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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절]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 (요한복음 1장 1~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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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른곰
댓글 0건 조회 855회 작성일 20-12-05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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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 (요한복음 1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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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문학가중에 황지우 시인이 있습니다. 이 분이 쓰신, “너를 기다리는 동안 이라는 시입니다. 앞부분을 잠간 읽어 드립니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에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여기까지입니다. 후반부가 더 남아 있는데 궁금하신 분은 찾아서 마저 읽어 보십시오.

 

황지우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보았을 절실한 기다림의 심정을 잘 형상화한 시로, 특히 기다리는 사람의 심리를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국시 중에 기다림의 시라고하면 김영랑 시인이 1934년에 발표(1934 4 문학(文學) 3), ‘모란이 피기 까지는이라는 시를 기억 하실 겁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학창 시절에는 한 번쯤 외워도 보고, 사색에 젖어 보신 추억이 있으실 겁니다. 기다리는 것은 고통스러운 인내의 시간이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소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간다는 매우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12월은 기다리는 절기, 대림절(대강절, 待降節)이 시작되면서 교회력으로 1년을 새롭게 시작하는 달입니다. 모든 인류 가운데 구세주가 오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 가운데, 빛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사랑과 평화의 뜨거운 열기가 온 세상에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각자에게도, 아기 예수님이 오시기를 고대하는 기대와 소망이 가득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거룩과 경건함으로 기다림에 집중 하는 가운데, 온전한 마음의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서, 새로운 내일을 위해 힘차게 전진할 수 있는 크신 은총이 대림절 기간,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요한복음의 시작은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파격적으로 시작합니다. 1 1절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예수님을 말씀(, 로고스 λογος, Word)으로 의인화해서 표현한 것이 아주 독특합니다. 요한이, 예수님을 말씀으로 표현하였다고 해서, 예수님=(equal)말씀 이라는 부등호 공식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말씀이라는 한정된 개념에 제한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럼에도 요한이 말씀이라는 은유적 표현을 이야기한 것은, 예수님을 모르는 무지한 인간들과 성서를 읽는 독자들이 좀 더 예수님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노골적이고도 거침없이 주장합니다. 삼위일체의 개념이 없었던 당시에 공개적으로 목수의 아들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다 라는 주장을 한 것은,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신성모독중의 가장 극악한 신성모독이라고 공격했고, 이방인들은, 미치도록 종교에 집착하는 광신도들이라고 외면했습니다. 말씀이 곧 하나님 이라는 주장은 어느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왜 요한이 말씀이라는 독특한 개념을 가지고 왔는지는 14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아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것을 말하기 위하여, 요한이 말씀이라는 생소한 개념을 1절부터 도입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성육신(incarnation, 화신, 육체화, 구체화) 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성육신하기 전의 본 모습이 무엇이었냐, 곧 말씀으로 계셨고, 그 말씀이 곧 하나님 본체라는 연결고리를 만들었습니다. 요한이 성경의 독자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성육신 하신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존재(피조물, 만들어진 사람)가 아니라, 창조주 자체가 육신이 되셨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증언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요한복음을 읽으실 때 1절과 14절을 하나로 묶어서 읽으시면 제가 설명 드린 것들이 눈에 확 들어오실 겁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이 사실을 성령의 감동으로 선포하고 요한복음서의 첫 머리에부터 강력하게 주장함으로써, 예수님께서 단순한 사람의 아들로 고통 받다가 죽으신 분이 아니라, 성경의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그 메시아, 곧 세상의 구원자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셨다는 사실을 확증할 수 있는 진리의 기록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요한복음이 없었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완성하신 구원의 능력을 충분히 이해하거나 마음껏 맛보지 못하고, 공허한 교리 논쟁에서 불충분한 답변만을 들어야 했을 수도 있습니다. 요한복음 때문에,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예수님이 유일한 구원자라는 확고부동한 진실의 답변을 얻게 된 것입니다.

