렇 지 못했었습니다. 그저 황막한 광야와 산과 들뿐이었습니다. 그 해 겨울 먹을 것이라고는 배에 싣고 오며 먹다 남은 거 얼마밖에 없었습니다. 그 해 겨울은 대단히 추웠습니다. 날씨는 찬데 먹을 것은 없고, 입을 것도 변변치 않고, 시설 도 엉망이어서 그 해 겨울을 지내는 동안에 반 이상이 굶어 죽고, 병나서 죽고, 얼어죽었습니다. 마지막에는 먹을 것이 점점 없어져서 옥수수 몇 알씩을 배급 준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첫해 농사를 짓고, 그런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한 것을 깨닫고, 특별히 하루 를 정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풍속이 생긴 것입니다. 그들이 만일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고 하면 그런 감사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평안할 때에만 감 사하는 것이 아니라 괴로운 때에도 감사 드립니다. 순경에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역경에도 감 사드립니다. 셋째로, 은혜를 보답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시편 116편에 보면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고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성도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후 대해 주신 것을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다윗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섭리와 약속을 믿었고 하나님께서 사무엘에 의해서 베들 레헴 목동의 지팡이를 이스라엘 나라의 왕의 홀로 변하게 하여 주신 그 확증을 믿었습니다. 그에 게는 이와 같은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신념과 확신을 가지고 견뎌 냈습니다. 비록 사울왕이 자기에게 진노하고 그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다윗은 그의 희망 이 무엇인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고 그의 희망의 근거를 밝혔습니다. 시편 116편을 쓴 시인도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라고 말했습니 다. 성도의 생활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에 감사 감격하여 내가 어떻게 하면 이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할까 하는 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시인을 환난 가운데서 건져 주셨습니다. 넘어짐에서 건져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이 놀 라운 은혜를 깊이 생각합시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해서 어떻게 보답할 수 있을까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감사와 감 격이 없는 신앙생활은 옳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이 시인은 여기서 그의 결의를 표현합니다. 내가 구원의 잔을 들겠나이다, 내게 주시는 어떤 잔이라도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하는 고백과 열의입니다. 그리고 내가 감사의 희생을 주께 드리겠나이다 했습니다. 마음속에 진정으로 감사한 심정을 표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려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안 다음부터 어떻게 평생 동안 늘 감사와 감격의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까? 디모데전서 1장 12절 이하의 말씀을 보세요. 여기 그의 간증이 있습니다. 나를 능하 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 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 도록 풍성하였도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지 그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얼마나 감사한지 말로 다 할 수 없다고 하면서 자기는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해 보겠다고 하는 보답의 심정을 가 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주님 때문에 그렇게 심한 어려움을 당해도 오히려 영광으로 생각 하고 그렇게 수고를 많이 하면서도 자기가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역사하는 주님의 은혜 라고 했습니다. 바울에게는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에 보답하려는 마음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그 러므로 바울은 그처럼 많은 주의 일을 하면서도 자만하지 않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 보면 이런 선언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 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라 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아마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벅찬 심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깊은 감격의 믿음은 그로 하여금 주님의 교회를 위해 봉사하며, 만민을 위해 봉사하는 봉사자가 되게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이끌림을 받아서 안할래야 안할 수 없는 감격이 늘 그에게 넘쳤습니다. 이와 같은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감격스러운 믿음은 바울로 하여금 말로 다 할 수 없는 어려움 속에서도 항상 승리의 생활을 하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 참된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격스러운 마음 가운데서 그 은혜의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하려고 하는 노력에 불과 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고. 우리 믿는 사람에게 근심이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하면 보 답할 수 있을까? 하는 근심밖에는 없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신앙이 있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감 사의 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겐 감사할 일이 점점 많아집니다. 감사하지 아니 하는 사람에겐 감사할 일이 점점 적어집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 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고 말씀했습니다. 여기 모든 것 이란 말은 역경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는 역경까지도 선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어떻 게 역경이 선으로 바꿔집니까? 그 하나는 역경을 순경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다른 하 나는 역경 속에서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그 역경을 변화시키는 이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옥중에 있으면서도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고 말씀했습니다. 이것 은 현재 당하는 처지에 만족해서 환경이 좋아서 감사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고통은 고통이요, 어 려움은 어려움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능력과 보호와 사랑을 믿고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 다. 지금은 쓰라린 사정이나 감당하기 어려운 여건 속에 있더라도 하나님이 보다 나은 데로 이끌 어 주실 것을 믿을 때 그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런 감사는 역경 속에서 의 감사요, 소망 중에 즐거워하는 감사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처지는 어렵습니다. 이런 형편 에서 어떻게 감사할 수 있습니까? 구약 성경 하박국 3장 16절 이하의 말씀을 읽을 때 알 수 있습 니다. 하박국 선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 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 는 것이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 도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 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게 되었을 때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 러나 환난의 자리, 역경의 처지, 실패의 형편에서 감사할 수 있는 것은 믿음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왜 이 땅에서 착하 고 바르게 살려고 힘쓰는 사람들이 고생을 해야 합니까? 지금은 이해할 수 없어도 감사하는 생활 을 하면 이해할 수 있고 대답을 얻을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는 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시간적으로는 항상 감사하고, 내용적으로는 범사에 감사하고, 방 법으로는 주의 이름으로 감사하고, 대상으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 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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