 

저에게, 인류역사상 가장 큰 대 사건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망설임 없이, “성육신 사건이라고 답할 겁니다. 그리스 신화에는 많은 신들이 인간과 동물의 모습을 취하고 수시로 올림푸스와 세상을 오고가는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이와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만들어진 신이 아니라, 유일하신 창조주께서 영광의 몸을 버리고 피조물과 동일한 모습을 취하기까지, 낮고 비천한 가운데 오셨다는 사실은 충격 그 자체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성육신 사건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인간의 지식과 입술로는 불가능 하다. 사람이 짐승의 몸을 빌어 그 새끼로 태어나는 것보다 수백, 수천 배 더 결정하기 어려운 사건이 성육신이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정말 말이 안 되는 경우가 성육신 사건입니다.

 

구약성경 1 1,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성경은 내 안에서 자라날 토양을 갖추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신약성경 요한복음 1 14,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구원의 은혜가 내 안에서 씨앗으로 자라날 수 있습니다. 구약 1 1, 신약 1 14절을 확실하게 통과하지 않으면, 성경은 단순히 어렵고, 두껍고, 읽기 힘든, 고전 기록물에 불과할 것입니다.

 

우리 다같이 요한복음 1 1절과 14절을 연속해서 읽어보겠습니다.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아멘.

 

대림절은, 말씀이신 예수님, 하나님이신 예수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인간의 몸으로 성육신 하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나를 살리시려고 이 땅에 오시기까지 낮고 낮은 몸으로 오신 우리 예수님에게 진정한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성육신 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깊이 받아들이시고, 내 자신이 간절한 소망 가운데 기다리다가,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만남의 시간을 마음껏 누리는 큰 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성육신 하신 예수님, 곧 창조주 하나님이 비천한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친히 오셨지만, 깨닫지도 못하고, 인정하지도 않았습니다. 11절에서 보면, 예수님이 자기 땅에 오셨지만, 자기 백성들은 예수님을 일절 모른 체하고 냉담하게 반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직접 창조한 세상에 오셨는데, 자신의 손으로 창조하고 보호하여 준 사람들 속에 오셨는데도, 사람들로부터 철저하게 거부당했을 때 예수님은 심정은 어떠하셨을까요?

 

어떤 주인이 밖에 났다가 볼일보고 돌아왔더니, 모든 하인들이 짜고 하는 것처럼 주인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주인을 보자마자 얼굴을 홱 돌리고, 각자 자기 방으로 쑥 들어가 버린다면 어떻겠습니까? 주인으로서는 괘씸하고, 화가 치밀어 올라서, 모른 체 하자고 주도한 자를 색출하여 벌을 주려고 할 것입니다. 한 나라의 왕이 민정시찰을 나갔는데, 왕의 행차를 본 백성들이 땅에 엎드려 절하지 않고 길도 비켜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군사들을 풀어서 오만불손한 백성들을 전부 잡아다가 매질을 하며 엄히 다스릴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땅과 모든 사람들의 주인이시자, 만왕의 왕이시지만,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진노하시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 반대로, 영접하는 자가 어떤 신분이 될 것인지를 명확하게 알려 주십니다. 12, 13절을 읽어 드립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아멘.

 

성육신 하신 것도 너무나 충격적 사건이라 몸둘바를 모를 지경인데,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다는 반응을 보이기만 하면, 창조주의 자녀로 삼아 주시겠다니, 또 한 번 놀랍고 더 큰 충격을 받습니다. 이러한 놀랍고 충격적인 일들이 일어났는데도,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기까지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 중 다수가 예수님을 거부 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는 복음이 모든 종족들에게 전파되고 수많은 교회가 온 세상에 세워졌지만, 아직도 인류의 80~85%는 우상을 섬기거나 타 종교에 빠져 살아갑니다. 이 세상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거부하는 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충격 요법이 전혀 통하지 않는 악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2천년의 시간을 지나서 복음의 능력이 00교회와 우리 각자에게 흘러 들어와 성육신과 영접의 사건을 듣고, 믿음으로 반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기적입니다. 위대한 복음의 능력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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